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일본문화개방-그래도 태극기는 휘날린다, 원광문화, 1998.11.01

(C)중앙일보



1998년, 국민의 정부는 일본문화의 연내 개방을 놓고 사회각층의 눈치보기에 돌입했다. 각종 여론조사 통계에서도 일본문화의 개방을 소원하는 국민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 문제는 우리사회를 대표하는 보수자들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다. 정부는 모든 일은 국민의 뜻에 따라 실행한다는 원칙을 공고히 하려는 듯 TV토론 등을 통해 미디어정치의 진수를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감시와 반발에 정면으로 대항할 만한 윤리 과학적 당위성은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저 ‘감정 싸움’으로 점철되어 ‘문화쇄국’을 하고 있음은 ‘우리 국민의 손해’임을 알리는 정도가 고작인 것이다. ‘정부의 충실한 신하가 되어야 한다’는 미디어 권력자들의 통박 굴리기식 여론 형성과 국민 계도가 실천적으로 행사되고 있지만, 아직도 개방의 길은 험난한 과정을 걷혀야 할 것 같다. 소수보다는 다수에 대한 애정과 찬사에 익숙해 있는 민주사회 건설의 영험한 지도자들이지만, 여전한 숙제는 그들이 소수자들의 견해와 반발에 두려움을 넘어선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공포는 반일감정이 곧 애국이라고 믿는 무지몽매한 대중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한다. 


너희가 그들을 무시할 수 있을까?

월드컵 예선전은 우리 대한민국의 집단 무의식적 실태를 고발한다. 우리의 응원문화는 반일 현장에 대한 처절한 보고서였다. 반일을 넘어선 극일의 그날까지 운동장을 떠나지 않고 태극기를 휘저을 저들의 정서. 정치논리로 줄달음치고 있는 우리사회가 그들의 소원을 모른 척 하진 못 할 것이다. 

일본침략을 소재로한 이현세의 만화 『남벌』을 사랑하고, 민족주의와 반일감정을 통한 상업적 글쓰기에 성공한 소설가 김진명이 베스트 집계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이런 대중이 과연 일본문화에 대한 반감을 지니지 않고 있을까? 누구라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X-japan의 노래를 들으며 앞서 열거한 책을 보건, 일본 산 영계들의 사진이 즐비한 성인잡지로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다가 TV앞에 앉아서, 쳐죽여도 시원찮을 일본 놈들의 수비진용이 깨지길 바라건 그들은 일본문화개방을 소원한다고 말한다. 그들 스스로의 설문을 통해 만들어낸 통계가 ‘그래도 문화는 개방되어야지’이다. 그렇다면 개방하면 된다. 다수가 원하니까. 하지만 사회과학적 통계에 대한 신용도는 높지 않다. 특히 한국민의 경우 설문조사에서 조차 답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 자리잡고 있는 지극히 촌스러운 사람들이다. 다른 이에게는 순결을 강요하며 스스로는 도탄의 나락에 빠져 흥청대는 이들이다. 일본문화개방 찬성은 우리사회 보통민들의 정서에서 정답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즉, 이것과 그것은 별개다라는 논리 속에서 그들의 무의식적 행동은 표출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어찌 별개일 수 있는가? 우리는 그들과 싸우려고 하고 있으며 언제나 승리하기를 희망하는데.


과거, 문화 개방에 따른 논쟁들

그렇다. 그들은 승리를 소원한다. 현대사회의 이웃한 이로서보다는 과거의 포악함을 지닌 자들이고, 언제고 뒷덜미를 물지 모르는 맹수가 일본으로 이해한다. 그런 일본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은 언제나 긴장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물론 이를 능란하게 활용하여 상품화시킨 이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언론들이다. 80년대는 ‘반공’을 90년대는 ‘윤리’를 2000년대에는 ‘문화’를 통해 공포통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 우리사회의 언론이다. 온갖 언어의 변조로 위기감을 조성하고, 그에 따른 논쟁을 만들어 상업성을 확보하면서 여론을 움직이는 거대 미디어 권력. 일본 문화 개방도 습관적으로 이슈를 조작하기 좋아하는 그들에 의해 숱하게 거론되고, 논쟁의 대상이 었다.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지금까지 그들이 숱한 논란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 ‘일본문화개방’이다. 이미 식민 문화로 점철된 우리의 잡다한 문화는 정체성에 대한 시비가 무의 할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대국민 정서를 위한 정부의 방침은 ‘일본문화 개방 절대불가’였다. 91년 공로명 주일대사가 ‘일본문화 개방 발언’을 하면서 일파만파의 파문이 일었던 것도 이러한 정부의 기본 입장 변화에 기인한다. 당시 문화체육부는 일본문화개방과 관련 전문인들의 공청회를 여는 등 이른바 ‘일본문화 개방 3 단계론’을 피력했다. 이후 97년말 대선을 앞둔 각 당의 후보자들이 일본문화 개방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발표했고, 김대중 후보의 당선으로 일본문화 개방은 현실로 다가와 있다. 

