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이두호의 임꺽정 vs 김동화의 황토빛이야기, 에이코믹스, 2014.10.22

조선의 영웅과 일제강점기 하의 여인



백정의 아들로 태어난 조선의 영웅, 임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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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호의 만화 <임꺽정> 1559(명종 14) 경 황해도 지역에서 관군과 대립하며 조선 전체를 뒤 흔들었던 임꺽정의 난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벽초 홍명희가 1928년부터 10년 간 조선일보에 연재한 소설 <임꺽정>을 바탕으로 했지만 이두호가 홍명희의 방식을 빌어 새롭게 창작한 작품이다.

홍명희는 <명종실록> 등에 기록된 몇몇 사료를 바탕으로 임꺽정의 이야기를 나의 복안으로 사건을 꾸미되 순조선 것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이두호 역시 이 같은 방식을 취했다. 몇몇 사료를 바탕으로 이왕이면 우리 것을 그리자했고 백정의 아들을 진정한 우리의 영웅으로 그려보리라 했다. 몇몇 역사적 사실과 실존인물을 제외하면 등장인물의 이름과 역할, 갈등요소와 각종 사건들을 새롭게 재구성해 홍명희의 소설과는 다른 이두호의 <임꺽정>을 만들어냈다.

소설 <임꺽정>은 명종 시대의 정치적 혼란상과 지배계층의 부도덕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도적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배경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한편, 일반적인 영웅전기물의 구성을 피했다. 반면 이두호의 만화 <임꺽정>은 남치근이 이끄는 관군에 쫓겨 최후를 맞이한 임꺽정의 모습을 드러내며 시작한다. 임꺽정은 그로부터 7년 전 왜구에게 포위된 남치근을 위기에서 구한 적이 있다. 이 때 남치근은 자신을 구한 임꺽정이 백정이라는 것을 알고 사람 속에 백정이 낄 수는 없지하며 말을 돌린다. 곧이어 등장하는 소년 시절의 임꺽정 역시 양반집 도련님을 혼쭐내고 피신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임꺽정은 이 과정에서 무술 실력을 키워주고 사회적 의식을 일깨워줄 스승과 만난다. 이 같은 도입부의 차이는 임꺽정에게 민중적 영웅으로서의 소명을 부여하는 장치가 된다. 그리고 임꺽정의 난이 단순한 도적질이 아니라 조선시대의 신분과 계급제도에 따른 갈등과 위협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한다. 조선의 히어로 임꺽정의 각성을 위한 장치가 된 것이다.

임꺽정의 난에 대해 기록한 <명종실록>에는 도적이 성행하는 것은 수령의 가렴주구(苛斂誅求) 탓이며, 수령의 가렴주구는 재상이 청렴하지 못한 탓이다. 오늘날 재상들의 탐오한 풍습이 한이 없기 때문에 수령들은 백성의 고혈을 짜내어 권력자들을 섬겨야 하므로 돼지와 닭을 마구 잡는 등 못하는 짓이 없다. 그런데도 곤궁한 백성들은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도적이 되지 않으면 살아갈 길이 없는 형편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이두호는 만화 <임꺽정>을 도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봉건제도 아래의 백성으로 그렸다. 그리고 그들보다 더 큰 도적들이 당시의 지배계층이었음을 강조했다. 임꺽정과 그 무리들은 이런 세상을 바꾸고자 봉기했던 의적이었고 민중이었음을 분명히 했다. 때문에 권력에 항거하고 민중의 편에서 분연히 일어섰던 조선의 히어로 임꺽정을 그리기도 했지만 다분히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임꺽정을 묘사하기도 했다. 영웅이기도 했지만 백정으로 태어나 그저 그렇게 살게 된 임꺽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는 극의 사실성을 더하는 요소가 됐고 만화 <임꺽정>의 깊이를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이두호의 <임꺽정> 1991년부터 스포츠조선 5 3개월 동안 연재됐고 1995년 프레스빌에서 단행본 전21권으로 출판됐다. 같은 해 문화체육부 선정 한국만화문화대상을 수상했다. 1996년 방영된 정홍채 주연의 SBS 드라마 <임꺽정>은 홍명희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지만 캐릭터 설정이나 주요 에피소드 등이 이두호 <임꺽정>을 토대로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002년 자음과모음에서 전32권으로 복간됐다. 2013년에는 프랑스의 파케 출판사에 의해 불어판 전10(권당 600페이지 분량)이 발간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의 밭고랑 논고랑을 따라 흐르는 여인의 정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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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화의 만화 <황토 빛 이야기>는 여인으로 성장하는 소녀와 여인으로 살아온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일곱 살짜리 딸 이화와 남편과 사별한 후 주막을 운영하며 딸을 키우고 있는 남원댁. 이화는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한 소녀이다. 남자 아이들에게는 있지만 자신에게는 없는 것이 궁금하고 남의 집에는 있는데 자기 집에는 없는 아빠 또는 남자라는 존재가 궁금하다. 남원댁은 매일 동네 남정네들이나 길손들에게 술과 웃음을 팔고 있지만 마음 줄 남성이 없어 외롭다. , 한번 떠나보낸 님이 있어 새 님을 안는 것도 두렵다.

