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아이들의 권선생님(호우 글/그림), 도서관이야기,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2014.03.01

누구나 가르칠 수 있지만 

아무나 선생님이 될 수는 없다


전교생 5명, 선생님은 교장과 담임 2명뿐인 시골의 한 분교. 담임을 맡았던 여자선생님이 결혼휴가를 떠나게 되면서 임시로 남자담임선생님이 서울에서 내려온다. 아무도 오려고 하지 않는 시골 분교에 ‘멀쩡하게 생긴 선생님’이 자원해서 내려오자 여자선생님은 반가운 한편 왠지 걱정스럽다. ‘아이들만 두고 갑자기 그만두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뭔가 사연이 있어서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도 생긴다.




분노사회가 되어버린 학교


매일 아침 신문과 방송은 학교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사고를 전한다. 아낌없이 모든 것을 주고 떠나는 위대한 스승의 참 모습, 학업에 충실한 학생의 성과나 사회적 미담 등도 있지만 대개는 굳이 열거하고 싶지 않을 만큼 부끄럽고 낯 뜨거운 일들이 많다. 학교 내 폭행이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학생 간 폭행 사건이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관계가 복잡해졌다. 가령 선생이 학생을 과도하게 체벌하면 이에 불만을 품은 학생이 선생을 경찰에 고발하고 이를 알게 된 학부모가 다시 선생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행한다. 학교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 관계자들까지 학교 폭행 사건의 당사자가 되고 있다. 

먼저 산 사람(先生)이어서 가르치는 위치에 있고 배우는 사람(學生)이어서 따라야 하는 위치에 있는 것인데 여기서 일탈하는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어떤 기준을 잃어버린 사람들처럼 학교는 강압과 반발, 분노와 광란의 도가니가 되어 있다. 학교는 이제 분노를 통제하거나 조정하지 못하는 이들이 이를 폭발시키는 현장이 되어버렸다.


가르치지 않고 도와주는 사람



결혼 때문에 잠시 학교를 떠나야 하는 여선생 대신 임시 담임선생을 맡은 남자의 이름은 ‘하권’이다. 여선생의 의구심처럼 하권은 평범한 신출내기 교사가 아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교육대학교에 입학해 교사자격시험에 합격한 노력파이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학교가 아닌 폭력조직을 택했던 행동파이다. 명석한 두뇌로 빠르게 조직의 보스가 된 하권은 불법 폭력조직을 적법한 회사로 바꾸고 남의 것을 빼앗아 살던 조직원들을 일 한 대가로 가족과 생활하는 회사원으로 바꿔 놨다. 하지만 현재는 살해 용의자로 경찰에 쫓기는 신세. 은닉 장소로 불현 듯 학교를 선택한 하권은 ‘형님’이나 ‘사장님’ 대신 ‘선생님’이 된다.

하권은 성을 앞에 붙인 하선생님이 아니라 이름을 앞에 붙인 권선생님이다. 선생의 권위를 내려놓고 이름을 앞세워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자신의 교육관을 드러내지 않고 아이들을 지켜보고 그들이 처한 고민을 함께 했다.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도와주는 사람이고 문제를 내주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이다. 물론 자신의 문제도 어찌하지 못할 만큼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다. 남의 문제에 발 벗고 나설 처지도 아니어서 권선생님은 아이들의 뒤에 서있다. 그런데 대신 나서주지 않더라도 모른 척 돌아서지 않는 것만으로, 같은 방향을 향해 있는 것만으로 권선생은 ‘아이들의 권선생님’이 된다.

대기업 손자지만 병 때문에 요양 와 있는 강산, 가정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차시루, 빈곤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고 있는 서담·서솜 남매, 가정 형편상 할머니 댁에서 살고 있는 신서리 그리고 할머니가 기르던 개 멍구.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해 가던 권선생은 서서히 드러나는 자신의 문제 앞에 서게 되고 그 것이 곧 아이들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오만한 편견대신 이해와 배려 필요



학교가 삶의 가치와 학문을 가르치는 선생님보다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해결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쉽게 수긍할 수 없는 일이다. 폭력조직의 두목이자 지명 수배자가 선생님이 됐다는 ‘만화적 설정’ 역시 다소 무리해 보인다. 애당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기존의 방식으로는 학교의 근본적 문제인 학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학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학교 교육이 정상화 될 수 없다는 점에서 본다면 선생님의 역할 중 하나를 ‘해결사’로 설정한 이 작품은 일정한 당위성을 확보하게 된다. 그리고 이 작품이 전달하는 또 하나의 의미는 ‘편견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오만과 편견>이라는 소설로 유명한 제인 오스틴은 작품 중에서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오만이 편견을 낳고 결국 사람들 간의 관계를 나쁘게 한다는 것을 상식 수준에서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본 것만으로, 자신이 아는 선에서 다른 사람을 평가하려는 본성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아이들 역시 처음에는 여선생처럼 권선생에 대한 의구심을 품는다. ‘선생님 맞아요?’라고 물어 볼 정도로 ‘아이의 눈은 어른보다 솔직’한 편견에 사로 잡혀 있다. 그러는 사이사이 하나 둘 사건이 터지고 ‘다른 어른’들과는 다른 권선생의 판단과 행동에 아이들은 ‘이상한 사람’이라는 표시를 단다. 

임시로 잠깐 다녀가는 사람에게 일부러 정을 붙이려 하지 않던 아이들이 이런 권선생을 선생님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의 학교는 편견이 아닌 이해의 공간이 된다. 권선생이 풀어야 할 자신의 문제 역시 상대에 대한 이해가 아닌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신이 본 것, 아는 것으로만 세상을 보려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과 상황을 먼저 확인하고 상대방을 평가했더라면 받지 않았을 상처였던 셈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유년시절 이두호의 만화로 한글을 깨우치고 이상무의 만화로 울지 않는 법을 배우며 성장했다. 이현세의 만화를 보며 도전하는 남자의 매력을 알았고 허영만의 만화를 통해 현명한 어른으로 사는 방법을 찾았다. 스포츠서울 신춘문예로 등단해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고 대학에서 만화를 가르친다. 저서로는 <코믹스 만화의 세계>,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홈페이지는 www.parkseokhwan.co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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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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