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que/피플(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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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 내 인생의 이상무 그리고 독고탁의 시대, 디지털만화규장각, 한국만화영상진흥원, 2016.02.19
2016년 1월 3일 이상무(본명 박노철, 1946년 경북 김천 출생) 선생님이 마포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심장마비로 우리 곁을 떠났다. 향년 70세. 선생님은 마지막 떠나는 날에도 타블렛 컴퓨터 앞에 있었다. 이라는 걸작을 남긴 선생님은 종종 ‘늙지 않는 소년’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만큼 동안이었고 운동도 즐겼던 터라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너무 이른 소식이었다. 연 초에 전해진 소식에 많은 이들이 이상무와 그의 만화를 이야기했다. 그래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상무와 그의 만화를 추억하고자 한다. 1. 이상무 또는 독고탁과의 추억 “유년시절 이두호의 만화로 한글을 깨우치고 이상무의 만화로 울지 않는 법을 배우며 성장했다. 이현세의 만화를 보며 도전하는 남자의 매력을 알았고 허영만의 만화를 통해 ..
2019.04.11 -
박석환, 한국 만화계의 큰 바위 얼굴-이두호, 다음백과, 2015
요약 한국의 만화가. 1943년 경상북도 고령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3학년이던 1959년 를 발표하며 만화계에 입문했다. 1968년 만화가 박기정 문하에서 수학했고 1969년 ‘소년중앙’에 ‘투명인간’을 발표하며 정식 데뷔했다. 1981년 ‘바람소리’를 시작으로 한국적 만화 작업에 매진해왔다. 대표작으로 ‘머털도사’시리즈 ‘덩더쿵’ ‘객주’ ‘임꺽정’ 등이 있다. 1998년 사단법인 한국만화가협회 회장, 2004년 재단법인 부천만화정보센터 이사장을 역임했고 2008년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로 정년퇴임했다. 1995년 문화체육부 선정 한국만화문화대상, 2004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코믹어워드, 2006년 고바우만화상을 수상했다. 2007년 보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작품연보 1959년 1..
2019.04.11 -
박석환, 한국 현대사의 산 증인 고바우 영감-김성환, 다음백과, 2015
요약 한국의 만화가. 1932년 황해도 개성에서 태어났다. 1949년 ‘연합신문’에 「멍텅구리」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1950년 ‘사병만화’에 「고바우영감」을 발표한 후 ‘동아일보’ ‘조선일보’ ‘문화일보’에 동명의 4컷 시사만화를 매일 연재했다. 총 14,139회를 연재해 최장수 연재만화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시사만화가로 알려져있지만 소년만화 『꺼꾸리군 장다리군』, 아동만화 『소케트군』도 큰 인기를 끌었다. 2001년 고바우만화상을 제정해 후배 만화가들을 격려하고 있다. 2002년 보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2013년 고바우영감 원화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작품연보 1949. ‘연합신문’에 「멍텅구리」게재 1950. ‘사병만화’에 「고바우영감」첫 발표 1951. ‘만화신보’에 「고사리군」발표 ..
2019.04.11 -
박석환, 허영만 인터뷰, 문학번역원, 2008
만화는 발로 그리는 것 - 진짜 같은 거짓말을 위해서 뛴다 * 이 인터뷰는 몇 차례에 걸친 인터뷰와 전화 통화 내용을 기초로 필자가 재 정리한 것이다. 허영만은 한국에서 제일 바쁜 창작인 중 한명이다. 매일 두 편의 만화를 일간신문과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연재하고 있다. 2002년 시작한 은 한국의 다양한 음식을 소재로 하고 있고, 2008년 시작한 은 사람의 얼굴 생김새를 통해 성격을 파악하는 관상법이 소재다. 매일 10페이지씩 연재하고 있으니까 하루에 50~60여 컷의 만화를 그리는 셈이다. 박석환(이하 박) : 많이 바쁘시죠? 허영만(이하 허) : 뻔히 알면서 물어요. 박 : 30년 넘게 바쁘셔서 안 바쁜 것이 뉴스일 것 같아서 묻는 거예요(웃음). 허 : 만화만 그렸는데도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많..
2019.04.10 -
박석환, 보통사람들이 열광하는 만화가 김보통, 코리아나, 한국국제교류재단, 2016. 가을호(30권 3호)
김보통은 간결한 그림, 투명한 색채의 만화 한 편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주목 받는 만화가로 떠올랐다. 말기 암환자인 이 만화의 주인공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대사는 “살아, 눈부시게!”이다. 그가 만화를 통해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 짧은 대사에 함축되어 있는지도 모른다.한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이 “나는 암 환자예요”라고 외쳤다. 이를 본 어떤 사람이 시청자게시판에 ‘아만자’가 뭐냐는 질문을 올렸다. 이 질문은 금방 화제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하지만 함께 웃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진짜 암을 앓고 있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다. 만화가 김보통(Kim Botong)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김보통은 아직 신예 작가이다. 2013년 인터넷을 통해 처음 만화를 발표했다. 34번..
