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서평-놓지 마 정신 줄(신태훈 글/ 나승훈 그림), 도서관이야기,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2014.09.01

정신 줄 좀 잡고 삽시다 



놓지 마 정신 줄/ 신태훈 글, 나승훈 그림/ 웹툰북스/ 2014년 4월/ 현1권


세상이 빨라졌다. KTX, LTE로 대표되는 교통과 통신은 고속을 넘어 초고속 시대를 열었다. 환경이 빨라지다 보니 생활도 빨라졌고 생각도 빨라진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많은 일들이 편리하게 처리된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기다리는 법,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 조금만 기다리면 될 일을 성급하게 처리하다가 사고를 내고, 잠깐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도 무심결에 넘겨버려 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그야말로 ‘정신 줄을 놓고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정신 줄 놓고 사는 가족 이야기


<놓지마 정신줄>은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머리에 가상의 손이 달려있다. 이 손은 머리 위에 떠있는 줄을 붙들고 있는데 이 줄이 곧 ‘정신 줄’이다. 등장인물들은 이 줄을 붙들고 있을 때는 아무 이상이 없지만 이 줄을 놓게 되면 그야말로 ‘정신 줄을 놓은 것 같은 엉뚱한 행동’을 하게 된다.

술만 마시면 정신 줄을 놓는 아빠 역의 정과장, 돈 냄새만 맡으면 정신 줄을 잡는 엄마, 천재적인 두뇌와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주인공 정신, 소녀의 마음과 무쇠와 같은 힘을 가진 동생 정주리 까지. 어찌 보면 평범하지만 그리 평탄해보이지 않는 ‘정과장 패밀리’를 중심으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정신 줄을 놓고 사는지’ 펼쳐 보인다.

첫 편 ‘가족여행’에서 정과장은 경품행사에 참가한다. 1등 상품인 무료 해외여행권을 뽑는 순간 정과장 머리에 달린 가상의 손은 잡고 있던 ‘줄’을 놓아 버린다. 가족들은 ‘정신 줄을 놓은 정과장’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무료 해외여행권’을 본 순간 모든 가족이 정신 줄을 놓고 만다. 신나게 먹고, 자고, 논 후에 자세히 본 여행권에는 매우 작은 글씨로 ‘평일, 주말, 성수기, 비수기 제외’라는 문구가 있다. 즉, 아무 때도 쓸 수 없는 무료 여행권이니 돈을 내야 한다는 이야기. 가족들은 그때서야 정신 줄을 붙들게 된다.



하늘에서 내려 온 정신 줄, 익숙한 것에서 찾은 아이디어


사람들 머리 위에 정신 줄이 있고 이 줄을 놓으면 예기치 않은 황당무계한 일이 발생한다는 매우 독특한 설정의 작품이다. 이 설정을 통해 다루는 소재들 역시 가볍지 않다. ‘보이스피싱’ ‘충동구매’ ‘위조’ 등 조금만 정신을 차리면 넘어가지 않을 것이지만 정신을 똑 바로 차리지 않으면 ‘눈 뜨고 코 베이는 세상의 쓴 맛’을 톡톡히 보게 되는 것들이다.

그런데 하늘에서 내려 온 줄이나 정신을 똑 바로 차리지 않으면 발생하는 사고는 우리에게 익숙한 속담과 전래동화를 떠올리게 한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으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라는 전래동화도 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던 호랑이가 결국 엄마를 잡아먹고 오누이까지 잡아먹으려 한다. ‘정신 똑 바로 차린 오빠’의 재치로 오누이는 하느님이 내려준 튼튼한 ‘줄’을 잡고 하늘로 올라가 해와 달이 됐다는 이야기이다. 반면, 오누이 잡아먹을 욕심에 정신을 놓은 호랑이는 썩은 ‘줄’을 잡고 올라가다 수수밭에 떨어져 죽었다. 정신 줄 놓은 호랑이의 최후인 셈이다.

 


제발 놓지 말고 살아야 할 정신 줄


<놓지마 정신줄>은 2009년 네이버 웹툰에 연재를 시작해 2014년 현재 500여 회가 연재됐다. 총 9억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인기 웹툰으로 동명의 TV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어 방영 중(78부작, 회당 7분30초)이다.

익숙한 것에서 찾아낸 독특한 설정이 매력적인 이 작품은 우리 사회를 힘들게 하고 있는 각종 사건사고들을 에피소드 속에 담고 있다. 가해자가 분명히 있고 정과장 패밀리는 항상 피해자의 위치에 있지만 작가는 정과장 패밀리 역시 일종의 공범 같은 위치에 서게 한다. 가해자의 꼬임에 빠져 정신 줄을 놓지만 정신 줄을 놓는 순간 등장인물들 역시 스스로의 ‘탐욕’에 빠졌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즉, 순수한 피해자라기보다는 피해자의 탐욕이 만들어낸 결과임을 강조한다. 남 탓하지 말고 ‘제발 정신 줄 좀 잡고 살자’는 것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유년시절 이두호의 만화로 한글을 깨우치고 이상무의 만화로 울지 않는 법을 배우며 성장했다. 이현세의 만화를 보며 도전하는 남자의 매력을 알았고 허영만의 만화를 통해 현명한 어른으로 사는 방법을 찾았다. 스포츠서울 신춘문예로 등단해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고 대학에서 만화를 가르친다. 저서로는 <코믹스 만화의 세계>,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홈페이지는 www.parkseokhwan.co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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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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