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떠나 불편하고 시골을 찾아 행복하게
꿈꾸던 일을 하게 됐다. 일을 시작한지 14년 째. 초년생시절 좋은 선생님을 만나 빨리 일 할 수 있었다. 쉽지 않은 대회에 나가 당당하게 입상도 했고 남들 다 가고 싶어 하는 대학도 다녔다. 열심히 일해서 많은 실적을 냈고 나름 전문성도 있어서 같은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속된 말로 ‘빵빵한 스펙’에 ‘괜찮은 업무실적’과 ‘성실성’까지 갖췄다. 나이가 들어 결혼도 했으니 가정을 일궈가기 위해 더욱 노력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14년을 일했는데 형편은 갈수록 나빠진다. 이 일을 계속 해야 할지도 고민이다.
꿈꾸던 일과 현실
만화 <불편하고 행복하게>의 주인공 홍작가의 이야기이다. 얼핏 사회로 나가기 위해 직업에 대한 꿈을 갖고 일을 찾았지만 그리 성공하지 못한 보통 어른들의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 만화의 주인공 홍작가가 바로 그런 보통 어른이다. 홍작가는 만화가이다. 주로 어린이들이 즐기는 모험만화나 학습만화를 그린다. 많은 만화가들이 꿈꾸는 잡지 연재도 했었다. 지금도 제법 인기가 있어서 두 편의 만화 단행본을 시리즈로 작업하고 있다. 한 권 그릴 때마다 받는 원고료와 인세는 6백만 원에서 8백만 원 선. 매달 한 권씩 작업한다면 적지 않은 수익이다. 두 달에 한 권을 한다고 해도 괜찮은 수익이다. 그런데 창작이라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세 달을 넘기고 네 달을 넘겨도, 때로는 1년을 꼬박해도 한 권이 채워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다보니 힘겹다. 혼자였을 때는 제 한 몸 누일 곳이 있으면 충분했다. 학교에서도 잘 수 있었고 작업실에서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혼자가 아니다. 아내와 함께 할 공간이 필요했다. 가정을 유지할 식량비, 난방비, 각종 공과금 등 최소한의 돈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매일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다고 수입이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매일 매일 적당량을 생산하지 않으면 한 푼도 받을 수 없는 곳이 창작의 세계였고 프리랜서의 삶이었다. 그러다보니 최소한의 행복도 누리지 못하고 산다.
불편하지만 꿈꾸고 일하는 삶의 행복
만화 <불편하고 행복하게>는 서울의 높은 집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시골에서 생활하게 된 홍작가 부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택시도 올라가지 못하는 한적한 산골에 지어진 집 한 채. 이웃이라고는 찾을 수 없고 산새 소리만 들리는 칠 흙 같은 밤. 난방비를 아끼려고 거실 연탄난로 옆에서 자는 잠. 공과금을 못내 전화며 핸드폰도 쓰지 못하는 날. 감기와 우울증, 신경쇠약 증세가 한 세트로 찾아 드는 곳. 그 불편한 곳에서도 행복은 있다며 또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지지리 궁상 맡은 일상’이 반복 된다.
만화가라는 조금은 특별해 보이는 직업인의 세계가 그려지기도 하지만 시골 생활의 문제점과 이런저런 해결법이 제시되는 전원생활만화기도 한다. 그리고 서울에서 쫓기듯 시골로 밀려난 젊은 부부가 어떻게 이 불편한 상황을 행복한 시절로 변화 시켜 가는 지를 보여 주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변화의 중심에는 아내가 있다. 홍작가가 약속한 분량의 만화를 그려내지 못하고 출판사 담당 탓만 하고 있을 때도, 난방비는 물론이고 쌀 살 돈도 없는데 자동차 살 궁리를 할 때도 아내는 남편과 함께 했다. 위로가 필요할 때는 안아줬고 자극이 필요할 때는 잔소리도 했다. 무엇보다 홍작가가 자신이 가진 ‘꿈’에서 벗어나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일’로 일어 설 수 있도록 돕는다.
자신의 꿈과 삶을 지킨 이가 곧 주인공
<불편하고 행복하게>를 그린 작가 홍연식(1971년 생)은 1992년 데뷔한 중고참 만화가이다. 만화잡지에 <키요라>라는 작품을 발표하며 주목 받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여러 분야의 아동용 학습만화도 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시골 생활을 시작했다. 실존하는 작가가 자신이 직접 경험한 ‘많이 불편했지만 그래도 행복했던’ 시골 생활을 정리하면서 그린 고백서사인 셈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서사에서 아내의 역할이다. 어떻게 보면 작품 속 아내나, 실존하는 홍작가의 아내는 남편의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전통적인 여성상’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니다. 아내는 동화일러스트 작가를 꿈꾼다. 아직 데뷔하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남편의 일만큼이나 자신의 꿈과 꿈을 통해 얻어지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남편의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도 ‘꿈꾸고 일하는 삶’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꼭 남편이어서가 아니라 ‘일하며 사는 삶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 만큼 그를 응원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조금 불편하지만 그 삶 안에서 행복을 찾은 것이다. 그래서 이 만화는 홍작가나 홍작가 부부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일하는 삶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꿈을 놓치지 않은 홍작가 아내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1997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만화콘텐츠기획자, 만화정책기획자, 만화전시기획자 등으로 일하다가 2013년부터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콘텐츠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코믹스 만화의 세계>,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홈페이지는 www.parkseokhwan.com 이다.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