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주문화사의 '영레드' 창간 준비를 중점으로
94년 창간 된 세주문화사의 《미스터블루》는 순 토종 격월간 성인만화잡지라는 타이틀을 획득하며 서울문화사와 도서출판대원이라는 양대 체제를 재편하고 나섰다. 한국만화의 영속적 영웅으로 회자되어질 이현세 사단과 신인만화 슬픈 일이지만 해야할 일이 되어졌다. 이것은 아주 큰 폭의 장르구분 용어로 쓰여져야 할 것이다. 바로 만화와 망가이다. 일본식 표기와 발음임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화는 가장 보편적인 장르 표현 용어로 확고히 자리 매김 되어져 있다. 그리고 이제 90년대의 만화현실을 즉시 하기 위해선 망가라는 그들의 발음을 만화와는 다른 장르 구분용어로 도입해야 할 때가 되어졌다. 그것은 90년 이전의 작가들이 만화의 표현형식만을 빌려 왔다고 한다면, 작금의 신진작가들은 방법자체까지 차용하고 있음을 말하는 계기가 되어질 것이다. 이에 필자는 한국식만화의 계보를 따르고 있는 일련의 작가 군들을 만화작가라고 칭하고, 일본식만화의 계보를 형성하고 있는 자들을 망가작가라고 칭할 것이다. 이는 형식의 문제에서도 동일하게 사용, 만화체와 망가체의 구분을 제시 할 것이다.
작가군의 지면분할로 인해 망가의 꿈을 견제하는 유일한 상업만화잡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 세주문화사는 팀메니아라는 단행본 출판물을 통해 유명작가의 대본소용 작품들을 재 출간하고, 작품성을 근간에 두고 있긴 하나 레드코믹스를 통한 일본만화의 수입 출판을 병행하고 있어 세간의 눈총을 받고 있다. 거기에 일본 만화가 수록될 예정인 청소년만화지 《영레드》의 창간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서 세주문화사의 행보가 어느 방향(국산 만화냐, 일본만화냐)으로 향할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90년대 초 점프, 챔프가 만들어낸 ‘게임의 법칙’
80년대 만화 시장의 절대권자였던 대본소 만화와 월간만화 잡지 시장은 고유 테를 희석시키고자하는 새 세대 문화 지향자들의 소구욕을 채우지 못하고 붕괴 됐다. 대본소의 붕괴는 책대여점이라는 변종의 북카페 문화를 탄생시켰고, 월간잡지 체제는 육영재단의 만화산업 중단으로 그 계보를 잃어버리면서 90년대 들어 새로이 소구층을 확장시켜 나간 주간 체제에 패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보물섬》으로 대표되는 월간만화잡지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부침을 표할 때, 주간만화잡지는 적절한 대안이 됐다. 《보물섬》은 이들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 격월간 체제로의 변화 등을 꾀했으나 망가를 등에 없는 두 출판사의 전략 앞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이로 인해 기존의 고유시장은 파괴됐고, 어수선한 바닥의 잔해들과 주변의 눈길들에 개의치 않는 두 영웅이 탄생된 것이다.
소위 점프, 챔프로 불리는 서울문화사의 《아이큐점프》와 도서출판 대원의 《소년 챔프》가 그 영웅이다. 이들의 등장은 대본소 만화의 흐름이 와해되고 있음을 눈치챈 서울문화사 쪽에서 망가적 만화의 대중 살포-창간 첫 호를 1천원에 십만부 발행하는 모험을 강행했다-로 부터 시작된다. 일본만화의 축소판 불법복제물이 1차 호황을 예견하고 있을 때 그 복제물의 한국식 기호들로 가득한 국배판의 책은 상당히 유혹적인 것이었다. 거기에 당대 최고라 불리던 이현세의 『아마게돈』과 허영만의 『망치』가 들어섰고, 후에 토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볼』로 정공법을 펼치며 기존의 만화 틀을 이동시켰다. 동년에 애니메이션 업체였던 대원동화가 만화출판산업을 강행, 『슬램덩크』 등으로 포진한 《소년챔프》를 선보이며 주간지 체제의 부동적인 위치를 구축해내는데 성공했다.
