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대한민국 마이너리티 리포터-하일권과 그의 웹툰, 기획회의339호, 2013.12.11

 

자신의 꿈을 알지 못했던 루저

 

고교에서 이과를 선택했던 학생이 교사의 권유로 미대입시를 준비한다. 이 학생은 다들 디자인과를 가는데 ‘애니메이션이 붐’이라는 이유로 애니메이션과에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전공 공부를 하고 있자니 언론을 통해서 접했던 애니메이션계의 비전과 선배들을 통해 확인한 업계의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군대에 갔고 제대 후에는 외국에 나갔다. 그곳에 눌러 앉으려다가 ‘그래도 졸업은 해야지’라는 부모님의 요구에 못 이겨 귀국 후 복학을 했다. 애니메이션을 전공했지만 ‘애니메이션으로는 밥 벌어 먹고 살기 힘들겠다’ 싶어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과제 제출용으로 제작한 단편을 포털사이트에서 운영하는 아마추어 만화코너에 올렸다. 다른 사람들의 권유와 언론, 사회적 환경에 따라 결정했던 삶의 결과가 자신의 기대를 채우지 못했을 때, 그에 대한 회의와 이 견고한 시스템에서 이탈하는 것이 곧 또 다른 절망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불안에 떨고 있었을 때 학생은 자신의 경험적 현실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면서 나름의 일탈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학생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88만원세대라고 지칭된 우리시대의 젊은이들, 스스로 루저라고 말하게 된 이들에게 학생이 펼쳐낸 판타지는 현실 그 자체로 받아들여졌다. 젊은이들은 학생의 이야기를 통해 위로 받았고 학생의 또 다른 이야기를 갈구했다. 이때부터 학생은 자신의 현실을 걷어내고 그들을 위해 이야기하는 작가가 됐다. 하일권이 됐다.

 

출처-기획회의

 

 

웃기지만 서글픈 우리시대의 호구와 허세 이야기

 

하일권은 1982년 서울 출생이다.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에 재학 중이던 2006년 포털사이트 파란에 <삼봉이발소>를 연재하며 데뷔했다. 외모지상주의를 테마로 한 작품이다. 심각한 외모 콤플렉스에 빠져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이발사 삼봉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연재기간 중 총 1천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하일권웹툰’의 출발점이 됐다. 데뷔작 성공신화를 쏘아올린 하일권은 2007년 스포츠조선과 코믹타운(만화가협회단체가 공동으로 추진한 웹진)이 공동 기획한 웹진에 ‘도시정벌 시리즈’의 신형빈 등과 함께 연재작가로 선정되면서 만화계의 차세대 주자로 급부상한다. 하일권이 선택한 차기작은 김종학프로덕션의 드라마 시나리오를 토대로 각색한 <보스의 순정>이었다. 영상화를 염두에 둔 기획개발작품으로 조직 폭력배 두목이 아내의 유언에 따라 조직을 버리고 사춘기 딸을 키우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담은 작품이었다.

2008년 대학을 졸업한 하일권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터를 잡는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학생과 사회로부터 기피대상이 된 여자형 로봇 시보레의 이야기를 담은 <3단 합체 김창남>을 발표한다. <삼봉이발소>가 학교 과제에서 출발한 작품이라면 <3단 합체 김창남>은 졸업작품으로 탄생했다.

 

(C) 하일권, 3단합체김창남, 네이버웹툰

 

하일권은 이채로운 소재와 웃기지만 서글픈(요즘말로 ‘웃픈’) 이야기 전개 방식으로 일상툰 중심의 ‘네이버만화’에서 서사툰을 대표하는 ‘웹투니스타’로 떠올랐다. 이름마저 ‘호구’인 주인공의 로맨스가 루저를 자임하는 네티즌들의 감성을 쥐어짰다. 2009년에는 독특한 취향을 지닌 여장(女裝) 수구부 선수 이야기 <두근 두근거려>를 발표했다. 여자 수영복을 탐하는 남학생 배수구가 주인공으로 여자 수구부의 일원이 된다는 설정만으로 네티즌들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전하는 테마는 ‘꿈’에 대한 것이었다.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 ‘너는 어떤 꿈을 꾸고 있느냐’고 독자에게 질문했다. 2010년에는 너무 일찍 어른이 된 소녀와 평생 아이로 살고 싶은 마술사의 이야기를 담은 <안나라수마나라>를 발표했다. 흑백으로 묘사된 이 작품은 하일권웹툰 특유의 색채감을 최대한 절제함으로서 비루한 현실과 여기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마술의 미묘한 경계를 유지하며 세상의 아이러니를 이야기했다.

 

패배자의 감수성을 바탕으로 우리사회의 이면을 보듬고 매 작품마다 색다른 주제의식을 찾아갔던 하일권은 2011년 <목욕의 신>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작품을 발표한다. 목욕관리사가 된 주인공 허세의 이야기로 루저의 성공신화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그 간의 작품이 다소 어두운 측면이 강조됐다면 이 작품은 포복절도할 캐릭터성과 경쾌한 전개 그리고 ‘병맛’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진지한 개그컷으로 읽는 재미를 더했다. 때밀이 아버지를 둔 허세는 대학을 졸업하고 멋진 도시생활을 꿈꾸지만 대부업자에게 빌린 돈 때문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우연히 들어간 최고급 목욕탕에서 자신이 목욕의 신 테미러스의 손을 물려받은 천부적인 때밀이라는 점을 알게 되고 거액의 상금이 걸린 때밀이 컨테스트에 참가하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의 직업을 비하했던 허세는 때밀이가 아니라 전공을 살려 디자이너가 되려한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젊은 꿈’에 대한 갈등과 반성이 곧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로 읽힌다.

