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아동독자의 분실, 만화시비탕탕탕, 1999


만화방은 80년대 제 2의 증흥기를 맞으며 급속도의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88올림픽을 기점으로한 정부의 규제와 사회단체의 압력이 본격화되면서 점차 사라졌다. 대본체제의 생명력을 연장키 위한 빅보스(독점 배본업자)의 노력과 작가들의 자쟁의지로 한때 회생의 기회가 보였으나 대중은 이미 멀어진 이후였다. 

만화방의 1차 증흥기는 60년대를 전후해서 일어났다. 당시 주종을 이루던 것은 아동만화였다. 만화방의 연륜과 함께 아동 독자층이 성장하자 작가들은 작품의 이야기 구조를 변화시켰다. 10대의 주인공이 태반을 이루던 작품 속에서 그보다 나이 많은 주인공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주인공의 연령이 높아지면서  작품이 다룰 수 있는 이야기도 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교복을 입고있는 까까머리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학원명랑 만화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80년대 되면서 교복자율화가 이뤄졌다. 이제 학생이라 해도 교복을 입히지 않아도 됐고, 교복을 입지 않았다고 해서 어린 독자에게 이질감을 느끼게 하지 않아도 됐다. 그리고 만화방의 초기 독자들도 이미 성장한 탓에 그들의 구미에 맞는 이야기를 작품화해야 했다. 결국 80년대가 되면서 만화의 주인공들은 20세가 됐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연령의 청년 주인공은 아이의 고민도 어른의 고뇌도 함께 어루만져줄 수 있었다. 그러나 해가 거듭될수록 만화방의 가장 어린 독자는 70년생이었고 가장 늙은 독자는 60년생이 됐다. 평균 약15평 정도에 약2천여권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 만화방. 80년대 당시 90% 이상의 도서류가 아동심의를 필한 것이었으나 어린 독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내용의 작품은 없었다. 심의에 의해 성인용이 출간되지 못하는 만화책방용 만화들은 그 대상 연령이 모두 아동이다. 하지만 책표지에 둘러쳐진 파란띠와 작품은 별개였다. 더군다나 만화방들은 도서대여 외에 요식업과 간이 숙박업 등을 불법적으로 행하면서 어린 독자들의 출입을 막아섰다. 기실 당시의 통계를 보더라도 아동 독자가 만화방 운영에 미치는 영향은 미비한 수준이었다.

80년대 중반 아동 만화 전문 잡지의 창간이 붐을 이뤘다. 최근까지도 국내 만화 시장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잡지만화 시장의 형성은 당시 아동만화 시장의 공백을 알 수 있게 한다. 만화 잡지의 창간은 만화작가의 창작 여건에 변화를 가져왔다. 만화방용 만화는 관행상 재판이 없었고, 한정 발행되는 탓에 질보다는 량을 우선으로 하는 작품이 많았다. 잡지만화 시장이 형성되면서 자연스레 잡지 연재물의 단행본 시장이 서점판매망을 통해 형성됐다. 이로 인해 작가들은 잡지 연재시와 단행본 출판시 두 번의 인세를 받을 수 있게됐고, 서점 판매가 시작되면서 다량생산보다는 고품질 소량생산으로 인식을 바꾸게 됐다. 


만화방용 만화를 그리던 작가진이 잡지만화 쪽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만화이론가들이 등장하면서 만화방이 만화산업 발전의 저해요인으로 지목되자 혼란은 가중됐다. 

잡지 만화시장의 호황으로 만화가의 활동영역이 넓어지고 창작 여건이 경쟁적으로 좋아졌다. 관행상 재판이 없던 만화방 체제의 한정 발행 부수-빌려 보는 구독 문화일 때는 작품의 우열과는 상관없이 한정생산 전량 소비되는 생산자 중심체제-와 고정원고료에 고달파하던 작자층은 자연스레 만화전문지로 창작영역을 넓혀갔다. 소비층은 당연 아동이었다. 

80년대 말 90년대 초 만화가 고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미래산업으로 국가기관의 지원을 받는 등 만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듯 하자 만화관련사업 종사자들은 좋은 만화 만들기에 혼미백산하게 되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과잉기대는 아직도 멈추지 않고 부풀어오르고 있으나 거기엔 아니, 한국의 것엔 아동이 없음을 알아야한다. 아동이 없다면 당연히 재무재표는 다시 짜져야하고 모호한 배경으로 거품 일구기에 참여했던 아웃사이더들은 물러서야 할 것이다. 그들이 첨병이 되는 만화는 깔끔한 표지만 지닌 저질 만화와 같은 꼴일 것이다. 

80년생의 만화 보기는 일본불법 복제만화가 대본소에 유입되어져 있던 상황이었다. 국내방송국에서 버젓이 작자까지 변동되어 방영되는 애니메이션이 일본산인지도 모르고 보던 70년생과는 달리 미디어의 광활한 소식 전하기와 흡수하기에-그것이 설령 거짓 진술일지라도- 익숙한 그네들은 자신의 입맛과 호기를 적당히 충족시키는 만화가 일본의 것이라는 걸 알고 보는 세대였다. 불법이 판을 친다고 떠들어댔으나 이 호사한 문화충족의 기회가 금방 사라질 새라 사재기와 수집에 열을 올리던 컬렉터들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거기에 만화 관련 사업으로 선 거대한 움직임이었던 로봇 조립 모형의 붐도 일목하고 있었다. 

