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지옥에서 보낸 한 철, 히스테리, 1998.03.20



돌이켜 생각하면 지난날, 나의 인생은 향연이었다.

잔치에는 모든 마음이 열리고 온갖 술들이 흘렀다.


지난 여름은 혹독하리 만큼 뜨거웠다. 일부 민간단체와 편협한 식자들의 미디어 놀음으로 일진회의 행동지침서가 되어버린 만화’. ‘일진=만화라는 저주스러운 짝짓기는 하이에나처럼 몰려드는 언론과 이를 신봉하는 무리들에 의해 설상가상의 지경까지 이르고 말았다. 제철도 아닌 터(그간엔 매년 5월이 만화탄압의 적기였다)에 계획된 만화사냥은, 몸으로 막아내는데 이력이 들었던 기성작가진영 마저 분개하게 만들었다.

 

어느 저녁 나는 를 내 무릎에 앉혔다. - 그러고 보니 못마땅한 것임을 알았다. - 그래서 욕을 퍼부어 주었다.

 

이판을 벌린자들을 보자면 세퍼트 마냥 울대를 물고 늘어졌던 검찰이 있었고, 부엉이처럼 둥그레한 눈으로 멀끔히 있다가 달려든 경찰도 있었다. 만화정화가 청소년 보호고, 그것이 바른 민심을 이끌어내는 올바른 선택이라 지지한 여론도 있었다. 이보다 앞선 자리엔 스포츠지의 연재물이 보여주는 폭력성과 선정성은 건전한 시민정서를 대표하는 이들에게 수치심을 불러온다고 규정해버린 민간단체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건전한 시민정서를 우수운 논리로 비하하고 손가락질하며 자신들의 논리가 우수함을 만방에 공표하고, 진정으로 대중이 원하는 것은 이것이라 천명한 이들이 있었다. 공론의 장을 열고 토의를 이끌어낸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주장과 사회각계 인사들을 끄집어들여 O, X식 질문으로 논리를 꾀 맞춘 이들이 있었다. 절대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 이들은 거대자본가들의 자회사이기도 하고, ‘이 시대 최고 정론이라 자처하며 엘리트라는 기막힌 자만과 자신들의 시각만이 존재하는 듯한 무리들이다. 물론, 순진한 우리만화를 이 판에 끌어들인 자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스포츠지와 이의 모회사인 중앙 언론지다.

 

나는 정의에 항거하여 무장을 단단히 했다. ...

나는 도망했다. 오 마녀여, 오 불행이여, 오 증오여, 내 보물을 나는 너희들에게 의탁했다.

 

지난 82, 공권력의 만화탄압이 극한 상황으로 전개되면서 검찰이 스포츠지의 편집장과 만화연재작가들을 기소 처분했다. 이는 동년 5월 일부 민간단체가 스포츠지를 고소한 것에 대한 조치였다. 청소년 폭력사태와 일진회가 미묘하게 맞아떨어지며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자 검찰은 민심수습 차원에서 이 사태와의 전면전을 선언하며 일어섰다. 다 큰 어른들이 다 큰 어른들의 환심을 사려고, 애들을 상대로 전쟁선포까지 해대는 그런 지경이었다. 검찰의 초강수는 대표작가 이현세 소환(723)이라는 어마어마한 것이었으며, 만화판의 일순냉각을 지시하는 제스처였다. 하지만 건국이후 연례행사처럼 행해졌고, 별 부작용 없이 치러졌던 민심 끌어안기의 한 방책은, 만화판의 강력한 대응에 부딪쳤다. 검찰은 놀래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만화인구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것이다. 검찰의 강수는 앞서 기술한 스포츠지 연재작가들의 소환으로 이뤄졌다. 만화가들은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나섰고, 자신들의 상사를 불러들인 것에 분노한 스포츠지와 그들 덕에 좀더 배 따듯하게 살고있는 신문장사꾼들(중앙언론)은 여지까지의 논지를 뒤바꾸며 일진=만화는 말도 되지 않는다며 편들기에 나섰다. 그들의 주된 논리는 ‘21세기에 가장 돈이 되는 산업을 다독이지는 못할 망정 범죄자 취급가지 해서야 되겠느냐는 것이었고, 데스크의 무수한 칼질과 수정요구에 몸살을 앓고있는 만화가가 숱하다는 게 새삼스럽지 않은 터에 연재작가 창작물의 잘못(?)과 편집장이 무슨 연관이 있느냐는 등 만화매체에 대한 이해가 없는 무지한자들의 소리였다.

