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을 참아가며 시키는 일만 하던 북한 노동자 김용철. 머리 쓸 것 없이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됐던 용철이 서울에 왔다. 용철의 눈에 서울은 이상한 도시였다. 길거리에서 아무 일 없이 서있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고 작은 실수를 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의욕적으로 첫 직장에 출근했지만 10일 째 일시키는 사람도 없다. 맘 편하게 회사에 적응하면서 천천히 일하라는데 ‘천천히 할 일’도 시키지 않으니 맘이 편치 않다. 그러던 중 사장이 일을 시켰다. 거래처에 나가서 설비 좀 수리해주고 오라는 것이다.
탈북남이 만난 자본주의 여인
용철은 사장이 처음으로 시킨 일에 고무됐다. 자신을 믿어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목숨 바쳐 완수하갔습니다’라고 외친다. 당황한 사장은 편하게 하라고 하지만 용철은 ‘피타게 노력해서 사장님의 위상을 만방에 떨치 갔습니다.’라고 외친 후 일터로 간다. 용철은 설비 수리에 집중한다. 이를 지켜보던 거래처 여직원 이혜미는 용철이 탈북자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본다. 용철의 북한사투리가 신기했던 것이다. 한국 남자들과 달리 순박한 태도가 재미있기도 했다. 혜미는 친구들에게 북한사람과 만났다는 것을 자랑할 생각으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며 전화번호를 물었다. 용철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북한에서 ‘인연(因緣)’은 ‘연인(戀人)’ 간에 쓰는 단어이다. 그 외에는 모두 ‘동지’라고 호칭한다. 여자가 먼저 남자에게 관심을 표하는 법도 없다. 용철은 혜미가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고 있고 ‘청혼’을 한 것이라 생각한다. 혜미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용철은 북에서 배운 ‘주체적 외교 전략’ ‘주체인내성 작전’ 등을 떠올리며 혜미와의 결혼을 추진한다. 이를 알게 된 혜미는 거부 의사를 표한다. 하지만 용철은 ‘직설적이지 않고 예쁜 말만 빙빙 돌려 하는 자본주의 여성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이런 경우 북한 여성이라면 강한 명령식 어투로 ‘정신 상태부터 썩었시오. 딴데나 가보라요.’라고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새터민을 위한 한국 체험학습관 국정원
<로동심문>(현 1권 발행)은 탈북남 용철이 한국사회에 적응해 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북한에서 발행하는 일간신문 ‘로동신문’에서 제목을 따왔다. 새로운 소식이나 견문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신문’을 자세히 따져서 묻는다는 의미의 ‘심문’으로 바꾼 것이다. 제목처럼 작가는 북한의 실상을 소식처럼 전하기도 하고 북한과 한국의 차이를 자세하게 따져서 설명하기도 한다. 작품 속 주인공 용철은 사회주의 국가 체계 아래서 살았다. 국가가 생산과 분배에 관여하고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용철이 이제부터 살아갈 곳은 자본주의 국가 체계를 지닌 한국이다. 국민이 생산 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할 수 있고 시장에 의해 생산과 분배가 이뤄진다. 경쟁에 의해 개인이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달라진 체계는 용철의 머리와 몸을 혼란스럽게 하고 위기에 처하게 한다. ‘몸만 탈북하고 머리통은 아직 북에 있다’는 용철의 푸념처럼 작품은 사회주의 사상이 몸에 밴 용철이 자본주의 국가에서 살면서 겪는 웃기지만 슬픈 상황들을 나열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가 한국에서 직장을 구한 후 시작된 용철의 연애담이었다면 두 번째 에피소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탈북을 하게 된 과정과 한국에 들어 온 후 처음으로 갔던 국정원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국정원이라고 하면 한국 사람들에게도 무시무시한 첩보기관이나 감찰기관이다. 그런데 탈북자들에게 국정원은 북한에 있는 창광원, 은덕원, 부평원 같은 곳으로 인식된다. 북한에서 ‘~원’자가 붙은 시설은 한국의 찜질방 같은 종합편의시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북한이탈주민(탈북자를 뜻하는 법률적 용어), 즉 새터민(탈북자라는 용어를 대신하여 2005년부터 통일부에 의해 사용된 순 우리말 명칭)들은 이제부터 살아 갈 곳에 대한 ‘차이’를 체험하고 자본주의식 생활과 사고를 학습한다.
탈북작가의 자기고백 서사
작가 최성국은 2011년 탈북한 ‘북한이탈주민’이다. 평양미술대학 아동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북에서는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조선426아동영화촬영소’에서 ‘원도가(애니메이터)’로 일했다. 주로 해외 합작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외화벌이’를 하는 회사다. 매달 고기와 설탕을 배급받고 연말이면 텔레비전이나 냉장고를 받기도 해 다른 북한사람들에 비해 나았지만 같이 일하던 외국인 스태프의 두툼한 지갑이 부러웠다고 한다. 탈북 초기에는 만화를 그릴 생각이 없었다. 웃음과 재미의 코드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흐르고 한국사회에 적응하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한국문화를 자주 접하게 되면서 한국 사람들이 TV프로그램이나 웹툰을 보고 웃을 때 자신도 함께 웃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때부터 작가는 북에서 쌓은 그림 실력과 한국문화에서 얻은 경험을 살려 웹툰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들이 궁금해 하지만 쉽게 볼 수 없거나 봐도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웠던 ‘북한 사람들의 삶과 사고방식’에 대해 쓰고 그렸다. 마치 한국 웹툰 장르 중 하나인 생활툰처럼 작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연재하고 이용자들의 ‘덧글’에 적극적으로 ‘답글’을 달면서 탈북 작가의 자기고백 서사를 담은 웹툰을 완성해갔다. 작가가 그린 웹툰은 게재하자마자 화제가 됐다. 보수와 진보 언론은 물론이고 해외 언론에도 집중 소개됐다. 이 한 편의 만화가 남북한의 ‘문화적 차이’를 좁히고 결국은 장벽을 허물게 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1997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만화콘텐츠기획자, 만화정책기획자, 만화전시기획자 등으로 일하다가 2013년부터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콘텐츠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코믹스 만화의 세계>,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홈페이지는 www.parkseokhwan.co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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