2019.02.23 -
박석환, 칠순 현역 만화가 허영만의 비밀, 2015.11.06
칠순 현역, 만화가 허영만의 비밀 아직도 진화하고 있는 허영만 만화가 허영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1947년 전남 여수 출신으로 1965년 상경해 만화계에 입문했다. 입문 10년 차인 1974년에 소년한국도서의 신인만화공모에 당선되며 공식 데뷔했다. 짧지 않은 문하생 생활을 거치면서 스승의 만화를 그렸지만 같은 해 한국형 히어로물이라 할 수 있는 을 발표하며 단숨에 주목 받는 만화가가 됐다. 이후 40년이 훌쩍 넘은 세월동안 허영만은 한국만화를 대표하는 만화가로 손 꼽혀왔다. 지금까지 그린 작품 수는 기록될 만한 것만 215타이틀이다.80년대에는 영화로 제작된 권투만화 , TV드라마로 제작된 기업극화 등 주로 성인 취향의 작품을 발표했다. 90년대 초에는 애니메이션화 되기도 했던 , 등 ..
2019.02.20 -
박석환, 데이터베이스로 보는 이두호 vs 김동화, 에이코믹스, 2014.10.22
[데이터베이스] 기록으로 보는 이두호 프로필- 기초정보1943년 7월 5일 경상북도 고령 출생1964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입학(중퇴) - 만화계 입문1959년 중학교 3학년 시절 를 발표하며 만화계 입문1968년 박기정 문하에서 수학(김마정, 이우정 등과 함께 작업)1969년 [소년중앙]에 을 발표하며 정식 데뷔 - 주요경력1995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초대 추진위원1997년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1997년 만화 표현의 자유 수호를 위한 범 만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 대표1997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만화분과 위원1998년 사단법인 한국만화가협회 회장1998년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운영위원1999년 춘천국제만화조직위원회 집행위원2004년 재단법인 부천만화정보센터 이사장 - ..
2019.02.20 -
박석환, 이왕이면 우리 것, 한국만화를 그리고 싶었다 - 이두호 vs 김동화 and 박석환, 에이코믹스, 2014.10.22
이왕이면 우리 것, 한국만화를 그리고 싶었다 지난 7월 22일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애니시네마에서 제18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의 개막식이 열렸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형배 조직위원장의 개막선언으로 6일간의 공식행사가 시작됐다. 오전 11시에 진행된 개막식에 이어 오후 2시에는 지난 해 SICAF코믹어워드 수상자인 만화가 김동화 특별전이 애니메이션센터 1층 테마전시실에서 열렸다. 그림 김동화 특별전 테잎 커팅식 중(오른쪽에서 여섯 번째가 김동화, 네 번째가 이두호) 이 날 전시는 만화 속에 한의 정취와 풍미를 담아내 온 김동화의 작품세계를 IT기술과 접목해 구현해 냈다. 오픈식에는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조직위원장 김형배,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 이희재, 한국만화출판협회회장 황경태, 의 일본만..
2019.02.20 -
박석환, 조선의 영웅을 그린 이두호 vs 조선의 여인을 그린 김동화, 에이코믹스, 2014.10.22
조선의 영웅을 그린 이두호조선의 여인을 그린 김동화 만화의 상상력으로 가득한 공간, 만화의 유쾌함이 함께하는 거리 서울시는 2013년 남산 일대를 창의문화와 관광의 메카로 만들기 위해 ‘만화문화공간 및 거리 조성 사업’을 추진했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를 중심으로 만화문화공간 ‘재미랑’과 만화의 거리 ‘재미로’가 신설됐고 이 일대에서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 진행됐다. 공간은 만화 특유의 상상력으로 채워졌고 거리는 만화와 함께하는 시민들의 유쾌함으로 가득했다. 2014년 이 일대는 제18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2014.7.22~7.27)을 기해 또 한 번 진화했다. 만화가들의 발길과 손길이 더해졌고 만화팬들의 응원과 기관 관계자들의 독려가 큰 역할을 차지했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만화는 크..
2019.02.19 -
박석환, 한국만화 흥행과 혁신의 라이벌 이현세 vs 허영만, 한화사보, 2014.10.01
이현세 vs 허영만 한국만화 흥행과 혁신의 라이벌 출처 - 한화사보 야성의 아이콘 이현세 경북 출신으로 친척 중 북한군이 있어서 ‘빨갱이’라 불리며 성장한 이현세. 그림재주가 특출 났으나 선생 운이 없어서 핍박 속에 수련기를 보냈던 그는 어떻게 선배만화가 허영만을 앞질러 한국만화계의 슈퍼스타가 됐을까? 이현세(1954년 생)는 1974년 고교 졸업 후 상경했다. 강하고 율동미 넘치는 펜선에 매력을 느꼈던 이현세는 평소 흠모했던 극화 분야의 만화가를 스승으로 모시기 위해 찾아갔다. 하지만 ‘나이가 많아 보여서 부리기 힘들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모두에게서 거부당했다. 대신 원하지 않았던 순정만화가와 명랑만화가 아래서 수학했다. 이후 극화 만화가 밑에서 일을 돕기도 했지만 대부분 일본만화나 미국만화를 베끼..
2019.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