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불만·불안의 웹툰 시장, 상호 존중과 이해로 연대해야
● 폭염 속 대한민국 보다 뜨거운 만화/웹툰판
2018년 7월.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주의보가 울렸다. 지역별로 폭염경보가 울리기도 한다. 질병관리본부에 의하면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자의 수는 매년 증가해 2012년 984명, 2013년 1195명이라고 한다. 기상청은 일 최고 기온이 33℃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 될 때는 폭염주의보, 35℃ 이상으로 예상 될 때는 폭염경보를 발효한다. 폭염으로 인한 피해가 그만큼 중한 상황이 된 것이다. 유사한 예보 시스템이 만화계에도 있다면 어떨까? 지금 우리 만화계는 역대 어느 시기보다 뜨겁다.
2018년 1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만화산업의 올 해 매출 전망을 1조1천억 원으로 발표했다. 2017년 매출 통계이후 처음 1조원 규모를 넘어섰던 만화산업의 상승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부의 전망을 증명이라도 하듯 상반기 만화계는 전에 없던 사건·사고를 만들어냈다. 웹툰작가들은 넓어진 인지도를 바탕으로 TV에 등장해 예능감을 폭발시키고 있다. 웹툰원작 드라마가 여러 채널에 걸쳐서 쉬지 않고 방송된다. 웹툰제작사는 ○○미디어라는 이름에서 ○○엔터테인먼트라는 이름으로 사명과 업종을 바꾸고 있다. 영화제작에 나서기도 하고 게임제작, 전시기획, 캐릭터 상품 출시 등 사업 폭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이다. 웹툰유통사들은 제작분야를 계열사 형식으로 분리하고 한국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해 의미 있는 성과를 달성하고 있다. 영화제작사 키다리이엔티의 봄툰 인수, 네이버웹툰주식회사의 영화 및 방송 콘텐츠 제작과 기술회사 인수 등을 통한 구조 확장, 카카오페이지와 다음웹툰컴퍼니를 운영하던 포도트리의 대규모 자본 유치와 사명변경(카카오페이지주식회사), 코미코(NHN엔터테인먼트) 한국서비스의 영업권 양도(저스툰, 위즈덤하우스)와 지분투자 등 지각변동급 대형 이슈들이 연일 계속된다.
창작, 제작, 유통 전 분야가 그야말로 놀라운 수치의 생산력을 보여주고 있다. 판의 급속한 성장은 반짝하고 사라질 것 같던 외부 투자 열기를 지속시키며 추가 동력이 됐다. 뜨거워진 판이 쉴 새도 없이 불타고 있다. 이쯤 되면 주의를 넘어 경보가 발효되어야 하지 않을까? 2018년 상반기, 우리 만화계와 웹툰판은 날계란도 금방 부화시켜 봉황으로 탈바꿈 시킬 것 같은 상태에 있다. 이 정도의 열기가 있어야 작품이 자란다 싶다가도 판이 경험해보지 못한 이상열기가 예기치 않은 문제를 양산할까 두렵다.
● 2018년 상반기 만화/웹툰 현황
◌ 베스트셀러로 보는 만화 시장 현황
2018년 6월 교보문고는 ‘2018년 상반기 도서판매 동향 및 베스트셀러 분석’ 자료를 발표했다. 만화와 연관해서는 게임, 애니메이션을 소재로 한 아동만화 시리즈의 인기(판매권수 20.8% 신장), 소셜미디어와 스마트폰이 대체재 역할을 한 만화분야(코믹스/그래픽노블/교양만화 등)의 변화(판매권수 6.2% 하락, 소장본/한정판 세트 구매로 판매액은 5.9% 신장)가 눈길을 끌었다. 도서 구매자는 여성(60.8%)이 높았고 그중에서 40대 여성이 최다 구매층(19.6%)이었다. 베스트셀러를 분석한 ‘핫 키워드’에서도 ‘여심’ ‘캐릭터’ ‘변신’이 꼽혔다. 여성의 마음을 얻는 도서가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점령했다. 지난 해 ‘빨간머리 앤’에 이어 올 해는 ‘곰돌이 푸(<곰돌이 푸, 행복은 매일 있어>,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가 독자들에게 삶의 교훈과 위로를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했고, 리커버, 분책 등 기존에 발행됐던 도서를 새롭게 편집한 책이 베스트셀러를 차지하기도 했다.
