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우리 만화 속의 일본 찌꺼기, 만화시비탕탕탕, 1999


만화대국으로 확고한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일본은 인터넷을 통해 아니메와 망가라는 일본식 표현들을 세계공용어로 만들고 있다. 년간 20억권 이상의 만화를 출판하고, 《주간 소년점프》라는 단일잡지가 매주 6백만부 이상 팔려나가는 것이 일본의 만화시장이다. 프랑스의 한 평론가는 이미 일본 TV만화가 세계시장의 70%이상을 점위하고 있다고 관측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출판시장 개방을 목전에 둔 96년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외국만화심의를 거친 일본만화복제물의 공식화 된 발행수가 95년에 비해 45%증가한 1,256권으로 급격한 증가추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공식적인 집계에 의한 것으로서 불법출판이나 잡지 연재의 경우까지를 포함한다면 그 수치는 어림잡기 어려운 지경이다. 혹자는 이미 우리만화는 일본만화의 견본시장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한다. 


부르주아미학에 대한 집착과 문자중심사회에서 급격한 영상사회로의 변화는 물질문명이 반영된 저급한 정신의 세계로 대중문화를 낙인찍었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경외감에 빠져 허덕이던 식자들의 재단된 논리에, 제자리를 지니지 못하고 음지의 문화로서 기생하게 된 것이 우리만화의 정체성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에 비해 도국근성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일본의 정서는 수많은 정보의 범람들 안에서 보다 손쉬운 정보와 텍스트를 원하게 되었고, 그 이상향의 범주에서 만화를 등극시켰다. 이에 비해 문자매체 주도사회에 위치한 우리만화가들은 정지영상의 서술이라는 굴레를 지녀야 했다. 문자매체 자들의 고귀한 손질이 만들어낸 수많은 텍스트를 한 콤마로 만들어 내는 만화가들의 괘씸함에 노한 것이다.


만화가 독자의 꿈꾸기를 통한 대리만족의 매체라고 규정한다면 이에 독자정서의 사전기술은 불가결한 요소가 될 것이다. 독자 개인의 정서 안에 도사리고 있는 어떤 -음란, 폭력 등-을 증폭시키고 수많은 원형들로 이끌어 내는 것이 대중문화의 힘이다. 하지만 그 힘의 표출 자체를 기형적 심의구조에 의해 억압당해온 우리만화는 국제적 경쟁력을 지니지 못한다. 10년을 주기로 빗금 없는 잣대를 과도하게 들이대던 군정하의 심의기구들에 의해 적당히 단련된 창작품이 생산된 것뿐이다.


개인 수련으로 만들어내는 창작품이 있더라도 그것은 언제고 심의기구에 의해 재조정됐다. 창작의지 자체를 묵살해버리는 이런 관행은 힘들이지 않는 표절만화를 만들게 했고 일본만화를 베끼게 했다. 그리고 90년대 들어 만화가 범람하고 이에 대한 인식의 폭이 점차로 좋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돌아본 우리만화는 낭패감을 불러온다. 일본만화를 부분 또는 전체적으로 베꼈던 만화가들은 일본만화를 교재로 수업을 하고 있었고, 보아온 우리독자는 변용 된-글자 표시만 우리 것으로 바뀐-일본만화를 보아온 것이었다. 한때 만화가들의 자쟁 노력은 적당한 수순까지 치닫고 있었으나 독자의 교육된 시선을 이끌어 내진 못했다. 일본만화에서 웃음의 요소 또는 이야기 구조를 참고한 작가들은 문화적 차이까지를 그대로 인용해냈다. 그리고 근간에는 우리만화 안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일본식 만화의 표현들과 문화조류들을 채집할 수 있게 했다.


만화평론가 손상익은 ‘여학생 등장인물의 경우는 당연스럽게 세라복을 입고 있으며, 남학생은 차이나 칼라에 뒤 깃이 긴 교복을 입는다. 일본식 의성어가 놀람의 표현으로 사용되고 기모노를 입은 여자들의 깡충거리는 걸음걸이까지 묘사한다. 50음도 뿐인 가타카나의 영어식 발음도 그대로 인용하고 일본의 다신교가 만들어낸 정령들이 우리주인공의 수호령이 되기도 한다. 사무라이나 봉건계급사회의 정신들이 호국으로 바뀌기까지 한다. 일본개화기의 유명 논객이었던 후쿠자와 유기치의 탈아입구론 처럼 아시아가 아닌 유럽인으로서 확신하고 있는 바나나족들의 구라파(유럽의 일본식 발음)지향 행동양식까지도 표현된다.’라며 호된 비평을 던진다. 


우리 독자들은 하나, 둘 자신의 인식을 버리고 학습되는 인식으로 만화의 세계에서 사용되는 법칙들을 인정해 버렸다. 그리고 마치 학년이 올라가서 초급교과서를 버리고 고급과정 교과서를 택하듯 일본의 만화를 택한다. 그나마 자조적인 모습을 지니려는 어정쩡한 형태의 우리만화를 마다하고 내재된(학습된)인식(확정된 재미)하에 있는 일본만화를 택하는 것이다.  


일본은 정부당국에서 만화를 국책산업의 하나로 삼고있으며 창작의 자유를 최대한도로 보장해주고 있다. 자유경쟁 체제하에서 우수한 만화가 발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년간 10% 이상씩 증가 추이를 보이는 일본의 만화출판시장은 93년 7억7천만권을 발행했으며 애니 산업은 1천억 달러 규모를 지니고 있다. 작가, 독자, 정부가 삼위일체가 되어 만화시장을 번창하게 한 것이다. 이런 그들의 결과를 그대로 도용해내고 있는 우리만화시장은 문화거국의 몸짓에 휩쓸릴 수밖에 없고 결국 그 내용마저 일본식으로 도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만화는 그들의 결과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타국가의 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만화상품을 만들어 낸 준비과정들로 눈을 돌려야 한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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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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