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이왕이면 우리 것, 한국만화를 그리고 싶었다 - 이두호 vs 김동화 and 박석환, 에이코믹스, 2014.10.22

이왕이면 우리 것, 한국만화를 그리고 싶었다


지난 7월 22일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애니시네마에서 제18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의 개막식이 열렸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형배 조직위원장의 개막선언으로 6일간의 공식행사가 시작됐다. 오전 11시에 진행된 개막식에 이어 오후 2시에는 지난 해 SICAF코믹어워드 수상자인 만화가 김동화 특별전이 애니메이션센터 1층 테마전시실에서 열렸다. 


그림  김동화 특별전 테잎 커팅식 중(오른쪽에서 여섯 번째가 김동화, 네 번째가 이두호)


이 날 전시는 만화 속에 한의 정취와 풍미를 담아내 온 김동화의 작품세계를 IT기술과 접목해 구현해 냈다. 오픈식에는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조직위원장 김형배,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 이희재, 한국만화출판협회회장 황경태, <맛 일번지>의 일본만화가 쿠로타 요시미 등이 참석했다. 그리고 김동화가 늘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이두호가 함께 했다.

오프닝 행사를 끝낸 두 작가를 ‘재미랑’ 3층 작가 커뮤니티 공간에서 만났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인근 퇴계로20길에 위치한 재미랑은 서울시가 조성한 만화의 거리 ‘재미로’ 중심에 위치한 만화문화복합공간이다.


최근 근황? - 한국만화계의 인재양성과 해외진출을 위해 뛰고 있어


‘머털도사 아빠’ 이두호는 최근 전국의 만화가 지망생 100여 명과 함께 ‘이두호·이현세의 지옥캠프’를 개최했다. 네이버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이현세창작캠프’의 일환으로 진행된 행사였다. 



그림  만화가 이두호


만화가 이두호에 대하여 


1943년 7월 5일 경상북도 고령 출생

1959년 중학교 3학년 시절 <피리를 불어라>를 발표하며 만화계 입문

1969년 [소년중앙]에 <투명인간>을 발표하며 정식 데뷔

1995년 문화체육부 선정 한국만화문화대상 수상

1997년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

1997년 만화 표현의 자유 수호를 위한 범 만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 대표

1998년 사단법인 한국만화가협회 회장

2004년 재단법인 부천만화정보센터 이사장

2004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코믹어워드 대상

2006년 제6회 고바우만화상 수상

2007년 보관문화훈장 수훈

2013년 네이버문화재단 한국만화발전위원회 위원장


대표작 : <머털도사> <덩더쿵> <객주> <임꺽정> <이두호의 머털이 한국사>

박석환 :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개막식 참석하랴, 김동화 특별전 오픈식 참석하랴, 정신없이 바쁘시죠? 

얼마 전 10일 간의 일정으로 지옥캠프를 개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매년 하던 행사였는데 올 해는 좀 색다르게 진행됐다고 하던데요. 

이두호 : 이 캠프를 시작한 지가 벌써 10 몇 년이 훌쩍 지났네요. 작품 활동만 하던 사람이 대학에 가서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하니까 여러 가지 한계가 많더라고요. 수업 시간의 제약도 있고 학생들이 내 수업만 듣는 것도 아니고. 방과 후에는 과제다 아르바이트다 해서 바쁘고. 그래서 작가들처럼 오로지 작품에만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고민 끝에 방학 중에 한 10일 가량 인적 드문 곳에 모여서 작업하자고 했더니 몇 명이 따라 나서더라고요. 그게 시작이었어요. 

특별하게 강좌가 있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내가 일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죠. 저도 학생들과 같이 섞여서 하루 종일 작업하고 이현세 선생이나 젊은 만화가들도 와서 같이 작업을 해요. 서로 지나다니면서 어깨 너머로 보고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스스로 배워가는 거죠. 거기서 학생들이 자극을 받고 친구들끼리 자극 받고 저도 그들한테 자극을 받고 그러면서 같이 조금씩 늘어서 캠프를 나와요. 

세종대 학생들과만 했었는데. 이 프로그램이 제법 인기를 모았는지 이 캠프에 참여하고 싶어서 세종대에 왔다는 학생들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면 어떨까 싶었는데 다행히 네이버문화재단에서 지원을 해줘서 전국의 만화지망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자리가 됐어요. 고마운 일이지요. 참가한 학생들이 제일 좋았던게 뭐냐 하니까 ‘똑 같은 반찬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라데요. 그래서 좋은 선생 만난 건 안 좋냐 하니까 그냥 웃더라고요. 허허허. 