분야별 집계에서 아동만화 1위는 <좀비고등학교 코믹스 5권>(배아이/라임스튜디오, 겜툰)이 새로운 왕좌를 차지했다. 만화 1위는 <원피스 87권>(오다 에이치로, 대원씨아이)이 오랜 명성을 이었다.
아동만화 순위권 안에는 <마법천자문 41권>(올댓스토리/김성재, 아울북), <Go Go 카카오프랜즈 1권>(김미영/김정한, 아울북),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 6권>(설민석, 스토리박스/정현희, 아이휴먼), <신비아파트 고스트볼X의 탄생 1권>(편집부, 서울문화사) 등이 올랐다. 전통적 강자였던 예림당의 <Why?> 시리즈, 다산어린이의 <Who?> 시리즈는 10위권 밖으로 밀렸다. 주요 출판사의 대표 아이템도 달라졌다. <코믹메이플스토리>의 서울문화사는 <쿠키런 어드벤처>를 순위권에 올렸고 <마법천자문>의 아울북 역시 <Go Go 카카오프랜즈>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위즈덤하우스 <놓지마 과학!>, 대원키즈 <도티&잠뜰 : 대마왕과의 결투>도 10위권에 올랐다.
만화 순위권 안에는 <신과함께 1,2,3권>(주호민, 애니북스), <죽음에 관하여 1권>(시니/혀노, 영컴), <요츠바랑 14권>(아즈마 키요히코, 대원씨아이), <오늘의 인생>(마스다 미리, 이봄>, <며느라기>(수신지, 귤프레스), <명탐정 코난 94권>(아오야마 고쇼, 서울문화사), <하이큐 29권>(후루다테 하루이치, 대원씨아이)이 10위권에 타이틀을 올렸다. 10위권 밖에서는 대원씨아이가 <원펀맨 15권>, <열혈강호 74권>, <팝 팀 에픽 1권>을, 학산문화사가 <진격의 거인>, <카드캡터 사쿠라 클리어카드편>, <3월의 라이온> 등을 올렸다. 서울문화사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14권>을 올리는데 그쳤고 시공사는 <스킵 비트 41권>, <인피니티 건틀렛> 등을 50위권에 올렸다. 신흥 출판사로는 아르테팝이 <낮에 뜨는 달>, 디엔씨미디어가 <황제의 외동딸>로 주목 받았다.
아동만화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출판사가 주도했던 독자 아이템이 위축되고 있는 반면, 게임/애니메이션 IP를 활용한 작품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20여 년 간 영광을 누렸던 대표 아이템들이 순위 밖으로 밀려나거나 다른 작품으로 대체됐다. 만화분야에서도 전통적 인 코믹스 형식의 출판물이 후순위로 밀려났다. 일본 망가의 대표적 인기작들이 리스트에 올라 체면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국산 코믹스는 자취를 감췄다. 반면, 한국 웹툰의 출판본과 웹소설 원작을 웹툰으로 제작해 출판한 작품들이 강세를 보였다. 미국 그래픽노블이 50위권 안에 오른 것도 주목할 만 한 변화다. 아쉬운 점은 다수의 작품이 원작 자체의 명성보다는 외부적 요인으로 인한 유명세로 도서 판매고를 올렸다는 점이다. 이른바 ‘미디어셀러’로 불리는 현상이다. 만화 원작이 있는 영화가 개봉되거나 TV드라마가 방영될 때, 애니메이션이나 웹소설이 인기를 얻을 때 동명의 만화 판매가 올라갔다.
◌ 통계 정보로 보는 웹툰 시장 현황
2018년 6월, 웹툰가이드는 WAS를 통해 한국 웹툰 시장 현황을 집계하고 분석한 결과를 탑재했다. 2018년 6월 기준 전체 플랫폼은 61개, 월간 총 페이지 뷰는 18억 건, 월간 총 방문자 수는 1억9천9백만 명이다. 연재 중인 웹툰 수는 1,661편(작가 1,901명), 누적 총 웹툰 작품 수는 8,510편(작가 5,642명)이다.
플랫폼별 페이지뷰 기준 순위는 네이버웹툰이 점유율 64.7%(11억6천4백만 뷰)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카카오페이지가 9.8%, 레진코믹스가 8.7%, 다음웹툰이 5.2%로 1위와 차이가 큰 중위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투믹스, 탑툰이 2% 대, 케이툰, 배틀코믹스고 1% 대, 코미카, 봄툰이 0.7%~0.6% 대 점유율로 10위권에 들어와 있다.
