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한국만화 흥행과 혁신의 라이벌 이현세 vs 허영만, 한화사보, 2014.10.01

이현세 vs 허영만 

한국만화 흥행과 혁신의 라이벌

 

  



야성의 아이콘 이현세

 

경북 출신으로 친척 중 북한군이 있어서 빨갱이라 불리며 성장한 이현세. 그림재주가 특출 났으나 선생 운이 없어서 핍박 속에 수련기를 보냈던 그는 어떻게 선배만화가 허영만을 앞질러 한국만화계의 슈퍼스타가 됐을까?

 

이현세(1954년 생)1974년 고교 졸업 후 상경했다. 강하고 율동미 넘치는 펜선에 매력을 느꼈던 이현세는 평소 흠모했던 극화 분야의 만화가를 스승으로 모시기 위해 찾아갔다. 하지만 나이가 많아 보여서 부리기 힘들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모두에게서 거부당했다. 대신 원하지 않았던 순정만화가와 명랑만화가 아래서 수학했다. 이후 극화 만화가 밑에서 일을 돕기도 했지만 대부분 일본만화나 미국만화를 베끼는 일이었다. 

만화 하나 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어 했던 이현세였지만 막상 서울까지 와서 한 일은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남의 만화였다. 고향으로 도망쳐 오기를 몇 차례. 이현세는 남의 만화로 가득 채워졌던 생활이 내 만화에 대한 열망을 키웠다고 한다. 1978년 정식 데뷔작 <저 강은 알고 있다>를 발표하고 곧이어 1979<시모노세끼의 까치머리>를 발표했다. 자신의 페르소나라 할 수 있는 까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첫 작품이다. 이현세는 내가 가장 잘 아는 사람인 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으려했던 나의 의지를 까치에 담았다고 했다. 

1982년 이현세는 프로야구 개막과 함께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실패와 소외 그리고 사회에 대한 강한 반발심을 제 것처럼 쥐고 살았던 주인공 까치와 그 친구들을 모아 놓고 벌인 한 판 살풀이가 주 내용이다. 마동탁과 엄지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적 사고와 속물근성 그리고 그 앞에 맨몸으로 맞섰던 까치의 맹목적 사랑이 그려졌다. 까치는 가부장 신화 속에서 급격한 산업화와 늘어난 빈부격차로 인해 힘겨워하는 당대 남성의 고민을 대표했다. 이현세는 이 작품 이후 한국만화의 야성과 흥행을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슈퍼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이현세의 아이콘, 설까치(또는 오혜성)


 이현세 만화의 대표 캐릭터. 만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1983년 이장호 감독에 의해 스크린에 첫 등장했다. 당대의 청춘스타 최재성이 최초의 까치로 분해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최민수, 이병헌, 윤태영 등의 청춘스타가 까치 역할을 맡았다. 까치는 고독, 비장, 맹목, 열혈 등의 코드로 대표되는 돈키호테적 인물로 질 줄 알면서 승부에 임하는 사내로 각인되어 있다.

 

이성의 아이콘 허영만

전남 출신으로 아버지가 일재강점기에 순사를 지내 쪽발이라 불리며 성장한 허영만. 만화명문가에서 수학하며 만화공모전 입상과 데뷔작 흥행신화를 쏴 올린 그는 어떻게 후배만화가 이현세에게 앞자리를 내줬다가 다시 왕좌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


 


허영만(1947년 생)1965년 고교 졸업 후 상경했다. 미술에 소질이 있었지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가세가 기울어 진학 대신 생업을 택했다. 잡학다식했던 박문윤 화실에서 기본기를 익혔고 당대 최고의 순정만화가였던 엄희자 문하와 다양한 장르만화를 섭렵했던 이향원 문하에서 일을 도우며 만화엘리트로 수련을 받았다. 1974년 소년한국도서 신인만화공모전에 당선했고 같은 해 <각시탈>을 발표하며 데뷔작 흥행신화를 쏘아 올렸다.

‘10년 안에 최고의 만화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던 허영만은 딱 10년 만에 그 위치에 섰다. 하지만 당시 만화출판과 유통환경의 독과점 시스템은 유망한 스타작가의 앞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절치부심하며 애니메이션업계로 발을 돌리기도 했던 허영만은 1979년 어린이 교양지 어깨동무에 연재했던 <태양을 향해 달려라>가 히트하면서 다시 주목 받는 만화가가 됐다. 1981년부터 전작 단행본으로 발표한 <무당거미> 시리즈가 연달아 히트하면서 허영만은 한국만화계의 흥행보증수표로 통하게 된다. <카멜레온의 시> <퇴역전선>으로 성인 독자층을, <날아라슈퍼보드> <망치>로 어린이 독자층을, <비트>로 청소년 독자층을 사로잡으며 전 연령대의 만화독자와 호흡하는 유일한 만화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허영만은 늘 2등 만화가였다. 80년대에는 독고탁의 이상무가 1등이었고 90년대에는 까치의 이현세였다. 이상무의 힘이 빠지자 갑자기 등장한 이현세가 1등자리를 차지했다. 좌절도 있었을 법하지만 허영만은 ‘8홉론‘2등 역할론을 설파하며 창작자의 이성을 강조했다. 병에 물이 꽉 차면 넘치게 되니 적당히 모자란 것이 좋다는 태도였다. 대신 2등은 늘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고 만화 소재와 장르의 혁신을 주도하며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다. 급기야 1999<타짜>, 2003<식객>을 발표하며 Only One 만화가에서 Number One 만화가로 우뚝 섰다.

 

허영만의 아이콘, 이강토 그리고

 

허영만 만화의 대표 캐릭터. 초기작품인 <각시탈>부터 등장했던 이강토는 자신의 운명을 어찌하지 못해 고뇌하는 햄릿형 인물로 대표되기도 한다. 이 강토 역을 맡은 배우들로는 정동환, 박준규, 박상민, 이병헌, 김민종 등 연기파배우와 청춘스타가 두루 섞여있다. 2등 이강토를 1등으로 만든 허영만 만화의 주인공으로는 <타짜>의 화투꾼 고니와 <식객>의 요리사 성찬이 있다.

 

.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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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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