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이런 영웅은 싫어(삼촌 글/그림), 도서관이야기,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2014.06.01

특기가 초능력이면 뭐 할 건데


주인공 나가는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고등학교 2학년생이다. 나가가 보통사람과 다른 것은 눈을 감고도 볼 수 있다는 것, 집에서 학교로 순간이동 할 수 있다는 것, 필기구가 알아서 움직이도록 조정 할 수 있다는 것 정도이다. 투시, 텔레포트, 염력 등 엄청난 능력을 지녔지만 수업시간에 낮잠 자기, 정시 등교하기, 숙제 대신시키기 등에 활용하며 평범하게 살고 있다. 그런 나가에게 한 단체에서 찾아와 ‘정의실현’을 목적으로 히어로가 될 것을 권한다.


영웅이 필요한 시대


위기 탈출 방법을 알려주는 TV프로그램이 장수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는 만화책 시리즈가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닥쳐 온 사고 앞에서 많은 사람들은 대처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사람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자연 재해 앞에서야 겸손해 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이기심과 무책임, 안전 불감증이 만들어낸 인적 재해에 대해서는 허망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책임이 있는 사람이나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나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지 못했고 보호하지 않았다. 이처럼 구호시스템이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 사회 불안이 시스템으로 통제되지 않는 사회는 이를 대신할 ‘영웅’을 필요로 하게 된다. 사람 이상의 능력이 있는 사람, 불안한 상황을 단숨에 안정화 시킬 수 있는 능력자를 찾게 된다.


한국형 영웅의 엉뚱한 활약



삼촌이라는 필명을 쓰는 작가 이지은의 <이런 영웅은 싫어>는 영웅이 필요한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구미호나 인어공주처럼 영력을 쌓아 사람으로 변한 ‘영물’이 있고 이들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나 특수한 능력을 지니게 된 ‘혼혈’이 있다. 그리고 마계를 통치하는 ‘악마’와 인간 이상의 능력을 지닌 ‘특기자’들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이런 영웅은 싫어>는 단순화된 선악구조 안에서 다양화 된 인간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다룬다. 그리고 지금 이곳의 사회질서와 안녕을 해하는 악당에 맞서 싸우는 한국형 영웅들을 그려낸다.

주인공 나가의 특기는 초능력이다. 다른 사람들이 달리기나 노래를 잘 하는 것처럼 나가의 초능력도 이 세계에서는 특수하다기 보다는 조금 ‘다른 특기’일 뿐이다. 영웅이 된 다는 것 역시 영화에서처럼 멋스러운 것이 아니라 타인의 안녕과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자신의 삶을 버리고 굳은 일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가는 ‘이런 영웅은 싫어’라고 외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고자 한다. 이런 나가에게 히어로 기관인 ‘스푼’의 서장 다나와 판다 혼혈인 귀능이 찾아온다. 특기자인 나가에게 귀능은 히어로가 되어서 ‘정의사회를 구현’하자고 하지만 나가는 이를 거절 한다. 하지만 다나가 스푼의 히어로들은 공무원 신분으로 급여도 받고 봉사활동 점수 3천점이 주어지며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고 하자 곧바로 스푼의 조직원이 된다. 영웅이라기보다는 입시와 취업에 눈을 뜬 한국의 고등학생이다. 나가는 스푼의 최연소 히어로인 혜나와 까마귀 혼혈 사사와 함께 팀을 이뤄 악의 조직인 ‘나이프’에 맞서 싸운다.


초! 능력을 요구하는 사회에 진짜 필요한 능력은



<이런 영웅은 싫어>에서 나가가 벌이는 싸움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사건, 사고를 총망라한다. 영웅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서 도움을 주지만 간혹 전혀 상관없는 곳에 동원되어 ‘영웅의 시간’을 낭비하기도 한다. 나이프와 악당들이 벌이는 사건, 사고 역시 정확한 목적이 있을 때도 있지만 대다수는 ‘묻지마 테러’에 가깝다. 그들이 벌이는 사건, 사고는 언제, 어디서, 어떤 이유에 의해 벌어질지 모른다. 그 때문에 나가와 스푼의 영웅들 역시 사건, 사고가 있을 때는 ‘필요한 영웅’이 되지만 사건, 사고가 없을 때는 ‘쓸모없는 예비 인력’이 되고 만다. 이 때문에 조직의 해체를 걱정한 히어로들이 비밀조직을 결성해 사회를 위협하기도 하다. 영웅들은 나쁜 일이 발생해야 자신이 필요해지는 부조리한 상황에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 한 세계관과 초능력 영웅들을 다룬 작품이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닥친 문제와도 연결된다. 작품 속 세계처럼 우리 사회 역시 초능력을 지닌 영웅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비용이 발생하는 예방 활동에는 인색하다. 어찌 보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영웅의 ‘초능력’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안전’한 사회일 것이다. 대형사고가 벌어질 때마다 안전 불감증과 인재를 지적하지만 사고가 수습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재 자리로 돌아온다. 안 될 일이다. 지금 우리사회에 필요한 초능력은 ‘예방능력’이 아닐까.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유년시절 이두호의 만화로 한글을 깨우치고 이상무의 만화로 울지 않는 법을 배우며 성장했다. 이현세의 만화를 보며 도전하는 남자의 매력을 알았고 허영만의 만화를 통해 현명한 어른으로 사는 방법을 찾았다. 스포츠서울 신춘문예로 등단해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고 대학에서 만화를 가르친다. 저서로는 <코믹스 만화의 세계>,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홈페이지는 www.parkseokhwan.co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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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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