김영삼 정권기의 일본문화 개방이 ‘세계화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 의 탈을 쓴 ‘대일 정책 협상용’으로 쓰여졌다면, 김대중 정권기에 이르러서는 대중문화 관련 전문인의 검토와 국민의 여론 수렴 이후에 행해지는 것이라 그 의미는 다르다. 하지만 여전히 ‘전면 개방’ 과 ‘단계적 개방’ 사이에서 숱한 대립과 갈등이 진행중이다.

‘더이상 문화 쇄국을 원하지는 않는다’, ‘이미 음성적으로 개방 되어있다.’ 는 견해와 ‘대일 감정에 대한 문제 해결이 없는 시점에서 문화개방을 논하는 것은 매국 행위다.’ ‘뿌리가 비슷한 일본문화는 서구문화와 달리 급진적으로 우리문화를 사장시킬 것이다’ 는 등의 논의가 개진되고 있다. 여기에 또 다른 논란이 되는 것이 일본문화의 저질성에 관한 부분이다. 그 동안 문화형성기가 다른 일본문화는 왜색이라 치부됐으며, 이는 저질과 동급의 용어로 사용 됐다. 사실 87년 출판자유화 조치이후 폭력성과 선정성이 극에 달했던 불법복제만화가 기승을 부렸고, 소위 로망포르노라고 하는 일본비디오영화들이 음성적으로 거래됐다. 거기에 경제성장 등의 이유로 일본의 음주, 성문화 등이 국내로 유입 일본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오해를 만들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금단의 영역이 형성해낸 거품일 뿐이라는 것이 대개의 반응이다. 서울대 이경자 교수는 ‘음성문화의 배양보다는 문화 개방 후 공개검토를 통해 나쁜 것은 도태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고 말해 왔다. 


개방과 금지가 우리 대중문화의 창작혼이다

그러나 개방이 일으킬 수 있는 문제는 가볍지 않다. 우리 대중문화계를 선점하고 있는 문화노동인력들은 자신들이 일본문화에 대한 짐을 어느 정도 지고 있는지 조차 헤아리기 어려운 지경에 있다. 그들에게 있어 일본문화는 기실 공식적 개방의 과정 따위가 필요치 않은 영역이기도 하다. 메이드 인 아메리카가 아직 우리사회 보통민의 대중정서를 대표하고 있지만 이제 곧 일본산 사고자들이 즐비하게 도출할 것이다. 아니 이미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나무들은 모두 일본식 사고로 철저히 무장됐다. 한국사회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걸친 눈부신 발전 앞에는 일본식 모델이 철옹성처럼 위치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대한 치욕스런 상흔일 뿐이라고 치부하기엔 그 도입과정과 응용형태는 매우 치밀한 수준에 이른다. 대한민국의 일인으로 국가의 거룩한 통제를 받는 시민이 되겠다는 다짐부터 일본식으로 된 정황-일본식 헌법-에 더 무엇을 가려내야 한단 말인가? 급진적인 개방론자들의 성토에 기댄다면 ‘한일문화는 이미 변별점을 잃었고, 국제사회가 이를 인식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의 일부는 ‘대중문화에 대해서 한국은 일제의 또 다른 생산기지 역할을 훌륭히 해내는 것이 과제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이미 한국의 대중문화 생산 영역이 일본에 의존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들의 급진적 성향을 젖혀 두고 생각하더라도 한국에서의 일본문화 우위 현상은 두드러진다. 이는 순수창작 영역이라고 자임하는 문학의 경우에서도 쉽게 실례에 접근할 수 있다.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하루키식 작법이 백출하고, 일본식 트랜드에 대한 우리식 이야기 전개가 판을 치고 있다. 출판시장의 다양성에 있어서 세계제일이라고 자부할 정도로 탄탄한 받침을 지니고 있는 일본은 우리의 출판, 인쇄환경 속에서도 제일로 여겨진다. 문학계간지의 편집이나 운영 방식에서부터, 실용서적의 출판 계획, 인쇄시의 현장용어 등 이루 헤아리기도 번잡스런 정도다. 영화나, 방송 등에서도 그러한 실례는 쉽게 찾아진다. 특정시기만 되면 신문에 의해 단죄를 받고 있는 한국 방송사들의 일본방송 베끼기는 민망스러울 정도에 이른다. 아파트 단지 곳곳에 설치된 위성방송 수신기와 케이블, 유선방송 등이 일반화된 상황에서도 그들의 일본방송 베끼기는 멈출 줄 모른다. 


