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서평-양말도깨비 시즌1(만물상 글/그림), 도서관이야기,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2015.02.01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마을을 떠난 소녀의 성장드라마



네 개의 마을로 이뤄져있는 세계. 마을마다 기후가 다르고 사람들이 사는 모습도 다르다. 주인공 수진은 사계섬이라 불리는 이 세계에서 가장 작은 마을인 봄꽃 마을에 산다.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이 농사를 지으며 사는 곳. 아이들 역시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부모가 하던 일을 한다. 하지만 수진은 다른 마을이 궁금하다. 길게 뻗은 기찻길 끝, 말로만 들었던 세계, 늘 상 보던 일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을 하며 살고 싶다.


소녀적 감성으로 구축된 상상마을


수진은 정든 가족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기차에 오른다. 봄꽃 마을역에서 탄 기차는 뙤약볕 마을역, 오색단풍 마을역을 지나 함박눈 마을역에 도착한다. 여러 개의 건물이 합쳐져 하나의 거대한 구조물처럼 보이는 마을. 함박눈 마을은 봄꽃 마을의 전원적 풍경과 달리 도시의 속도감과 삭막함이 공존한다. 수진은 독신녀 개구리 까트린의 빌라에 숙소를 정하고 빅풋이라 불리는 종족이 운영하는 은행에서 견습사원으로 일하게 된다.

외딴 도시, 낯선 직장, 알 듯 모를 듯 한 여러 인종의 사람들 속에서 수진은 금방 외로움을 느낀다. ‘새로운 세계를 동경’하던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며 힘찬 새 출발을 다짐해 보지만 혼자라는 허전함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그런데 고향 집에서 짐에 섞여 따라 온 양말도깨비를 발견한다. 양말 한 쪽이 사라지면 그 건 ‘양말도깨비가 와서 먹은 것’이라던 아빠의 말처럼 양말도깨비는 수진의 양말을 먹으며 숨어 살고 있었다. 수진은 마치 자신처럼 어미로부터 떨어져 낯선 곳에 있는 양말도깨비를 끌어안는다. 양말도깨비와 수진은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위로를 받고 위로하는 사이가 된다. 도시에서 친구를 얻은 수진은 이제 이웃에 사는 청소부 고양이 라라, 빅풋은행의 선배 사원 마리안 등과도 격의 없이 지내게 된다. 새로운 세계에서 자신 만의 이야기를 하나 둘 만들어 간다.


과거의 시점에서 상상한 미래세계


만화 <양말도깨비>는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 된 웹툰이다. 연재 시 내용을 새롭게 편집하고 일부 회차를 수정 보완해 고급스러운 양장본으로 출판했다. 외딴 곳에서 홀로 성장하는 소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 <빨간머리앤>이 떠오른다. 고양이, 개구리, 거미 등의 모습을 한 수인(獸人)과 빅풋이라는 가상의 종족이 사람들과 어우러져 사는 세계관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여러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 한다.

<양말도깨비>의 세계는 과학 문명 속의 세계이다. 그런데 컴퓨터를 중심으로 발전한 문명 세계가 아니라 증기기관을 중심으로 발전한 세계이다. 그래서 19세기 산업혁명 이후의 유럽 풍경을 닮았다. 이런 유의 배경을 중심으로 한 작품을 스팀펑크물이라 한다. 사이버펑크가 가까운 미래 사회를 중심으로 한 공상과학물이라면 스팀펑크는 가까운 과거 사회를 중심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 공상과상물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현존하지 않는 것들, 가령 마법이나 오컬트 등 비과학적인 것들이 섞여서 만들어진 세계가 곧 스팀펑크의 세계이다. 소설, 영화, 만화, 패션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일종의 문예사조나 창작 트랜드라 할 수 있다. 스팀펑크물은 대체로 과거 시대가 보여주는 낭만과 향수를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점이나 모순을 비판한다.


동화적 상상력과 치유적 매력을 지닌 이야기


<양말도깨비>가 보여주는 세상도 그렇다. 과거에 대한 향수와 미래에 대한 희망이 공존한다. 그런데 등장인물들에게 주어진 현실은 과거를 음미하거나 즐길 수 있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지금 기준에서 생각 할 수 있는 미래 역시 희망보다는 불안으로 가득하다. 두 번씩이나 견습사원 신분으로 일하게 된 수진, 물속에서 헤엄치는 꿈을 꾸는 고양이 라라, 언제 죽을지 모르는 빅풋을 사랑하고 있는 마리안, 사람 아버지로부터 큰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사람을 싫어하는 빅풋 리처드 등. 등장인물들은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된 현실의 문제 때문에 힘겨워한다. 자신의 문제로도 벅찬 수진은 물을 만지는 것도 싫어하는 고양이 라라가 사실은 물고기처럼 바다를 헤엄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진은 ‘고양이는 물고기가 될 수 없어. 하지만 난 네가 불가능한 꿈을 꾼다고 해서 틀린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건 분명 멋진 꿈이야!’라며 손가락질 받을까 감춰왔던 고양이의 꿈을 응원한다. 이처럼 <양말도깨비>는 등장인물들의 과거 고백식 이야기 구조와 스팀펑크의 세계관을 통해 동화적 상상력과 치유적 매력을 펼쳐 보인다. 마치 시간여행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러 가는 여행자처럼 등장인물들은 과거의 상황과 결정을 고백하며 각자의 문제를 위로받고 치유해 간다.

만물상이라는 필명을 쓰는 작가 이슬기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후 한 회사에 입사해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다. 평범한 회사 생활과 열악한 고용환경에 회의를 느낀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웹툰작가에 도전한다. 마치 작품 속 수진처럼 새로운 환경과 일에 대한 동경으로 자신만의 세상을 찾아나선 것이다. 작품이 인기를 얻으면서 양말도깨비 믕이의 모습을 한 캐릭터 인형이 출시됐다. 출시 1주일 만에 1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글. 박석환, 만화평론가/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이미지 맵

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Critique/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