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네이버 한국인 - 한국 만화의 현재, 만화가 허영만, 2012.10.6

허영만 월드에 서다, 태껸에서 관상까지

만화가 허영만과 함께 [식객]에 소개됐던 한우설렁탕 전문점을 찾았다. 저녁시간이어서 그런지 입구부터 도로 앞까지 자리를 잡지 못한 ‘식객’들이 줄을 서있다. 간판과 입구 곳곳에는 각종 언론 매체에 보도됐음을 알리는 홍보물이 부착되어 있었다. 만화 [식객] 중 이 식당과 요리사를 소재로 했던 부분도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손님들은 맛에 대한 기대감으로 상기된 얼굴이었고 그들 중 상당수가 이 음식점과 요리사의 유명세에 대해, 그리고 이를 촉발시킨 허영만의 만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허영만의 사진이 커다랗게 붙어 있어서 혹시나 ‘급행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종업원은 열 몇 번째라고 적힌 ‘대기표’를 내밀었다. 허영만은 “맛 집은 함부로 소문 내고 다니면 다음에 가기가 힘들어져요”하면서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대기 숫자가 두 자리이고 보니 저녁 시간도, 인터뷰 시간도 놓칠 것 같아 조심스럽게 다른 쪽으로 가자는 제안을 했다. 허영만은 바로 옆에 있는 한우갈비집을 추천했다. 같은 사장이 운영하는 곳이다. 허영만이 등장하자 지배인은 외근 중이던 사장을 불렀고 사장은 한걸음에 달려와 ‘자체 목장에서 직접 기른 한우’의 맛과 특징에 대해 이야기했다. ‘음식은 경험이고 추억인데 이를 공유하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필요하다’면서 만화 [식객]이 지닌 의미와 가치에 대해 평했다. 또, 정부 주도 하에 여러 기업인들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한우의 세계화’에 대해서 허영만의 각별한 관심을 요청하기도 했다.

음식을 먹는 중간중간 사람들이 찾아와 허영만에게 사인을 요청했다. 사람들은 각자가 기억하는 허영만 만화를 이야기했다. 중년의 손님은 [각시탈]을 꼽았고, 꼬마 손님은 [날아라 슈퍼보드]를 이야기했다. 얼마 전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인기리에 방영됐던 [타짜]와 [식객]을 말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최근 연재작 [꼴]에 대해 논하며 ‘관상을 좀 봐달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렇게 허영만은 데뷔 이후 현재까지 색다른 소재를 찾아내 우리 사회의 관심사를 주도해왔다. 태껸으로 민족성을 이야기하고 권투로 의지를 논했다. 야구로 승리에 대해 말했고 자동차로 세계 속의 한국을 주장했다. 말과 화투, 골프, 바둑, 패션, 관상 등을 통해 사람 사는 세상을 그려냈다. 4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자신의 작품을 통해 세대와 세대를 잇고 있었고, 작품 속 공간과 현실 속 공간을 일치시키고 있었다. 그의 세계는 특정된 공간이나 문화사회적 지점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그가 서있는 곳, 그의 작품이 이야기하는 곳, 그리고 그의 독자들이 만들어가는 공간이 곳 허영만 월드이고 그 곳에는 한국 만화의 현재가 있었다. 우리가 있었다.

꼴은 운명이다, 그러나 개척할 수 있다 

“옛날에는 어디 가서 만화한다는 이야기를 못했어요. 예비군 훈련 가서도 만화한다고 말 못했죠. 아내도 주변사람들한테 아이 아빠가 만화 그린다는 소리는 안 했다더군요(웃음).” 허영만은 ‘만화가’라는 직업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이 간혹 만화가의 극존칭처럼 인식되는 ‘화백’이라고 부를 때 오히려 거부감이 든다고 할 정도다.

‘만화가’라는 호칭이 뭐가 모자라 다르게 부르냐는 거다. 그런 그도 문화적 엄숙주의가 드높던 유신시절, 만화를 사회악 중 하나로 치부하며 5월이면 각급 사회단체들이 ‘만화 화형식’을 치르던 때에는 만화가라는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고 했다. 데뷔하던 해가 곧 인기 만화가가 된 해였고, 기복 없는 창작 생활로 매 작품마다 부와 명성을 더했던 그도 그랬으니 그 시절의 만화가들은 얼마나 큰 피해의식을 지니고 있었을까.

“환경이 많이 좋아졌어요. 정부도 그렇고 부천시 같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만화에 대해 적극적인 지원 정책을 펼쳐가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는 거예요. 하고 싶다고 해서 그냥 퍼주는 식의 지원이 되어서는 곤란해요. 방법을 알려주는데 최선을 다하고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 지원일 것 같아요. 우리 때는 그런 거고 뭐고 없었어요. 문제는 그렇게 배출된 인재들에게 최소한의 생활이 되게 해줘야 한다는 것인데 그게 쉽지 않아요.”