박석환 : 지옥캠프가 아니라 천국캠프였겠네요. 캠프의 마지막 날은 출판사나 웹툰서비스사의 담당자들이 와서 참가자들의 작품을 검토하고 이를 통해서 데뷔를 한 작가들도 많았는데요. 

이두호 : 일단은 인원이 100명이고 선발된 인원이다 보니까 작품의 수준들이 상당히 높았어요. 담당자들도 놀라는 눈치였고. 상당수의 참가자 작품이 담당자들의 선택을 받았어요. 좋은 결과를 기대해봐야지요.

네이버문화재단은 ‘이현세창작캠프’를 통해 전국의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버스,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글로벌만화교실 등을 운영하고 있다. 또 이와 별도로 ‘만화발전위원회’를 조직해서 한국만화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그림  만화가 김동화


만화가 김동화에 대하여 

1950년 11월 10일 서울 마포 출생

1975년 <나의 창공>으로 데뷔

1999년 아시아만화대회 최고 창의상 수상

2007년 부천국제만화축제 운영위원회 위원장

2007년 부천만화대상 대상 수상

2008년 사단법인 한국만화가협회 회장

2008년 대한민국 수출유공 국무총리상 수상

2009년 재단법인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

2010년 제11회 ICC국제만화가대회 의장

2011년 부천만화대상 공로상 수상

2013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코믹어워드 대상

대표작 : <천년사랑 아카시아> <요정핑크> <곤충소년> <황토 빛 이야기> <빨간자전거> 등

박석환 : ‘한국만화 세계화’는 김동화 선생님이 한국만화가협회장 시절부터 주장했던 정책 이슈였는데요. 

김동화 : 지금 만화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가지인 것 같아요. 하나는 국내 수요가 증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만화가 해외로 나가는 것이라 생각해요. 우리 만화는 지금 과거와는 굉장히 많이 다른 환경에 있어요. 과거에는 좋아하는 만화를 보려면 불편한 점이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만화를 볼 수 있잖아요. 웹툰이 대표적이죠. 웹툰이 등장한 이후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만화를 즐기고 있잖아요. 

외국도 점점 만화시장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시장을 중심으로 발전할 것으로 봐요. 그러면 우리는 먼저 한 경험과 기술이 있잖아요. 참여하고 있는 작가들도 많고요. 이제 이걸 우리만 볼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과 함께 보는 방법을 찾아야겠죠. 그런데 경험이나 기술은 금방 따라 잡힌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콘텐츠예요. 그리고 이 콘텐츠를 해외에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좋은 콘텐츠가 있어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겠지만 알려주면 증폭 되겠죠. 

앙굴렘이 좋은 사례지요. 2003년 처음으로 앙굴렘에서 한국만화특별전을 했어요. 그 때 우리 만화계는 앙굴렘을 잘 몰랐고 앙굴렘도 우리 만화를 잘 몰랐어요. 그런데 거기에 찾아가서 한국만화를 알리기 시작했잖아요. 그랬더니 봐요. 2014년 1월에 거기서 위안부 만화전을 했잖아요. 이 전시가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고요. 앙굴렘 관계자가 한국의 역사와 한국만화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면 전시 자체가 불가능했을지 모르잖아요. 

(인터뷰어 주 : 2014년 한국의 만화계 관계자들은 여성가족부의 지원으로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만화전시를 앙굴렘만화축제에서 개최했다. 이에 대해 일본 만화계 관계자들이 항의 소동을 펼치며 전시 취소를 요청했으나 앙굴렘만화축제의 아시아담당 디렉터인 니콜라 피네는 ‘프랑스에는 역사 부정 방지법이 있다며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것은 정치적이지 않지만 이를 부정하는 것은 정치적’이라며 한국을 옹호하는 한편 일본 측의 항의 전시를 취소시킨 바 있다.)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 만화가? - 한국적 정서와 번역이 중요한 것 같아

이두호와 김동화는 유럽이 사랑한 한국만화가로도 유명하다.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로 대표되는 불어권 만화시장에서 이두호는 한국만화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작가로, 김동화는 한국만화의 특수성과 함께 인류의 보편적 감수성을 제시하는 작가로 명성을 얻고 있다. 



그림  만화문화복합공간 ‘재미랑’에서 진행된 인터뷰 중


만화평론가 박석환에 대하여 

1973년 10월 19일 전남 무안 출생

1997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 만화평론으로 등단

1998년 한국만화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

2000년 ㈜코믹플러스 기획실장

2009년 (재)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전략기획팀장

2012년 문화산업발전 기여, 문화체육부 장관 표창 수상

2013년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창작과 교수

2013년 지역문화산업발전 기여, 경기도의회 의장 표창 수상

대표작 : <만화시비탕탕탕> <디지털만화 비즈니스-잘가라 종이만화> <코믹스만화의 세계> <만화리뷰쓰기> 등

이두호 : <임꺽정>이 한국에서 32권으로 나왔는데 그걸 스위스에 위치한 불어권 출판사 파께에서 11권으로 발행했어요. 아주 두꺼운 양장판이죠. 권당 20유로(약3만원)라데요. 2007년 1권이 발행됐을 때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에 가서 사인회하고 마지막권이 발행된 2013년 앙굴렘국제만화축제 때 한국만화특별관에서 사인회를 했죠. 6년 여 만에 완간된 셈이죠. 