네이버웹툰을 제외한 10위권 내 플랫폼의 페이지뷰는 2018년 1월 2위로 출발했던 레진코믹스가 한 계단 내려앉았고 카카오페이지가 빈틈을 타고 2위 자리에 안착했다. 카카오페이지가 역주하고 있는 동안 같은 계열사인 다음웹툰의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중위그룹의 변화중 주목할 만한 것은 투믹스가 주춤하고 있는 반면, 탑툰이 재도약하고 있다는 점이다. 3월 최고치를 찍었던 배틀코믹스, 1월 이후 지속 하락하고 있는 케이툰의 감소세도 눈에 뛴다. 20위권 내에서는 5월을 기점으로 저스툰이 크게 감소한 반면, 버프툰은 상승하고 있다.
플랫폼별 2018년 6월 30일 현 연재 중인 웹툰 수는 네이버웹툰이 185편으로 1위였고 레진코믹스 146편, 투믹스 139편, 봄툰 108편 순이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올 해 플랫폼별 신작 수이다.
가장 많은 신작을 등록한 플랫폼은 봄툰으로 120편(지난해 75편)이었다. 2위는 투믹스로 90편(지난해 72편), 3위는 피너툰으로 79편(지난해 34편)을 등록했다. 상위 3개 업체는 상반기 등록 작품 수가 지난 한 해 등록한 작품 수를 이미 넘어섰다. 신규 운영 동력을 확보했거나 도전적으로 운영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웹툰가이드가 발표하는 작품순위는 자체 개발한 웹툰파워지수와 플랫폼별 랭킹, 인터넷 언급회수를 총합해 도출된다. 트래픽이 압도적으로 높은 네이버웹툰 게재 작품이 상위그룹을 형성하고 있고 월별 순위여서 상반기 전체 통계로 볼 수는 없다. 다만, 전체적인 추세를 검토 할 수 있는 참고 자료로 볼 수 있다.
네이버웹툰의 대표적 인기작품인 <연애혁명>, <외모지상주의>, <신의탑>, <갓오브하이스쿨>이 상위권에 랭크됐다. 7월 현 16화가 게재된 <여신강림>이 5위에 랭크됐다. 레진코믹스의 <수화>가 전 달에 비해 36계단 상승하며 6위를 차지했다. 복수의 사이트에 유통되고 있는 <남첩>도 오랜 기간 10위권에 머물고 있는 작품이다. 네이버 웹툰을 제외한 작품 순위에서는 <사랑은 환상!> <순결한 죄> <BJ알렉스>가 3~5위를 차지했다.
작품 관련 흥미 있는 데이터는 6개월 미만의 신작을 중심으로 한 순위이다. 10위권 내 전 작품이 네이버웹툰 연재작이다. 재연재를 시작한 <죽음에관하여>가 1위를 차지했고 유명 에이전시 기획 작품으로 공개된 <세상은 돈과 권력>(와이랩), <이츠마인>(와이제이코믹스)이 2, 3위를 차지했다. TV드라마로 방영되고 있는 <내 ID는 강남미인>의 외전격인 ‘둘만의 시간’편은 4위에 올랐다. 네이버웹툰 게재작을 제외한 신작 순위에서는 <사랑은 환상> <말랑한 그이> <소녀모르모트>(이상 레진코믹스), <내로남불> <발기찬처가생활>(이상 투믹스) 등의 작품이 올랐다.
웹툰 분야에서 첫 번째로 주목해야 하는 이슈는 놀라울 정도로 커진 생산력이다. 2018년 6월 30일 현재 1,901명의 작가가 1,661편의 작품을 연재하고 있다. 만화잡지 한 종에 15작품이 연재된다고 했을 때 한 달에 무려 110종이 주간 단위로 발행되고 있는 셈이다. 만화대국 일본이 2017년 발행한 망가잡지는 주간, 월간, 계간, 연간 등을 포함 173종이다. 공식 집계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한국 웹툰의 생산력은 이미 일본 망가를 넘어서고 있다.