미국에서 처음 신문만화로 인한 부수 경쟁이 일었던 1880년대에 《저널》지와 《월드》지가 일요판 신문에 만화를 이용한 독자몰이를 펼쳤었다. 만화를 이용해 신문의 근엄성을 파기하고 독자와의 교합을 자처하며 가속성과 흥미를 이끌기 위한 방편으로 기술되고 있는 사건의 주인공은 아우트콜트의 저 유명한 『노란꼬마』이다. 황색저널리즘의 꼬리표를 달게 하는 어원으로도 통용되고 있는 이 사건의 전개방향이 마치 두 출판사가 우리만화가 아닌 일본의 정식버전 망가로 치열하게 경쟁국면을 형성하고 있던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황색저널을 자처한 이 경쟁에서 고약한 노란 꼬마의 역할을 해낸 것은 『드래곤볼』과 『슬램덩크』였다. 그들의 과도한 성공사례는 만화작가들을 망가작가로 학습, 전환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기실 두 출판사는 일본 집영사와 강담사 등의 편집체제와 방향 등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서 이의 실행은 이미 예견 됐었다.
최소화한 만화의 모양을 지니고 있던 작가들 마저 전폭적으로 망가의 꿈을 대변케 하는 망가작가로 성장해 나아갔다. 이들의 성공에는 축소판 일본 복제물의 영향력도 상당부분 깔려 있다. 권당 500원 정도의 헐값에 제공되던 일본만화 불법 복제본들은 빌려 보는 문화에서 사서보게 하는 문화로 만화시장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소비자들은 대여료보다 1~200원 정도 비싼 구입비에 훈련되면서 만화잡지와 단행본 구입에 익숙해졌고, 서점용 만화출판시장의 활성화에 동조했다. 이 과정에서 망가에 학습된 소비층의 기호에 대한 배려로 한국적 망가들이 볼상사납게 제작되면서 점프와 챔프를 출판만화시장의 중심부로 이끈 것이다.
90년대에는 성인지 계열에 위치한 《주간만화》와 《매주만화》가 있었고 순정지 계열로는 《르네상스》등이 포진하고 있었으나, 망가에 대한 확신을 지니게 된 두 출판사는 만화의 소구층 분할에 나섰고 소년, 성년, 성인, 소녀순정,성인순정 등의 독자 세분 작업에 나섰다. 일본식 분류기준을 그대로 적용한 독자 세분에서도 이들은 성과를 과시했다. 이들 성과의 뒤켠에는 망가와 뒤죽박죽인 망가체 만화가 포함된다. 이들은 망가라는 확실한 소구층을 지니고 있는 장르를 기존 만화잡지에 포함시키는 것만이 판매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게임의 법칙을 만들어냈다. 이 게임의 법칙은 그대로 잡지만화 붐을 이루는데 몹쓸 모범이 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세출판사들은 위험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두 출판사의 벽을 넘지 못하고 손쉽게 무너졌다.
『미스터블루』가 간다. 법칙을 재편해라.