박석환 : 꽤 오랜 기간에 걸쳐서 공들여 출판했군요. 아무래도 번역이 큰 이슈가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이두호 : 번역은 내가 불어를 모르니까 할 말은 없는데 그 전에 출판한 <덩더쿵>도 그렇고 <임꺽정> 같은 경우도 애를 먹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요즘 쓰지 않는 우리말이 많이 들어가 있는 작품이라. 담당자가 처음부터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내가 읽을 줄 모르니까 어떻게 됐는지는 몰라요. 허허허. 

박석환 : 번역은 한국만화의 세계화의 가장 큰 이슈일 거 같아요. <황토 빛 이야기>의 경우도 전라도 사투리가 많잖아요. 

김동화 : 언젠가 프랑스의 소설가가 한국에 왔어요. 그 때 작가가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이 3가지 있었다고 해요. 하나가 무당을 만나고 싶다. 두 번째는 바둑판을 만드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세 번째가 <황토 빛 이야기>를 그린 김동화를 만나고 싶다고 했대요. 고마운 일이지요. 그 곳에서 번역된 작품이 그 곳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거잖아요. 내가 쓴 것보다 잘 번역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인터뷰어 주 : 당시 김동화와 만난 소설가는 뮈리엘 바르베리이다. 한국에 <고슴도치의 우아함>으로 번역된 작품 등을 발표했다. 프랑스에서 30주간 베스트셀러 1위 기록한 바 있다. 프랑스에서 본 김동화의 작품에 대해 ‘일본만화에 없는 시적인 아름다움을 강렬하게 지니고 있다’고 말한바 있다.)

박석환 : 아마도 두 분 선생님이 한국 만화가들 중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만화가가 아닐까 싶은데요. 

이두호 : 허허허. 나는 몰라도 김동화 선생님 작품은 유럽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 알려져 있고 판매도 많이 된 걸로 들었어요. 현지 출판사 관계자들이 다 알더라고요. 하지만 <임꺽정>은 그 정도는 아니에요. 많이 팔릴 것 같아서 선택된 작품이라기보다는 외국 출판사가 한국만화를 처음 낼 때 어떤 작품을 내면 좋을까 생각할 거 아니에요. 어떤 작품이 다른 나라 만화와는 다른 한국만화일까라고 할 때 선택된 작품일 거 같아요. 내 역할은 거기까지였던 것 같아요. 

박석환 : 만화계에 노벨상이나 아카데미상이 있다면 앙굴렘국제만화축제에서 주는 만화가상이 아닐까 싶은데요. 김동화 선생님의 작품이 비평가들이 선정한 외국만화가상 후보 5작품 중 한편에 올랐다는 보도가 있었어요. 

김동화 : 수상은 못했지만 고마운 일이죠. 중요한 것은 프랑스에서 책이 출판될 때 일본만화 취급을 받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들끼리도 일본만화를 출판하는 형태, 미국만화를 출판하는 형태 등 기준이 있어요. 그런데 이 작품은 별도의 독립적 레이블로 발행했어요. 저가의 보급판이 아니라 고급형으로 발행했지요. 물론 내용이 좋아야겠지만 저는 만화책이 고급스럽게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제 마음이 반영된 것 같아서 고마웠어요. 

박석환 : 김동화 선생님께서는 2008년에 수출유공상을 수상했어요. 국무총리상이었죠. 만화가가 받는 상으로는 매우 이례적인데요. 

김동화 : 내 만화가 해외에 수출이 되고 판매가 활성화 됐다고 격려하는 차원에서 준 것 같아요. 솔직히 자랑스럽지요. 수출상 받을 만큼 큰 수익을 올린 것은 아닌데 색다른 사례라 널리 알리자는 차원에서 준 것 같아요.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 발표가 되면 바로 그 주에 해당 작가의 여러 작품들이 번역되어서 쏟아져 나오잖아요. 급하게 번역이 되고 부정적인 부분도 많지만 작가 입장에서 보면 큰 기쁨이지요. 그런 게 부러웠어요. 내가 만든 작품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찾아서 읽어준다는 건 감격스러운 일이죠. 

