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서평-미라클!용사님(정하 글/그림), 도서관이야기,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2017.02.01

꿈 없는 용사의 생고생 판타지


지금으로부터 5천 여 년 전, 마왕의 침략으로 대륙은 위기에 빠진다. 이 때 빛나는 성검을 든 용사가 마왕을 봉인한다. 하지만 수 십 년이 흐른 후 봉인은 해제되고 대륙은 다시 위기에 빠진다. 각 나라의 지도자들은 새로운 용사를 찾아 마왕 퇴치를 의뢰한다. 아버지 농장에서 닭을 키우던 하기스 플란넬이 용사로 선택 받는다.




소명보다 다른 일이 급했던 주인공


주인공 하기스는 ‘조용하고 평범’한 ‘눈에 띄지 않는 삶’을 동경하는 청년이다. 학교를 졸업할 때도 친구들은 원대한 꿈과 희망 직업을 말했지만 하기스는 그저 아버지 곁에서 농장 일을 돕겠다고 했다. 그런데 우연히 성검을 뽑게 되고 대륙을 위기에서 구할 운명을 타고난 용사로 지명된다. 요정족의 마법사 크린필, 용족 출신 궁수 페브리즈 벨로아는 선택받은 용사를 헌신적으로 도와 마왕의 성으로 안내한다. 이제 운명을 타고난, 선택받은 용사인 하기스가 성검을 소환해 마왕을 봉인하면 된다. 두 명의 조력자 그리고 마왕이 하기스를 바라보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주목받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던 하기스. 지금 이 순간 하기스는 급해졌다.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 바라보거나 긴장되는 순간이면 장 트러블이 생겼다. 금방이라도 대변이 나올 것 같은 상황이 온 것이다. 그런 급박한 상황에 여자 요정 크린필은 기대감에 들 떠 하기스가 마왕을 봉인하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아름다운 여자의 외형을 한 마왕도 오랜만에 보는 용사와 한판 멋지게 겨뤄 볼 참이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순간, 용사는 힘을 줄 수가 없다. 성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마왕을 베어야 하는데 그러다가는 큰 실수를 할 것만 같았다. 


원하지 않던 소명을 받고 책임까지 져야 하는 용사


기대에 찬 시선, 요동치는 장 그리고 마왕의 도발이 이어졌다. 용사는 모든 것을 내려놓듯 검을 휘두른다. 눈물의 일격! 장이 편해졌고 마왕이 사라졌다. 큰 실수를 한 것이다. 다행인 것은 워낙 큰 파괴음과 빛으로 인해 조력자들이 눈치를 못 챘다는 것이다. 물론 문제가 있다. 마왕이 하기스가 싼 대변 안에 봉인 된 것이다. 대륙을 위협하던 마왕을 봉인했지만 봉인의 증표가 그럴듯한 성물이 아니라 대변이었다. 용사를 파견했던 지역 신전의 사제들은 당황한다. 마왕을 봉인해 실적도 쌓고 높은 곳에 있는 분들한테 인정도 받을 요량이었는데 차마 대변을 상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제들은 하기스 일행에게 직접 대변 모양의 증표를 들고 ‘시작의 나라’에 있는 대교구로 가져가라고 한다. 높은 분들에게 보여주고 대변 안에 마왕이 봉인됐음을 증명하라는 것이다. 시작의 나라는 전 대륙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베스페라 교단이 세운 국가이다. 마왕을 봉인한 후 주어진 소명을 끝냈다고 생각한 하기스 일행은 ‘소명을 완수했다는 것을 확인받기 위한 모험’을 시작해야 하는 처지이다. 그런데 일행이 도심에 가까워질수록 대변 속에 갇혀있던 마왕의 힘이 강해졌다. 아직은 하기스의 눈에만 보이는 작은 정령의 모습이지만 살의나 적의 같은 사람들의 악한 기운이 나타나면 마왕이 힘을 얻는 상황이다. 그처럼 사람의 악한 마음이 있는 곳에서 마물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하기스 일행이 가는 마을에는 어김없이 마물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위협했다. 또 하기스의 잘 못된 판단으로 많은 사람들이 마물에게 희생당하기도 한다. 하기스는 용사로서의 소명을 거부하거나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반면, 불현 듯 나타난 가짜 용사 페이는 하기스에게 없는 용맹함과 빠른 판단으로 사람들을 구한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 책임까지 져야하고 다른 이와 비교까지 당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보상 없는 시련 속에 ‘굴림’ 당하는 청춘의 판타지


<미라클! 용사님>은 어느 날 갑자기 소명을 받고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하는 용사 하기스의 갈등과 거듭되는 시련을 그린 작품이다. 통상의 판타지 만화처럼 중세 양식의 성과 복장, 기사와 마법사, 요정과 마물이 등장하고 선택받은 영웅과 일행을 중심으로 한 모험 서사가 펼쳐진다. 그런데 주인공에게 주어진 판타지 영웅의 여정은 조금 다르게도 읽힌다. 주인공의 이름 ‘하기스’는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기저귀 상표를 떠올리게 한다. 만화 팬들은 이를 들어 ‘기저귀도 못 땐 용사’가 ‘기적의 용사’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미라클! 용사’라는 제목도 기저귀로부터 시작했다는 해석이다. 그처럼 이 작품의 주요 설정은 ‘똥’으로부터 시작된다. 용사에게 주어진 소명은 마왕과 마물을 치우는 것이고 마왕은 직설적으로 똥 모양을 하고 있다. 조력자의 이름 역시 크린, 페브리즈 처럼 생활 쓰레기를 치우는 것과 관련이 있다. 자연스럽게 ‘네가 싼 똥은 네가 치우라’는 속된 진리를 떠올리게 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하기스가 자신이 싼 똥에 마왕을 가둔 것으로 시작한다. 자신이 치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하기스는 ‘남이 싼 똥을 치우느라 고생’이다. 사제들이 시작한 일, 사람들이 악한 마음을 가져 커진 사건 등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인턴이나 비정규직으로 내몰려 갑자기 주어진 일을 마무리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하는 우리 시대의 일용직 청춘 용사를 보는 것 같다. 그처럼 이 청춘 용사의 소명은 끝날 줄 모르고 보상 없는 시련이 계속된다. 현실 사회에서 굴려지고 있는 청춘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이다. 작가 정하는 2014년 대학만화최강전에서 이 작품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미생>의 윤태호 작가가 정하의 멘토로 참여했다. 이후 네이버웹툰에서 현재까지 정식 연재되고 있다. 단행본은 총 5권으로 기획되어 현재 1권이 발행된 상황이다. 연재 초기부터 탁월한 작화와 캐릭터 설정으로 만화팬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주요 인물별로 팬덤이 형성되면서 아마추어 만화가들에 의해 다양한 유형의 2차 저작물이 만들어지고 있고 여러 코스플레이어들에 의해 현실 공간에서 재현되고 있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1997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만화콘텐츠기획자, 만화정책기획자, 만화전시기획자 등으로 일하다가 2013년부터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콘텐츠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코믹스 만화의 세계>,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홈페이지는 www.parkseokhwan.co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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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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