허영만은 늘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만화가다. 그처럼 허영만의 문하에서, 허영만의 화실에서 창작을 배웠던 이들은 허영만을 최고의 선생님으로 모시고 있다. 만화가라는 자기 형상을 만들어내고 경험된 학습법을 통합적으로 실천해 보이는 허영만의 도제식 교수법은 교육 내용을 분절화시켜 가르치는 학교시스템과는 다른 결과를 만들어 왔다. [파이팅 바람이]의 김종한, [기계전사109]의 김준범, [이끼]의 윤태호 등이 허영만의 문하를 거친 만화가들이다. 문하생의 숫자로만 보면 대규모 창작 시스템을 갖춘 여느 만화가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지만, 다른 문하생 출신들이 자기만의 개성을 평가 받지 못하는 것과 달리 이들은 하나같이 독자적 작품 세계를 인정받고 있다. 그래서 허영만의 화실은 단순히 작품을 생산하는 공간으로서의 기능만이 아니라, 다수의 만화가들이 현장 교육을 받는 만화학교이기도 하다. 그런 탓에 허영만은 우리 만화계의 든든한 뿌리이자 여전히 열매를 맺는 나무로 통한다. 이는 정해진 운명처럼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며 ‘만화하는 삶’을 받아드리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만화의 길’을 찾았던 허영만의 개척가 정신 때문일 것이다.

“만화가니까 다른 것보다 만화를 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만화를 그리면 중장년 독자층을 확대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행히 아동독자들도 다시 성장하고 있고요. 청소년 독자층이 취약해졌다는 것이 걱정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청소년을 위한 만화를 그리기는 힘드니까 젊은 작가들한테 기대해 봐야죠.” 허영만은 현재의 작품 배출 시스템을 인력 배출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싶다는 생각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는 그 같은 역할을 대행해줄 수 있는 기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직접 나서는 것이 곧 ‘작품 할 시간을 까 먹는 일’이라는 것을 아는 탓이다.

대중문화계의 믿음직한 타짜, 현재가 아닌 더 나은 미래


허영만 특별전 중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만화입니다. 만화를 그리고 있을 때 제가 행복하고, 현장에 있을 때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있을 겁니다. 좋은 만화라는 건 욕심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만화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라도 탐구욕이 강한 사람이 성공한다고 봅니다. 저는 만화를 택한 건데, 만화의 산은 하나라고 봅니다. 목표가 정해졌다면 노닥거릴 시간이 없어요. 걸어야죠. 쉬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허영만은 딱 두 달 쉬어봤다’더라는 식의 언론 보도가 나간 적도 있어요. 기자가 좀 강하게 표현하긴 했지만, 쉴 시간 같은 걸 따로 정해 놓은 적도 없으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일하면서 노는 법도 터득 해야죠.” 허영만은 일 잘하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가만 보면 여느 만화가들에 비해 일을 많이 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 매우 규칙적으로 하고 스스로 정한 규칙을 어기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보다 많은 양의 결과물을 내놓고 그만한 성과를 인정 받는다.

“화실에서 밤새 일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제가 밤을 새워 일하면 제 일을 받아서 그 다음에 일을 해야 하는 문하생들은 이틀 밤을 새워야 해요. 제 일이 끝나면 그 다음에 그 친구들이 일을 해야 하는데 무슨 힘이 있어서 그림을 그리겠어요. 그렇다고 선생이 일하는데 쉬고 있을 수도 없을 거고. 안되겠다 싶었죠.”


허영만은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하는 만화를 주로 창작했다. 연재는 매일 또는 매주 정해진 분량의 작품을 마무리해야 한다. 인쇄 시간을 지켜야 하는 이 세계에서 마감을 지키지 않는 것은 스스로 경쟁력을 깎아 먹는 일이다. 그래서 모든 만화가는 이 마감이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기의 건강을 깎아 먹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과 자신을 돕는 문하생들의 건강을 깎아 먹었던 허영만은 이런 시스템이 좋은 작품을 담보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기만의 시스템을 개발한다.

