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서평-인천상륙작전(윤태호 글/그림)도서관이야기,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2014.11.01

객관적 기록으로 보는 한국전쟁

주관적 해석으로 읽는 시대의 아픔 


철구네는 배고프다. 아는 건 많지만 일자리 없는 아빠, 한시도 쉬지 않고 남의 집 일을 하지만 얻는 것 없는 엄마. 그래서 철구는 배고프다. 삼촌 덕에 겨우 허기를 면하지만 삼촌은 남한테 손가락질 받는 일만 한다. 한 때는 일본에 나라를 잃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해방 후에도 철구네는 배고팠다. 미국의 원조가 와도 배고팠고 남북이 갈라져 싸우고 있을 때도 배고팠다.

 


일제의 강제 공출부터 흥남부두 철수까지


철구 아빠 상근은 가족의 주린 배를 달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야 했다. 하지만 동네에서 글 좀 배우고 세상을 보는 눈이 있었던 상근은 옳고 그름을 따졌고 떳떳하지 못한 일을 피했다. 반면 동생 상배는 달랐다. 일제 강점기 때는 순사 앞잡이 노릇을 했다. 일제가 패망하자 자신이 도왔던 일본인을 스스로 처단하며 반일을 외쳤다. 해방 후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이편과 저편을 왔다 갔다 했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상근은 그런 상배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같은 민족을 핍박하고 살인까지 한 상배를 저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철구네의 굶주린 배를 채워줬던 이는 언제나 상배였다. 상근과 철구 엄마는 늘 상배의 도움으로 일자리를 얻었고 상배가 주는 돈으로 생계를 이었다. 그렇다고 상근이 가족의 생계를 모른척하고 게으르게 산 것도 아니다. 일이 주어지면 손이 까지고 온 몸이 쑤시도록 열심히 했지만 그것으로는 하루 세끼 밥 먹기도 힘들었다.


기록된 사실과 사실적 이야기의 균형


만화 <인천상륙작전>은 1940년부터 1950년까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힘겹고 슬펐던 10년간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 <국제시장>과 여러 부분에서 연결된다. <국제시장>이 흥남부두 철수 작전 이후의 ‘가족’을 이야기했다면 만화 <인천상륙작전>은 흥남부두까지 피난 오게 된 ‘가족’의 이전 이야기를 한다.

영화가 전쟁이 불러온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산업화를 일궈낸 아버지 세대의 희생’에 집중했다면 <인천상륙작전>은 그 ‘참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면서 전쟁이 어떻게 가족을 붕괴시켰는지를 보여준다. 영화가 역사적 중요 사건 속에서 제 역할을 해 온 주인공을 다뤘다면 만화는 역사적 중요 사건의 주변부에서 고통 받은 주인공을 그렸다. 닮은 듯 다른 두 작품이 가장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작품의 구성 방식이다. 영화가 역사적 사건과 가상의 이야기를 하나의 에피소드로 묶어서 보여줬다면 만화는 철구네 이야기와 역사적 사건을 분명하게 분리시켜서 보여준다.


교양주의 만화서사의 색다른 시도


작가 윤태호(1969년 생)는 1993년 데뷔한 중견 만화가로 현재 한국 만화계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인턴사원 장그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직장 소재 만화 <미생>이 200만부 이상 판매되면서 만화가 지닌 ‘책으로서의 가치’를 소생시킨 바 있다. 후속작인 <인천상륙작전> 역시 인터넷 콘텐츠로 단순 소비되기 보다는 책으로 보존되고 재독 될 수 있는 내용과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만화의 경우 이야기의 사실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실제 발생했던 사건의 기록 영상물이나 사진을 선화(線畵)로 묘사해 제시할 때가 있다. 통상 만화에서 한 두 컷 정도를 이런 기법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인천상륙작전>은 기록사진을 선화로 묘사한 것만으로 한 회 분량의 사건을 서술한다. 그 다음 철구네 이야기를 한 회분, 다시 기록사진을 한 회분 보여주는 방식이다. 마치 다큐멘터리 영상과 드라마 영상을 10분씩 교차해서 보여주는 것 같다. 이 같은 서술과 전개는 자칫 지루해 보일 수도 있고 역사적 사건을 극적인 이야기 속에 녹여내지 못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같은 방식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사건에 대해 작가적 주장은 최소화하고 독자의 주관적 이해와 판단을 요구해 주도적 독서를 가능하게 만든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1997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만화콘텐츠기획자, 만화정책기획자, 만화전시기획자 등으로 일하다가 2013년부터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콘텐츠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코믹스 만화의 세계>,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홈페이지는 www.parkseokhwan.co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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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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