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SICAF에 가면 읽어버린 만화를 찾을 수 있을까, 코코리뉴스레터, 1997.10.20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SICAF)이 지난 814일 다시 열렸다. 최근의 만화사태와 지독한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성대한 규모로 다시 열린 SICAF는 우리사회의 만화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다. 일부언론과 사회단체의 만화 이지메에도 불구하고 열린 이 행사는 제사판으로 갈 손님과 잔치판으로 갈 손님의 분별 유치에는 실패한 듯 보이지만, 상업행사가 지녀야할 미덕과 SICAF 최초의 주제전이라는 의미 두기에는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인다.

이 행사의 고질적인 문제점 중 하나였던 상업부스와 전시부스 간의 거리 두기와 하루 5만명 이상이 예상되는 전시장내의 관람객 분산, 효과적인 동선 창출 등에서 개선의 노력들이 보였다. 우선 눈에 뜨이는 것은 전국 14개 만화/ 애니메이션 관련학과의 소개와 작품의 전시부스였다. 순정만화라는 독특한 장르만화를 소개 새로운 만화문화의 기틀을 조성하고, 젊은 작가 12인의 소개전 등의 다양한 기획전시가 관람의 즐거움을 더했다. 전년도 행사와 크게 달라진 점이라면 상업부스와 전시부스를 단절시키면서 상업부스내에서 나름의 전시공간과 주제를 확정하고 또 다른 볼거리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이는 점차적으로 이 행사의 의지가 국제적인 위상을 겸비한 상품견본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것으로 여겨져 절반쯤은 반갑게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균일가의 노리개 취급을 받으며 팔리고 있는 만화책을 대하기가 안쓰러워지는 것까지 수긍하기란 보통 어려움이 아니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상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리만화의 두축을 이루고 있는 만화출판사들이 슬랭덩크크레용신짱을 대표작인냥 선보이고 있기도 했으며, 국외 업체의 눈에 뜨이는 참여가 즐겁기도 했으나 일본편중이라는 원죄적 난감함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관람인파와는 상관없이 이유 있는 전시회였던 애니메이션 박물관은 관내 여타 부스와는 다른 무거운 전시분위기를 조장, 접근을 막고 있는 듯해 아쉬움을 더했다.

올해로 세 번째가 되는 이 행사는 최근의 만화사태와 맞물리며 청소년 유해물 생산자와 판매자들의 잔치로 오도됐고, 가족동반 관람인파를 드물게 만들었다. 전년도에 40만명의 관람인파를 동원한데 이어 올해 70만명의 관람객유치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으나, 반수도 채우지 못하는 당혹함을 맞보고 말았다. 하지만 일련의 사태와는 무관한 듯 지난해(참여업체150여개사)보다 70여개사가 증가한 220여 업체가 행사에 참여했고, 국외업체도 20여개사에 이르는 등 우리만화에 대한 국제적 위상과 행사자체에 대한 상업적 공신력은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는 것은 우리만화의 국제화를 위한 행사라는 규정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적법 상영관이라도 된 듯 회자되고 있는 애니메이션 상영 행사 등이 그렇고, 관람인파의 연령규정이 어려워 전시물 내에서도 소위 빨간딱지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는 점차적으로 전시행사와 이벤트행사의 분화 등으로 이뤄야 할 사안이다. 일반의 만화에 대한 인식 또한 변화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며-아이들이 볼 수 없는 이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는 애니메이션도 있다라고 생각하는 부모가 얼마나 될지?- 우리 아이들을 위한 만화영화의 제작도 시급할 뿐 아니라 과도한 실험이라는 틀 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단편애니메이션의 아카데믹한 분위기도 점차로 만화적인 코드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이런 맥락에서 올해 이 행사의 최고 성과라고 까지 여겨지는 것은 만화학과 학생들과 동호회 작품들이 1, 2회 때 행사에서 볼 수 없었던 관람객, 또는 독자 지향적인 작품들이었다는 것이다.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은 확실하지만 엄숙함을 벗어나 유쾌함으로 진입하고 있고, 작품 외적으로 만화적인 어휘의 학습이 충실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순전만화궁전-

비판적 순정, 발전적 여성만화 


이 행사 최초의 기획전으로 기록되는 한국순정만화궁전은 그간 순정만화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오던 만화평론가 박인하가 큐레이터로 참가하면서 이뤄낸 성과이다. 순정만화는 일본의 주도아래 동남아시아에만 존재하는 여성취향의 만화가 우리의 가족만화에 도입되면서 나타났다.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만화를 구분하기 위해 붙여진 이 장르용어는 이후 여성독자를 겨냥, 제작되었고 독자의 성별을 구분 짓는 용어로 사용됐다. 

김정파의 흰 구름 가는 곳(만화세계1956)에서 처음 사용된 순정이라는 장르구분 용어는 60년대 이후 만화 유통구조가 대본소를 중점으로 변모하자 그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이는 여성독자의 대본소 출입이 용이하지 않았음을 가장 큰 이유라 생각할 수 있으나 이후 순정만화의 경향이 내용상보다는 조형적 아름다움을 강조한 표현상의 의미로 전환되자 일반 만화의 제작기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경쟁체제를 구축하지 못한 데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70년대 중반 일본의 순정만화 복사본이 틈새 독자를 겨냥 국내에 유통되기 시작했고, 섬세한 그림묘사와 극적인 심리묘사가 주를 이룬 일련의 걸작들이 소개되면서 우리 순정만화 창작을 부추겼다. 당시의 빼어난 작품군들은 아직까지도 순정작가들의 화면연출 등에 남아있을 정도로 교과서적인 위치에 올라서 있다. 황미나, 신일숙, 김진 등의 탁월한 작가군이 80년대를 지나면서 등장, 여성 수용자들에게 적극적으로 회자되었고, 팬시성향이 강한 이 장르의 만화는 90년대 새로운 수용자들을 통해 확장일로에 접어들었다. 

쉽게 주류만화라 치부되며 소위 극화로 불리던 남성성향의 만화가 대본소 시장을 통해 권수에 얽매인 대량생산에 불을 켜고 있을 때 순정만화의 작가들은 일본의 소녀만화와 메카닉 만화를 학습했다. 일본에서 80년대 초반부터 그 여세를 몰고 최근의 사이버펑크, 하드고어계열의 만화까지 지속적인 성장국면을 형성하고 있는 메카닉 만화는 섬세한 메카닉 연출을 위해 기존의 굵은 선과 강한 터치가 주류였던 일본극화를 변화시켰다. 선은 점차로 가늘어지기 시작했고, 등장인물의 묘사 역시 가는 선으로 변화됐다. 극화는 순정의 그림연출, 묘사 등의 방법을 수용했고, 순정은 자신들이 지닌 내러티브 위에 극화적인 소재를 응용했다. 이로인해 최근 일본의 주류만화는 극화와 순정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이를 적극 수용한 우리 신세대 순정만화 작가군은 디테일한 묘사에서뿐만 아니라 작품의 주제도 가족이나 절대자와의 낭만적 사랑에서 벗어난다. 이는 최근 우리 극화에서도 일부분 수용되면서 점차로 주류만화와 변종의 만화라는 견해를 사라지게 할 것으로 보인다. 대신 장르만화라는 개념 정의가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끝)


한국만화문화연구원코코리뉴스레터1997. 10. 20 발표

박석환, 만화시비탕탕탕초록배매직스, 1999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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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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