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서평-반지 친구 응심이의 비밀 미소년 일기(종이 글/그림), 도서관이야기,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2014.11.01

반지의 비밀일기, 소녀들을 위한 방법 사전




수 타운센트의 <비밀일기>가 새로운 판본으로 출간됐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몸만큼 아는 것도 많은 사춘기 소년 에이드리언 몰. 이 소설은 주인공 소년의 허세와 이성에 대한 비밀스런 관심을 유쾌하게 풀어내 사랑받은 작품이다. 영국에 이 소설이 있다면 한국에는 얼렁뚱땅한 매력을 물씬 풍기는 소녀의 ‘비밀일기 시리즈’가 있다.

 

이상한 나라의 비밀일기


영국 작가 수 타운센트가 쓴 <비밀일기>는 1982년 발표된 일기체 소설이다. 한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90년 대 초로 지금은 학부모가 된 이들이 주독자였다. 당시 40만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였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여자 친구와의 ‘신체적 접촉을 위한 연구’에만 몰두하는 주인공을 지금의 학부모 세대가 열렬히 응원했다. TV화면에 시원한 옷차림의 연예인만 나와도 ‘요즘 TV는 …’ 운운하며 혀를 차는 그 부모님들이 말이다.

물론 이 책이 한 소년의 야한 생각과 이탈적 일상만을 우스개로 그린 소설은 아니다. 그 안에는 학교 폭력, 가족 해체, 빈부격차 확대 등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영국 사회의 복지정책과 부조리에 대한 풍자도 담겨있다. 하지만 사회 전체가 개발과 성장에만 집중했던 우리에게 선진국의 복지정책과 그로인해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은 그야말로 ‘남의 나라 이야기’였고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농담이 됐다. 덕분에 사회적 문제의식도 많았던 주인공의 ‘비밀일기’는 야한 생각으로 가득 찬 ‘저질 일기장’ 취급을 받기도 했다. 당시 몇몇 학교 선생님들은 <비밀일기>를 선정성이 짙다면서 못 읽게 했다. 남의 나라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작품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남의 나라 읽을거리나 볼거리도 좋지만 우리식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와야 하고 그런 작품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줘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동네 소녀들의 생활담과 연애담


종이라는 필명의 여성 만화작가가 그린 ‘반지 시리즈’는 순 한국산 성장담이다. 소설 <비밀일기>가 소년의 이야기라면 ‘반지 시리즈’는 소녀의 비밀일기가 주 내용이다. 소설이 어른 흉내 내기에 바쁜 소년의 비밀스런 일상을 담았다면 만화는 더 아이 같은 모습으로 그려진 중학생 소녀의 천진난만한 일상을 주렁주렁 그려냈다. 그림일기장 양식을 이용한 페이지나 3등신으로 그려진 분홍빛 캐릭터, 낙서 같기도 한 연출과 또박또박 눌러쓴 듯 한 글자체 등 얼핏 보면 유아용이나 초등학생용 만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청소년 주인공이 등장하는 청소년용 만화로 여성들도 즐겨 읽는 순정만화잡지 ‘이슈’에 2002년부터 12년 넘게 연재되고 있는 장수 작품이다.

반지는 어리버리하지만 근심 걱정 따위 없는 행복소녀로 가끔 4차원을 오고가는 묘한 캐릭터이다. TV시청이 유일한 취미인 아빠, 가사와 보육으로 정신없는 엄마, 반지만 졸졸 따라다니는 동생 단지와 함께 산다. 딸기 우유 매니아로 남자들에게 은근히 인기 많은 냠냠이, 꽃미남만 보면 순식간에 사랑에 빠져버리는 안경소녀 응심이는 반지의 베스트 프랜드로 요절복통 생활담을 만들어낸다. 세 소녀를 중심으로 반지의 남자친구인 효용이, 응심이의 앙숙인 뺀돌이, 냠냠이를 좋아하는 강연못과 냠냠이가 좋아하는 태빈오빠가 소녀들의 수다스런 연애담을 그려가게 한다. 거기에 남자처럼 멋지게 생긴 소녀 콩심이, 얼굴도 이쁘고 공부도 잘하는 완벽소녀 미쓰민, 콩심이를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인기멤버 김날과 반지네 반에 전학 온 걸그룹 멤버 빵소라, 아이돌 그룹 팬클럽 회장인 홍열매 등은 우리 시대의 묘한 사회구조와 집단 간 갈등을 불러내는 역할을 한다.


 

도덕적 규범보다는 시도와 방법을 알려줘


‘반지 시리즈’는 단행본을 기준으로 <반지와 와글 바글 친구들>로 시작해서 최근작인 <반지 친구 응심이의 비밀 미소년 일기>까지 30여 권이 발행됐고 각종 팬시상품이 출시되어 폭넓게 판매되고 있다. 한중 합작으로 TV애니메이션이 제작되기도 했고 스마트폰용 다이어리 어플리케이션이 출시되는 등 ‘인기작품’으로서의 명성과 실익을 동시에 얻었다. 이 때문에 이 작품은 ‘21세기형 명랑만화’라 불리기도 하고 속칭 ‘캐릭터 만화’라 불리기도 한다.

80년대 중후반 유행했던 명랑만화는 주로 교양잡지에 연재됐다. 코믹한 설정과 상상력 넘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당시 사회가 전달하고자 했던 도덕적 가치관과 규범을 담아내면서 폭 넓은 사랑을 받았다. 반면 캐릭터만화는 다양한 관련 상품을 만들어 판매 할 목적으로 꾸며진 작품을 뜻한다. 단어 그대로 캐릭터성이 강조된 만화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상업성이 너무 강한 작품을 비판할 때 쓰기도 한다. ‘반지 시리즈’는 이처럼 명랑만화의 웃음과 가치, 캐릭터만화의 상업적 전략이 두루 반영된 작품이다. 4차원 소녀 반지와 친구들의 비밀스런 이야기는 웃음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또래 친구들에게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시도하고 실천하는 방법을 차례차례 알려주는 구성’ 방식을 취함으로서 ‘소녀들을 위한 방법사전’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유년시절 이두호의 만화로 한글을 깨우치고 이상무의 만화로 울지 않는 법을 배우며 성장했다. 이현세의 만화를 보며 도전하는 남자의 매력을 알았고 허영만의 만화를 통해 현명한 어른으로 사는 방법을 찾았다. 스포츠서울 신춘문예로 등단해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고 대학에서 만화를 가르친다. 저서로는 <코믹스 만화의 세계>,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홈페이지는 www.parkseokhwan.co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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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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