만화시비탕탕탕(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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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 일본문화개방-그래도 태극기는 휘날린다, 원광문화, 1998.11.01
(C)중앙일보 1998년, 국민의 정부는 일본문화의 연내 개방을 놓고 사회각층의 눈치보기에 돌입했다. 각종 여론조사 통계에서도 일본문화의 개방을 소원하는 국민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 문제는 우리사회를 대표하는 보수자들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다. 정부는 모든 일은 국민의 뜻에 따라 실행한다는 원칙을 공고히 하려는 듯 TV토론 등을 통해 미디어정치의 진수를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감시와 반발에 정면으로 대항할 만한 윤리 과학적 당위성은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저 ‘감정 싸움’으로 점철되어 ‘문화쇄국’을 하고 있음은 ‘우리 국민의 손해’임을 알리는 정도가 고작인 것이다. ‘정부의 충실한 신하가 되어야 한다’는 미디어 권력자들의 통박 굴리기식 여론 형성과 국민 계도가 실..
2019.01.06 -
박석환, 아동독자의 분실, 만화시비탕탕탕, 1999
만화방은 80년대 제 2의 증흥기를 맞으며 급속도의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88올림픽을 기점으로한 정부의 규제와 사회단체의 압력이 본격화되면서 점차 사라졌다. 대본체제의 생명력을 연장키 위한 빅보스(독점 배본업자)의 노력과 작가들의 자쟁의지로 한때 회생의 기회가 보였으나 대중은 이미 멀어진 이후였다. 만화방의 1차 증흥기는 60년대를 전후해서 일어났다. 당시 주종을 이루던 것은 아동만화였다. 만화방의 연륜과 함께 아동 독자층이 성장하자 작가들은 작품의 이야기 구조를 변화시켰다. 10대의 주인공이 태반을 이루던 작품 속에서 그보다 나이 많은 주인공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주인공의 연령이 높아지면서 작품이 다룰 수 있는 이야기도 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교복을 입고있는 까까머리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
2019.01.04 -
박석환, 김희보의 소울러브, 만화시비탕탕탕, 1999
스물 몇 살의 날들에 가능해진 영혼사랑-김희보, 『소울러브』 성인만화지 = 억압의 분출구 ‘수영장에서 혼자 도포자락 휘날리고 서 있더라구.’만화가 백성민이 홍경래의 난을 모티브로 한 작품 『토끼』를 연재하면서 사석에서 쏟아낸 말이다. 성인만화잡지가 ‘수영장’ 같다는 것과, 자신의 옷차림(작품)이 수영장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두 가지 의미를 건네는 말이다. ‘성인만화잡지=선정성’으로 보느냐는 물음엔 ‘다 벗고 있다는 뜻보다는 벗을 수 있는 약속을 지닌 공간’이라고 제한을 둔다. 백성민에게 성인만화잡지라는 곳은 세상과의 합의하에 이루어진 ‘억압의 분출구’ 정도가 되는 것이다. 그의 말은 세상의 약속과 그들이 은근한 눈빛으로 원하는 ‘무엇’에 대한 감을 잡고 있다는 뜻처럼도 들린다. 자신은 이미 알고 있으나..
2019.01.04 -
박석환, 기계전사 109의 만화시기, 만화시비탕탕탕, 1999
『기계전사 109』의 만화시기 아이큐점프의 등장 6천여 종 1천여만부의 만화도서를 출판한 1989년 만화계는 1988년 연말에 이어 2월 실시된 저질성인만화 단속 등으로 인해 대본소의 폐업이 줄을 이었다. 대본소는 50년대의 아동을 위한 장소에서 그들이 성인으로 성장한 80년대에 아동에게는 적대의 장소로 공인됐다.동네어귀의 전봇대처럼 익숙하게 자리했던 만화가게의 입간판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2층 또는 지하라는 밀폐의 공간으로 잠입했던 업소들 마저 ‘천박한 것’이라는 손가락질 앞에서 사라졌다. 이와 동시에 문구점을 중심으로 축쇄본 일본해적판 만화들이 저가에 공급되기 시작했다. 87년 대본소를 통해 한차례 일본만화 읽기 훈련을 거친 우리 독자들은 더욱 열정적인 집착을 보였고, 급기야 마니아 집단을 형성해내기..
