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학교(?) 한국에서 벌어진 일진회의 이진 폭력 사태, 한백울림, 서울예술대학, 1997.08.01


1. 대한민국 일진 세력의 이진 탄압


지렁이도 밟으면 굼틀댄다는 옛말이 있지. 모두가 알고있는 이 말을 꺼내놓고 청소년 폭력 사태를 보자고. 폭력이란 거 탄력성을 지니는 거잖아. 나침반은 언제나 북쪽을 가리키지, 호랑이도 풀 맛을 보고 풀도 호랑이의 썩은 육신을 생명수로 환원한다고. 때려. 그럼 맞지. 맞은 애는 어떡해. 우리한테는 화풀이 문화가 있잖아. 화를 푸는 거지 별수 있나.

애들 자아통제력은 8살부터 12살 사이에 길러진데. 그때 애들 훈련을 시켰어야지. 지금 와서 어쩌자는 거야. 청소년 폭력의 60%가 학교 내에서 이루어진다는데 선생이 뭐하는거야. 학부모가 무서워서 사랑의 매를 놔버려. 그러니까 선배가 매를 들지. 학원 폭력 근절하겠다고 들입다 재적하고, 구속시켜버리니까 지들끼리 매들고 주먹질하는 거잖아. 근데 문제는 그게 아냐. 맞서기가 문제지. 뭐가 문제다라고 언론에서 치고 나오면 프로그램이라도 된 듯이 검찰과 경찰이 나서서 일제 단속을 외치고 나오고, 연례적인 이벤트를 벌리잖아. 이게 문제야.

애들이 만화를 보고 모방해. 걔들이 만화를 보는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일반 도서류를 읽는 시간보다 만화책을 보는 시간이 많을 뿐이야. 만화가 무슨 걔들의 생활터전이야. 막말로 하자면 화장실에서 담배 피는 시간보다, 앉아서 만화 보는 시간이 더 적다고. 봐, 여태 관심도 없다가 TV다, 신문이다 문제제기하고 나서니까 뒤늦게 호들갑이잖아.

근데 이거 봐. 여차하면 뭐뭐와의 전쟁입네하면서 폭력적 대응자세를 취하는 거. 이런 거 배운 거지 뭐야. 애들은 눈 없나. 무슨 정치판이 무협소설 같은 형국을 보이면서 무리 짓기에 한창인데. 만화가 패거리 문화를 조성한 거야. 뭉쳐 다니면서 꽁수 쓰고 있는 것들이 누군데. 다 아는 얘기잖아.

이번 이벤트만 해도 그래. 만화가 고부가가치 창출한다고 입 찧어지게 달라붙게 만들어 논게 누구야. SICAF 이익 봤다고 떠들어대서 애니메이션 붐(이게 다 제페니메이션 때문이라고. 사실은 이도 오래전 유행이었지만) 일으켜 논게 누구야. 이번에도 봐 무조건 구속에 입건시키고, 학교 못 다니게 만들고 장사 못하게 하고 난리 아냐. 그러고 끝이야. 사회와 격리 시켜, 그럼 음지로 가는 거 아냐. 이게 뭐야. 주도 세력이 변두리 세력을 한 칼에 단절시키는 거잖아. 이거 참 한칼이란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문민정부 들어서 총소리 안 나온 건 다행인데 칼 소리 무진장 들렸잖아. 애들이 보고 배운 거 많을 거야. 어제까지는 동료였다가 마음 틀리면 바로 '찍'했잖아. 뭐 이래저래 이런 게 일진이 이진 다루는 법을 알려주는 거지 뭐.


2. 이인증과 리셋 신드롬


얼마전 무슨 검사가 나와서 애들 폭력이 선진화 되가니까, 대응도 선진화한다는 소리하던데. 이게 무슨 소리야. 선진화 된 청소년 보호 체제 구축이 2만 5천 3백 67명(올 1월부터 6월말까지 학원 폭력과 관련 검거자 숫자)이나 되는 애들 잡아가고 142(7월4일 현재)명이나 되는 만화방 주인들 검거하는 건가.