이화는 동자승을 만나 첫사랑을 얻고 남원댁은 어느 날 주막을 찾은 장돌뱅이를 새 님으로 맞는다. 절간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스님이나 전국을 떠돌며 물건을 파는 장돌뱅이. 두 여인에게 이들은 사랑이었지만 기다림이고 더 한 외로움이었다. 작가는 작품 서문에 정든 님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 우리네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들의 내림 같은 서툰 몸짓 그래도 가슴 속에 차오르는 정만큼은 대장간 쇳물마냥 붉고 붉었당께.  밭고랑 논고랑 따라 흘러내리던 정한(情恨)의 이야기들이 스물 스물 기어 나오더란 말이지.’라며 창작 배경을 설명했다.

상투를 자른 사내들이 한복을 입고 다니고 아이들은 고무신을 신고 동구를 뛰어다니던 그 시절. 19세기의 것과 20세기의 것이 혼재되어 떠도는 근대의 어느 공간. 작가는 자신의 어머니 세대가 커가던 1930~40년 대의 풍경과 자신이 유년시절 보고 들었을 그 시절 여인들의 정과 한을 펜화의 섬세함으로 재현해 냈다. 남도의 어느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소녀 이화가 첫사랑을 알고, 두 번째 사랑을 만나고 세 번째 사랑을 얻는 과정을 전개해 간다. 남원댁은 딸이 여인이 되어 가는 과정을 돕는 조력자이자 자신처럼 사랑의 아픔을 간직하게 되리란 것을 알고 있는 경험론적 예언자였다. 그래서 딸의 성장이 기쁘지만 아프다.

유교적 가치관 아래서 억압되고 통제됐던 근대 여성의 성. <황토 빛 이야기>는 그 시절의 인식과 이를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규정한 작가의 의도가 격돌하는 작품이다. 물론 그 격돌은 거칠고 사나운 소리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찬연히 빛나는 아름다움으로 그려졌다. 등장인물들은 하나 같이 여성이 지켜야할 가치나 질서로서의 정조관념을 지니고 있지만 남원댁과 이화는 자신에게 찾아든 사랑의 설렘을 함부로 꺽지 않는다.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타오르면 타오르는 대로 움직인다. 아직 주체적이지는 않지만 주체성을 지니고자 하는 근대의 여성이다.

<황토 빛 이야기> 1996년 성인만화잡지 <트웬티세븐>에 연재된 작품이다. 도서출판대원에서 전5권으로 발행됐고 이후 행복한만화가게에서 전3권으로 복간됐다. 유럽과 북미 시장에 수출되어 주목 받았고 상당한 판매량을 기록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미도서관협회가 선정한 청소년을 위한 우수 만화로 선정되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전미도서관협회는 매년 학부모들에게 가장 많이 퇴출 요청을 받은 책(Frequently Challenged Books)을 조사 발표하는데 거기에서도 <황토 빛 이야기> 2위에 올라 국제적 이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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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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