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몇 살의 날들에 가능해진 영혼사랑-김희보, 『소울러브』
성인만화지 = 억압의 분출구
‘수영장에서 혼자 도포자락 휘날리고 서 있더라구.’
만화가 백성민이 홍경래의 난을 모티브로 한 작품 『토끼』를 연재하면서 사석에서 쏟아낸 말이다. 성인만화잡지가 ‘수영장’ 같다는 것과, 자신의 옷차림(작품)이 수영장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두 가지 의미를 건네는 말이다. ‘성인만화잡지=선정성’으로 보느냐는 물음엔 ‘다 벗고 있다는 뜻보다는 벗을 수 있는 약속을 지닌 공간’이라고 제한을 둔다. 백성민에게 성인만화잡지라는 곳은 세상과의 합의하에 이루어진 ‘억압의 분출구’ 정도가 되는 것이다. 그의 말은 세상의 약속과 그들이 은근한 눈빛으로 원하는 ‘무엇’에 대한 감을 잡고 있다는 뜻처럼도 들린다. 자신은 이미 알고 있으나, 그와 같이 행하지 않고 있다는 떳떳함을 표현한다. 이어 그는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후배작가들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다.
‘얼마 이따가 오세영이가 들어왔는데 마찬가지더라구.’
한동안 작품활동을 쉬고 있던 오세영이 다시 성인지 연재를 시작한 것에 따른 걱정과 격려도 함께 한다. 다른 작가들이 ‘약속된 수영장’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유용하게 활용하는데 반해, 오세영이 해묵은(?) 작화법을 고수하고 있는데 따른 걱정과 자신과 같은 의연함에 대한 격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백성민은 이어 박흥용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재능이 있어서 그런가봐. 이 친구는 우리랑은 또 달라.’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통해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하면서, 만화인생의 새 전기를 마련한 박흥용. 백성민이 그를 ‘우리랑은 달라’라고 한 부분은 여기에 있다. 대중성의 확보에 기인한다. 박흥용의 전작들은 ‘특정 사안에 대한 깨달음’을 주요한 내용 축으로 지닌다. 만화이론가들은 이를 종교에 대한 영향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 자신도 언더그라운드 만화지 《히스테리》와의 인터뷰에서 창작의 변화에 따른 시기 구분을 ‘종교 이전’과 ‘종교 이후’로 나누고 있을 정도다. 박흥용의 전작들은 ‘신이라는 절대성에 대한 반발’로 인해 또는, ‘종교적인 깨달음’을 찾아 나서는 구도의 과정에 의해 막혀있었다. 당시의 작업들이 단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도 ‘종교적 의문’과 ‘창작에 대한 확신 부족’으로 보여진다.
한국만화문화연구원의 조은영 연구원은 ‘박흥용의 신앙심이 탄탄해지면서 작품적으로 굉장히 자유로워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어떤 계기에 따른 ‘깨달음’이 박흥용의 창작활동에 개입했으며, 이것이 『구르믈...』과 『경복궁 학교』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백성민이 박흥용을 ‘우리랑은 달라’라고 표현한 것을 말하자면 이렇다. 세상이 허락하고 그가 알고 있으나, 표현하지 못하는 ‘무엇’을 그가 깨닫고 있으며, 종교적인 의심에서 자유로워진 정황에 이르러 이를 실현한다.
만화의 의미적 공간에 대한 변화 모색
백성민, 오세영, 박흥용은 80년대 말 모범적인(?) 성인만화지(紙)로 회자되고 있는 《만화광장》, 《주간만화》 등을 통해 작품활동을 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들에 의해 생성됐으며 그들을 아우르는 장르용어를 살펴보면 미술평론가 최열은 ‘리얼리즘 만화’로, 만화평론가 손상익은 ‘현실참여 만화’로 칭하고 있다. 요사이 PC통신 등에서는 이를 ‘일상만화’로도 지칭한다. 그들의 작품활동은 기존에 우리만화가 이루지 못한 성과를 보여준다. 백성민은 『장길산』 전작을 서점을 통해 발표하면서 새로운 만화창작 풍토를 마련함과 동시에 저급성 논의에 시달리던 만화의 재인식을 강조했다. 오세영은 월북소설가들의 단편을 각색하는가하면 『부자의 그림일기』 등을 발표, 만화도 현실에 참여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박흥용의 『나무 위에 사는 나무』에 실린 단편들도 우리만화에 대한 일반의 오해를 재점검하게 했다. 이들은 개별적으로 또는 연대를 통해 우리만화의 창작공간을 확장해냈다.
