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조선의 영웅을 그린 이두호 vs 조선의 여인을 그린 김동화, 에이코믹스, 2014.10.22

조선의 영웅을 그린 이두호

조선의 여인을 그린 김동화




만화의 상상력으로 가득한 공간, 만화의 유쾌함이 함께하는 거리


서울시는 2013년 남산 일대를 창의문화와 관광의 메카로 만들기 위해 ‘만화문화공간 및 거리 조성 사업’을 추진했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를 중심으로 만화문화공간 ‘재미랑’과 만화의 거리 ‘재미로’가 신설됐고 이 일대에서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 진행됐다. 

공간은 만화 특유의 상상력으로 채워졌고 거리는 만화와 함께하는 시민들의 유쾌함으로 가득했다. 2014년 이 일대는 제18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2014.7.22~7.27)을 기해 또 한 번 진화했다. 만화가들의 발길과 손길이 더해졌고 만화팬들의 응원과 기관 관계자들의 독려가 큰 역할을 차지했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만화는 크기와 무게를 더해 갔고 남산 자락과 명동 일대는 한국만화의 새로운 생태계가 됐다. 


@그림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안내도 


그 생태계의 중심에는 물론 만화가들이 있다. ‘재미로’에는 그들 중 유쾌한 상상력의 발원지이자 모태 역할을 해 온 만화가를 기리기 위한 코너가 있다. ‘만화 VS 만화’라 명명된 이 코너는 한국만화의 현재를 일군 두 명의 만화가를 재조명한다. 올 해 ‘만화 VS 만화’는 한국만화의 정체성을 대표해 온 두 작가 이두호와 김동화가 선정됐다. 


만화팬을 들뜨게 하는 그 이름, 이두호와 김동화


@그림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인근 재미로에 게시된 만화가 이두호와 김동화의 ‘만화VS만화’ 대형 패널


<머털도사>, <임꺽정>으로 대표되는 이두호는 조선의 민초와 서민적 영웅의 한과 분노를 그린 작가로 유명하다. 김동화는 <요정핑크> <황토 빛 이야기> <빨간자전거>까지 늘 새로운 작품을 제시해왔지만 한국적 사고와 정한을 담아내왔다. 전혀 다른 작품 세계를 지녔지만 어딘가 닮아있는 두 작가. 이두호와 김동화는 최근 TV애니메이션을 통해 각자의 작품세계를 확장해 냈다. 

이두호의 <머털도사>는 1984년 첫 발표된 추억의 만화 작품이다. 이 작품이 2012년 TV애니메이션으로 재제작 되어 방송을 탔다. 현재는 여러 케이블TV에서 재방송되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김동화의 <빨간자전거>도 2013년 TV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방송됐다. 현재는 시즌2가 방송 중이다.  

TV애니메이션 ≪머털도사≫는 이두호(1943년 생)의 만화 <머털도사>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아동용 작품이다. 26부작(회당 20분)으로 제작되어 EBS를 통해 방영됐다. 1989년부터 1990년 사이에 어린이날 특집물로 제작 방영된 MBC판 ≪머털도사≫를 현대적 감각으로 리메이크 한 것이다. 김동화(1950년 생)의 만화 <빨간자전거>를 원작으로 한 ≪TV동화 빨간자전거≫는 이와달리 성인을 대상으로 한 가족용 TV애니메이션이다. 원작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151부작(회당 5분)으로 제작, KBS를 통해 방영했다.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0시50분에 방송됐는데 동시간대 TV시청률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림  새롭게 리메이크 된 TV애니메이션 《머털도사》


적과 싸울 때마다 머리털 한 올을 뽑아 도술을 펼치던 머털도사, 글을 못 읽는 할머니에게 온 편지를 읽어주며 가슴 아픈 사연을 전하던 꽁지머리 집배원 아저씨. 자신이 지닌 크고 작은 능력을 다른 사람을 위해 쓰고자 했던 이타주의적 주인공들이 비슷한 시기에 TV스타로 등장하면서 두 작품의 원작자인 만화가 이두호, 김동화에 대한 관심 역시 재점화 됐다.


@그림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TV동화 빨간자전거》


이두호, 김동화는 이름만으로도 깊은 울림을 전달하는 만화가들이다. 60년대 만화계에 입문해 70년대에 데뷔했고 80년대에 최고의 인기작을 발표했다. 90년대에는 기존의 작품세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대표작을 새로 쓰는데 성공한 거장들이다. 그리고 21세기. 두 작가는 한국만화의 현재를 이끌어낸 중진으로, 여전히 주목받는 현역으로 가장 향기롭고 원숙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바지저고리 만화가와 치마저고리 만화가


붓의 거친 선을 중심으로 역동성을 강조하는 이두호의 만화와 펜의 섬세함을 통해 정적인 묘사에 집중하는 김동화의 만화는 전혀 다른 토양에서 태어나 아무런 관계없이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둘의 만화는 다르게 보인다. 그런데 그 다름 중에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외적으로는 의복과 공간이고 내적으로는 소재와 태도이다.