두 번째 이슈는 시장보호이다. 시장 규모가 커지고 유료서비스가 안착되면서 반대급부로 등장했던 것이 불법웹툰서비스였다. 2017년 불법웹툰서비스 사이트가 본격화되면서 네이버웹툰을 비롯해 레진코믹스, 탑툰, 투믹스 등은 위협적이라 할만 큼 페이지뷰 수가 급감했다. 네이버웹툰은 자체 어플리케이션에서만 열람할 수 있도록 구성한 하일권의 <마주쳤다> 서비스 등을 통해 빠져나간 사용자를 불러 모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정부의 의지와 업계의 공조만이 커진 시장을 보호할 수 있다. 불법웹툰서비스 업체가 검거되자 급감했던 페이지뷰가 회복세로 돌아섰다.
세 번째 이슈는 자본 경쟁이다. 시장이 커졌고 투자도 늘었다.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업계의 고민도 그만큼 성숙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마치 ‘치킨 게임’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해 87편의 신작을 게재했던 네이버웹툰은 상반기에만 벌써 72편의 신작을 공개했다. 지난해 146편을 게재했던 레진코믹스가 상반기에 64편을 공개한 것에 비하면 매우 공격적인 작품 편성이다. 그간 네이버웹툰은 자사의 베스트도전 코너를 통해서만 신규 작가를 등용했다. 그런데 상반기에 기성작가 투고 코너를 만들었다. 이른바 ‘레진코믹스 사태’로 계약을 해지한 작가들을 네이버웹툰으로 유입하기 위한 공격적 제스처였다. 이와 함께 네이버웹툰은 연초 프로덕션 기반의 에이전시들에게 회사별로 3편씩의 작품을 게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실적이 좋으면 작품수를 늘려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전년대비 신작이 급상승한 이유이다. 이는 유료 웹툰 유통 시장에서 압도적 성과를 내고 있는 카카오페이지를 견제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카카오페이지는 그간 작가와 직접계약을 하는 대신 에이전시에 원고료를 선투자 하는 방식으로 양질의 작품을 확보했다. 네이버웹툰이 취한 유사 전략은 카카오페이지와의 자본 경쟁을 강화시켰다. 경쟁 국면에서 더 큰 자본을 지닌 쪽이 유리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더 큰 자본은 더 높은 비용을 의미한다. 비용을 상회하는 수익이 없다면 리스크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 부가판권 활용시장이 된 만화, 자본 경쟁 펼치는 웹툰 시장 재고해야
◌ 만화/웹툰판의 현재가 곧 미래의 위협
한국의 창작만화는 오랫동안 콘텐츠 산업의 ‘원 소스’ 역할을 했다. 만화가 애니메이션도 되고 게임도 됐다. 그런데 지금 한국 창작만화를 대표하던 출판만화는 게임과 애니메이션의 히트 아이템을 활용한 부가판권 시장이 됐다. 그나마도 대상층이 아동으로 한정된 상태다. 다행스러운 것은 웹툰이 원 소스 생산 역할을 넘겨받았다는 점이다.
한국 웹툰의 활성은 전 세계 만화계를 놀라게 할 만한 수준이다. 그런데 또 걱정이다. 초기 웹툰 시장이 플랫폼 경쟁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유료화 이후 웹툰 시장은 콘텐츠 중심 경쟁 체제가 마련 될 것이라 판단했다. 무료 시장에서는 많은 소비자를 모을 수 있는 플랫폼이 시장의 지배자가 되겠지만 유료 시장에서는 좋은 콘텐츠를 지닌 플랫폼이 주목 받을 것이고 기업은 양질의 콘텐츠 생산에 주력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판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았다.
웹툰 붐이 지속되고 투자가 몰리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제한 된 자본은 같은 비용에서 ‘최선의 콘텐츠를 생산’하는데 주력하게 한다. 하지만 한계 없는 자본은 시장의 생산 비용에 혼란을 만들고 ‘최다의 콘텐츠를 확보’하는데 주력하게 한다. 소비자가 만들어 준 이익이 판을 유지하는 생명줄이 되어야 하는데 투자자가 준 기업의 비용이 판을 유지시키고 있다. 지속적인 비용 투입이 장기적으로는 이익으로 전환 되겠지만 경쟁적 비용 투입은 더 많은 비용만을 발생시킬 뿐 이다. 잘 나가던 웹툰판이 갑자기 왜 이렇게 돌아가게 된 걸까?