그들의 의사반영이기라도 하듯 90년대에 들면서 다시 창간 러시를 이룬 만화전문지는 월간 체제에서 격주간 체제 또는 주간 체제로 스피드를 뛰게 되었고 저작권을 표기한 일본산 만화가 국산 수록만화와 인기 경쟁을 벌이게 하였다. 물론 그들 중 최고였던 작품과 최고를 희망하는 우리 작품들과의 경쟁은 스코어를 계산하기 민망할 지경임이 당연하다. 문제는 작가진들 조차 경쟁 자체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잡지사 데스크의 노력과 자신의 눈치가 결부되어 한국판 일본만화가 현 잡지 만화의 주류를 이루게 했다. 10만권 이상의 판매 부수를 자랑하며 점프와 챔프로 성장해온 양대 만화출판사 체제는 더이상 국산 만화의 유입을 금하게 할 정도로 거대한 것이 되어져 버렸다. 90년대 중반을 거치며 벌어진 만화전문지 간의 부수 경쟁은 급기야 단 한편을 제외한 모든 수록 작품을 일본산으로 명기한 잡지가 출현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했다. 각 4종씩의 잡지를 경쟁적으로 출판하고 있는 이 살아남은 만화계의 새로운 빅보스가 내민 전략은 마치 일본화된 한국만화로 세계화를 꿈꾸는 척 해보자는 것이다. 


한국애니메이션의 잇단 실패와 캐릭터 산업의 한계성 등 관련사업으로의 진출이 더뎌지고 있는 한국 만화계의 현실은 복사문화 이상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에 주시해야할 것은 80년대까지 어린이 영화가 전무한 시장 환경에서 방학 특집용으로 제작되는 애니메이션이나 실사합성 영화가 그 질과는 무관한 흥행 성공을 보인 것과는 달리, 실정상 거액의 제작비와 기간이 투자된 애니메이션이 실패를 거듭하고 있음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전반적인 작품 수준의 향상과 관객의 성장,  거기에 기획력의 부족 등의 이유를 들어 거품의 와해를 저지하려는 움직임이 크지만 가장 중요한 관객의 움직임 앞에 가고 있는 것은 분명 일본의 복제 만화인 것이다. 출판만화 이외의 기회를 부여 받을 수 있는 작가는 한국의 대표작가임이 자명하다. 그에게 있을 기존의 독자층 흡수와 광고효과 등 파급효과를 노린 기획 일 것이다.  거기에 지불능력이 있는 부모에 의한 인지도도 아동만화가 대표작가를 통해 이루어지게 하고 있는 이유이겠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그들에겐 일본산의 냄새가 지독하게 까지는 풍기지 않으니. 그 정도의 향내-또는 복사-로는 우리 어린이들의 구미를 맞추지 못하고 있으니. 간과할 수 없는 이 현실을 모두가 수용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오래지 않다. 자본은 구매자가 있는 곳에서만이 웅크리고 있는 것이니 가히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처럼 일본의 만화에 모든 것을 넘겨야 할 때가 멀지 않았다.


이미 한국의 대표작가들은 성인만화가가 된지 오래다. 극화체 위주의 화풍을 지닌 이들이야 극적 구성의 다변화를 꽤한다는 명분을 지닐 수 있으나, 아동용 만화를 그리던 만화체의 작가들까지 성인만화를 그리고 있음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신인만화 응모작중 아동이 주 소구층인 만화체(만화체가 아동물이라고 우기는 건 아니다. 보편적인 인식에 기대어 예를 들고 있을 뿐)가 10%를 넘지 않는 범위인 것도 한국만화의 수용계층엔 아동이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만화문화가 가장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 집단이 10대 이하임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빼앗긴 만화가 가능키나 한 얘기인가? 한 만화업자는 한국만화의 소구층이 확장되고 있음을 설명하면서 만화가 아동의 전유물이었던 시대는 지났다며, 지불능력이 많은 독자 공략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만화의 패러다임에 변혁이 일고 있음을 주시하라는 내용의 글을 발표했다. 그의 말이 전부 틀리지는 않았지만 그중 50%가 틀려져 있다면 20년 후의 만화계 지형변화는 확인할 필요도 없이 대동아 공영권에 흡수되어 진다. 20년 후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노인층을 겨냥한 만화를 그리면서 지금의 꼭 두배 정도가 되는 성공을 거둔다면 그나마의 한국만화가 존재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성공하고 있는 절반이 성인층을 겨냥하고 있음은 다시 한번 숙고해야 한다. 우리만화가 지닐 수 있는 경쟁력이 꼭 절반치라면 그것의 저력은 어린이층을 향해 있어야 한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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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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