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 추억하지 말고 변신을 응원하라, 대학신문, 2007.3.4

만화계의 불황을 이야기하는 자 누구인가? 만화계의 문제를 논하는 자가 정녕 누구인가? 만화는 영상문예 장르의 위대한 스승이자 디지털미디어 시대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다. 만화가 인쇄매체의 좁아터진 울타리에서 뛰쳐나와 문학 영화 방송 컴퓨터 인터넷 등 미디어의 전 영역에 걸쳐 보폭 큰 움직임을 벌이고 있는 통에 만화의 희망을 논하지 아니하고 그 종말을 선언하며 흙탕물을 만들고 있는 자. 우리 만화계의 문제는 바로 그런 자이다. 

그 자는 만화를 만드는 자이고 만화를 추억하는 자며 만화에 바친 몽정을 자랑하는 자이다. 그래서 만화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자다. 머리보다 비대해진 몸둥이를 싫어하고, 몸보다 커져가는 머리를 싫어한다. 만화가 인쇄매체의 버려진 지면 속에서 한 숨 쉬고 있을 때를 그리워하고, 손가락에 모터라도 달은 듯 돌려대는 팬 끝에서 나오는 만화를 값있다 평한다. 때거지로 달라붙어 만들어낸 작품 한 권을 5cm 폭도 되지 않는 이름 석자 속에 구겨 넣고 제 것이라 우기며, 이것이 작가의 권위고 예우 받아야 마땅할 지위라 여긴다. 만화를 추억하고 자기들 안에서만 죽어있는 만화를 추모한다. 이처럼 펄떡이며 하늘 향해 치솟는 만화의 현재는 받아들이지 않고 골방에 틀어박혀 똥지 위에 인쇄된 만화 한잔에 새우깡을 곁들이고 있다. 나는 오늘 그런 자들의 고려장을 치르러 간다. 

지금 만화는 타고난 열정과 창조력으로 벅찬 내일을 향해 달리고 있다. 세상의 온갖 이미지들은 만화의 천국이 그리 멀리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거리에는 캐릭터가 있고 모니터에는 아바타가 있고 책 속에는 만화가 있다. 이런 터에 만화가 달리면서 흘린 의미있는 땀방울들. 이 값진 땅방울들이 만화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만화의 내일을 위했건만 지켜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운 까닭이라면 이해하자. 그러나 그 내일에 끝까지 편승하지 못하고 굴러 떨어지는 것이 억울해서, 바닥에 드러누워 증발해 버리는 것이 분통해서 하는 곡이라면 멈추라. 이미 앞서 만화를 위해 땀 흘리고 사라져간 무수한 이들의 역할을 무식한 집단의식으로 치부하지 말라. 수년간의 준비 끝에 제 갈 길 달리는 선수의 시합을 몹쓸 오노마냥 망치지 말라. 그리고 동네 패싸움에 불과한 것을 마치 민족 불열이라도 일어난 듯 확대하지마라. 만화는 살아있고 달리고 있다. 다만 만화의 한 영역에 불과한 만화전문잡지 시스템 하의 출판만화 시장에 문제가 있을 뿐이다. 

현재 출판만화시장의 주류처럼 논의되는 만화전문잡지 시스템은 일본의 것을 그대로 옮겨와서 제작원가만 우리 사정에 맞춘 것이다. 저임금 고노동, 박리다매 원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작가 출판사 총판 대여점(또는 만화방과 일부 서점) 독자로 구성된 생산소비구조의 어느 한 쪽이라도 반발한다면 시장논리에 의해 사라질 수밖에 없는 바람 앞의 병풍 같은 꼴이다. 병풍 앞에 도미노 쌓고 부러진 팔목에 파스 붙이자는 것에 어찌 동의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좋은 시절에는 최대 구매자였던 대여점을 지금 와서 ‘팽’처리 하자니? 만화잡지 시스템 하의 출판만화시장은 대여점에 필요한 상품을 공급하는 것에 맞춰져있다. 이를 벗어나면 출판만화시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쪽은 논외로 이야기되는 것을 서러워하며 무수한 성공신화를 구축하고 있고, 저편의 인력이 참여해주길 소망한다. 잡지 시스템을 지붕삼고 있는 이들이 이를 터부시 할 뿐이다. 

차라리 병풍 치우고 바람 앞에 설 수 있어야 한다. 수산시장 앞에서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할 것이 아니라 새로 땅을 파서 감나무 심고 배나무를 심어야 할 때이다. 출판만화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희망이 있다. 문제아래 뭉쳐있지 말고 희망 위에 우뚝 서라. 


(글) 박석환/ 만화평론가 

대학신문, 2002-03-11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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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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