박석환 : 한국만화의 해외 수출을 위해 선구적 역할을 하셨어요. 차세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두호 :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보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윤태호 작가 같은 경우는 평소 자주 보기도 하고 작품도 좀 봤는데 좋더라고요. 해외로 가는 빗장은 열려있기 때문에 이런 작가들이 들어오면 좋겠지요. 그런데 요즘 젊은 작가들이 너무 바빠요. 작품에만 집중하기도 벅차요. 해외수출이라는 것이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작품에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도 하는 거지만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지요. 

박석환 : 독특한 개성을 지닌 작품도 많지만 여전히 망가 스타일 작품이 선호되는 경향이 있어요. 반면, 두 분 작품은 한국 색이 너무 도드라진 작품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있습니다만. 

김동화 : 어떤 시대를 어떤 복식으로 그리느냐보다는 한국적이라는 정서를 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같은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만화를 하면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것 같아요. 한국의 환경이 중요한 것은 아니죠. 내가 했던 고민을 이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그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순간적인 것을 재미나게 찾아내는 것도 좋지만 동시대가 찾는 고민이 있을 것 같아요. 인류 공통의 고민이나 아픔 같은 것. 우리 속에서 이런 것을 찾는 작가들이 한국적인 것이고 그것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고민과 연결되어 있을 때 세계적인 것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두호, 김동화 만화에 담긴 한국적 정체성? -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부조리를 그린 것일 뿐


이두호와 김동화는 만화에는 언제나 ‘한국적’이라는 수사가 붙는다. 유교사회였던 조선왕조500년의 역사는 우리의 자랑이기도 하지만 신분과 계급이 존재했고 갈등과 대립이 끈이지 않았던 역사이기도 하다. 또한 그런 역사 속에서 성장한 여성의 삶은 견고한 가부장제 안에서 보호 받았지만 주체성을 지니지 못한 채로 결박 당해있었다. 이는 개화기를 거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이루어지는 어간에도. 아니 지금 이 시점에도 여성의 욕망을 차단하는 인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림  김동화, 이두호 인터뷰 중

김동화 : 옛날에 열녀문이라는 것이 있었어요. 이게 참 웃기는 거죠. 여인이 정절을 지키거나 과부가 수절한 것을 기리기 위한 것인데 대우하는 것 같지만 정신적으로 억압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흔들리는 것이 왜 나빠요. 

내 작품에 여자 주인공이 남자 생각이 나니까 밤새도록 불을 때는 장면이 있어요. 그런 걸 억누르기 보다는 어느 정도까지는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게 인간적이잖아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런 생각과 외국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조금씩 다르겠죠. 그런데 공통의 관심사나 관점도 있겠죠. 그런 것에서 찾아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한국적이라는 것은요. 



그림  김동화의 <황토 빛 이야기> 중


이두호 : 내 경우에는 만화를 그릴 때 거창한 생각 없이 내가 가장 접근하기 좋고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한 거예요. 내가 알고 있는 한계가 있으니까 나와 비슷한 신분, 백성의 모습을 그린 것이죠.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그 걸 이렇게 찾아보다 보면 역사 속 인물이나 사건이 지금도 있을 것처럼 보여요. 그럼 그 것을 가져다가 나름대로 만화한 것이죠. 그런데 그 걸 이제 사람들이 보고 민초다 민중이다 한 거 같아요. 무슨 거창한 사상이 있는 건 아니었어요. 한복 입고 나오니까 한국적인 화풍이다 그런 거 아닌가 싶어요. 

박석환 : 지나친 겸손의 말씀 아닌지요.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위치, 역사적 배경 안에서 만들어지는 상상력과 정서 같은 것이 담겨있고 상당부분에서 작가의 지향성이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기도 하는데요. 

이두호 : 음…. <덩더쿵> 같은 경우 역사 관련 책을 보다보니까 홍윤성이라는 인물이 있어요. 수양대군이 조카를 쫓아내고 왕위에 오르도록 도왔던 인물인데. 홍윤성을 개혁가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기록을 또 찾아보니까 이 사람이 아주 나쁜 놈인 거야. 

초기에는 용맹한 장수였을지 모르지만 권세를 얻고 나니까 포악하기가 이를 데 없었어요. 그런데 이 놈이 그냥 병 걸려서 죽었더라고. 그래서 내가 이 놈을 처단해야겠다 싶었지요. 만화가가 좋은 게 뭐야. 내 맘대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거니까. 이름자를 조금 바꿔서 홍성윤이라고 하고 양수대군을 도운 나쁜 놈으로 그렸지. 그 놈 아래서 노비생활을 하는 자를 주인공 독대로 그렸고. 주인 홍성윤을 독대가 처단하게 만들었지. 