허영만은 사전조사를 통해 자신이 스토리를 쓰고 칸 연출을 한 뒤, 데생(밑그림)을 한다. 데생 원고와 사전조사를 통해 얻은 각종 배경자료들을 문하생에게 넘기고, 문하생들은 펜터치와 잉크칠, 스크린톤 작업 등을 한다(최근에는 이 같은 작업을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처리하기도 한다). 이를 자신이 직접 검수하고 신문이나 잡지사에 전달하면 그 날의 작업 분량이 마무리 된다. 즉, 자신이 언제 데생 원고를 넘기느냐에 따라서 문하생들의 작업 시간이 정해지고, 자신이 다음 작품을 준비하거나 문하생들이 스스로의 역량을 넓히기 위한 학습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지가 정해진다. 허영만은 이 같은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처음에는 직장인처럼 정시 출퇴근을 생활화했다. 이후로는 자신이 새벽 4시에 화실에 출근하기도 했다. 스토리를 쓰는데 2시간, 데생을 하는데 2시간을 보내면 8시가 된다. 데생 원고를 문하생들의 책상에 올려놓고 잠시 오침을 하기도 하고 각종 사무일을 처리하기도 한다. 10시에 출근한 문하생들이 작업에 들어가면 신문이나 잡지사에 넘겨야 할 원고가 오후 3시 전에 완성된다. 자신은 이후 시간에 대외 활동을 하기도 하고 취재를 나가기도 한다.

“재주 있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재주가 가만있지를 않아요. 발견됐을 때 집중해서 잡아둬야 해요. 주변에서도 재주가 발견되면 강하게 가르쳐야죠. 아니면 금방 다른 사람한테 넘어가요. 어떻게 보면 재주나 기회나 매 한가지죠.” 허영만은 재주 있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고, 노력만 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에 맞춰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타짜]에서 보여줬던 화투 사기꾼들의 삶 역시 마찬가지였다. 밑바닥 삶을 미화하지 않으려 했지만 마치 장인처럼 기술 연마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어느 작품에서보다 선명하게 묘사됐다. 그것이 허영만이 생각하는 삶에 대한 태도였을 것이다.

맛과 멋을 찾는 식객, 여전히 탐험하기 바쁘다

“얼마 전에 원수연 작가를 만났는데 몇 살까지 할 거냐고 묻더군요. 일하는데 나이가 정해진 건 아니죠. 벌써 그런 걸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됐나 싶어 서운하기도 했는데, 너무 오래한다고 하면 욕 먹을 것 같아서 70살까지만 한다고 했어요. 그래 놓고 보니까 덜컥 겁이 나는 거예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뱉은 말 속에서도 허영만은 자신의 창작 수명을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 10년 남짓. [타짜], [사랑해], [식객], [꼴]로 이어졌던 그 동안의 작품 스타일로 보면 두 세편 가량의 장편 만화를 연재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셈이다. “요즘 정말 바빠요. 그래서 바쁘다는 소리는 안 해요. 대신 남들이 내가 얼마나 바쁘게 사는지 알 수 있게 연재를 많이 하죠. 하루에 10페이지 가량 그려요. 하루에 만화 10페이지 그리는 것이 어떤 일인지 모르는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어요(웃음). 간간히 놀러 다닌다는 기사가 나가고 그래서 곤란할 때도 많아요.” 허영만은 ‘놀 줄 알아야 새로운 만화를 할 수 있다’며 ‘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 중 한 명이다. 일 할 때는 집중력 있게 하고 쉴 때도 일에 맞춰서 전략적으로 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만화 같은 소재’가 아니라 ‘색다른 소재’를 만화화하는 허영만의 작품세계는 모두 그가 ‘쉼’ 속에서 일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취재와 여행뿐만 아니라 취미생활이나 대외 활동에서도 허영만은 만화 소재를 찾았다.

“[식객]을 하니까 전국 각지에서 연락이 와요. 특히 지방자치단체에서 고장 특산물을 소개해달라거나 관련된 축제를 한다고 하면서 여러 가지 요청을 해요. 그런데 이걸 다 받아 줄 수가 없어요. 다른 계획도 중하지만 제 계획이 있어요. 다른 계획에 맞추면 제 계획이 엉클어져요. 이걸 다시 짜 맞추려면 남은 시간이 모자라요. 가까운 친척 어른이 음식박람회 홍보대사를 맡아 달라는 거예요. 고향에서 하는 터라 꼭 해야겠다 싶으면서도 사정을 이야기하고 ‘한번 봐달라’고 했어요. 이해해줘서 너무 고마웠죠. 그런데 그 뒤 세계요트축제 홍보대사를 하게 됐어요. 계획에 있던 거였죠. 그런데 그렇게 마음이 무거울 수 없더라고요. 한때 야구를 즐기고, 골프를 즐기고, 산을 즐기고, 음식을 즐기고 하다못해 도박을 즐겼던 것도 작품을 구상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요트는 개인 소득 3만불 시대가 오면 대중화 된다고 해요. 작은 걸 하나 사서 지인들과 경험해 보고 있어요. 무슨 호화유람선 같은 것은 아니고 몇 만원 들고 여럿이 모여서 몇 일 나갔다 오는 정도죠.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거예요.” 그러면서도 요트만화를 준비하고 있느냐는 물음에는 ‘인터뷰 때마다 못 지킬 약속을 하는 것 같다’면서 즉답을 피했다. 준비하고 있지만 작품화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라는 뜻이다. 어느 중년 만화가가 최근 젊은 만화가들에 쓴 소리를 했다. ‘우리들처럼 젊은 만화가들이 노력하고 있는지 의심된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허영만은 그렇게 노력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었다.