◌ 웹툰판을 휘감고 있는 3불(不)의 정서
누군가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정서를 3불(不)로 표현했다. 불신, 불만, 불안의 시기를 살고 있다고 했다. 지금 우리 만화계, 웹툰판에도 동일한 정서가 팽배해 있다. 작가들은 제작사와 유통사를 불신하고, 제작사와 유통사는 작가들의 역할과 태도, 작품의 성과에 불만을 표하고 있다. 작가와 기업 간의 불신, 불만이 표면화 되자 독자와 관계자, 투자자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 작가들의 기업 불신
2017년 하반기 촉발 된 이른바 ‘레진사태’는 웹툰작가와 기업 간 불신의 출발점이 됐다. 레진코믹스는 2013년 네이버, 다음으로 대표되는 포털 웹툰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며 시장에 안착한 전문 웹툰플랫폼으로 제작사이자 유통사이다. 한국 만화계의 기반을 웹툰으로 전환시킨 것이 양대 포털사이트였다면 웹툰 시장의 경쟁을 확산시키고 생산과 소비 수요를 극대화 시킨 것은 분명 레진코믹스였다. 만화계 전반에 긍정적 역할을 하며 신예작가들의 높은 지지를 이끌어냈지만 신뢰를 잃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작가에 대한 부당한 처우 논란, 연재 작품 지연에 따른 지각비 논란, 해외 수입금 미지급 논란, 부당한 처우를 SNS에 공개한 작가의 작품을 프로모션에서 제외 한 이른바 블랙리스트 논란 등이 2017년 연말까지 이어졌다. 작가들은 기업을 신뢰하지 않았고 기업은 부적절한 위기 대응 방식으로 갈등을 키웠다. 2018년 초, 웹툰을 등에 업은 국내 만화시장 규모가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 선 다는 전망이 나왔다. 각 업체들이 2017년 실적과 2018년 투자계획을 발표하며 시장의 성장을 축하했다. 하지만 레진사태는 끝나지 않았다. 레진코믹스 규탄시위, 레진코믹스 세무조사 청와대 국민청원, 레진코믹스 블랙리스트 국회 기자회견 등이 만화계 연 초 이슈를 장악했다. 레진코믹스로 촉발된 것이지만 그 여파는 크고 작은 플랫폼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기업이 작가들을 속이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기실 만화계에서 작가와 기업 간 불신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작품의 생산자이자 주인인 작가들은 작품의 최초 사용자이자 대리인인 기업에 대해 오랜 불신을 지니고 있다. 불신의 핵심은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작품의 주인인 작가는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대리인인 제작사나 유통사 보다 자기 작품의 생애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자기 손을 떠난 작품이 어디서 어떻게 유통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계약서가 있다고 하지만 어디서 얼마나 팔렸는지 알 수 없는 터라 계약서대로 얼마가 입금됐다고 해도 미덥지 않다. 전국적으로 분포된 서점에서 종이책이 판매되던 시절은 유통과정의 난맥상으로 집계가 늦는다고 이해했다. 하지만 모든 상거래 활동이 실시간으로 집계되는 요즘 시대에 정산이 늦어지고 산식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 다면 기업이 작가가 봐야할 정보를 의도적으로 가리거나 조정하고 있다고 생각될 것이다. 거기에 잊어버릴만하면 한 번씩 터지는 대리인의 주인 기망행위, 또는 저작권료 편취 행위가 언론에 보도된다. 작가 입장에서는 기업을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른바 ‘알고도 속는 셈 친다. 과하게만 하지 말라’는 정서가 일반화 되어 있다.
