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서평-다정한 겨울(이준 글/그림), 도서관이야기,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2015.05.01

머리만 큰 소녀와 몸만 큰 소년

그래도 우리들은 푸르다, 우리들은 자란다




한다정은 이제 막 미성년자 딱지를 땐 19살 소녀(?)이다. 그런데 이 소녀의 키는 108cm에 불과하다. 유아기에 호르몬 이상이 생겨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성장장애를 앓았다. 겉모습만 보면 영락없이 옛 된 유치원생 같다. 이 소녀 앞에 키가 180cm나 되는 17살 소년 김민성이 나타난다. 건장한 겉모습과 달리 이 소년은 7세 수준에서 성장이 멈춘 지적장애인이다. 머리는 어른이지만 몸은 아이인 소녀, 몸은 어른이지만 머리는 아이인 소년. 한 겨울에 펼쳐지는 두 사람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성숙하지 못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성장하지 못한 아이들

<다정한 겨울>은 성장장애를 겪은 소녀와 지적장애가 있는 소년의 이야기이다. 19살이 된 소녀는 이제 여성으로 보이고 싶다. 몸매가 드러나는 옷도 입고 싶고 간단한 화장도 해보고 싶다. 훈남으로 소문난 동갑내기 남자와 이른바 썸도 한번쯤 타보고 싶다. 그런데 아무도 소녀를 성숙한 여성으로 봐주지 않는다. 소녀의 키는 고작 108cm. 5~6세 여아의 표준키에도 못 미친다.


캐쥬얼복은 커녕 아동복 코너에 가야 겨우 몸에 맞는 옷을 살 수 있고 화장품 코너의 점원은 아예 손님으로 봐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소녀는 오래전부터 아빠와 단 둘이 살면서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다. 주방일은 물론이고 청소와 가계부 관리도 척척 해낸다. 겉모습만 아이일 뿐 세상사에 밝은 어른이다. 반면 소년은 정반대의 인물이다. 평범한 아이들과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는 키 큰 학생이지만 몸처럼 머리가 크지 못했다. 엄마와 떨어져 있으면 불안하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덩치에 걸맞지 않게 모든 것이 엉성한 소년. 주위사람들은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소년을 위험한 사람, 기피해야할 사람, 문 밖 출입을 하면 안 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아이인 듯 아이 아닌, 어른인 듯 어른 아닌 이들의 이야기


소녀는 성장장애를 겪으며 엄마 없이 아버지와 성장했지만 이름처럼 다정한 마음씀씀이를 지녔다. 백화점에서 길을 잃고 울고 있는 덩치 큰 소년이 이상하다며 많은 사람들이 회피 할 때 아무 편견 없이 도와줬고 또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도 두려움 없이 나서서 구해줬다. 그것이 유치원생처럼 보이는 소녀가 학교에 다닐 때 배웠던 규범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규범대로만 사람들이 살아주면 좋으련만 사람들은 다 자라지 못한 소녀와 소년이 아는 것도 지키지 못하고 산다.

몸이 크지 못한 소녀는 몸이 크지 못한 소년과 ‘장애’라는 이름의 동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둘은 엄마 없이 아빠 손에, 아빠 없이 엄마 손에 자랐다는 공통점도 찾게 된다. 가난 때문에, 사고 때문에 혼자가 된 소녀의 아빠와 소년의 엄마는 장애까지 있는 아이를 혼자 키울 수 없어서 부득이 보육원에 보내려하기도 했다. 소녀와 소년이 아주 어린 시절에 벌어진 일이지만 둘 모두 그 일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부모가 자기를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경험한 두 사람은 ‘버려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때로는 아이처럼, 때로는 어른스럽게.


무책임한 어른들 틈에서 책임있는 아이로 성장하기

누구의 잘 못도 아니었지만 소녀와 소년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다. 하지만 어른들의 확신과 달리 장애를 지닌 소녀와 소년은 조금씩 성장했다. 조금씩 어른이 되어갔다. 닫힌 방 안에서는 여전히 아이였지만 좋듯 싫듯 세상에 나가 사람들과 만나고 여러 가지 사건 사고를 겪으면서 아이들은 성장했다. 그 것이 곧 ‘경험’이다. 세상에 대한 경험, 사람에 대한 경험, 상황에 대한 경험이 머리만 큰 아이와 몸만 큰 아이를 ‘몸도 머리도 큰 어른으로 성장’ 시켰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장애를 지닌 아이들에게 쉽게 ‘경험’이라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아이들이 누구보다 규칙을 잘 지키고 누구보다 책임지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다정한 겨울>은 한 포털사이트의 신인만화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신예 작가의 데뷔작으로 공모전 수상과 함께 포털사이트에 연재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작가가 유사한 장애를 지닌 사촌 여동생을 자신이 다니던 회사에서 일하게 하며(장애인 사회체험 프로그램) 느낀 감흥을 토대로 작품화한 것이라고 한다. 평범하지 않은 두 사람의 이야기는 포털사이트에 연재되면서 수많은 감동을 선사했다. 2014년 대한민국 콘텐츠대상에서 만화부문 신인상(한국콘텐츠진흥원장상)을 받기도 했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1997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만화콘텐츠기획자, 만화정책기획자, 만화전시기획자 등으로 일하다가 2013년부터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콘텐츠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코믹스 만화의 세계>,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홈페이지는 www.parkseokhwan.co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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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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