그림  이두호의 <임꺽정> 중


<임꺽정> 같은 경우도 무슨 의식이 있거나 하고 싶어서 했다기보다는 원고청탁이 들어오면 거절하기가 싶지 않으니까 핑계 삼아 ‘임꺽정 이야기라면 하겠다’고 했던 게 발단이 됐다고. 임꺽정은 고우영 선생님이 했었고 내가 하기 얼마 전에 방학기 선생이 했기 때문에 안 할 것으로 생각했던 거지. 그런데 자기들도 좋다고 하자고 하더라고. 내가 벽초 홍명희 선생님의 원작 소설을 두 권 가지고 있었어. 뭐 언젠가는 한번 해보고 싶었더랬지. 그런데 이렇게 할 줄은 몰랐어요. 

박석환 :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시지만 그런 결정들이 작가의 방향성이 되고 어떤 지향점을 만들어내는 위대한 결정 아닐까 싶습니다.

김동화 : 이두호 선생님의 화풍하고 나의 화풍이 서로 개성이 있어서 다른 맛을 내요. 어찌 보면 같은 정서라고 하더라도 각자의 입장에 차이가 있어서 각기 다른 어떤 맛을 만들어낸 것 같아요. 

이두호 선생님을 표현할 때 뚝배기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죠. 그런데 나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에는 뚝배기 말고 도자기도 있잖아요. 투박한 것도 있지만 고운 것도 있으니까요. 거친 무명실도 있지만 부드러운 명주실도 있단 말이지요. 그래서 나는 반대 방향으로 간 것 같아요. 물론 의도적으로 반대로 가지는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 아름다움을 택하다보니 그렇게 된 거지만요. 


이두호가 본 김동화, 김동화가 본 이두호? - 다르지만 닮았다

이두호는 젊은 시절 소년만화를 그렸다. 김동화는 순정만화를 그렸다. 서로 다른 매체에서 활동했고 작품 형식도 달랐다. 각자의 분야에서 얼마간의 입지를 구축한 후 ‘프로의 성장통’에 시달렸고 이두호는 역사물로, 김동화는 시대물로 작품 형식과 매체를 바꿨다. 이두호가 굵고 투박한 붓터치로 구중궁궐의 위압감 속에 갇혀 사는 백성의 한을 그렸다면 김동화는 자연이 드러낸 열린 공간에서 소박한 자유를 누리며 살고픈 여인의 정을 담아냈다. 



그림  인터뷰 중간 한복 입은 소녀를 그리고 있는 김동화


이두호 : 내가 평소에 김동화 선생님의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한 폭의 수채화예요. 내가 전공을 수채화를 했잖아요. 그런데 나는 잘 안되는데 참 잘해요. 도자기 같고 고운 여인 같다는 표현이 맞다고. 선도 나로서는 도저히 표현이 안 되는 선이야. 초가집이나 버드나무 보면 이야 이런 거 어떻게 하나 싶다고. 잠재된 느낌을 깨닫게 해 주는 게 있어요. 참 달라요. 나는 좋지요. 내가 없는 걸 볼 수 있으니까. 

김동화 : 선생님의 작품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는 측면에서 강력한 리얼리티가 있어요. 내 경우에는 우리의 역사나 시대가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은데 나는 그 속에서 낭만을 찾고자 했어요. 같은 요소도 있지만 그런 게 다른 것 아닐까 싶어요. 

이두호 선생님은 내게 있어서 지도 같은 존재지요. 어떤 고민이나 어려움이 있을 때 털어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예요. 그래서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매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생님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할까?’라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선생님이 앞서서 한 일이 있다 보니까 내가 갈 수 있는 길을 정할 수 있던 것 같아요. 

나는 일제 강점기 이후의 삶의 무대가 좋아요. 일제는 당연히 싫지요. 그런데 그 공간, 옛 것이 사라져가고 새것이 들어오는 공간. 한복도 그릴 수 있고 자전거도 그릴 수 있고. 초롱도 그리고 전기불도 그릴 수 있는 그런 공간을 흥미 있어 해요. 그래서 제 작품에는 몇 년도 인지가 정확하게 기록되지 않아요. 만화가로서 그리고 싶은 걸 맘대로 그리고 싶어서 그런 걸 정하지 않지요. 그저 30~40년 대 쯤으로 설정해두죠. 그런데 이두호 선생님은 그런 부분에서는 한계가 있을 거예요. 이 분은 고증을 정확하게 해요. 

