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 죽어가는 이야기를 살려내다, 슈어, 중앙일보, 2006.01.01


생각해보면 문학은 모든 것이었다. 그것은 철학 교과서이기도 했고 역사서이기도 했다. 그래서 전국민이 복용해야할 필수 예방제 같은 것이었다. 그 때문에 저 먼 시절의 문학청년들은 그리도 당당하게 뿔테안경 뒤에서 더벅머리만 긁고 있었던 것이다.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의 말마따나 문학은 감정을 세척하는 유용한 방법이었다. 그 시절의 선수들이 그토록 철학적인 뻐꾸기로 상대를 전신샤워 시킬 수 있었던 것은 문학의 힘 때문이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의 힘 말이다. 그러나 문학청년들이 어른이 되어 빠져나간 80년대에는 허리우드 키드가, 90년대에는 만화세대가 반짝였다. 대중가요가 B보이들을 성장시켰고 2000년대에는 온라인 땅따먹기 게임을 통해 수많은 쌈장들이 쏟아졌다. 

이 과정에서 대중문화에 뻐꾸기가 사라지고 충격적 이미지만 남게 됐다. 영화감독 이명세가 스토리는 뭔가를 보여주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고 했을 정도로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미지가 주는 시각적 충격이 색다른 정서적 작용을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하지만 그 효과는 한시적이다. 만화도 마찬가지다. 소년만화는 끝나지 않는 학원액션대전에, 순정만화는 더더욱 비현실적인 이성관계 만들기에 집중한다. 남자들은 거유물(가슴 큰 소녀가 등장하는)이나 메이드물(하녀 같은 성격의 소녀)이어야 하고 여자들은 야오이물(남성애를 다룬)이어야 한다. 대중은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시각적 충격을 보고 싶어 하고 산업가들은 이를 보여주기 위한 이야기만 고르고 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대중화 된 패러디 개그만화나 이른바 웹툰 역시 초기의 신선한 발상과 형식에서 저만큼 멀어져서 아주 개인적인 일상을 몰래 보여주는 방식으로 굳어지고 있다. 감동의 덧글이 중독의 덧글이 되면서 붕어빵 찍기 장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흐름에 반발이라도 하듯 목 좋은 장사 터에 사연 있는 붕어빵이 등장했다. 

포탈사이트 다음에 연재되어 너무 유명해져버린 강풀의 <순정만화>가 서사와 이미지를 제대로 버무려내서 대중문화에서 제거됐던 이야기를 복원해낸 신호탄이라면, 같은 매체에 연재되어 최근 단행본으로 출간된 강도하의 <위대한 캣츠비>는 이야기체 만화의 새로운 부흥기를 주도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을 상징하는 고양이를 지고지순한 사랑의 주인공으로 설정한 부분에서부터 가장 친한 친구를 종족이 다른 개로 설정한 부분까지. 사랑과 배신의 서사와 연예와 사람관계에 대한 관념론, 마지막 반전으로 달려가는 과정에서 펼쳐 보인 이야기 전개 방식 등이 깔끔하게 패키징 된 작품이다. 이야기와 이미지가 동일한 무게로 두 가지의 서사를 주도해가는 이 작품은 이미지 군림 시대에 죽어가는 이야기의 매력을 동급 최강으로 만들어냈다. 등장인물 간의 연예관계 설정에 대한 통속성이 반전의 충격만큼이나 허전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읽기의 즐거움을 만끽하는데 해가 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 양영순의 <삼반이조>, 청설모와 최훈의 <카우시에> 등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장편 연재극화의 새로운 붐을 이어가고 있다. 신호탄을 쏘아올린 강풀의 장편 연재극화 네 편이 모두 영화, 드라마, 연극 등으로 제작되고 있고 강도하는 차기작의 영화 판권을 사전 판매했다. 인터넷 중심의 장편 연재극화가 대중문화에서 사라진 이야기체의 가치를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문학의 죽음이 서사의 죽음으로 이어져 대중문화 전반에 이야기는 없고 이미지만 넘쳐난다는 투의 걱정은 접어둬도 될 것 같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슈어, 중앙일보, 2006-01-01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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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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