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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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 새로운 성향의 두 잡지 - 아디와 나인, 코코리뉴스레터, 1997.12.26
12월. 야심찬 사전홍보와 새로운 형식을 선언하며 출간된 두권의 만화전문지가 있다. 그 처음은 야설록 등이 주도하여 결성한 야컴의 순정 공포 매거진 《아디》였고, 나중은 서울문화사가 비주류만화(comix)지임을 제호 위에 공표하고 내놓은 《나인》이다. 무협에서 순정으로 야컴은 대본소(만화방)시절에 만화 이상의 자리를 확보하고 있던 무협지를 일반서점용으로 재생산하면서 나름의 인지도를 획득한 후 진취적으로 만화산업에 뛰어들었다. 만화스토리를 작업해오던 야설록이 자신의 출판사 야설록프로를 통해 스토리작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만화제작 시스템을 가동, 성공을(?) 거두자 일련의 무협물 출판사들과 공조체제를 거쳐 야컴이라는 새로운 출판미디어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아디》는 이들의 첫 번째 결과물로 숱한 사업 계획..
2019.01.03 -
박석환, 1997년 한국 만화계 결산, 코코리뉴스레터, 1998
정리 1/ 97년 만화는 무엇이었나? 그 치욕스런 한철을 보내고 다시 새해를 맞게 된 만화는 수호천사처럼 따라붙던 신문-일개 언론인이나 문필가들을 통해 여전히 '만화 같은...'따위로 비하되고 있고, 정부의 '전쟁선포'에 폐허가 됐던 전사(?)들은 알량한 만화 육성책에 감격스런 인사말을 던지느라 여념이 없다. 애니의 거품을 속내로 지닌 대학들이 만화전문과정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더니 이제 고등학교까지 이에 편승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긴 하나 홍대 앞을 꽉 메우고 있는 미술학원 처럼 만화학원이 급증 엘리트 예능주의의 한 분야로 파생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앞선다. 우리만화의 전체 또는 한 틀이었고 만화를 회상하는 모든 이들의 성전이기도 한 '만화방' 역시 '책대여점'이라는 변종의 장사치들에 의해 위기국면에 ..
2019.01.03 -
박석환, SICAF에 가면 읽어버린 만화를 찾을 수 있을까, 코코리뉴스레터, 1997.10.20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SICAF)이 지난 8월 14일 다시 열렸다. 최근의 만화사태와 지독한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성대한 규모로 다시 열린 SICAF는 우리사회의 만화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다. 일부언론과 사회단체의 만화 이지메에도 불구하고 열린 이 행사는 제사판으로 갈 손님과 잔치판으로 갈 손님의 분별 유치에는 실패한 듯 보이지만, 상업행사가 지녀야할 미덕과 SICAF 최초의 주제전이라는 의미 두기에는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인다.이 행사의 고질적인 문제점 중 하나였던 상업부스와 전시부스 간의 거리 두기와 하루 5만명 이상이 예상되는 전시장내의 관람객 분산, 효과적인 동선 창출 등에서 개선의 노력들이 보였다. 우선 눈에 뜨이는 것은 전국 14개 만화/ 애니메이션 관련학과의 소개..
2019.01.03 -
박석환, 검열의 역사가 곧 만화의 역사였다, 경일대신문, 1997.08.25
5.16 직후인 1961년 12월, 원로 만화가와 출판업자들로 구성된 '한국아동만화자율회'가 운영되면서 만화는 표면적으로 '사전심의'라는 족쇄를 차게 된다. 60년대 말기에 거행된 불량만화(?) 단속은 1만9천여 개소에 달했던 '아이들의 공간(만화방)'을 유해업소로 규정한다. 사전심의시의 칼질도 전과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로 인해 '심의'라는 공권력을 매수해 만화판을 사리사욕의 장으로 만들고, 독과점을 형성해낸 출판사도 등장했다. 당연스레 줄어든 창작물은 1977년 6454(심의 신청수)편에 불과했다. 그나마 절반도 되지 않는 3131편만이 정상 출판됐다. 만화가들은 '심의'라는 교과서를 통해 철저히 교육됐다. 80년대 초 이현세, 허영만 등에 의해 만화가 대중적인 파급효과를 인정받게 됐을 때도 국..
2019.01.03 -
박석환, 만화학교(?) 한국에서 벌어진 일진회의 이진 폭력 사태, 한백울림, 서울예술대학, 1997.08.01
1. 대한민국 일진 세력의 이진 탄압 지렁이도 밟으면 굼틀댄다는 옛말이 있지. 모두가 알고있는 이 말을 꺼내놓고 청소년 폭력 사태를 보자고. 폭력이란 거 탄력성을 지니는 거잖아. 나침반은 언제나 북쪽을 가리키지, 호랑이도 풀 맛을 보고 풀도 호랑이의 썩은 육신을 생명수로 환원한다고. 때려. 그럼 맞지. 맞은 애는 어떡해. 우리한테는 화풀이 문화가 있잖아. 화를 푸는 거지 별수 있나.애들 자아통제력은 8살부터 12살 사이에 길러진데. 그때 애들 훈련을 시켰어야지. 지금 와서 어쩌자는 거야. 청소년 폭력의 60%가 학교 내에서 이루어진다는데 선생이 뭐하는거야. 학부모가 무서워서 사랑의 매를 놔버려. 그러니까 선배가 매를 들지. 학원 폭력 근절하겠다고 들입다 재적하고, 구속시켜버리니까 지들끼리 매들고 주먹질하..
