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논리의 비아냥거림 뒤에 숨은 女性財貨-박흥용, 「백지」
금붕어의 「백지」
철창을 경계로 구치소 안에 누워있는 금붕어(金崩語-작중 주인공. 필자는 이를 ‘물질에 의해 무너진 인식’의 표상으로 읽었다.)가 형사에 의해 잡혀온 여자를 본다.
고개를 뒤로한 채 거꾸로 현상에 접근하고 있는 금붕어의 시선을 따라 2면까지 진행된 이야기는 길거리에서 윤락행위를 하던 여자와 형사의 화답을 보여준다. 형사는 길거리에서 ‘타락하여 몸을 버리는(‘윤락’의 사전적 의미) 행위를 일삼아 왔’음을 검거이유로 대고, 여자는 ‘...내가 벌어먹었지 니가 밥 먹여 줬냐?’라고 소리친다.
‘남한테 해 안끼치고 살아왔고, 얻어 먹어 본적 없다구.… 죄없는 사람도 구별 못 하 … 공짜밥 먹여 준다는데 마다할 사람 어딨냐? ….’ 까지 말한 여자는 경제 활동 수단으로의 여성(자궁대여)과 본래성(사회적으로 인지된 여성)을 분리한 뒤, 다른 형사의 강제에 이끌려 철창안에 갇힌다.
실연의 갈등으로 무전취식을 한 금붕어가 여자와 위치를 바꾸며 시점을 넘겨준다. 금붕어를 심문하는 형사는 ‘실연(여자)’과 ‘부티나는(재화)’을 연결하며 주인공의 사유터를 지정한다. 형사가 구원요청을 하라며 건네준 동전을 들고 전화기 앞에 선 금붕어는 손에서 떨어져나간 동전에 절망하고 하이앵글로 다가서는 여자가 내민 구원에 낯설어한다. 어스름의 저녁에 파출소를 빠져나온 두 사람은 함께 술을 마시고 자신을 포함한 모든 여성이 자본의 시녀가 되 있음을 개탄한다.
‘가시나들 … 요물단지 … 즈이나 내나 똑같은 사람 … 돈 싫고 빽 싫어하는 가시나있으면 내 손에 장을….’
위태롭게 걷고있는 금붕어를 부축하며 여관으로 향하는 여자는 ‘지금 심정 이해할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여성성이 지니는 최고의 미덕이라 찬양되는 보호심리로 진척된 여자의 온화한 눈빛이 클로즈업되고, 금붕어의 치기를 아우른다.
여자는 보호받는 사랑. 지불되는 섹스 서비스에서 벗어나 보호하는 사랑, 지불하는 섹스를 주장하는 듯 금붕어를 ‘홍콩’으로 유도한다. 여자의 과잉욕정에 유혹 당해 일어나는 정사로 표현된 이 컷은 섹스의 주체를 금붕어의 사유를 통해 바꾸어낸다.
‘꿩 대신 닭’을 범하고 있는 금붕어는 실연의 허무감으로 와해된 사유력을 백지(白紙)와 등치 시키고 잠재의식 속에 웅크린 채 감춰진 기억을 끄집어낸다.
전의 상대와 라면 집에 앉아있는 금붕어는 ‘본 순간부터…홀딱 반했음을’ 말하고, ‘뽀뽀할 수 있는 기회가…참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면서 남성 지배사회의 여성-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으로 프로포즈하고 있다. 이제 즐거이 수평의 길을 달리는 두 사람은 자본의 논리가 없었던 원시사회에 있지만, 자본이전의 자본이었던 힘의 논리 앞에 관계를 위협 당한다.
여자는 ‘돈이란 게 뭔줄아나?’라고 묻는 남자에게로 가버린다. ‘구역질 날 정도로 행복해보자’라고 말하며 과도한 행복을 소유한 남자의 시녀가 되어진 여자는 호텔로 행하는 길에서 마주 오는 차와 충돌 할뻔 한다. 행복을 관장하는 남자는 혼자 피하고, 둘을 지켜보던 금붕어가 여자를 구한다.
여자는 잠시 금붕어의 곁에 머무르는 듯 했으나 ‘굶지 않기 위해서라도 여자에겐 강한자가…있는 자가 필요’ 하다는 이해를 구하며 자본논리에 익숙해있는 자신을 말한다.
지배층에 있는 이들의 침대 아래에서 민중의 반란이 거행되고, 금붕어의 백지론이 현실에서 창녀와의 엑스터시를 통해 마무리된다.
‘약한자의 당위성 찾기’를 위한 공간의 설정. 그것이 백지임을 말하고, 여자를 ‘비행기와 비릿한 고깃덩어리’로 규정한다. 작가는 금붕어와 같은 남성약자를 동물(자가용을 타고 가는 연인에 의해 ‘원숭이’라 불려진다.)이 되게 하고, 여자는 제2의 성안에 갇히게 한다. 남자로 대표되는 돈의 사회와 왕비/ 여배우/ 어둠의 딸로 구별된 여자의 사회. 여자는 남자의 성욕해소를 위해 존재감을 갖는 백지, 또는 사물로 규정된다. 그리고 스스로의 판단을 ‘약한자의 네올로지슴-신조어를 만드는 일’이라 칭한다.
