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칠순 현역 만화가 허영만의 비밀, 2015.11.06

칠순 현역, 만화가 허영만의 비밀



아직도 진화하고 있는 허영만


만화가 허영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1947년 전남 여수 출신으로 1965년 상경해 만화계에 입문했다. 입문 10년 차인 1974년에 소년한국도서의 신인만화공모에 당선되며 공식 데뷔했다. 짧지 않은 문하생 생활을 거치면서 스승의 만화를 그렸지만 같은 해 한국형 히어로물이라 할 수 있는 <각시탈>을 발표하며 단숨에 주목 받는 만화가가 됐다. 이후 40년이 훌쩍 넘은 세월동안 허영만은 한국만화를 대표하는 만화가로 손 꼽혀왔다. 지금까지 그린 작품 수는 기록될 만한 것만 215타이틀이다.

80년대에는 영화로 제작된 권투만화 <카멜레온의 시>, TV드라마로 제작된 기업극화 <퇴역전선> 등 주로 성인 취향의 작품을 발표했다. 90년대 초에는 애니메이션화 되기도 했던 <날아라슈퍼보드>, <망치> 등 아동 취향 작품을 발표했고 90년대 중후반에는 정우성이라는 배우를 탄생시킨 영화 <비트>의 원작을 발표하면서 청소년 만화를 그렸다. 독자 타켓층이 명확한 만화계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가족 삼대가 찾는 만화가’가 된 것이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부터는 도박과 현대사를 다룬 <타짜>, 한국의 맛을 일깨운 국민만화 <식객>, 관상을 소재로 한 <꼴>, 커피를 소재로 한 최근작 <커피 한잔 할까요?>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현장 취재와 지식정보를 바탕으로 전문소재만화를 그리고 있다. 칠순을 목전에 둔 지금도 신문에 매일 4페이지씩 연재하면서 ‘나는 아직도 진화하고 있다’고 말하는 현역 만화가, 그가 허영만이다.


예술의 전당이 허락한 첫 번째 만화가


허영만은 다양한 작품세계를 통해 ‘가족 삼대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만화예술가’이다. 출판 중심의 만화산업을 ‘영화·방송·캐릭터 산업으로 확장시킨 문화산업인’이고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철저한 자기관리와 꾸준한 생산력으로 자기 자리를 지켜온 전문 직업인’이다. 그리고 이른바 ‘허파(또는 허영만패밀리)’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한 활동력을 보여주고 있는 ‘후배 만화가들을 키운 만화 스승’이기도 하다.

이런 허영만의 첫 번째 개인전이 예술의 전당(한가람디자인미술관, 2015.4.29~7.19)에서 개최된다. 규모 있는 만화축제의 특별전 형식으로 ‘허영만 전시’가 여러 차례 열렸지만 순수한 개인전은 처음이다. 그리고 한국예술을 대표하는 ‘예술의 전당’이 만화가의 전시에 무대를 내준 것 역시 처음이다. 물론, 그가 보통 만화가가 아니라 ‘허영만’이라는 시대적 아이콘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허영만이 길을 냈으니 이제 예술의 전당에 만화가의 자리도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도 많다. 그러고 보면 허영만은 늘 ‘새로운 만화의 길’을 열었고 ‘만화가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지점’ 까지 올라가서 자신의 위치를 찾았다. 이번 전시회 역시 허영만의 이런 면모와 역할 그리고 문화사적 평가에 집중하고 있다.

전시회는 허영만의 대표 만화를 원화와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꾸몄고 원작의 힘과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으로 미디어믹스 된 사례를 다양한 소품과 함께 제시했다. 여기에 최근 가장 ‘핫’한 만화가로 손꼽히는 <미생>의 윤태호 존도 마련됐다. 윤태호는 허영만에게 만화를 배운 애제자 중 한명으로 수많은 만화가를 양성해 낸 ‘허영만 화실’의 역할과 역사성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와 함께 각시탈, 사오정, 미스터고 등 허영만 만화의 유명 캐릭터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체험존이 마련됐고 허영만 만화에 직간접적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들이 오마주 형식으로 작업한 조각과 팝아트 작품 등도 전시됐다.



그의 비밀은 그의 일상에 있다


이번 허영만전의 부제는 ‘창작의 비밀’이다. 40년 동안 대중의 사랑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은 이 작가, 수많은 인기작품을 창작해냈고 그중 많은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로 재탄생해 대중을 울고 웃게 했던 이 작가에게는 뭔가 남다른 ‘창작의 비밀’이 있을 것이라는 물음이다. 전시는 여러 작품의 창작 사례와 탄생 비화를 바탕으로 이 ‘비밀’에 접근하려 한다. 하지만 그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은 명쾌하지 않다. 허영만이라는 창작자의 머릿속을 끄집어내 펼쳐보지 않고서야 애당초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시회 한 공간에 소박하게 마련된 코너에서 ‘비밀’의 답과 만날 수 있다.

하루 24시간을 그려 논 생활기록표, 매일 매일의 단상을 기록한 만화일기, 작업실에 붙여둔 문구와 각종 메모 등이 전시장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다. 일하는 사람으로서 지키고 통제해야 할 시간과 자신의 열정을 유지시켜줄 문장, 새로운 작품을 위해 쉼 없이 투자하고 배움에 게으르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 등 작은 벽면에는 허영만의 일상과 일에 대한 속내가 훤하게 드러나 있다. 40년 ‘창작의 비밀’은 넓은 전시 공간이나 그의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일상’ 속에 있었고 그가 손으로 적어둔 메모 용지 위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중 만화일기 형식을 취한 메모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세 이후 평생 전쟁하는 기분으로 살아왔다. 이번 전쟁은 매우 중요하다. 하하 언제는 중요한 전쟁이 아니었나?’

평범한 문장이지만 전쟁하듯 살아 온 자신의 삶과 여전히 전쟁하는 자세로 일하고 있다는 자신의 일상을 유머러스하게 묘사한 것이다. 이 메모는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과 시간을 한 순간도 허투루 쓰지 않고 오로지 창작이라는 역할에 집중해서 사용해 온 사람이 여전히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선언이자 맹세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일상 속에서 드러낸 ‘일에 대한 태도’이고 여직 감추어뒀던 직업 창작자로서의 ‘영업 비밀’이다. 허영만은 그런 ‘사람’이다. 그의 비밀 역시 그 안에 있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사진출처 : 허영만展 홈페이지(www.huryoungman.co.kr , PLAI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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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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