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화 제자리 찾기운동' 바람이 불 것같다. 민족적 암흑기인 일제시대에 문맹자들에게 글을 깨우치고 독립정신을 일깨우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었던 만화.만화를 습작의 첫단계로 밟았던 최초의 여류화가 나혜석씨,한국화의 대가 운보 김기창화백… 한국만화가 민족정기를 추스리는 매개체였고 문화의 원류라는 본래의 자리를 사회에 바로 인식시키고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만화가와 만화애호가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만화사태'의 잘못을 바로 잡아 보려는 문화사회운동인 셈이다. 만화가 비뚤어진 정서나 전수하는 매체쯤으로 곡해된 대목을 차제에 바로 잡아야겠다는 움직임이다. 나아가 만화가 당초에는 문화의 본류였고 사회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하고 자양분을 쌓아가는 생명력을 지닌 엄연한 창작물이라는 사실도 확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한국만화연구원(원장 손상익)은 오는 29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때맞춰 9월5일까지 경기도 부천시 중동중앙공원 야외음악당에서 `우리 만화역사전'을 갖는다.한국만화의 출발과 발전사를 되짚어 `새로운 만화역사 1천년'을 준비하는 자리다.
전시회에서는 1906년 맹모삼천지교를 만화로 엮었던 최초의 만화여성잡지`가뎡잡지'를 비롯해 어린이들에게 민족혼을 심어주던 최초의 연재만화 `대길이네 개와 담비' 등 1900년대 주옥같은 만화와 관련된 자료들이 선보인다.
1910년 대한민보를 통해 기른개(일본)가 주인(한국)의 발 뒤꿈치를 문다며 일본의 야욕을 따끔하게 꾸짖은 작가미상의 만평도 만화였다. 1922년 `동명'이 창간호에서 `민족대단결을 위해 깨어나실 때가 되었소'라며 징을 치는 주인공의 모습을 담은 김동성씨의 만평도 만화였다. 한국만화는 국민계몽의 효율적인 `교육매체'였고 막힌 입과 귀를 뚫어주던 `항일언론' 자체였다는 산
증거이다.
국민계몽운동이 한창이던 1930, 40년대 문맹퇴치의 `효자'였던 창작만화 `코주부 삼국지'가 전시된다.또 최초의 여류화가 나혜석씨가 33년 6월호 신동아에 만화를 연재했고 운보 김기창 화백이 47년 자유신문 문화부기자로 일하면서 삽화와 만화를 그렸다는 내용들이 공개된다.
6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만화는 청소년은 물론 전국민의 `친구'가 된다. 김종래씨의 `엄마찾아 삼만리',공상문학의 효시격인 만화가 산호씨의 공상과학만화 `라이파이' 등이 모습을 드러낸다.
조국근대화가 결실을 맺어가는 80년대는 `만화의 전성시대'.민족적인 것을 강조하는 만화작품들이 자리를 잡았고 82년에는 `보물섬'의 등장으로 본격적인 어린이 잡지만화 시대가 열리기도 했다.
유명한 `까치'라는 캐릭터를 탄생시킨 이현세씨의 `공포의 외인구단'같은 주옥같은 만화가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때이기도 하다. 본격 성인만화시대가 잉태되는 것도 80년대.
90년대에 들어서면 만화는 다른 매체와의 연계를 통해 문화산업전반을 관통하는 21세기 첨단 문화상품으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한편에선 성인만화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또 다른쪽에선 젊은 작가들 중심으로 기본서술구조를 타파한 실험만화가 등장해 한국만화의 새로운 도약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우리만화 역사전'을 기획한 한국만화연구원의 큐레이터 박석환씨(25)는 " 최근의 만화사태는 만화의 매체적 특성에 대한 고찰과 역사인식이 부족해 벌어진 것"이라며 "한국만화를 재조명하고 만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되기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이은영
기사출처 : [스포츠서울]
게재일자 : 1997년08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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