2019.01.04 -
박석환, 박흥용의 백지, 만화시비탕탕탕, 1999
자본논리의 비아냥거림 뒤에 숨은 女性財貨-박흥용, 「백지」 금붕어의 「백지」 철창을 경계로 구치소 안에 누워있는 금붕어(金崩語-작중 주인공. 필자는 이를 ‘물질에 의해 무너진 인식’의 표상으로 읽었다.)가 형사에 의해 잡혀온 여자를 본다.고개를 뒤로한 채 거꾸로 현상에 접근하고 있는 금붕어의 시선을 따라 2면까지 진행된 이야기는 길거리에서 윤락행위를 하던 여자와 형사의 화답을 보여준다. 형사는 길거리에서 ‘타락하여 몸을 버리는(‘윤락’의 사전적 의미) 행위를 일삼아 왔’음을 검거이유로 대고, 여자는 ‘...내가 벌어먹었지 니가 밥 먹여 줬냐?’라고 소리친다.‘남한테 해 안끼치고 살아왔고, 얻어 먹어 본적 없다구.… 죄없는 사람도 구별 못 하 … 공짜밥 먹여 준다는데 마다할 사람 어딨냐? ….’ 까지 말한..
2019.01.04 -
박석환, 한국 잡지만화와 망가의 꿈, 만화시비탕탕탕, 1999
-세주문화사의 '영레드' 창간 준비를 중점으로 94년 창간 된 세주문화사의 《미스터블루》는 순 토종 격월간 성인만화잡지라는 타이틀을 획득하며 서울문화사와 도서출판대원이라는 양대 체제를 재편하고 나섰다. 한국만화의 영속적 영웅으로 회자되어질 이현세 사단과 신인만화 슬픈 일이지만 해야할 일이 되어졌다. 이것은 아주 큰 폭의 장르구분 용어로 쓰여져야 할 것이다. 바로 만화와 망가이다. 일본식 표기와 발음임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화는 가장 보편적인 장르 표현 용어로 확고히 자리 매김 되어져 있다. 그리고 이제 90년대의 만화현실을 즉시 하기 위해선 망가라는 그들의 발음을 만화와는 다른 장르 구분용어로 도입해야 할 때가 되어졌다. 그것은 90년 이전의 작가들이 만화의 표현형식만을 빌려 왔다고..
2019.01.04 -
박석환, 우리 만화 속의 일본 찌꺼기, 만화시비탕탕탕, 1999
만화대국으로 확고한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일본은 인터넷을 통해 아니메와 망가라는 일본식 표현들을 세계공용어로 만들고 있다. 년간 20억권 이상의 만화를 출판하고, 《주간 소년점프》라는 단일잡지가 매주 6백만부 이상 팔려나가는 것이 일본의 만화시장이다. 프랑스의 한 평론가는 이미 일본 TV만화가 세계시장의 70%이상을 점위하고 있다고 관측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출판시장 개방을 목전에 둔 96년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외국만화심의를 거친 일본만화복제물의 공식화 된 발행수가 95년에 비해 45%증가한 1,256권으로 급격한 증가추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공식적인 집계에 의한 것으로서 불법출판이나 잡지 연재의 경우까지를 포함한다면 그 수치는 어림잡기 어려운 지경이다. 혹자는 이미 우리만화는 일본만화의 견본시장 역할..
2019.01.04 -
박석환, 만화도 DJ와 함께 춤을 춰야 하지 않을까?, 히스테리, 1998
역대 대통령 당선자중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문화 애호가는 김대중 이다. 선거전부터 영화전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영상산업에 대한 관심을 피력하고, 애니메이션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기도 했다. 급기야는 순정 호러 잡지 《아디》에 까지 출현 창간인사를 할 정도로 김대중은 문화마인드가 있는 지도자임에 분명하다. 여기저기 가리지 않는 선거 전략일 뿐이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도 없지 않다. 그러나 무지에 가까운 문화정책을 펼쳤던 역대정권에 비한다면 그나마 깨어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김대중 당선자는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미술 전시전 ‘호랑이의 눈’전에 참여 호감 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IMF체제하에 놓인 경제위기 상황은 문화를 거품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들에 의해 난도질당할 ..