 

나는 내 정신 속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온갖 희망을 사라지게 하기에 이르렀다. 그 희망의 목을 비트는데 즐거움을 느껴, 나는 잔인한 짐승처럼 음험하게 뛰었다.

 

다시 한번 정리를 하자면 지난 8년간 87회에 걸쳐 민간단체로부터 선정성과 폭력성-기사, 소설, 만화, 삽화, 사진 등 전반적인 부분에 걸쳐-에 대한 시정요구를 받아왔던 스포츠지들은 이에 대한 수습에 별무신경이었다. 소위 뉘들이 떠들어 봤자지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손봉호 서울대 교수를 필두로 청보법의 얼굴마담 강지원 검사, 여기에 숱한 아줌마 돌격대로 무장한 이들의 요구는 가볍게 넘어갈 것이 아니었다. 이는 우리사회가 아킬레스건처럼 감싸안고 있는 윤리에 관한 문제였던 터라 더욱 심각한 지경까지 이를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캠퍼스블루스를 필두로한 일본 만화가 학원폭력사태와 함께 붉어지기 시작하자 스포츠지들과 한솥밥을 먹고 있는 중앙언론은 자사 신문의 윤리성문제에 대한 질책을 만화쪽으로 옮겨지게 했다. 물꼬를 돌리고 한시름 놓은 것이다.

문자가 주도하고 있는 우리사회와 언론사회에서 만화는 그 영향력에 비해 언제나 상업적인 목적과 동일하게 취급됐다. 신문을 펼쳐들면 가장 눈길이 가지 않는 우측 상단이나 하단 중앙에 배치되는 것이 우리의 신문만화이다. -물론 이는 여타국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르몽드지가 제호아래 만화를 넣었다는 것이 만화를 대우하는 것으로 보이는가? 아니면 제호에 눈길을 끌기위한 수단으로 보이는가? -가장 보잘 것 없는 기사가 들어갈 자리에 만화를 올리는 것이다. 독자는 눈길이 가지 않을 자리지만 만화가 있으므로 그 지면을 보게되고, 밑자리엔 어김없이 광고가 들어가게 된다. 정말 대단한 레이아웃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렇듯 만화 덕을 보고있음에도 신문에서 만화의 위치는 그다지 신통하지 않다. 역시 신문우리만화를 다루는 방법 역시 별다르지 않다.


결국 스포츠지들은 중앙언론의 가공할만한 오도에 힘입어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으나 그도 잠시였다. 편집장기소-만화가 절필-사회면을 통한 대검 시위 등으로 이어진 것이다.

 

중략... 그런데, 요즘 마지막 껄떡 소리를 낼 찰나에, 나는 옛날의 축제를 다시 열어줄 열쇠를 찾으려 했다. 그러면 아마도 욕망을 되찾을지 모른다.

 

최근 만화사태에 대한 검찰과 언론의 반응은 한물간 이야기 정도로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만화에 대한 대중 인지도는 급감했고 출판시장 역시 급속도로 위축해있는 지경이다. 더군다나 그 시행이 어느 선까지일지 지금도 가늠하기 힘든 청소년보호법은 이미 성문화되있다. 만화판은 여전히 흙바람이 멈추지 않았다. 순진한 우리의 창작자들은 여전히 언론의 부채질에 춤을 추고 있으며, 출판인들은 작가가 자기검열에 시달리다 들이미는 원고에도 화이트질을 감행하고, 그렇게 출판된 책마저도 판매인과 서점 측에서는 고개를 흔들어대고 있다. 정말이지 지독한 더위였다. 아니 아직 그처럼 지독한 한파를 겪어내야 한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 이제 그보다 더한 것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자애가 그 열쇠다 - 그런 생각을 하는걸 보니 내가 전에 꿈을 꾸었나 보다....다시 소리친다.

네 모든 욕망과 이기주의와 모든 너의 죄종을 짊어지고 죽으라.”...

 

인용문/아뤼스트 랭보지옥의 계절, ‘서시

 

(끝)

모던코믹스봄, 히스테리, 1998.03.20 발표

박석환, 만화시비탕탕탕, 1999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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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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