최고에 대한 예우, 세상은 그렇게 커지는 것

“오래 전에 야구기자들 모임에 간 적이 있어요. 선동열이 야구선수로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던 때였어요. 억대 연봉 문제로 이야기들이 많았죠. 구단 예산은 정해져 있는데 한 사람이 너무 많이 달라고 하니까 다른 선수들 연봉이 줄어든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자들이 부정적인 기사를 쓰기도 했어요. 저한테 의견을 묻더군요. 그랬죠. ‘선동열을 데리고 있는 구단에서 예산이 적으면 올려야지, 다른 선수 것을 빼서 주는 게 말이 되느냐’고. 그건 ‘선동열의 문제가 아니고 구단의 문제’라고. ‘왜 선수를 욕하냐’고.” 허영만은 늘 ‘8홉론’을 이야기한다. 병을 꽉 채우면 결국 넘치게 되니까 적당히 여유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1등보다는 2등이나 3등으로 사는 편이 삶에 긴장과 여유를 준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최고는 최고의 대접을 받아야 하고 그런 것에 인색하거나 터부시하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최고는 최고의 몸값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그 분야를 이전보다 크게 만들어 가는 사람입니다. 그 것에 대한 기준이 몸값인데 여기에 인색하면 그 분야가 발전하지 못해요. 그래야 후배들도 들어오고 열심히 할 이유가 생기죠.”

허영만은 한국 대중문화의 중심에 서있다. 숱한 작품이 영상화됐던 것처럼 여전히 다수의 작품이 대기 중이다. 최근에만 해도 영화 [식객2]가 촬영을 시작했고 드라마 [식객] 세트장을 이용해 꾸민 전통음식점 ‘운암정’이 작품 속 요리를 주 메뉴로 영업을 시작했다. 허영만을 선장으로 1년 간 전국 해안선을 요트로 일주하는 ‘집단가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고, ‘허영만 와인’으로 명명 된 LG상사의 트윈와인 시리즈도 출시됐다. 허영만은 이 같은 대외 활동을 통해 얻은 수익을 함께 나누는 것에도 인색하지 않다. 사회적 기부 활동에도 적극적이고 우리 만화계의 원로들을 챙기는 일에도 선뜻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와인 판매를 통해 얻는 수익으로 ‘허영만 만화상’을 제정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허영만의 작품을 앞세운 콘텐츠가 출판만화에서 영상 소재로 확장되고 각종 문화상품을 만들어내더니 이제는 허영만 자체가 콘텐츠가 되고, 허영만에 대한 신화가 곧 가치가 되어 움직이고 있다. 갈수록 위대해지는 만화가의 힘과 역할이다. 허영만의 키만큼 한국만화도 커져간다. 그래서 자꾸 만화가 허영만을 본다. 세상이 허영만을 보는 것처럼.


글 박석환 /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콘텐츠비즈니스팀 수석, 만화규장각 필자 

성균관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에서 대중문화를 전공했다. 97년 스포츠 서울 신춘문예에 만화평론으로 등단한 이후 [잘가라 종이만화], [코믹스 만화의 세계], [만화 리뷰 쓰기] 등 다양한 만화 평론서를 발표했다. 홈페이지 www.parkseokhwan.com

사진 LG상사 트윈와인 사업본부 제공, 박석환


발행일 2009.10.02


* 게재 : 네이버 캐스트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1203&path=|462|571|&leafId=850


[인터뷰 후기]


몇 해 전 쓴 원고인데 블로그에 옮겨 놓는 것을 깜박했다.

이 블로그는 현재까지는 (혹시는 꽤 오랫동안0 각종 매체에 발표했던 원고를 모아 놓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는데 허영만 샘 원고가 빠져서... 철지난 원고지만 옮겨 둔다.

당시 허영만 선생님이 <식객> 작업 등으로 무지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래서 인터뷰도 가장 나중에 잡았었는데... 일본 취재를 떠나시는 바람에 전화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과거에 수차례(?) 인터뷰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웹툰을 게재했던 권혁주 작가께서도 매우 난감해했으나... 결과적으로 가장 상상력이 넘치는 인터뷰만화를 그려주셨다^^.

요즘 이런저런 일들로 갑자기 선생님과 서운해졌는데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인사드리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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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com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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