 

(C) 하일권, 목욕의신, 네이버웹툰

 

 

웹툰? 네트워크의 힘을 활용한 소셜콘텐츠

 

하일권은 웹툰의 활용 가치 확대에도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인터넷성우커뮤니티인 쇼킹보이스를 통해 자신의 웹툰을 소재로 한 라디오드라마와 웹애니메이션을 제작하도록 하면서 소셜콘텐츠로서 웹툰의 재생산가치에 주목하도록 만들었다. <3단 합체 김창남> 등의 작품에서는 정식으로 OST를 발매해 웹툰에 내제된 세계관을 현실 공간으로 확장했고 1회성 소비로 끝날 수 있는 서사콘텐츠를 반복소비가 가능한 음원콘텐츠로 연계시켰다. 이 같은 활동은 창조적소비자로 볼 수 있는 동인들 간의 협업 방식을 취한 것이다. 웹을 중심으로 전개된 이 같은 소셜콘텐츠 메이킹은 하일권웹툰의 인기도와 저명성을 확대시켰고 이는 상업적 성과로 연계됐다.

 

<3단합체김창남>은 영국의 페브러리필름즈가 영상화 판권을 구매했다. <두근두근거려>는 일본에서 <Water Cube>라는 작품으로 리메이크됐고 <목욕의 신>은 문와쳐가 판권을 구매해 이정섭 감독에 의해 영화화가 진행 중이다. 하일권의 창작욕은 웹툰에만 국한 되지 않는다. <히어로주식회사>(김진석 그림), <육식공주 예그리나>(김지민 그림) 등 제목만으로도 이채로운 출판만화의 스토리작가로 활동 중이다. 웹에서 일군 하일권의 성과가 영상화 분야나 출판만화계, 해외시장에서 눈에 띄는 효과로 이어지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하일권은 현재 2012년 11월부터 시작한 웹툰 <방과 후 전쟁활동>을 네이버에 연재 중이다. 미확인 물체가 도시를 점령하면서 군인이 모자라게 되자 고등학생들까지 군대에 입대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다. 작가 특유의 상상력으로 구성된 독특한 세계관이 또 하나 만들어졌고 네티즌들의 기대감도 증폭되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뭘까?’를 찾는 독자들의 도전이 매회 연재시마다 1만 건 이상의 덧글로 올라오고 있다.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라고 봐도 좋을 만한 놀라운 반응이다.

 

(C) 하일권, 안나라수마라, 네이버웹툰

 

 

소외된 이들의 꿈을 담은 마니너리티 리포트

 

하일권은 2006년 데뷔 후 매년 한 작품씩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성실한 작가이다. 현재까지의 작품이 앞으로의 하일권을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현재까지의 작품을 통해 하일권웹툰의 특이점들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은 5가지 요소들을 찾을 수 있다.

 

첫째, 하일권웹툰에는 결함 많은 주인공과 주변인물이 등장한다. 둘째, 상상력으로 조작해 낸 독특한 직업 또는 능력이 등장한다. 셋째, 주류 무대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소외된 이들이 풀 수 있는 문제와 사건이 발생한다. 넷째, 이 같은 비현실적 아이템들을 현실적인 요소로 전환 시키는 사회적 공감 요인이 있다. 다섯째, 이를 이채로운 것으로 부각시키는 도구적 장치(스크롤 중심의 컷연출, 화려한 색상효과, BGM, 서정적 묘사와 반대되는 개그컷 등)가 있다. 물론, 이는 다수의 서사물이나 웹툰에서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하일권웹툰에는 ‘결함 인물→상상 능력→소외된 키맨←현실사회 반영←특이장치’라는 키워드가 ‘소외된 키맨’에 집중되면서 작품별로 각각의 서사맥락 속에서 강조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는 하일권웹툰의 기저에 깔린 감수성에 대한 것이다.

 

 

 

하일권이 모니터 앞에서 걷어 올린 상상력은 즐거운 요소이지만 공감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하일권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고민했던 우리시대의 ‘젊은 삶’과 사회적 현실을 작품 내에 투영시켰고 자신을 다독이듯 등장인물들의 삶을 다독였다. 88만원세대와 루저로 대표되는 네티즌들은 하일권의 시선과 감성에 공감을 표했고 이로부터 하일권웹툰은 ‘대한민국 마이너리티 리포트’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일권웹툰에 담긴 ‘꿈’에 대한 메시지는 하일권을 꿈에 대해서 말하는 ‘루저의 신’으로 등극시킨 것이다. 하일권이 또 무엇을 경험하고 독자들이 하일권웹툰에서 또 어떤 가치를 찾아낼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하일권웹툰이 우리시대 젊은이들의 아픔을 일정부분 위로하고 꿈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박석환/ 만화평론가(www.parkseokhwan.com)

 

1997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만화평론이 당선된 후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만화비평서 <만화시비탕탕탕>, <코믹스만화의 세계>, 만화이론서 <디지털만화 비즈니스-잘가라 종이만화>,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공저로는 <만화>, <한국의 만화가 1, 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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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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