그러나 앞서 백성민의 언급대로 그들의 만화가 독자들이 소원하는 것들과는 경계를 지니고 있음은 확실했다. 즉, 그들의 만화는 ‘수영장’이라는 의미적 공간에 국한된 독자의 태도에의해 소외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속적으로 만화의 의미적 공간에 대한 변화를 모색했다. 그러한 모색기를 활동기로 바꾸어준 것이 말하자면 박흥용이고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다. 백성민과 오세영이 ‘수영장(성인만화잡지)’에서 어색하지만 고집스럽게 서 있었다면, 박흥용은 고집스럽게 서있으나 ‘성인만화잡지=수영장 보다 자유로운 공간’화를 이룬 것이다.
리얼리즘, 현실참여를 지나 김희보를 만난다
길게 왔다. 97년 ‘만화인의 날’ 행사가 끝나고 몇몇 지인들과 가졌던 술자리에서였다. 백성민이 ‘수영장론’을 제기하던 때였고, 나이 어린 필자가 끼어들 때를 몰라 허둥대던 때였다. 그리고 조금 고개를 숙인채 나직이 이야기하는 낯선 사내를 만났던 때였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대신, 길게 살아온 세상에 그보다 더한 것을 빼앗겨 버린 듯한 사내. 더듬이 더듬이 느리게 말을 이어가고 있으나, 그보다 길게 늘어지는 의미를 챙기게 하는 사내. 결코 불쾌하지 않은 낯설음을 지니고 있었던 사내를 만났던 때였다.
이 술자리는 퍽이나 이채로운 구도를 취하고 있었다. 우측에는 ‘수영장’에서 어색하게 서있기를 피하지 않았던 백성민이있었고, 그 옆으로 ‘수영장’의 공간에서 행할 수 있는 것, 독자가 바랄 수 있는 것의 가능 범위를 확장시킨 박흥용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낯선 사내 김희보가 있었다.
그가 앉은자리는 필자에게 묘한 연계 구도를 상상하게 했다. 소주를 한잔하고 수저로 찌개 국물을 퍼서 입가로 가져갈 때, 식탁 위에 국물이 떨어졌다. 톡, 톡, 톡 소리를 내며 떨어진 국물은 일자로 길게 늘어졌고, 수저에 남아있는 국물은 필자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불그레한 국물 자국이 남은 식탁을 보며 앞서 기술한 이들의 이름을 들먹여 봤다. 박흥용 다음이 없었다. 아니 아주 단순하게 김희보로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주간지 3회 연재분 정도를 본 당시로서는 자신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가 박흥용이 이룬 역할을 확장 할 수 있을 거라는 사실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기대했다. 신에게만 후광이 있지 않고, 인간에게도 후광이 있다면, 그것이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기와도 연관된다면 작가 김희보가 풍겨내는 기는 이를 가능하게 할 것만 같았다.
김희보의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성장소설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거듭되는 사건과 그에 따른 깨달음의 중첩이 그렇고, 새로운 인식욕을 구현하기 위해 펼치는 젊은 날의 호기에 대한 후일담식 술회가 그렇다. 이를 요사이 장르 구분으로 생각하면 ‘일상만화’로도 볼 수 있다. 이 일상만화의 발전은 앞서 열거한 작가들에 의한 것이다. 그들의 작업이 ‘리얼리즘’과 ‘현실참여’를 지나 ‘일상’에 이른 것이다. 박흥용은 이들이 위치하고 있었던 ‘성인만화잡지=수영장’이라는 비교의 자리를 타파하고, 성인만화잡지는 더욱 자유로운 창작의 공간임을 공포했다. 그리고 그들이 ‘도포자락’을 휘날리고 있음을 난처하지 않게 했다. 이제 김희보가 그 곁에 자리하는 일, 만화계에서의 ‘위치하기’에 대한 필자의 기원이 가능할지 확인해봐야 한다.