▪ 기업들의 작가 불만
작가의 수익에 ‘절대 칼질 한 적 없다’는 선량한 기업에서는 작가들의 이런 정서나 태도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만화계에는 만화가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만화계가 만화가 외에 다양한 역할을 지닌 인력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 할 때 쓰는 말이다. 하지만 역으로 보면 만화가들이 만화계의 중심에 있다는 점을 부연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만화계의 중심인 만화가들이 만화 관련 인력, 만화 관련 기업의 업무, 만화 관련 기업의 이익 등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부족하다는 점을 강변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일부 만화가의 경우는 과거 만화잡지사의 기자를 원고 받아 가는 사람, 편집자는 교정/교열 보는 사람, 디자이너는 식자 붙이는 사람으로 인식했다. 최근 SNS의 한 작가 계정은 웹툰플랫폼이나 에이전시 업체의 담당 피디를 ‘업로더’라 칭했다. 웹툰시대가 되면서 그나마 한다고 생각하던 기업 소속 직원의 일도 사라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작가가 맞춤법 검사 후 식자 작업까지 완료한다. 홍보용 배너나 이벤트 페이지 작업까지 작가가 하는데 플랫폼이나 에이전시가 무슨 일을 하냐는 식이다. 고작 보낸 원고를 검수한 후 서비스 업체에 발송하거나 웹페이지에 등록하는 업무를 하는 이라고 비하 한 것이다(처음으로 원고를 보는 것만도 매우 큰일이다). 담당 피디는 회사 소속이지만 담당 작가의 편에서 연재 작업을 지원하는 ‘화실에 없는 동료’이다. 작가가 애써 만든 작품을 고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최선의 방법을 고민하는 전략적 마케터’이고 화실에 있는 작가를 대신해 ‘회사를 관리 감독하는 최전방의 대리인’이다. 또, 작품의 기획 단계부터 연재라는 지난한 과정을 기다리며 두툼한 한 편의 작품이 될 때까지 회사의 투자를 이끌어 내는 ‘작품에 기록되지 않는 기여자’이기도 하다. 그런 이들을 업로더라 칭했으니 같은 업무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참 허망한 일이다.
작가들이 가장 빈번하게 만나는 피디에 대한 인식이 이런 터라 기업에 대한 인식은 더 낮다. 원고료 몇 푼주고 작품을 서비스했으면 됐지 기업이 무슨 일을 했다고 작품 수익을 배분하냐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다. 현재 만화계에서 작가에게 지급되는 원고료는 명백히 작품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투자금이다. 작품으로 인한 매출이 생기면 투자금을 회수하고 작가와 기업이 배분 몫에 따라 수익을 나눈다. 기업의 배분 몫 중에서 매출원가와 판관비(판매비와 관리비)를 빼야 기업의 영업이익이 된다. 이 영업이익이 발생해야 기업이 다음 원고를 받을 수 있는 재원이 마련된다. 그런데 최근 웹툰판은 이 같은 기본적 토대가 무의미해 진 상황이다. 플랫폼 간 경쟁 체제가 마련되면서 원고료 외에 유료수입 배분율이 작가 50%~70% 선이 됐다. 기업 배분율은 30%~50% 선이다. 이 같은 수입 배분율이 얼핏 적정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전체 연재작가의 상위 20% 미만이 지급 받은 원고료를 초과하는 수입을 발생시키고 있는 점에 비춰보면 현행 기업 수입 배분율은 정상적인 사업 활동을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실례로 네이버웹툰을 비롯한 다수의 플랫폼 기업이 영업수익 만큼의 영업손실을 보고 있다. 예컨대 300억 원을 벌기 위해 600억 원을 쓰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다수의 기업들이 웹툰 유료 수입으로 회사를 운영한다는 목표를 세우지 않고 있다. 국내 유료 수입보다 배분율이 좋은 해외수출이나 IP판매에 기업이 집중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이다. 특히, 웹툰 관련 기업이 시장의 수익성이 아니라 자본시장의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은 유의 깊게 살펴 볼 대목이다. 웹툰 사업을 하고 있지만 웹툰 판매로 기업 운영이 되지 않으니 웹툰의 가치를 팔거나 웹툰의 기대감으로 형성된 회사의 가치를 팔겠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남으니까 사업하지’라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다. 이 부분은 명백하게 기업의 잘못이다. 시장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룰을 정해 이유를 설명하고 작가를 설득해야 했다. 그런데 투자가 몰리고 경쟁이 생기다보니 과한 룰을 제시했고 과도하게 시장을 선점하거나 진입하려 했다. 일부를 제외하면 작가들도 이런 상황을 모르지 않는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 물 들어온다고 물만 빼 먹으면 그 다음은 없다.
▪ 독자와 투자자의 불안
창작 수요가 늘면서 과거 한국 창작만화시장의 고질적 병폐였던 일들이 작가 그룹 내에서 무절제하게 재연되고 있다. 지명도를 기반으로 한 태작, 수입 확대만 생각한 다작, 과도한 표현에만 집중한 가명 창작, 기업과 독자를 기만한 유사 창작(표절, 도용), 창작과정에서의 노동착취나 부당행위 등이다. 일부 작가의 경우 기업의 요구에 응한 것에 불과하다고 선을 긋는다. 하지만 이 같은 행위의 선택과 결과는 온전히 작가의 책임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강요된 창작은 없어야 한다.