요즘 이인증이란 말 많이 쓰데. 애들이 비디오나, 만화 속의 가상세계를 현실세계로 착각해서 생명의 존귀함에 무감각해진다는 거야. 그 애들이 다 이런 병에 걸린 정신병자라는 거야. 그럼 뭐야 경찰도 그런가? 지들이 뭐 영화에 나오는 강력계 형사라도 된다는 거야 뭐야. 투캅스에 나오는 안성기 흉내 내놔. 들입다 잡아다가 신참형사 골려주려고 그러는 거야.

그리고 리셋 신드롬이 뭐 어쨌다는 거야. 컴퓨터 게임의 폭력성은 물론 그 정도가 지나치긴 하지. 그래도 그렇지 그게 왜 사람 죽이고, 살리는 거랑 연관이 돼. 조금 연관이 있는 것도 같지만, 그렇다고 다 맞다고 생각할 순 없잖아. 사회에서 병약해진 자아를 죽이고, 새로운 자아를 가질 수 있는 거잖아. 우리들은 심기일전 좋아하잖아. '다시 태어난 자세'로가 반성문의 미덕이잖아.    


3. 만화는 소외되지 않은 일반성을 본다


만화. 쓰레기네 뭐네 하면서 유해한 매체로 몰아가지만 가장 저변의 대중 정서를 담보로 하고 있다는 거 모르나. 요즘 만화가 탁상에 앉아서 펜대 굴리는 걸로 끝나는 줄 아나. 상상의 폭을 넓혀서 뚝딱 만들어내는 건 아니라고. 창작자 스스로가 대중 속에서 만들어지는 언어를 상황으로 옮기는 것 뿐이야. 만화엔 그것만이 지니는 특수한 기호들이 있어. 기호라는 거 약속에 의한 거야. 모두가 알 거라는 약속들을 근거로 하는 거라고. 그 약속이라는 거 창작자 혼자서 하는 거 아냐. 대중과 한다고.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결행된 약속일 때 그것이 변형되고 단순화되는 거야. 물론 과장이 되기도 하지. 하지만 이도 대중이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야 가능해지고, 만화가 되는 거야.

학교에서 버림받고 가정에서 따돌림받아서 혼자서 끙끙대다가 만화로 소외된 가슴을 달랜다면 그건 보편성을 체득하려는 노력이야. 특화성을 끄집어내려는 게 아니라고. 혼자 된 아이가 보다 깊숙이 혼자가 되기 위해서 찾는 게 만화가 될 수 없다는 거야. 차라리 그런 애들은 특수한 교재를 택해 공부를 하지. 그게 어쩜 폭력 교과서라는 걸 수 있는데, 만화는 특수한 상황을 담을 수가 없다는 거야. 대신 흉내내기를 해. 사회에 보편화 돼있고, 내재돼 있는 것들을 변화시켜서 적절하게 표현해내지.

『캠퍼스 블루스』. 그건 정말 아이들의 시각이고, 사회일뿐야. 어른들의 질서에 순응하면서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의 거듭되는 현실일 뿐이라고. 물론 『경찰청 사람들』의 주 출연진이 청소년들로 바뀌는 추세이긴 하지만 그도 대물림의 전통을 답습하는 것뿐이라고. 왜 우리 전통문화잖아. 대물림. 그리고 이건 어떡해. 여자 애들은? 걔들 폭력은 더 잔악한 수준이라며. 그 애들은 『캠퍼스 블루스』보다는 『CLAMP』(뭐, 폭력적이긴 매 일반이지만)를 더 좋아한다고. 그따위 만화는 텔레비전보고 알았을 거라고.


청소년 폭력사태. 이거 다시 생각해봐. 만화가, 문화가 그런 것들을 조장해. 문화는 사회가 만들어내는 것에 불과하잖아. 공권력이 문화를 다룬다는 게 선진형 청소년 보호체제라고 말하는 거야. 웃기지 좀 말라고. 정부에서 할 일은 그런 거 아냐.

사회가 좀 시끄럽다고 텔레비전 껐다 켜면 원위치 되는 줄 아는 거야. 전땡 뉴스나 신문 접어두고, 칼부림의 흔적이 역력한 뉴스와 신문 만들면 모든게 해결되나. 지들이 하고 자빠져 있는 게 리셋 신드롬 아냐?

내 참 누가 누구한테 돌을 건지는 거야, 지금. 이 일진 놈들아. (끝)



서울예술대학, 한백울림, 1997. 8. 1 발표

박석환, 만화시비탕탕탕, 초록배매직스, 1999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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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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