김희보에 대한 김희보식 서술
김희보의 고백에 따르면 만화계에 입문한 것이 근 20년 정도 된다고 한다. 20대 초반에 강철수 문하에서 5년 정도 입문 과정을 거쳤고, 이후 10년간은 ‘삶’에 대한 ‘의미’를 찾는데 탕진한다. 종교를 갖게 되면서 다시 창작을 결심, 박원빈의 『빛과 어둠의 자식들』 등의 스토리 작업을 했다. 그리고 창작을 위해 3년 가량의 준비과정을 거쳐 20대 초입의 고뇌와 방황을 골자로 한 『스물 몇 살의 날들』과 30대에 이르면서 겪게 된 삶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을 담은 『소울러브』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김희보의 작품은 서술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일부러 왜곡시키거나 기교를 사용해서 시간을 굴절시키지 않는다. 이로 인해 작중화자와 작가는 구분되지 않으며, ‘있었던 일’일 것이라는 사실성을 담보한다. 젊은 날의 고뇌와 사회가 용인하는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중의 이야기는 낯선 것이었으나 결코 불쾌하지 않은 성장만화의 전형을 갖춘다. 이는 그의 인식이 시간 축을 따라 진행되는 것이기도 하고, 그의 이야기가 사건을 통한 이야기의 변용을 허락하지 않는 탓이기도 하다. 이것이 낯선 것쯤으로 이해되고 있음은 ‘공간’이 지니는 인식에 의한다. 그 역시 ‘수영장’으로 지적 받는 공간에서 ‘도포자락 휘날리는’ 어색한 꼴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김희보 만화는 앞선 작가들의 작업시기와 비슷한 순서에 들어서 있다.
최근 모출판사가 위인만화 전집을 기획 발표했다. 이희재, 오세영 등이 작업한 작품목록에는 김희보도 있었다. 허균의 일대기를 극화한 것이다. 교육만화는 그 장르가 지니는 특성상 작가섭외시 몇가지 까다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교육성을 지니는 탓으로 작가의 대외적 신임도를 따지게 된다. 이 경우 인기작가이거나 비인기 작가이더라도 전작의 순수성(?)을 따져보게 된다. 김희보의 작업은 이희재의 추천에 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희재의 추천에 앞선 출판사 측의 결정은 김희보 만화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가 무엇인지를 가늠하게 한다.
김희보, 작가로서의 운동성 확보
이 작품은 김희보 만화의 시작일 수 있으나 결코 수작은 아니다. 이 작품의 문제점은 가볍게 지나칠 수 있지 않다. 자기 위안적 내레이션의 남발로 남성만화의 한 특성인 컷 연결을 더디게 하고, 극의 속도감과 칸의 연결로 이어지는 만화적 판타지에서 멀어지게 한다. 젊은 날의 상흔으로 대변되는 아집과 편견으로 그득한 이야기는 시종일관 경직돼있다. 밝음을 모두 차단하고, 이야기의 조율 역시 신경 쓰지 않고, 늘 어둠만이 지속된다. 결국 이런 그의 작품에서 재미를 발견하기란 만만치 않다. 되새김질을 너무해서 잊혀지지 못할 뻔한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김희보 적이지만, 그렇지만도 않은 작화법과 그림연출은 그가 신임임을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희보의 작품을 만나는 것은 즐겁다. 아니 즐거워야 한다. 너나없이 겪어봤을 일상의 자질구레한 사건들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모험적 만용들은 우리가 희망하고 상상해왔던 삶의 굴골을 답지해 낸다. 기록되지 않았음하고 고갯짓하던 청춘의 비보는 항상 절대적 가치에 대한 혼란과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의심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비보는 비보 자체로서 운동성을 지니고 젊은 영혼 안에서 유영한다. 이쯤에서 김희보 만화는 다시 박흥용식 이야기와 맞물려진다. 박흥용의 깨달음이 지엽적이고, 침작적이었다면(초기 단편들) 김희보식 깨달음의 체득은 비보의 운동성을 통해 구현되고 있다.
한참 ‘김희보’라는 과제를 놓고 바동거렸다. 평론가라는 필자의 직능이 이를 더욱 보챘다. 이는 작품보다 사람이 좋았다는 필자의 판단이 짐스러웠던 탓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조각, 조각(필자는 주간지 연재시의 작품을 찾아서 읽었다) 확인하고 있을 때면 애당초 느꼈던 불안감이 증폭됐다. 그의 작품이 김희보라는 사람보다 좋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는 건 차라리 고통에 가까웠다. 더군다나 이 작품은 이제로부터 거행되는 김희보의 개인사적 위치 확보 노력이라는 점이 더욱 필자를 압박해왔다. 그러나 필자는 그의 작품이 아직 자신의 사람됨을 이기지 못하는 것에 감사한다.
그의 작품이 자신을 이기지 못함으로 인해 감추어진 ‘이야기’를 지니고 있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공간에 대해 지니고 있는 인식이 탐스럽다. 백성민 처럼 어색하게 ‘수영장’에 서 있지도 않고, 박흥용 처럼 ‘수영장 보다 자유로운 공간’에 다다르고자 하지도 않는다. 다른 작가들처럼 인기를 위한 동일화(이야기에서는)도 거부한다. 그에게 ‘공간’(매체)은 자신의 이야기를 토해내는 자유로운 동기를 제공하는 곳일 뿐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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