언제가 선생님하고 버스타고 가는데 선생님이 ‘그런데 끈이 있더라’라며 혼잣말을 하는 거예요.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칼집에 끈이 달려있더란 이야기였어요. 등 뒤에 칼을 차고 있으면 칼을 뽑을 때 칼집이 따라 올라가는데 이걸 어떻게 뺏을까 고민했던 거예요. 그걸 고민하다가 기록을 보니까 칼집에 끈이 달려있어서 칼을 뽑을 때 따라 올라가지 않게 했다는 거죠. 작품에 미쳐 있는 거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 배웠어요. 

이두호 : 아이코 사돈 남 말 하내요. 김동화 선생님한테는 내가 도저히 갖출 수 없고 따라갈 수 없는 모습이 있어요. 개성이란 게 나오는데 너무 부러워요. 나랑 정반대 편에 있어서 더 그렇고. 그런 좋은 작품 많이 해주니 참 고맙지요. 

한국만화가협회장 할 때도 많이 도와줬어요. 나는 단체장이나 뭔가 조직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은 아닌데 회장을 해야 한다고 해서 하게 됐어요. 임기 2년 동안 뭘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선배들도 그렇고 특히 후배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김동화 선생님이 이후에 한국만화가협회장을 맡으면서는 참 고생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작품적으로나 만화계 동료로서도 참 고마워요. 


여전히 살아있는 만화원작의 가치? -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알아서 할 일


이두호가 그린 역사만화는 TV사극이 참조하는 좋은 텍스트 역할을 해왔다. 이두호 만화에 나왔던 역사적 인물의 외형과 성격 규정 등은 그대로 TV사극의 배우에게 주어지는 역할이 됐다. ‘머털이’와 ‘임꺽정’으로 대표되기는 하지만 ‘장독대’ 역시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반면 김동화의 시대만화는 아직 영상화 되지는 않았다. 성인 대상 작품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최근 성인용 애니메이션 시장이 열리는 추세여서 기대를 해 볼 법하다. 변신소녀물로 볼 수 있는 <요정핑크>가 애니메이션화 됐지만 미소년 슈퍼영웅물로 볼 수 있는 <곤충소년>도 매력적이다. 



그림  김동화 특별전에 함께 한 김동화와 이두호


박석환 : 김동화 선생님께서 지난해 SICAF 코믹어워드를 수상하셨어요. 올해 이를 기념하는 특별전이 열렸는데요.

김동화 : 이번 전시는 내가 앞으로 가고 싶은 길, 가야하는 길을 위한 테스트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만화에서 가장 아쉬운 것이 흑백이고 그림이 정지되어 있다는 것. 소리가 없다는 것이죠. 그런데 앞으로의 만화는 꼭 그렇지 않을 거 같아요. 움직일 수 있고 소리가 날 수 있고. 종이책에서만 벗어나면 가능한 것이죠. 그래서 이번 전시는 기존에 내가 그렸던 만화의 한 컷을 끄집어내서 움직임과 소리를 넣어봤어요. 민들레 꽃씨가 날라 간다던가 빗소리를 낸다던가하는 것들을 해 본거죠. 아주 재밌어요. 이런 방식 속에서 앞으로 내 만화가 가야할 방향을 찾으려 해요. 



그림  김동화의 <요정핑크>


박석환 : 만화 <빨간자전거>가 《TV동화 빨간자전거》라는 이름의 애니메이션으로 방송됐어요. 오전 10시 시간대에 방송되어서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하던데요. 

김동화 : 기뻤죠. 내가 아동물을 했다면 기쁨이 이렇게 크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시청시간대는 어른들이 보는 시간이잖아요. 시청률 자체보다는 어른들이 만화를 본다는 것이 좋았어요. 이제 다른 만화도 보지 않겠어요. 

이두호 : <황토길>이라는 내 만화가 있어요. 김동화 선생님 작품이 <황토 빛 이야기> 잖아. 그 작품 처음 탁 보면서 나랑 정서가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는 황토가 우리 민족의 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같이 느낀 거 같아서 역시 닮았다 싶더라고요. 

박석환 : <황토 빛 이야기>에 남원댁이 나오잖아요. 

김동화 : 나는 서울 출생이고 부모님은 충청도예요. 그런데 나는 전라도가 너무 좋아요. 특히 전라도 말이 너무 예뻐요. 깡패가 욕을 해도 안 무섭고 예쁘게 느껴지는 거야. 군대 생활 할 때 도와준 친구도 전라도 출신이고. 작품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남원댁이다.’ ‘ 남원댁이 사랑하는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저는 남원이 참 좋은 곳이라 생각해요. <춘향전>, <흥부와 놀부>의 고장이잖아요. 나는 이 두 작품이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이 두 가지만 잘 활용해도 좋을 것 같아요. 