2019.01.04 -
박석환, 만화세상이 왔다고, 만화시비탕탕탕, 1999
어쩌다가 만화가 국책 산업이 되어서 너나할것없이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하겠다고 난리다. 미술대로 유명한 모대학교 앞을 지나면서 빼곡이 들어찬 미술학원을 보고는 ‘미술학원선생 양성과’가 있냐고 묻더라 더니. 웃기지도 않을 작태가 만화쪽에서도 재현되는지라 ‘만화’자 붙은 대학이 생겨나고, 사설교육기관이다 평생 교육원이다 해서 줄기차게 만들어지는 게 미술학원 꼴이다. 이런 시류에 편승하지 못하면 무슨 늙다리라는 평가에 직면할 듯 대학들은 급하게 나서고 있다. 대부분 얼굴마담 하나도 변변하지 못한 게 당연하다. 저마다 만화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달라졌다고 말하면서, 모대학에 다니던 학생이 학교 때려치우고 만화학원에 다니는 꼴을 배우라 말한다. 저런 미친놈들도 있구나 하던 사람들도 그만큼 인식이 성장했음을 절감한 ..
2019.01.04 -
박석환, 만화방에 갔다, 만화시비탕탕탕, 1999
칠십 몇 년도에 높게 걸린 태양 빛이 비닐 썬텐 사이로 힘겹게 기어들어 온다. 찌그러든 소파 위에서 꼬무락거리며 오르락 거리는 먼지를 잡아낸다.10평도 되지 않는 공간에서 그윽한 떡볶이 냄새를 참아내며, 아깝게 넘겨보던 책 한 권.일곱살 적의 나는 그 곳을 나서며 매일 새로운 사람이 됐다.땡이가 되고, 훈이가 되고, 탁이 됐다. 팔십 몇 년 엔가 그 후로 10년이 지났을 때, 그 내들이 있음을 알리는 빨간 글씨의 입간판이 보이지 않았다. 묘한 기운에 반기를 들 듯, 고개 들어 본 하늘가에 그들이 있음을 알리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너무도 비밀스런 계단을 향해 올라야 했고, 그 옛날에 제공되던 국판의 판형은 보이지 않았다. 신국판의 얇은 책들을 손에 쥐었을 때 그들은 나만큼이나 성장한 모습으로 나섰다. 짧게..
2019.01.04 -
박석환, 검열의 역사가 곧 만화의 역사였다, 경일대신문, 1997.08.25
5.16 직후인 1961년 12월, 원로 만화가와 출판업자들로 구성된 '한국아동만화자율회'가 운영되면서 만화는 표면적으로 '사전심의'라는 족쇄를 차게 된다. 60년대 말기에 거행된 불량만화(?) 단속은 1만9천여 개소에 달했던 '아이들의 공간(만화방)'을 유해업소로 규정한다. 사전심의시의 칼질도 전과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로 인해 '심의'라는 공권력을 매수해 만화판을 사리사욕의 장으로 만들고, 독과점을 형성해낸 출판사도 등장했다. 당연스레 줄어든 창작물은 1977년 6454(심의 신청수)편에 불과했다. 그나마 절반도 되지 않는 3131편만이 정상 출판됐다. 만화가들은 '심의'라는 교과서를 통해 철저히 교육됐다. 80년대 초 이현세, 허영만 등에 의해 만화가 대중적인 파급효과를 인정받게 됐을 때도 국..
2019.01.03 -
박석환, 만화학교(?) 한국에서 벌어진 일진회의 이진 폭력 사태, 한백울림, 서울예술대학, 1997.08.01
1. 대한민국 일진 세력의 이진 탄압 지렁이도 밟으면 굼틀댄다는 옛말이 있지. 모두가 알고있는 이 말을 꺼내놓고 청소년 폭력 사태를 보자고. 폭력이란 거 탄력성을 지니는 거잖아. 나침반은 언제나 북쪽을 가리키지, 호랑이도 풀 맛을 보고 풀도 호랑이의 썩은 육신을 생명수로 환원한다고. 때려. 그럼 맞지. 맞은 애는 어떡해. 우리한테는 화풀이 문화가 있잖아. 화를 푸는 거지 별수 있나.애들 자아통제력은 8살부터 12살 사이에 길러진데. 그때 애들 훈련을 시켰어야지. 지금 와서 어쩌자는 거야. 청소년 폭력의 60%가 학교 내에서 이루어진다는데 선생이 뭐하는거야. 학부모가 무서워서 사랑의 매를 놔버려. 그러니까 선배가 매를 들지. 학원 폭력 근절하겠다고 들입다 재적하고, 구속시켜버리니까 지들끼리 매들고 주먹질하..
