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가 컴퓨터 게임으로 만들어진다, 코코리뉴스레터, 1998.06.25



 -원작만화의 변용과 훼손... 만화창작 경향 변화- 


어떻게 문명을 파괴하지 않고, 과학이 진보할 수 있는가?


우리보다 월등한 외계의 존재를 만난다면 제일 먼저 묻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외계 존재와의 교신을 통해 ‘신(神)의 문명’과 ‘과학의 문명’에 대한 논의를 던졌던 영화 『콘텍트』에서 주인공 조디포스터가 받았던 질문이다. 과학자로 등장하는 조디포스터는 제법 흥분된 어조로 ‘어떻게 문명을 파괴하지 않고, 과학이 진보할 수 있었는가?’를 묻고 싶다고 답했다. 

그의 질문은 수많은 논의를 가능하게 한다. 그 중에서도 필자는 ‘쓸모에 의해 과학기술이 개발되던 때’와는 다르게 ‘과학기술의 개발에 의해 쓸모가 생기는 현상’에 주목한다. 과학기술의 고색 창연한 발전은 기존에 생성됐던 문화의 양상을 변모시킨다. 물론 이러한 경우의 변화는 대개 양성적인 영향으로 해석되는 것이 통례다. 경제, 산업적인 영향력으로 발생 가능한 문제점들은 사전에 제거되거나, 고려되지 못하는 까닭이다. 

이와 관련 이즈음의 만화계도 새로운 과학기술과의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중이다. 만화를 커뮤니케이션 산업 매체로 보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보다 더 유용하고 가치 있는 창작매체는 없다. 수많은 논의가 있었던 바대로 캐릭터의 산업화는 만화매체의 특성으로 인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이상의 평가를 받고 있다. 새로이 대두되는 매체들과의 교류 역시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하지만, 앞서 기술한대로 이러한 변화로 인해 치뤄야할 것들은 많다. 새로운 흐름이나 시도는 당연히 과거의 ‘어떤’을 폐기하고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만화의 고유함이 파괴되지 않고, 새로운 매체와 교류할 수 있는가?


최근 과학기술(컴퓨터, 정보, 통신)과의 교류로 나타나는 것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애니메이션이지만 이를 번외로 치면 홈페이지나 웹진, 통신서비스 등의 형태를 빌린 컴퓨터만화와 원작 만화의 컴퓨터 게임화을 꼽을 수 있다. 이중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원작만화의 컴퓨터 게임화를 중점으로 현실태와 문제점을 알아본다. 


컴퓨터 게임의 변천사는 컴퓨터의 발전과 호흡을 같이한다. 이제는 고전으로 치부되고 있는 MSX, PC엔진, 슈퍼페미콤 등의 에뮬레이터 게임에서부터 최신형 3D게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형태의 컴퓨터 게임이 만들어지고 있다. 장르 역시 대단히 다채로운 면을 보인다. 액숀, 슈팅, 전술/전략 시뮬레이션, 아케이드, 롤플레잉 등 게임의 형식/ 방법 등에 따라 세분화된 분류기준이 정해져있다. 컴퓨터 기기의 발달과 사용환경의 변천은 과거의 1인칭 시점형 게임(갤러그 등의 단순한 게임)에서 탈피, 복잡다단한 설정으로 진행된다. 과거의 게임이 판을 거듭하며 시간과 속도의 문제에 얽메여있었다면, 요즘의 게임-게임어의 게임시간이 곧 돈인 오락실용 게임과는 구분되는 개인컴퓨터용 게임-은 자체적인 이야기를 형성하고, 복잡한 규격화를 통해 비규격화를 가장하고 나선다. 이는 체험과 사유의 장을 만들고 있다. 또, 예전의 종/횡스크롤 형식의 게임(앞으로 전진하거나 옆으로 전진하는 형식)에서와는 다르게 대리물의 시점을 다양화하고, 입체적인 진행방식을 취하면서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고 있다. x축과 y축을 통해 평면적인 그림을 만들어내던 2D그래픽 방식에서 탈피하고, z축을 첨가시킨 폴리곤 방식으로 입체성을 띤 3D그래픽 게임이 주종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게임 내에서 유저(user) 대리물로 상징되는 인물 또는 특정기계, 즉 캐릭터의 쓰임이 부각됐다. 


익숙한 캐릭터를 등장시켜야 게임이 산다


다시 말하자면 컴퓨터 기기의 발전이 자연스레 캐릭터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게임 개발자들은 익숙한 캐릭터를 등장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만화는 게임화를 위한 준비단계를 용이하게 해주는 매체로 각광 받았다. 현재 연재되고 있거나 완간된 원작만화는 게임의 설정에 필요한 모든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또, 새로이 연재되는 만화의 경우 원작만화가 흥행기에 접어들었을 때쯤 제작 완료된 게임이 출시된다는 판매전략이 공식화되고 있다. 이웃한 일본의 경우 이미 이러한 체제가 시스템화되있다. 이것이 게임의 활성화를 거쳐 애니메이션 제작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하지만 국내 게임시장은 초입의 단계여서 그런지 검증 받은 작품들에 대한 게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먼저 원작만화를 기본으로 게임 개발에 전념하고 있는 단비소프트가 『마이러브』, 『까꿍』, 『뱀프*1/2』을 출시했고, 조재호의 『다이어트 고고』와 손태규의 『12지전사』의 게임화에 착수해있다. 또 밉스소프트는 박성우의 『8용신전설』을 올해 초 선보여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TGE는 이명진의 『어쩐지... 저녁』을 최근 출시했고, 『소년챔프』에 연재중인 『라그나로크』의 개발작업에 착수해있다. 에스티는 『협객 붉은매』와 『두치와 뿌꾸』를 오렌지소프트와 KCT는 『머털도사』와 『날아라 슈퍼보드』를 각각 출시했다. 이밖에 『바이오캅 윙고』, 『녹색전차 해모수』, 『영혼기병 라젠카』, 『소마신화전기』 등이 다양한 형태로 변형, 첨가되어 게임화되고 있다. 이러한 게임화에는 중소기업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반면 대기업의 잇속 빠른 참여도 눈에 뛴다. 『삼성영상사업단』의 경우 일본 캐릭터인 『크레용신짱』의 국내 히트를 계기로 『짱구는 못말려』라는 단순 액숀게임을 출시, 대작 게임에 버금가는 히트를 기록했다. 여기에 TV 방영을 시작한 애니메이션 『바이오캅 윙고』의 게임화에 착수하는 등 저연령층을 대상으로한 게임화에 불을 켜고 있다. 


