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 의지하는 세상
어플리케이션으로 증명해야 하는 사랑
편의점 여점원 조조. 동네에서 제일 잘 생겼다고 소문난 몬순이와 수다를 떨고 있다. 잘생겼다고 하지만 여성이고 괜찮은 남자만 보면 금방 사랑에 빠지는 일명 ‘금사빠’다. 편의점에 남자 손님이 들어오면 금사빠의 눈빛이 달라지면서 남자 손님의 ‘좋알람’이 울린다. 좋알람(조알람이라 읽는다)은 스마트폰용 어플리케이션으로 반경 10m 이내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알려주는 기능이 있다. 남자 손님은 당연히 ‘남자처럼 생긴’ 몬순이 아니라 ‘여점원’ 조조가 자신을 좋아해서 알람이 울린 것으로 착각한다.
모든 것을 드러내놓고 확인시켜줘야 하는 세상
작품 속에서만 존재하는 가상의 어플리케이션(이하 앱) ‘좋알람’이 지도나 달력 앱 처럼 일상화 된 시대. 수많은 착각과 오해가 있지만 사랑하는 감정을 감추거나 속일 수 없게 된 세상이다. 사람들은 좋알람이 울리면 사랑을 시작하고 좋알람이 울리지 않으면 헤어졌다. 사랑을 시작하는 방식, 유지하고 끝내는 방식이 달라진 시대다. 이 앱 때문에 누군가는 쉽게 사랑하고 끝냈지만 어떤 사람은 한 번도 사랑하지 못했다.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편의점 여점원 조조의 알람 역시 멈춰 선지 오래다. 물론 그에게도 아름다운 연애시절이 있었다. 조조는 빚더미를 유산으로 남기고 떠난 부모님으로 인해 편의점을 하는 이모 집에 얹혀살고 있다. 자신을 좋아하던 일식이 있었지만 선오를 보고 가슴 떨리는 사랑을 느낀다. 문제는 이모 딸 굴미가 선오를 좋아하고 선오의 베스트 프랜드인 혜영(남자다)이 조조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성에 대한 감정이 하루에도 몇 번씩 달라지는 시기, 자신의 감정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고 여러 관계 때문에 쉬이 말하지 못해서 오해와 긴장이 깊어가는 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시기에 한 천재 개발자에 의해 좋알람이 출시됐다. 누구든 10m 안에 있으면 좋아하는 감정을 감출 수 없게 된 조조와 친구들. 조조는 일식에게 사랑을 증명해야 했고 선오에 대한 마음은 감춰야 했다. 반대로 선오의 친구 혜영은 조조에 대한 마음을 감춰야 한다. 그리고 굴미는 이들 사이를 통제하고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려 한다.
속마음을 감추지 못해 생기는 두려움
<좋아하면 울리는>(현 3권 발행)은 이성에 대한 감정을 자기 주도적으로 통제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긴장을 그린 작품이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진심이 공개되고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을 도구가 생기면서 별스럽지 않게 지켜지던 관계에 심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좋알람이 없었다면 조조는 학교에서 주먹 좀 쓰는 일식의 관심과 보호아래서 다소 편한 고교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감히 넘볼 수 없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선오와 연결되지도 않았을 거고 숙소와 생활비를 대주고 있는 이모와 이모 딸 굴미와의 관계도 더 나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좋알람이 출시된 후 조조의 삶은 크게 변했다. 그 전에 조조는 뭐든 들키지 않기 위해 애쓰며 살았다. 이모가 급식비를 주지 않아 점심을 거른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썼다. 편의점에서 일하느라 공부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애썼고 좋아하지 않지만 싫어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뭐든 감추고 있었고 그래야만 부모 없이 위태롭게 살고 있는 자신의 삶을 지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애써 감추던 것들이 좋알람을 통해 드러나고 좋알람으로 인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조조는 큰 위협 앞에 놓이게 된다. 물론, 조조 앞에 닥친 위협은 조조만의 것이 아니었다. 좋알람은 좋아하는 감정을 알려주는 간편한 도구였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좋알람은 흉기 이상의 물건이 됐고 상상 이상의 사건·사고들이 발생한다.
상투적 연애담의 스마트한 변신
기실 이 작품은 아주 뻔하고 진부한 순정 로맨스물이다. 여주인공은 가난하고 불행하지만 예쁘다. 이모와 이모 딸은 여주인공을 핍박한다. 남주인공은 보호본능을 자극할 만한 부잣집 도련님이고 막 자란 듯 보이지만 건실한 가정부 아들도 등장한다. 두 남자 모두 불행한 여주인공을 보호하기 위해 애쓴다. 너무나 전형적인 인물 설정과 진부한 갈등 구조가 뼈대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캔디나 신데렐라 이야기 같은 상투적 구조에 ‘좋알람’이라는 장치가 들어서면서 이야기는 전혀 다른 긴장으로 팽배해졌다. 등장인물들은 마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듯 좋알람이 만들어낸 퀘스트와 이벤트를 통과하고 브레인 게임이나 서바이벌 게임의 최종 승자가 되기 위한 연애담을 펼친다. 이 같은 유의 장치와 긴장은 기존의 만화서사에서 볼 수 없었던 것으로 이 작품을 한 세대 후의 것으로 승화시켰다. 작가 천계영은 1996년 <언플러그드보이>로 데뷔해 올 해 만화계 입문 20주년을 맞이한 중견 만화가이다. 데뷔작에서 보여준 색다른 감수성으로 인해 당대를 대표하는 ‘X세대 작가’로 손꼽히기도 했다. 20년이 흘렀지만 작가가 보여주는 ‘색다른’ 감수성은 여전하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1997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만화콘텐츠기획자, 만화정책기획자, 만화전시기획자 등으로 일하다가 2013년부터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콘텐츠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코믹스 만화의 세계>,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홈페이지는 www.parkseokhwan.co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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