2019.01.03 -
박석환, 만화의 시간은 왔는데?, 코코리뉴스레터, 1997.07.21
이시카와 준, 『만화의 시간』 도서출판 글논 그림밭은 만화전문출판을 자처하며 『부자의 그림일기』, 『간판스타』 등의 단편만화선과 『한국만화산업연구』, 『만화연출』 등의 만화이론서적을 출판해왔다. 우리만화가 지니는 열악성에 대한 타성파괴와도 같은 일격이 전례 없는 출판물들을 배출해낸 그들 집단에 의해 가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충격이 가실 즈음 이시카와 쥰이라는 일본만화가가 적어 낸-일본만화 독서일기 격인- 『만화의 시간』을 발간해냈다. 발간당시 일본에서 '일반독자를 위한 만화기법과 신인에서 대가에 이르는 만화가 100명에 관한 저자의 마니아적인 평가와 그 필체가 흥미만점이다.-《朝日新聞》', '전후 일본의 수출문화인 만화에 대한 정당하고 객관적인 평가서-《産經新聞》'라는 평가를 받은 이 책은, 근현대에 ..
2019.01.03 -
박석환, 양은냄비 속의 애니메이션, 코코리뉴스레터, 1997.07.21
괜한 망상에 젖어 흐르는 시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 쉽게 새벽이 돼 있었다. 한웅큼 꺼져 있던 배가 투정을 부리는 통에 웅크리고 있던 라면 한 봉을 찾아내 허기를 채우려한다. 싱크대 문을 열고 식기를 찾았다. 갑작스레 아침으로 흘러버릴 시간이 안쓰러워졌다. 내 값비싼 망상의 시간을 빼앗고 있는 듯했다. 가장 쉽게 열을 낼 수 있는 양철냄비를 찾았다. 그것만이 공기를 단축하고 기쁨을 줄 수 있을 법했다. 예상대로 다른 때보다 1분 가량 빨리 덜컹대는 냄비뚜껑을 봤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라면과 수프를 넣었고, 잘 익은 면발을 끌어당겨 봤다. 제대로 된 맛이었다. 이제 식탁으로 냄비를 옮기고 가장 빠르게 먹기만하면 된다. 냄비의 손잡이를 잡고 식탁 쪽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 양..
2019.01.02 -
박석환, 코어와 고어 장르의 결합을 통한 이현세의 독자층 확장 노력, 히스테리, 1997.07.21
-이현세, 『천국의 신화』- 필자가 이현세를 처음 마주한 것은 `보물섬`에 연재되었던 『검객 스카라무슈』를 통해서였다. 이후로 이현세라는 이름은 필자의 만화인 명부 중 최상 위에 위치했다. 소위 명랑체 만화가 주는 일편향적인(?) 유희 안에서 빠져나온 뒤 줄곧 만화 읽기의 즐거운 괴로움을 느끼게 했던 작가가 이현세였다. 이십대 중반인 필자의 반생 위에 군림하고 있던 작가. 그의 필치와 화려한 행보에 존엄의 시선을 드리우기도 했었고, 그것이 과하게 표출될 땐 시기와 치기 어린 비난을 불사하기도 했었다. 한 권도 빠뜨리지 않은 이현세 작품목록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전작을 섭렵하게 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핸가 도저히 그의 행보를 따르지 못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읽을 수 있는 텍스트보다 많은 작품을 내..
2019.01.02 -
박석환, 네가 내게 달려오지 않더라도, 히스테리, 1997.07
네가 내게 달려오지 않더라도 그대 이제 어디로 달려가는가 - 《히스테리》 2호에 관하여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한국만화문화연구원(원장 손상익)의 기관지 《코코리 뉴스레터》 3호에 《히스테리》 창간호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졸고 ‘히스테리 일으키는 히스테리’에 대한 일반의 평가는 필자가 서술했던 사항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의중과는 상이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필자는 근간에 가졌던 히스테리 편집진과의 대화 중에도 그와 비슷한 오도의 언사를 직면했고, 만화에 대한 매도와 같은, 만화평론에 대한 매도에 흐려지는 심기를 느꼈다. 그리고 본 잡지 2호에서 만화가 박연이 언급한데로 극심할 정도로 ‘...폐쇄적이고 이기적이며 냉정...’한 그들의 뽐새를 다시 한번 주시해야 했고, 그것이 ‘창조성과 깨어..
2019.01.02 -
박석환, '히스테리'的 히스테리, 코코리뉴스레터, 1997.03.25
80 년대. 텔레비전을 통해 연일 방영(放映)되는 숱한 대립의 모습들이 브라운관의 양끝에 걸쳐져 있었으나, 눈길 한번 돌리지 못하고 중앙의 아스팔트만을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70년생 필자의 모습이었고 가날픈 인식(認識)이었다. 그리고 공중 파의 이념대립(理念對立)이 하나로 달려오는 화상을 보이고 있을 때 그 앞에서 마주 뛰어야 했을 필자는 천장을 향해 드러누워 버렸었다.이미 내 안에 자리한 자아(自我)의 손상을 막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미 오른 과 왼으로 나뉘어 있을 그것의 이동이 나를 넘어지게 하리란 걸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2월 23일 오후7시, '젊은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도 어설픈 한 세대(世代)를 만났다. 40대가 젊은 기수(旗手)가 되던 시대를 모두 잊어버리기라..
2019.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