게임에 익숙하지 못한 만화는 죽는다.


  게임의 유형을 보면 최근 유행하고 있는 롤플레잉 방식이 압도적인 가운데, 저연령층을 타겟으로한 단순한 형태의 액숀아케이드 게임들도 있다. 먼저 게임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는 대전형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발생되는 적을 이겨내는 것이다. 『어쩐지...저녁』, 『뱀프*1/2』 등의 게임이 대표적이다. 이야기는 대전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일뿐이다. 이런 게임 제작자들의 최대고민은 유저에게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하기보다는, 어떤 방식으로 적을 이길 것인가에 집중되있다. 즉, 왜 싸워야 하는가? 가 아니라 어떻게 이겨야 하는가? 가 문제인 것이다. 물론, 다양한 상황을 설정해놓고, 상황에 따른 선택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게 하는 게임들도 있다. 『날아라 슈퍼보드』, 『머털도사』 같은 롤플레잉 방식의 게임을 들 수 있다. 이런 작품들의 특징은 이야기의 단절감을 느끼지 않으려는 유저의 본능에 호소한다. 결국 이야기의 주요한 골자는 ‘엔딩 본다’는 표현처럼 게임의 끝을 찾아야 가능하다. 즉, 원작만화는 게임 속에서 유저에 의해 무참히 파괴된다. 또는 게임제작자의 특권에 의해 여지없이 분해되고 재조립되어서 기형의 작품으로 탄생한다. 『날아라 슈퍼보드』나 『협객 붉은 매』의 경우 폴리곤 방식으로 제작된 캐릭터는 몇 가지 특성들을 대입한 것을 제외하면 전혀 다른 모양으로 형상화되있다. 또한 대전을 이끌기 위한 설정으로 작품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도 불가결하다. 반대의 경우지만 원작자체가 화려한 액숀의 나열로 이루어졌던 『협객 붉은 매』가 대전 아케이드 게임이 아닌 롤플레잉 방식으로 제작된다고 했을 때 관계자들은 의아해했다. 작은 목각 인형 같은 붉은 매에게서 그처럼 화려했던(?) 액숀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은 까닭이다. 또, 액숀보다는 허영만 특유의 오밀조밀한 이야기와 재치있는 설정으로 인기를 모았던 『날아라 슈퍼보드』는 이를 활용하려는 게임제작자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재미를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결국 원작만화의 게임화는 원작이 게임화에 얼마나 충실한가에 따라 훼손 여부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미 완결된 작품이 아닌 게임과 동시에 창작되는 작품이나, 중반에 접어들면서 게임화되는 작품들은 만화의 특성보다는 게임의 특성에 따른 창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의 중요한 참고자료가 된 월간 게임지 《V챔프》 6월호에서 만화가 조재호는 자신이 현재 연재중인 작품  『다이어트 고고』의 게임화 계획에 대해 ‘게임 개발에 참여할 예정이며...다이어트고고를 그리며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게임화가 될까 연구중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12지전사』의 손태규 역시 게임화의 성공 이 연재될 만화에 미칠 영향에 대한 다짐이 조심스럽게 나타나고 있다. 


만화의 게임화는 좋다. 그러나 게임화를 위한 만화창작은 안 된다.


만화계에 애니메이션 열풍이 불면서 출판만화에서 영상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연출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이는 우리작가들의 작품 내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라 고무적인 현상일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본다면 출판만화 본래의 특성을 삭감하거나, 사라지게 하는 요인으로 분석될 수도 있다. 이 경우 나타나는 문제점은 액숀 묘사의 치밀성에 대한 걱정이었다.  모 주간지에 연재되었던 작품의 경우 한 달이 지나도록 동일한 상대와의 동일한 싸움이 끝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즉, 이야기는 없고 속도와 싸움만이 난무하게 된 것이다. 최근 원작만화의 게임화 열풍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은 대두 될 것이다. 그리고 앞서 지적한 것처럼 게임화 열풍은 추후 창작될 만화 작품의 내용적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타매체와의 연계는 만화의 전체적인 발전을 불러올 수 있지만 이로 인한 역기능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문화의 도입, 발전은 기존의 문화를 파괴하는 것이다. 서두에 기술한 조디 포스터의 궁금증 역시 이와 같다. 만화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가능한 모든 일이 실행 되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우리가 만들어왔던 만화를 파괴시키지 않고, 만화를 발전시키는가 하는 것이다.’

조디 포스터에게도 그 답을 들려주는 이는 없었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코코리뉴스레터, 한국만화문화연구원, 1998. 06. 25 게재

만화시비탕탕탕, 초록배매직스, 1999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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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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