이두호의 만화는 ‘바지저고리 만화’라 불린다. 같은 맥락에서 김동화의 만화를 논하자면 ‘치마저고리 만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작가는 한국의 전통의상과 한국적 사고방식,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위치와 역사적 배경 안에서 펼쳐지는 상상력을 만화에 담아왔다. 이두호가 조선 민초의 설움과 분노를 한 판 굿으로 펼쳐냈다면 김동화는 유교적 가치관 속에서 숨죽여 사랑하고 표 나지 않게 울어야했던 여인의 삶을 그렸다. 만화를 그리되 한국사람과 한국의 이야기를 그리고자 했던 두 작가는 세련된 만화주인공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장독대’와 ‘못난이’를 탄생시켰고 조선이라는 나라의 법도 안에서 상처 받으며 성장한 ‘임꺽정’과 ‘이화’를 그려냈다. 하지만 처음부터 두 작가가 한국의 전통의복을 입고 한국식 사고와 태도로 전개되는 만화를 그린 것은 아니다. 




@그림  이두호 만화의 주인공들


@그림  김동화 만화의 주인공들


초창기 두 작가는 일본만화의 영향 아래 있었다. 이두호가 <닌자 무예장>의 시라토 산페이를 본 받았다면 김동화는 <캔디 캔디>로 촉발된 일본식 순정만화의 본을 따랐다. 당시 일본만화의 수입 출판은 금지되어 있었지만 60~70년대 한국만화는 일본만화 문화권 안에 있었고 변칙적인 방식으로 일본만화를 소비하고 있었다. 출판업자들에 의한 무단번역본, 편집자들에 의한 무단복제본, 작가들에 의한 표절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일본만화가 한국만화로 둔갑해 출시됐다. 국내 독자들은 이를 아무 저항감 없이 소비했다. 이두호와 김동화 역시 그 같은 환경에서 작업을 했다. 내용은 달랐지만 형식은 일본의 것이었다. 물론, 그때는 그것이 곧 만화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두 작가는 작업에 대한 극심한 회의와 함께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시기는 달랐지만 증상은 비슷했고 처방도 같았다. 


@그림  이두호의 <임꺽정> 중


만화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져 방황했던 두 작가는 ‘국적 불명의 캐릭터’가 아닌 한국적인 것,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역사와 시대’ 속에 담긴 이야기를 찾아내려 했다. 이미 창작의 틀을 지니고 있고 사회적 인지도를 확보한 작가로서는 위험천만한 발상이었고 낭만적 결단이었다. 하지만 두 작가는 거기에서 ‘자신이 다시 만화를 그려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 이두호는 8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바지저고리 만화를 그렸다. 김동화는 이보다 늦은 90년대 초부터 치마저고리 만화를 그렸다. 이두호가 조선의 실재하는 역사 속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냈다면 김동화는 조선의 시대적 분위기 속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다. 


충절과 정절에 담긴 유교적 이념의 부조리를 벗어던진 이두호와 김동화의 만화

 

@그림  김동화의 <기생이야기> 중


이두호가 그린 조선의 이야기는 양반과 상놈으로 대표되는 계급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주로 했다. 독대와 임꺽정이라는 인물로 대표되는 민초의 삶은 80년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일궈가야 했던 한국 사회, 시민의 삶과도 닮았다. 김동화가 그린 조선은 황진이가 살던 조선 중기에서부터 남원댁이 살던 일제강점기 전후로 추정되는 공간까지 확장된다. 김동화가 그린 조선의 이야기는 유교적 여성상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여자로서 경험하게 되는 성에 대한 생각과 도덕적 관념이 대립하고 갈등하는 부분을 묘사한다. 구식과 신식이 공존하는 공간. 이화로 대표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세계화를 추구하던 90년대에도 큰 변함이 없었다. 

이두호의 역사극에 등장하는 영웅적 남성이나 김동화의 시대극에 등장하는 욕망하는 여성은 조선의 개국 원리이자 국가를 지탱하는 이념이었던 유교적 사고방식에 대한 반발이다. 남자의 충절(忠節), 여자의 정절(貞節)로 대표되는 유교사회의 이념과 질서는 최소한 80~90년대의 사회문화적 공간 내에서도 유효했고 지금도 요구되는 덕목이다. 이두호와 김동화는 이를 핍박과 억압으로 해석했고 이에 저항하거나 조금은 자유롭고자 했던 ‘의적’과 ‘기생’을 통해 이탈적 삶의 주인공들을 그려냈다. 전통적인 윤리관에 대한 부정이라기보다는 부조리에 대한 고발이었고 변화에 대한 요구였다. 이는 우리 시대의 고민과 합일치 되는 대목이었다. 이로부터 두 작가는 한국의 정체성과 그 고민을 담아낸 대표적 만화가로 서게 된 것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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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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