박석환 : <머털도사>가 새로 애니메이션으로 나왔어요. 유아용 애니보다 타겟이 높아서 고전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그림  PC게임으로 제작됐던 <머털도사>


이두호 :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한테 나는 관여하지 않을 거니까 알아서 하라고 해요. 나는 잘 모르니까 그런 것은 전문가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크게 관여하지 않아요. 의복이나 내용이 좀 다른 부분들이 나오기도 하잖아요. 그럼 원작자로서 그런 부분에서 좀 자유스러워지고 싶기도 하고요.

박석환 : 새로운 머털도사가 털도사에서 탈도사로 바뀌었다는 평가도 있던데요. 탈을 써야 도술을 부릴 수 있는 설정으로 바뀌면서 부정적 반응도 있는 것 같아요. 

이두호 : 가까운 친구랑 그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러면서 그런 부분에 대한 책임이 있겠구나 싶었어요. 머털도사가 등장하는 뮤지컬도 하고 있는데 거기도 아직 안 가봤어요. 바쁘거나 그래서가 아니라 내 마음속으로 그리고 싶지 직접 보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만화를 때려치우고 싶었을 때? - 하고 싶은 만화가 생길 때까지 다른 것에 몰입했다


슬럼프는 누구에게나 있다. 매일 마감에 시달리며 사선을 넘나들어야하는 만화가의 숙명은 어찌 보면 매일 매일이 슬럼프일지 모른다. 이두호와 김동화 역시 쉬이 넘을 수 없는 슬럼프를 겪었고 그 기간 동안 좌절과 극복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활동 무대를 확장해 내는데 성공한다. 



그림  슬럼프에 빠졌을 때를 떠 올리며 웃는 김동화, 이두호


이두호 : 당시 내게 만화는 그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생활의 방편이었어요. 그 때 ‘소년중앙’이라는 매체에서 주로 일했는데 그 때는 잡지사에서 원하는 데로 해줘야했던 때였어요. 그러다보니까 안해야 할 일도 하게 되고 그랬어요. 그런 생활을 10년 넘게 하고 있다 보니 이게 뭐하는 건가 싶더라고요. 그 전에 화가에 대한 꿈이 있었는데 만화 그리는 것 때문에 못하게 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친구인 한희작에게 일을 맡기고 본격적으로 유화를 그렸어요. 

2년 간 맘껏 그려봤어요. 그렇게 하고나니까 이제 만화가 그리고 싶더라고요. 그러면서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해야겠다고 했죠. 4평 밖에 안 되는 화실에서 100호짜리 유화를 그렸어요. 처음에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좋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살풀이를 한 거 같아요. 후회 없이 해 본거죠. 이제 그런 그림 그릴 생각이 안 나니까. 

김동화 : 저도 내가 이 일을 왜하고 있지 싶을 때가 있었어요. 잡지사에서 요즘 강시가 유행이라며 강시만화를 하고자 해서 하게 됐는데 이게 또 그런대로 인기가 있어서 계속 하게 됐어요. 참 천박한 발상이었어요. 

내 자신이 너무 싫었고. 애들이 좋아하니까 내가 더 비참해지고 한심했어요. 밥 먹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 싫었지요. 이럴 거면 장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장사할 곳을 찾으러 다니기도 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혼자서 서편제를 보러갔어요. 별다른 기대 없이 봤는데 한국의 풍경과 사람이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그 때 이런 걸 그려야겠구나 싶었지요. 

박석환 : 시대적 배경도 작용했을 것 같습니다. 민주화를 요구했던 시대와 산업화 이후에 국제화를 요구했던 시대적 요구가 작품에 반영되었거나 선생님들의 작품을 통해서 그런 요인들을 찾고자 했던 것 같은데요. 

이두호 : 정치적으로 힘겨운 시기를 살았지만 꼭 그런 부분을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요. 그저 옛 것에 관심을 갖고 있다 보니까 옛 이야기 중에 요즘도 이런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그 부분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있게 찾아보게 된 거지. 그리고 이왕이면 우리 것, 우리 이야기를 하자고 했을 뿐이지요. 작품을 하면서 이걸 그리면 앞으로 어떻게 평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보지는 않았어요. 다만 그렇게 읽어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그냥 고맙게 생각하고 있지요. 

김동화 : 나 역시 어떤 큰 의도를 지니고 작품을 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내가 이런 작품을 할 때 그런 생각은 안 했어요. 《서편제》를 봤을 때 비로소 우리 것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 것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걸 언론이나 평론가들이 한국적이라고 해준 것 같고 우리 것을 세계에 알리자고 할 때 마침 내가 했던 작품이 주목 받았던 것 같아요. 


