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를 시각화한 ‘후각 판타지’
신개념 소녀 히어로물의 탄생
중학생 때 발생한 화재사고로 부모를 잃은 소녀가 있다. 그 때의 충격으로 시신경과 후신경에 변형이 발생했다. 후각 기능이 사라지면서 냄새를 못 맡게 됐다. 그 대신 시각 능력에 변화가 생겨서 냄새를 눈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됐다. 보통 사람은 볼 수 없는 냄새를 각기 다른 색깔과 모양(표식)으로 구분해 낼 수 있게 된 소녀. 고교생이 된 소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다른’ 능력에 대해 공포를 느끼기도 하지만 이를 조금씩 ‘특별’하게 활용해 가면서 나름의 정체성을 찾아 간다.
믿을 수 없는 아이들의 능력?
평범한 여고생의 평범한 휴일. 17살 윤새아는 극장에서 ‘남소(남자 친구 소개팅의 준말)’를 즐기고 있다. 설레어야 할 시간이지만 옆자리의 남학생도 대형 스크린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냄새 때문이다. 평범해 보이는 이 여고생에게는 몇 년 전부터 이상한 능력이 생겼다. 냄새를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침부터 삼겹살을 먹고 극장에 온 아주머니, 흡연실에서 많은 사람과 함께 꽤 오랫동안 담배를 피우고 온 아저씨, 화장실에서 금방 소변과 대변을 보고 온 사람, 쉬지 않고 오징어를 먹는 사람 등 등. 전후좌우로 꽉 찬 사람들에게서 나는 온갖 냄새가 소녀의 눈에는 특정한 색깔과 모양을 지닌 입자로 보인다. 냄새가 심할수록 눈앞에 떠다니는 입자의 양이 많아져서 앞을 분간하지 못할 지경이 된다.
가슴 설레는 남학생이 옆자리에 앉아 있어도 감성적인 영화가 스크린을 가득 매워도 눈앞에 냄새만 둥둥 떠다니니 한순간도 집중할 수 없다. 그런데 일순간 다른 냄새가 보이기 시작했다. 냄새는 일순간에 극장을 가득 매웠다. 황이 연소할 때 발생하는 아황산가스 냄새였다. 극장에 불이 난 것이다. 아수라장이 된 극장 안에서 소녀는 냄새 입자가 이동하는 방향을 따라 대피하다가 한 사람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17명이 사망하고 200여 명이 중태에 빠진다. 방화로 추정되지만 목격자가 없는 상황. 소녀는 자신을 도왔던 사람에게서 난 휘발유 냄새와 자신의 옷에 남아있는 냄새들을 역 추적하는 방식으로 범인을 추정해낸다. 그런데 소녀의 능력과 증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어른들은 평범한 소녀의 능력을 ‘헛소리’로 치부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같은 상황이었다. 냄새를 보는 소녀의 능력과 증언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돌연변이로 숨어 살거나, 능력자로 성장하거나
기억하기 싫은 부모님의 사고, 그 때와 동일하게 자신이 뭔가를 알고 있는 상황, 하지만 소녀를 믿어주지 않는 어른들. ‘냄새를 보는 소녀’는 3중의 고통을 느껴야 했다. 남 다른 능력이 있었지만 부모를 구하지 못했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상한 아이’ 취급을 받았었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을 감추고 있었는데 또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알고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소녀’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혼란과 불안, 자신을 불신하는 어른들에 대한 분노를 느낀다. 물론, 어떤 어른은 소녀를 믿지 않았지만 어떤 어른은 소녀의 능력을 일깨워주고 그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왔다.
화학공학과 출신으로 제약회사에 다니고 있는 ‘옆집 오빠 노원’은 냄새를 못 맡는 새아가 눈으로 냄새를 구분해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각종 냄새의 명칭을 알게 한다. 극장 방화사고 현장에서 오징어를 씹고 있던 ‘신참 경찰 김평안’은 새아의 능력을 확인하고 새아가 범인 체포를 할 수 있도록 손과 발 역할을 한다. 이 어른들은 소녀의 능력을 쓸모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고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소녀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함으로서 스스로 존재감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시청각 미디어 세상에 등장한 ‘후각 판타지’
이제 ‘냄새를 볼 수 있는 소녀’는 ‘옆집 오빠’의 걱정과 조력을 기반으로 ‘신참 경찰’과 함께 다양한 사건 사고를 해결해 간다. ‘냄새’를 중심으로 한 독특한 형식의 수사물이자 소녀 히어로물 또는 삼각관계 로맨스물이 등장한 것이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이 ‘후각 정보인 냄새를 시각 정보로 전환’한다는 설정이다. 현존하는 미디어 중 중 후각을 전달할 수 있는 매체는 없다. 미디어 기술과 환경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하지만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각정보와 청각정보에 치중되어 있다. 그래서 미디어의 관점에서 보자면 ‘냄새는 있으나 없는 것’이고 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만 표현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이 같은 미디어의 한계를 참신한 아이디어와 독특한 설정으로 극복해내고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어냈다. 시청각 판타지 세상에 ‘후각 판타지’를 제시한 것이다. 작품의 흥미로운 설정이 일찍부터 알려지면서 신세경, 박유천 주연의 TV드라마로 제작되어 현재 방송 되고 있다. 원작은 웹툰사이트 올레마켓웹툰에서 볼 수 있고 전반부 에피소드가 2권의 단행본으로 재미주의 출판사에서 발행됐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1997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만화콘텐츠기획자, 만화정책기획자, 만화전시기획자 등으로 일하다가 2013년부터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콘텐츠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코믹스 만화의 세계>,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홈페이지는 www.parkseokhwan.co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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