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서평-오렌지 마말레이드(석우 글/그림), 도서관이야기,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2015.04.01

뱀파이어면 어때!

소수자들을 향한 학원 로맨스



가까운 미래의 어느 해안 도시. 한 고등학교에 예쁘지만 얼음처럼 차가운 태도를 지닌 여학생 백마리가 전학 온다. 여느 순정만화처럼 이 여학생 앞에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학생 최재민이 나타난다. 연예인 제의를 받을 정도로 잘 생긴 이 친구는 농구까지 잘한다. 여학생도 명가수급 기타 솜씨와 노래 실력을 지녔다. 그런데 이 선남선녀는 도무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없다. 잘나서 그런 건지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는 건지. 좋다는 사람이 가까이 오면 밀쳐내지 못해 안달이다. 이른바 ‘철벽남녀’의 만남이다.


뱀파이어와 사람이 공생하는 사회


<오렌지 마말레이드>는 20XX년 가을로 시작된다. 언제인지 정확하지 않은 근미래의 한국. 이곳에는 사람의 피를 먹고 사는 뱀파이어와 그들의 공격에 두려움을 느낀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다. 300년 전 뱀파이어들은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공격했다. 사람들은 이에 맞서 ‘뱀파이어 말살 정책’을 시행했고 이들은 곧 멸종 위기에 처한다. 그러자 이들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100년 간 진행 된 말살 정책은 폐기되고 사람과 뱀파이어 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된다. 그로부터 200년이 흐른 상황. 이제 세상은 사람과 뱀파이어가 공생하고 있다.

사람의 피를 먹고 살며 밝은 곳을 싫어하고 십자가와 마늘을 무서워한다는 둥 뱀파이어에 대한 부정적 속설은 여전하고 사람들은 뱀파이어와 함께 하는 것을 꺼린다. 그래서 그런 걸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뱀파이어의 모습은 없고 200년 간 사람과 닮아가려고 노력한, 사람과 닮은 뱀파이어만 남아있다. 이 작품에서 뱀파이어들은 사람의 피 대신 밀폐 용기에 담긴 돼지 피를 먹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정기적으로 갈아 없앤다. 사람처럼 가정을 일구고 낮에 생활하고 저녁에 잔다. 그리고 자신이 뱀파이어임을 감추고 사람들 속에서 숨어산다. 누가 뱀파이어이고 누가 사람인지 알 수 없지만 모두가 뱀파이어를 욕하고 싫어하는 터라 자신이 뱀파이어라는 것을 함부로 말 할 수 없다. 그런 사회. 사람과 뱀파이어가 공생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사람에 의해 차별 받고 억압 받는 부류 또는 제3의 인종이 있는 사회가 이 만화의 세계관이다. 그 속에서 뱀파이어 소녀와 사람 소년이 만난다.

 

전학생 만화스토리의 진화


<오렌지 마말레이드>의 여자 주인공 백마리는 사람과 다른 인간, 뱀파이어이다. 사람보다 아름답고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지니고 있지만 그 것으로 어떤 것도 하면 안 되는 뱀파이어이다. 괜히 사람과 친해지기라도 해서 뱀파이어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면 이사를 가야하고 학교를 옮겨야한다. 사람들은 뱀파이어를 ‘인간 이하의 인간’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이 학교로 전학 온 이유도 이전 학교에서 뱀파이어라는 사실이 들통 낳기 때문이다. 남자 주인공 최재민은 멋진 외모로 여학생들의 관심과 고백을 독차지 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여성혐오증’이 있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여학생을 멀리한다. 누가 좋아한다고 고백이라도 하면 벌레라도 본 듯 인상을 찌푸린다. 소년은 성장기에 벌어진 가정사로 인해 여성에 대한 경계심을 지니고 있다. 사람을 싫어하는 뱀파이어 소녀 그리고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 소년.


작가는 둘을 만나게 하고 둘이 서로에게 관심을 가질만한 사건과 둘이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이야기를 전개 한다. 외딴 곳에서 온 비밀의 전학생, 이루어질 수 없는 남녀 간의 사랑. 이 두 가지 테마는 각각 ‘소년만화’와 ‘소녀만화’라고 하는 장르의 대표적 설정이다. 남학생들은 신비한 힘과 비밀을 지닌 남자 주인공에 흥분하고 여학생들은 비극적 사랑 이야기에 쉽게 공감한다. 작가 석우는 이 두 가지 요소를 하나로 묶어서 전혀 다른 ‘전학생’ 테마의 만화를 만들어 냈다. 전통적으로 남학생 독자들이 좋아하는 만화와 여학생 독자들이 좋아하는 만화의 특징을 절묘하게 비틀어 융합해 낸 것. 그래서 이 작품은 ‘남자가 그린 순정만화’로도 유명하다.


차별과 억압 속에 숨어 살고 있는 소수자들의 삶


<오렌지 마말레이드>는 한 포털사이트에 웹툰으로 연재되면서 청소년 웹툰 팬들의 큰 공감을 이끈 작품이다. 전 8권의 단행본으로 완결됐고 걸그룹 AOA의 설현과 영화배우 여진구가 주인공을 맡은 TV드라마가 제작중이다. 그만큼 흥미로운 소재에 작가 석우의 감성적 화풍과 섬세한 상황 연출이 더해지면서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이 작품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이 작품을 말랑말랑하게 보면 ‘비밀스런 전학생의 운명적 로맨스물’로 읽히지만 한 발짝 더 들어가 보면 이 작품에 담긴 깊은 주제의식과 만나게 된다. 작가가 직접적으로 강조하고 설명하지는 않지만 이 작품에는 우리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있는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과 그들에 대한 불신, 차별과 억압적 태도가 만들어 내는 사회적 문제 등이 담겨있다. 여자주인공 마리를 뱀파이어가 아니라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적소수자 등으로 바꿔 보면 우리가 그런 이들을 얼마나 쉽게 소외시키고 있는지 보인다. 작가는 뱀파이어 소녀와 여자를 싫어하는 소년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소외시키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듬고 왜 함께 해야 하는 지를 이야기한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1997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만화콘텐츠기획자, 만화정책기획자, 만화전시기획자 등으로 일하다가 2013년부터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콘텐츠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코믹스 만화의 세계>,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홈페이지는 www.parkseokhwan.co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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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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