2019.01.03 -
박석환, 양은냄비 속의 애니메이션, 코코리뉴스레터, 1997.07.21
괜한 망상에 젖어 흐르는 시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 쉽게 새벽이 돼 있었다. 한웅큼 꺼져 있던 배가 투정을 부리는 통에 웅크리고 있던 라면 한 봉을 찾아내 허기를 채우려한다. 싱크대 문을 열고 식기를 찾았다. 갑작스레 아침으로 흘러버릴 시간이 안쓰러워졌다. 내 값비싼 망상의 시간을 빼앗고 있는 듯했다. 가장 쉽게 열을 낼 수 있는 양철냄비를 찾았다. 그것만이 공기를 단축하고 기쁨을 줄 수 있을 법했다. 예상대로 다른 때보다 1분 가량 빨리 덜컹대는 냄비뚜껑을 봤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라면과 수프를 넣었고, 잘 익은 면발을 끌어당겨 봤다. 제대로 된 맛이었다. 이제 식탁으로 냄비를 옮기고 가장 빠르게 먹기만하면 된다. 냄비의 손잡이를 잡고 식탁 쪽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 양..
2019.01.02 -
박석환, 코어와 고어 장르의 결합을 통한 이현세의 독자층 확장 노력, 히스테리, 1997.07.21
-이현세, 『천국의 신화』- 필자가 이현세를 처음 마주한 것은 `보물섬`에 연재되었던 『검객 스카라무슈』를 통해서였다. 이후로 이현세라는 이름은 필자의 만화인 명부 중 최상 위에 위치했다. 소위 명랑체 만화가 주는 일편향적인(?) 유희 안에서 빠져나온 뒤 줄곧 만화 읽기의 즐거운 괴로움을 느끼게 했던 작가가 이현세였다. 이십대 중반인 필자의 반생 위에 군림하고 있던 작가. 그의 필치와 화려한 행보에 존엄의 시선을 드리우기도 했었고, 그것이 과하게 표출될 땐 시기와 치기 어린 비난을 불사하기도 했었다. 한 권도 빠뜨리지 않은 이현세 작품목록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전작을 섭렵하게 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핸가 도저히 그의 행보를 따르지 못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읽을 수 있는 텍스트보다 많은 작품을 내..
2019.01.02 -
박석환, 네가 내게 달려오지 않더라도, 히스테리, 1997.07
네가 내게 달려오지 않더라도 그대 이제 어디로 달려가는가 - 《히스테리》 2호에 관하여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한국만화문화연구원(원장 손상익)의 기관지 《코코리 뉴스레터》 3호에 《히스테리》 창간호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졸고 ‘히스테리 일으키는 히스테리’에 대한 일반의 평가는 필자가 서술했던 사항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의중과는 상이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필자는 근간에 가졌던 히스테리 편집진과의 대화 중에도 그와 비슷한 오도의 언사를 직면했고, 만화에 대한 매도와 같은, 만화평론에 대한 매도에 흐려지는 심기를 느꼈다. 그리고 본 잡지 2호에서 만화가 박연이 언급한데로 극심할 정도로 ‘...폐쇄적이고 이기적이며 냉정...’한 그들의 뽐새를 다시 한번 주시해야 했고, 그것이 ‘창조성과 깨어..
2019.01.02 -
박석환, '히스테리'的 히스테리, 코코리뉴스레터, 1997.03.25
80 년대. 텔레비전을 통해 연일 방영(放映)되는 숱한 대립의 모습들이 브라운관의 양끝에 걸쳐져 있었으나, 눈길 한번 돌리지 못하고 중앙의 아스팔트만을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70년생 필자의 모습이었고 가날픈 인식(認識)이었다. 그리고 공중 파의 이념대립(理念對立)이 하나로 달려오는 화상을 보이고 있을 때 그 앞에서 마주 뛰어야 했을 필자는 천장을 향해 드러누워 버렸었다.이미 내 안에 자리한 자아(自我)의 손상을 막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미 오른 과 왼으로 나뉘어 있을 그것의 이동이 나를 넘어지게 하리란 걸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2월 23일 오후7시, '젊은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도 어설픈 한 세대(世代)를 만났다. 40대가 젊은 기수(旗手)가 되던 시대를 모두 잊어버리기라..
2019.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