앞으로의 창작 방향은? - 내 맘대로 또는 죽기 살기로


이두호와 김동화는 더 이상 작품을 하지 않아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이다. 후속작품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이전의 걸작을 넘어 설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만큼 강력한 작품을 해낸 바 있다. ‘머털이’ 또는 ‘빨간자전거’로 영원히 기억될 것인가. 아니면 한 번 더 자신의 대표작을 스스로 바꿔내기 위해 도전할 것인가. 어느 쪽이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림  김동화, <빨간자전거> 중


김동화 : 어떤 작품을 할 때나 죽기 살기로 했어요. 그래서 다시 그 일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했지요. 그러니까 내가 한 일을 반복하는 일도 없어요.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아서 그 전의 일들로 돌아갈 생각은 없어요. 

그동안은 건강문제도 있고 해서 작품을 좀 쉬고 있었어요. 그리고 좀 비우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요. 한 2년간은 집을 옮기고 화실을 공사하는데 시간을 썼어요. 인부들과 함께 직접 공사에 참여하면서 건물과 조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배우고 익혔어요. 내가 안 해 봤던 것에 나를 던져놓고 있었지요. 저는 길을 잃어버려야 길을 찾는다고 생각해요. 그간의 작품에 대해서는 완전히 잃어버린 샘이죠. 

요즘은 가끔 손자들을 봐요. 너무 예쁘더라고요. 그런데 뭘하고 놀아줘야 좋을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생각을 해봤죠. 나처럼 아마추어 할아버지들이 가끔 손자를 돌보면서 생기는 일을 작품화하면 어떨까 하는. 일종의 손주육아만화라고 할까요. 내 또래들을 위한 만화를 해보고 싶어요. 

눈 때문에 고민이 많아요. 할 일은 많은데 원시에다 난시이다 보니까 안경을 써도 불편하고 벗어도 불편해요. 손에는 이상이 없는데…. 



그림  <이두호의 머털이 한국사> 중 

이두호 : <이두호의 머털이 한국사>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오래 걸려요. 10권으로 계획했는데 이제 8권이 나왔으니. 아직 멀었어요. 

옛날부터 한국사를 한번 하자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자신이 없어서 안하다가 이제 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시작했죠.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만 작업하다가 고조선부터 시작해서 쭈욱 해오다보니 앞뒤 관계를 좀 알게 됐어요. 마치 산위에서 본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손이 너무 많이 가요. 

내가 좀 힘을 줘서 그리는 스타일이어서 그런지 손이 많이 아파요. 직업병 같아요. 눈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사인회 같은 거 할 때 캐리커처를 못 그려줘요. 앞에 앉은 사람을 보려면 안경을 써야 하고 그리려고 종이를 보려면 안경을 벗어야 보이니까. 허허허. 

일단 작품 끝나면 다른 작품을 생각하지는 않고 그냥 돌아다니려고 해요. 차에 각종 그림 도구들을 넣고 마구 돌아다니면서 그림여행을 가 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유람만화 같은 게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박석환 : 두 분 선생님께 만화란 뭘까요. 또는 만화를 정의 내리신다면.  

김동화 : 만화는 간식이라고 생각해요. 보면 즐겁고 행복한 것이 만화죠. 하지만 만화는 어느 경우에도 천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내 개인적으로는 품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두호 : 만화는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죠. 만화가는 세상을 자기 맘대로 그려 낼 수 있어요. 물론 독자들도 자기 맘대로 읽을 수 있어야겠죠. 

박석환 : 귀한 시간을 내주신 두 분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 벌써 18회째이고 서울시가 1999년 서울애니메이션센터를 개소했으니까 15년이 훌쩍 넘었네요. 작년에 만화의 거리인 ‘재미로’가 만들어지고 만화문화복합공간인 ‘재미랑’까지 생겼어요. 만화와 관련되어 있는 내외부 환경이 많이 달라졌는데요. 

이두호 : 명동에 자주 나올 일은 없는데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생기고 나서부터는 간혹 오게 되네요. 거기에 만화의 거리가 조성되고 만화문화복합공간도 생기고 하니까 보기도 좋고 이용하기도 편하고 아주 좋아요. 공무원들한테 매일 심통만 부리고 그랬는데 이제 좀 잘해줘야겠어요. 

김동화 : 어떤 일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인데 공공에서 직접 나서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해주니까 얼마나 좋아요. 도시디자인분야나 문화나눔 등의 분야에서 만화가 참 가치 있게 쓸 곳이 많아요. 이런 것들을 서울시와 서울산업진흥재단이 나서서 해주니까 좋지요. 이제 이렇게 조성된 공간과 진행된 사업들이 단기적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가능하게 발전될 수 있도록 만화계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지요. 물론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도록 관련 기관에서 중재 역할도 잘해야 할 거 같고요.


그림  머털도사를 그리고 있는 이두호


그림  재미로 초대 메시지를 적고 있는 김동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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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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