밖으로 나와 홍등가를 벗어나고 있는 금붕어는, 유혹하는 창녀에게 사물화된 여자의 정조와 교환할 화폐가 없음을-‘돈 없어’- 명시하고, 비릿한 비계덩이인 여자를 상기한다. 그리고 모습을 지니지 못한 욕구 배설장으로서의 자기여자, ‘내 백지는 언제나 제 모습을 찾게 되려나!’라고 말하고선 구토를 해댄다. 인식과 달리 봉긋 치솟는 성기에 대한 역한 기운이 치솟은 전봇대를 부여잡고 구토를 하게 한다.
욕구 분출처로 인지된 박흥용의 백지와 여자
필자는 갸날픈 인식의 덕으로 쓴잔을 들이키고 있는 금붕어와 동일화 되어있다. 여성을 경멸하거나 적대하지 못하고 숱한 자기분열과 가치혼란으로 구토를 해대고 있다. 이제 그만 멈추고 싶을 정도로 허해진 몸을 이끌고 있다. 금붕어를 부정하고 금붕어에게 여성을 2류인종으로 인식하게한 박흥용을 부정하고 싶다. 여성을 이만큼만 인식하게 만든 매체주도자들에게 일성을 남기고 싶다. 논리가 딸려 칼을 들고 일어서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그렇게 하고 싶다. 필자가 가졌던 시간과 그 중에 위치했던 사랑을 그처럼 알량한 자본의 논리와 지배구도 안에서 희석시키고 싶지 않은 이유이다. 필자는 극히 남성 우월주의에 빠져 있던 자로서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여성해방전사의 모습을 아름다움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권가야-[해와 달]의 작가-의 입장대로 생과 삶을 분리하고 전자를 생물학적 근거지로 후자를 사회적인 성장, 또는 인지 속도로 규정하더라도 어느 쪽도 포기하지 않고 남성을 택했을 사람이며, 무엇 때문에 [은하철도 999]의 메텔이 트랜스섹슈얼일 수 있다라고 논의 되어지는 지도 이해할 수 없다. 여성을 꿈꾸는 남자. 미래사회에서 현생인식자의 보호자가 여성-어머니-의 모습을 지니는 남자라는 것 자체에 혐오감을 느낄 뿐, 사회적 함의를 찾아내려는 노력 따위도 없다. 섹스면 족하지 젠더라니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가? 라며 웃었었다. 그러다가 변화를 선언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삶이라는 게 본시 자기합리화의 과정들로 연결되어지는 것 아닌가?
70년대 초 경공업의 발달과 섬유사업의 확장, 서비스직종의 대두로 우리사회는 여성인력의 등장을 바라고 있었다. 여기에 도시로 간 처녀들의 이야기는 대중매체가 주로 다루어 온 소재로 채택된다.
영화에서 회장아들과 여공과의 관계설정은 멜러를 장르화 시키는데 주요한 요인이 된다. 부르주아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는 계급간의 관계를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정서와 혼용했으며, 일에 열중이던 여성노동자들은 부르주아사회 내에서 두 가지 성을 동시에 지니도록 강요당했다.-낮에는 일할 수 있는(남자의 아우라를 지니는)여자, 저녁이면 성적 만족을 돕는 진짜 여자. 가족이라는 가부장제이데올로기의 공간에서 탈피하고 개인성의 획득을 원했던 여성들은 지배관계의 재생산구조를 맞닥뜨린 채 고뇌하며 80년대로 들어섰다. 과도한 노동에 저임금, 가정에선 가장의 역할까지도 해야 했지만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일궈낸 남성들의 위안을 위해 활용됐다. 신군부의 우민화 정책은 여자를 욕구분출의 매개물이라는 계급에 위치시켰으며 관음에의한 창녀문화를 대두시켰다.
여성은 상품으로서 물신화되어졌으며, 교환가치가 매겨졌다. 대중문화론자들은 남성의 위안을 위해 보여주는 존재로서의 여성성을 확립시켜내면서 80년대를 멜로의 시대로 이끌어간 것이다. 그들의 주요한 텍스트는 창녀였다. 여성노동자의 전락처럼 폄아 되거나, 여성개인의 과잉호기심에 의한 자유연애자로서 인식시켜 버린 채 그들의 지배논리는 당위성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변종으로서 생산되어진 여성상이 중산층 지식인이며 자유연애론자인 여자의 대두다. 그들의 성은 생계수단을 위해 팔려지는 것이 아니라 교환가치화 시키려는 남성들 위에 군림하며 즐겨지는 것이었다.
자위의 문화로, 사도메저키스트들을 위한 장치로 보편성을 지니게 되는 영상매체의 네러티브는 이 과정 중에도 성춘향과 자유부인식의 담론을 지속적으로 제작해냈다. 그리고 여자의 몸 위에 권장소비자가격과 실제판매가격 등의 라벨을 지니게 했다. 박흥용은 그들 문화생산자들의 지배논리 안에서 파괴되어지는 개인성을 구술한 것이 아니라 인식된 여자가치를 지배인종인 남성의 사유력 향상을 위해 활용한다. 「백지」에서 여자는 퍼즐과도 같은 즐김이나 유희의 대상일 뿐이다. 간단하고 싼 것과 복잡하고 비싼 것. 또는 퍼즐 쪽에서 그에 걸맞는 주인을 찾아가는 법 등을 보이고 있다. 어쩌자고 해야하나. 굴레를 벗어나자고 할까? 게임의 법칙을 따르지 말자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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