망가의 시대가 공언되고 있는 마당에 세주문화사의 《미스터블루》가 출사표를 던졌다. 우리시대의 대표 만화가 이현세의 선화가 역력한-이상세의 필치와도 흡사한-신문 5단 광고로 그들의 시작이 일반에 알려졌다. 이상세, 안세희, 이무세 등 이현세 사단으로 대두되는 구 작가/ 편집진과 양영순, 이경열, 윤태호로 이어지는 신 작가 진들의 작품을 수록하고, 주간만화지로서는 유일하다 쉽게 망가를 배제하고 있었다. 이현세를 비롯한 구 작가 진들의 필치가 무뎌지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반면 신진 작가들이 제공하는 놀라운 해학과 작품 연출은 성인만화의 재미를 제창출하고 있는 노력으로 읽혀졌고, 양대 출판사의 십만부 신화에 합세했다. 이중 양영순과 윤태호가 일궈낸 성과는 그 진폭이 거대한 것으로 한국만화의 새로운 계보를 형성해가고 있다. 만화아카데미 1기 출신인 양영순의 경우 일본식 선묘의 그것과 유사한 캐릭터 형상화가 걸림돌이긴 하지만 새로운 인체비의 제시와 이야기 서술의 고밀도 해학성은 이 어린 작가를 대가들의 반열 안에서도 으뜸의 것으로 치부하는데 주저하지 않게 한다. 허영만의 문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듯한 윤태호는 초기에 비해 불성실한 듯한 인상을 주는 인물묘사로 고유한 캐릭터의 분위기를 포기하고 있으나 선의 절약된 사용이 오히려 캐릭터의 변천으로 읽게 할 정도의 연출력을 확보하고 있다. 고전 패러디 만화의 한 유형을 제시하며 망가를 막아서는 대표만화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족이다. 작품의 주인공이 바지저고리를 입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망가와 만화의 구분점이 될 수는 없다. 이 두 작가의 캐릭터가 이두호나 백성민의 그것이 될 수는 없다. 컷 안에서 생성되어지는 인물의 표정묘사나 행동 묘사시 이들의 만화습작기를 연계하고 있을 망가의 그것이 전무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한국적 상황하에서 펼쳐지는 망가의 산발적인 영향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며 두 작가의 노력이 만화를 향해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성인만화잡지 《미스터블루》는 주간만화잡지 시장을 점유하고 있던 두 출판사 성인지 《빅점프》와 《투웬티세븐》의 판매 부수를 내리막길로 치닫게 하는 등, 한국만화만으로 성공사례를 만들어냈다. 두 메이저 출판사가 독점적으로 서점 단행본시장을 망가들로 메우고 있을 때 팀메니아는 국산 만화 단행본들을 서점용으로 출간했다. 과거 만화방 스타작가들의 만화방용 만화를 재편집하여 출판한 팀메니아의 전략은 표면상 서점용 단행본 시장의 작품 구비율을 높이고 망가로의 소구층 누수현상을 차단해내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시장만 바꾼 채 만화방용 만화(공장제 제작 방식을 통해 양산된 작품)의 양산을 도운 꼴이 됐다. 또, 세주문화사는 망가 중 작품성에 점위를 둔 작품들을 레드코믹스 시리즈로 출간하고 있다. 한층 고급화된 망가 문화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 할 잡지 체제로 《영레드》라는 청소년층을 대상으로한 주간지의 창간 계획도 나오고 있어서 『미스터블루』의 ‘국산 만화잡지’라는 타이틀을 무색하게 한다.
레드 콤플렉스, 만화와 망가
한국의 만화사는 망가의 역사에 개입하면서부터 시작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 역사적 계보는 근 40여년간 우리 작가의 목을 조이면서, 뜨거운 감자노릇을 하고 있다. 선과 그림의 새로운 제안, 내용과 형식의 우리다운 표출은 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일반의 인식으로 자리 매김 하는데는 상당 기간 상업적인 의지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기간을 포기한다고 해서 우리만의 만화를 지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당연히 독자의 선택에 의해 보편적인 정서를 대변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자의 토로는 80년대 말 이전의 변명이어야 옳다. 80년말 이후로 급속도로 성장해 대중문화의 중앙에 서있는 90년대의 만화계는 이 난제를 풀고 2천년을 맞이해야 한다. 독자가 소원하는 것이 아니라도, 만화계가 애절하게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이미 누려버린 호사스런 재미를 반납하고 망가의 꿈이 아닌 만화의 꿈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시대의 만화작가를 꼽으라면 상업성 있는 투톱과 시대극화 쪽의 투톱, 그리고 리얼리즘계열 작가라고 떠들어대는 트로이카 정도를 선 위에 올려놓을 것이다. 때가 되면 상도 받고 언론의 은혜로운 보살핌도 받아가며 살아있음을 언제고 확인 받는 이들. 그들 중 작년에 한 작품으로 십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이들이 있는가? 만화가 지닌 다변화의 가능성들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이가 있는가? 작년 한해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만화가는 이충호, 박산하, 지상월 정도일 것이며, 컴퓨터게임, 캐릭터산업, 해외출판 등에 성과를 올린 이들 역시 이름도 낯선 신예 작가 진들이다. 만화평론과 관련 논저가 잡다하도록 많아지고 있지만 그들은 언제나 번외작가로 취급받는다. 막강 출판사의 파워를 등뒤에 없고 국제만화페스티벌 등에 대표작가로 든든한 명함을 들이밀지만 누구도 그들을 찬양하거나 칭송하지 않는다. 그저 한때의 작가들이라 말 할 뿐이다. 그들의 판매고는 한질 기준 백만권 이상이다. 대중매체의 가장 커다란 미덕을 행사할 수 있는 이들인 것이다. 그들에 의해 만화의 시장 점유율이 확장되고 있는 것 역시 감사해야 한다. 하지만 이젠 망가의 재미를 이어가는 이들을 포기하자. 것의 재미를 모른 척 한다는 게 필자와 독자의 똥줄기를 타 들어가게 하더라도.