실천적 개방과 정서적 혼란 사이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파렴치한 창작활동에 있지 않다. 그보다 그를 수용하는 우리의 자세를 보자. 왜색이라면 치를 떠는 그들이 메이드 인 코리아표 제팬 방송과 대중문화상품들에는 사족을 못쓰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미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정서가 일본인들의 정서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성공한 것은 한국에서도 그대로 실현 가능하다는 것이 요사이 사람들의 인식이기도 하다. ‘일본 알기’와 관련한 실용서적들이 수두룩하게 출판되고 쉴새없이 판매되면서 일본전문인들이 대중적인 스타가 되기도 하는 현상 앞에 우리는 놓여있다. 그들의 논의 중 해묵은 것이 ‘일본은 한국을 꼭 10년 앞서고 있다. 일본의 10년 전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이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계산적이고 시대 반영적인 논리에 다름 아니다. 이제는 ‘일본을 알면 한국이 보인다’식의 논지가 정통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시간차에 의한 트랜드 형성이 가능하다. 어제 히라주쿠에서 열린 일본식 축제나 행사가 그대로 오늘 대학로에서 재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정서는 과거 이데올로기에 묶여서 혼란스런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모 신문사 주필의 고백대로라면 ‘왠지 거북스럽다는 것’을 이유로 들 수 있다. 그 찜찜함. 현실적 금기가 무너지더라도 정신적 금기는 잔존 할 것이며 여기에 대한 피해의식은 그의 표현대로 거북스럽게 우리를 괴롭힐 것이 분명하다. 


일본문화, 문이 열리면 환영해라

근엄한 미래학자들은 케이블과 전화선이 문화의 즉시성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쉽게 말하자면 미디어의 동시상영과 관람이 가능해지면서 전 정부가 뽐나는 멘트로 던졌다가 된서리 맞은 ‘세계화’의 길로 접어든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일 관계는 그보다 앞서있다. 우리에게 동시상영이라는 개념은 영화의 연속상영을 일컫는 말이다. 이는 연속성을 가리킨다. 하지만 한일간의 문화교류는 이미 연속성의 틀을 타파한다. 동일한 목적물(대중매체)에 의해 훈련된 이들은 새로운 표출물을 동일한 것으로 조작해낸다. 즉, 이제 한일간의 문화경계와 즉시적 반응은 오래전의 이야기가 되고 동일성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문제는 일본문화의 다양성과 거대함에 기인한다. 우리의 창조적인 무엇도 일본이라는 거대한 문화국의 경우에 비춰 보면 작은 기류에 불과한 것이 된다. 즉, 90년대 초반부터 우리사회가 만들어낸 보람찬 문화 현상중 하나인 비주류 문화인들, 소수문화운동가들도 이들의 경우에 비춰 보면 해묵은 엔터테이너에 불과해진다.  


메이드 인 한국, 제팬컬쳐

결국 우리 대중문화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특화성에 의한 것이다. 일부 경직된 문화인사들에 의하면 ‘우리 대중문화는 개방에 대한 모든 준비가 되어있다’는 식의 비분강개한 논지를 피력하고 있지만 이 역시 소모적 감정대립에 불과하다. 모든 준비가 되어있다면 이제는 그 준비된 보따리를 풀어헤치고도 남았을 시기다. 그러나 여전히 지하에서 숨쉬고 있는 일본문화에도 뒤지는 것이 우리 문화의 형편이다. 사실상 개방에 이르러있는 만화시장의 경우를 보면 우리문화가 나가야 할 길을 가늠하게 한다. 일본만화의 한국 내 시장 점유율은 70%에 육박한다. 이 경우 한국산 작품들은 두 가지로 양분되는 성격을 지니며 생산된다. 그 하나가 일본식 만화를 제작하는 것이고, 다른 쪽은 보다 한국적인 인식이 즐비한 만화로 틈새시장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 경우 소위 한국적이라는 지극히 폐쇄적인 형식이 어느 정도 위치를 점유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한국식으로 생산해내는 일본문화보다는 그나마 ‘한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라는 논리가 다시 한번 참이 된다.  하지만 앞서 기술한 대로 급진적인 문화인사들은 이를 부정하고 있음을 밝힌다. 한국적이라는 치졸한 민족주의적 발상은 버리고, 거국적인 관점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메이드 인 코리아-제팬 컬쳐, 이는 일본문화의 국내적 수용과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을 확실히 하는 것에 한국문화산업의 미래가 보인다는 것이다. 


원광문화, 원광대학교, 1998-11-01 게재

만화시비탕탕탕, 초록배매직스, 1999 게재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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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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