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무 사귀기는 하늘의 별 따기여
전 국토의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산과 바다를 배경으로 전통가옥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골의 모습은 온대간대 없고 어디를 가나 아파트와 아스팔트, 대형마트가 들어서 있다. 국토연구원의 한 발표에 의하면 2050년이면 ‘우리나라의 도시화율이 95%에 달해 사실상 전국토의 도시지역화가 이뤄진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시골이라는 개념 속 공간은 사라지고 있거나 사라졌을지 모른다. 그 덕에 모두가 잘 살게 됐다면 그 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라지는 공간만큼 그 공간이 만들어냈던 이야기도 같이 사라져 버릴까 아쉽다.
어렸을 적에 시골에서는
<꼬깽이>는 1971년 전라남도 고흥에서 태어난 작가가 몸으로 경험하고 마음으로 새긴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아빠 어렸을 적에’ 이야기의 여성판이라고 할 수 있다. 남자들보다 더 개구쟁이인 꼬깽이는 하루 종일 동무들과 뛰어노는 게 일이다. 봄에는 산에 올라가 진달래를 따 먹고, 여름에는 냇가에서 물놀이를 한다. 가을이면 감 따러 다니고 겨울이 오면 눈썰매를 타고 노느라 바쁘다. 소꿉놀이보다는 전쟁놀이를 좋아하고 사내아이들과 싸울 때면 과감하게 박치기를 날리는 깡순이지만 귀신 소리에 오들오들 떨고 엄마 품을 찾아 울고 마는 천상 소녀다.
동무들과 치고받고 노느라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지만 속 깊은 일곱 살 꼬맹이에게도 고민은 있다. 농사일로 생계를 꾸리는 엄마와 아빠, 식구들을 위해 서울로 돈 벌러 간 큰오빠와 둘째오빠를 생각하면 고개가 절로 숙여지고 한숨만 나온다. 사춘기를 겪고 있는 큰언니와 노래 잘하는 둘째누나 날마다 티격태격하는 막내오빠 등등. 꼬깽이에게 시골은 드넓고 풍요로운 놀이터였지만 총 10명이나 되는 꼬깽이네 식구들에게 시골은 먹고 살길 없는 궁핍한 공간이었다.
시골 소녀가 가장 힘겨웠던 일은
시골 동무들을 뒤로하고 식구들과 함께 서울에 올라 온 꼬깽이. 해가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온 마을을 뛰어 다녔던 꼬깽이는 이제 달과 가장 가깝다는 동네에서 쓸쓸한 입학식을 맞이한다. 잘 차려입은 아이는 엄마 손을 잡고 입학식에 가지만 꼬깽이는 하얀 손수건 하나 가슴에 달고 혼자 입학식장을 향한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사투리를 쓰는 작은 소녀, 말끔한 서울 아이들은 꼬깽이를 놀려댄다. ‘나가 젤루 잘났소!’하고 외쳐보지만 가난한 시골 소녀를 바라보는 동무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거기다 선생님까지 부모님을 무시하는 이야기로 꼬깽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래도 기운찬 꼬깽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동무들 곁에 서고 쌀쌀하던 서울아이들과 동무가 되어 엎치락 뒤치락 학교생활을 시작한다.
꼬깽이의 서울 생활을 가장 힘겹게 한 것은 동무 사귀기였다.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는 서울 동무 사귀기가 시작되면서 꼬깽이의 이야기는 다시 시골에서처럼 활기를 얻는다. 하지만 그런 꼬깽이를 바라보는 것은 어딘가 불편하고 짠하다. ‘꼬깽이’는 농사지을 때 단단한 땅을 파는데 쓰는 곡괭이의 사투리이다. 시골소녀 꼬깽이는 그렇게 단단한 세상을 온몸으로 부딪쳐 이겨내고 조금씩 도시의 삶을 배워간 것이다. 그래서 웃고 있는 꼬깽이가 힘겨워 보이고 당당하려고 애쓰는 꼬깽이가 더 안쓰러워 보인다.
도시화 되지 않은 공간에서의 놀이와 성장
작가 김금숙은 그렇게 어른이 됐다. 70년대에 농촌에 태어나서 먹고 사는 문제로 서울로 이사 온 수많은 사람들 틈에 있었다. 80년대에는 민주화 운동으로 생각이 달라진 사람들 속에서 살았고 90년대에는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달라진 생활환경 속에서 살았다. 시골을 떠나 서울에 오면 모두 행복해 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작가에게 펼쳐진 서울은 숨 쉴 틈 하나 없는 단단한 땅이었다. 꼬깽이처럼 하나하나 온 몸으로 부딪쳐 숨 쉴 공간을 만들어가야 하는 힘겨운 도전이었다. 물론 이는 김금숙 작가 개인의 삶이기도 했지만 그 시절을 함께 살았던 30대 엄마, 아빠들의 삶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에 담긴 웃기지만 슬픈 모습은 작가의 것이거나 주인공 꼬깽이 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다.
프랑스에서 긴 유학 생활을 한 작가는 그 곳에서 힘겨웠던 시절을 떠 올리며 <아버지의 노래>라는 자전적 만화를 불어판으로 발표한 바 있다. 한국으로 돌아 온 후에는 그 이야기 중에서 유년시절의 ‘놀이와 성장’에 집중한 이야기를 ‘개똥이네 놀이터’라는 잡지에 연재했다. <꼬깽이>는 이 연재분을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다. 어느 한 적한 시골과 개발되지 않은 서울의 달동네가 소탈한 수묵화로 기록되고 그 공간에서 펼쳐지던 놀이가 남도의 구수한 사투리와 함께 살아났다. 작가는 시골소녀 꼬깽이를 통해 도시화 되지 않은 공간 속에서 혼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놀이들 속에서 자신이 성장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도시화 되지 않은 그 공간의 소중함에 대해서, 그 놀이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라 말한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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