국내 만화만을 만들었던 세주문화사가 《영레드》라는 제호의 청소년용 만화잡지(속칭 영지)를 출간하려고 한다. 기어이 레드코믹스를 출간해버린 이력을 무마시키지도 못하고 병행하려는 그들의 작업은 역시도 레드라는 색 위에서 연계되어질 것이다. 레드코믹스는 이왕에 불법복제물로 빈번하게 소개되어진 구작들인 탓에 자력적인 판매 역시 어려운 지경이다. 이에 세주문화사의 레드코믹스 발간은 그들이 단행본 팀메니아를 먼저 선보이고 출판사의 지명도를 지니게 된 이후에 미스터블루를 간행했던 것과도 동일한 전략으로 보인다. 까닭은 영레드가 망가의 것이라 판단할 수 있게 한다. 세주문화사가 빨강(망가)과의 협의로 기존 틀에 흡수 병행되어질 것이라는 판단은 내외 관계자들을 몹시도 침통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미 서울문화사와 도서출판 대원이 편가름해 확보하고 있는 일본 망가 작가 진들은 그들 중 최고이다. 그러나 그들 중 최고는 몇 되지 않는 것이며 최고만을 따르는 관행으로 인해 《영레드》가 흡수할 수 있는 최고는 이미 없을 것이다. 이는 여타 군소 출판사들의 1,2호 폐간 사례들로 짐작할 수 있다.
새로운 매체에 대한 기대는 크다. 잡지계의 영원한 테마이기도 한 창간호 신화는 언제고 시도하는 자의 것이 됐었다. 문제는 그 신화를 그리워하는 간행물을 만들어 낼 것이냐, 능가하는 것을 만들어 낼 것이냐 이다. 세주문화는 당대를 대표하는 양대 체제를 지엽적으로 흔들어 놓았었다. 한국의 대표작가라고 치부되는 작가들의 작품이 연약해지고 있는데 반해 신예만화작가의 발굴, 참여가 가장 능동적인 곳이기도 하다. 최근 일본 망가를 발간하는 등 전체적인 불황에 대응하려는 노력으로 그 초연함에 연막을 드리우고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까닭은 새로이 등장하는 그들의 『영레드』를 지켜봐야 하는 더 큰 이유를 지니게 한다. 초기 블루로의 소프트한 복귀냐, 레드코믹스의 주간 만화판이냐가 확인되어져야 할 것이다.
80년말 만화시장을 두 축으로 만들어낸 업체들에 의해 만화계는 빨강과 파랑의 논쟁이 일어났다. 전쟁세대가 지니고 있던 빨강의 힐난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듯한 90년대 만화계의 빨갱이는 일본의 망가이다. 파랭이로 논쟁에 참가했던 한국의 만화는 아주 노쇠한 몸뚱이를 이끌고 비비적거리고 있다. 파랭이는 어느 쪽이 되어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너무 많은 세월을 살아낸 파랭이는 안주하고 싶어한다. 만화가 되어져도 망가가 되어져도 그만이다. 파랭이는 빨갱이를 덧입힌 주체이기 때문이다. 불편하면 파랑 따위는 벗어버려도 그만인 까닭이다. 또는 함께 구성되어져도 좋은 것이다. 아름다운 태극의 무늬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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