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검열의 역사가 곧 만화의 역사였다, 경일대신문, 1997.08.25


5.16 직후인 1961년 12월, 원로 만화가와 출판업자들로 구성된 '한국아동만화자율회'가 운영되면서 만화는 표면적으로 '사전심의'라는 족쇄를 차게 된다. 60년대 말기에 거행된 불량만화(?) 단속은 1만9천여 개소에 달했던 '아이들의 공간(만화방)'을 유해업소로 규정한다. 사전심의시의 칼질도 전과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로 인해 '심의'라는 공권력을 매수해 만화판을 사리사욕의 장으로 만들고, 독과점을 형성해낸 출판사도 등장했다. 


당연스레 줄어든 창작물은 1977년 6454(심의 신청수)편에 불과했다. 그나마 절반도 되지 않는 3131편만이 정상 출판됐다. 만화가들은 '심의'라는 교과서를 통해 철저히 교육됐다. 80년대 초 이현세, 허영만 등에 의해 만화가 대중적인 파급효과를 인정받게 됐을 때도 국가권력의 개입과 일반의 유해매체론은 끈이지 않고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교과서적인 '권선징악'의 서술구조가 자리를 잡았고, 소위 '민족주의 장르' 만화가 생겨나 한 주류를 형성할 지경이었다. 심의를 피하기 위해  스토리전개의 한 축에 노골적으로 민족성을 논하는 것이었다.


90 년대 접어들면서 불건전한 일본만화를 규제하기 위해 '외국 만화 사전심의제'를 제정했으나, 이는 역으로 불법화되있던 일본만화 출판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일본만화는 공식, 비공식적으로 우리만화 유통시작의 70%이상을 점유하고 나섰다. 이렇듯 만화에 대한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과 매체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무지몽매한 단죄가 '우리만화'의 자생력을 꺾어 버렸다.


97 년 7월1일부로 공포된 '청소년보호법' 역시 만화를 유해매체로 규정하고, 만화물에 대한 전면적인 불신의사를 표명하는 등, 최근의 만화사태를 불러왔다. 


쟝르문화의 활성으로 창작영역이 확장되면서 만화의 모습은 달라지고 있다. 이에 대한 이해없이 매체의 일부(작품)가 아닌 전체(만화)를 싸잡아 유해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정부의 저의를 알 수 없다. 건전한 시민문화의 육성을 위해 민간심의기구와 기초적인 법제는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법의 형평성이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어선 곤란하다. 더욱이 법 테두리 안에 문화의 테두리가 웅크리게 해서는 안된다. 이야말로 건전한 시민문화의 육성을 해하는 것이다.


만화를 대중시대의 문화창작품으로 인정하고 작가의 창작의지를 자유롭게 보장하는 풍토가 시급히 자리잡아야 한다. 단죄의 활성화가 아닌 토의의 활성화를 통해 작품의 유해 여부를 가늠하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검열로 인해 잊혀지지 않을 걸작의 반열에 올라선 장정일의 소설이나 이현세의 만화, 그리고 장선우의 영화 등은 오히려 옥석을 가리는 과정을 무시함으로 인해 생겨나고 있다. 정부의 검열이 이처럼 지속된다면 한국에서 비평문화의 올바른 자리 메김은 힘들 수밖에 없다. 이제 제발 무자격자들에 의한 무딘 칼질은 없어져야 한다.


경일대, 경일대신문, 1997. 8. 25 발표

박석환, 만화시비탕탕탕, 1999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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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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