이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문제가 되기까지는 알고도 속거나 불만을 지닌 채로 넘어간다. 하지만 지금 웹툰 독자들은 과거와 다르다. 전문 식견을 지닌 한 두 명의 스피커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지식 체계와 관점을 지닌 불특정 다수가 스피커가 될 수 있다.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넘어갔다고 해서 문제가 제거된 것이 아니다. 수많은 독자들이 확인 한 흠결이 쌓이고 쌓이다가 특정 시기에 폭발하는 방식을 취한다. 어떻게 손 쓸 수도 없는 상태에서 문제가 표면화 되고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명료화 되어 버린다.
연재물의 속성상 작가와 독자의 관계는 일반적 상품의 생산자와 소비자 관계에 있지 않다. 일반적 제품의 사용자라면 동일한 제품의 품질과 기능이 유지되길 원하고 만족도가 떨어지면 대체상품을 찾는다. 또 품질과 관련 문제가 생기면 적대적 위치에 서게 된다. 하지만 연재물은 다르다. 자기 취향이라 생각해 특정 연재 작품을 선택하고 주기에 맞춰 쫓아 읽은 독자는 작가와 특수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일면식도 없지만 그가 만든 캐릭터에 동일시되고 그가 만들어낸 상황과 문제에 공감하며 함께 해결 방식을 고민한다. 그리고 한 주를 기다렸다가 작가가 내놓는 전개와 결과를 확인한다. 자신과 같은 판단에 환호하고 다른 판단은 존중한다. 독자란 작가와 함께 작품의 결말을 향해 걷는 동지적 관계에 있다. 그래서 독자는 작가의 문제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기 보다는 불안을 품는다. 웹툰의 실시간 피드백 과정이 독자의 불안을 즉시적 불만으로 표출되게 하지만 악의적 댓글을 제거하고 보면 독자의 불만은 작가나 작품에 대한 불안으로 읽힌다. 수없이 많은 불만 중 하나가 아니라 그런 불만들이 엮여서 형성된 불안의 메시지이다. 특정 문제가 논란이 될 때 ‘헉, 세상에 이런 일이’라고 하기보다는 ‘걱정했던 일이 벌어졌다’고 하는 이유다. 독자는 작품의 소비자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다음 작품의 창작에 직접적 영향을 행사하는 투자자이기도 하다. 그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옳지 않다.
● 웹툰 생태계의 안정성은 창작자, 제작자, 소비자 연대로 부터
한국만화는 매 시대마다 변신을 거듭해왔다. 일본 망가의 영향권 하에 있었지만 매 시기마다 독자적인 창작시장을 구축해냈다. 80년대에는 극화, 90년대에는 코믹스, 2000년대에는 학습만화, 2010년대에는 웹툰이라는 대표 상품을 만들어냈다. 시장의 변신을 견인한 것은 매 시대마다 등장한 신예 작가들의 힘이 컸다. 하지만 그 시기를 유지하고 새로운 작가의 등장을 이끈 것은 제작시장을 전담했던 기업이었다. 물론, 작가의 등장과 기업의 도전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독자였다. 이들은 일본 망가를 주류 상품으로 소비했지만 한국 창작만화에 대한 기대와 응원을 잊지 않았다. 최고의 작품만 선별 수입 된 일본 망가에 제작과 소비가 집중됐다면 한국 창작만화의 주역인 작가들은 없었을 것이다. 기업은 수입 일본 망가로 벌어들인 이익을 일정부분 한국 창작만화 생산에 투입했고 독자는 높아진 눈높이와 무관하게 한국 창작만화의 가치가 유지될 수 있도록 비판적 소비를 지속했다. 작가, 기업, 독자 간 불화와 대립이 없지 않았지만 결정적인 상황에는 연대했고 상호 지지하며 한국 만화의 생태계를 유지 발전 시켜왔다. 한국 최초의 만화 탄생일은 6월 2일이다. 그런데 한국 만화의 날은 11월 3일이다. 이 날은 창작자, 제작자, 소비자가 연대해 과거 정부의 만화탄압에 맞선 날이었다. 연대하고 함께 했기에 가능했던 날이다. 오늘도 그렇다. 지금도 그렇다. 3자가 어깨동무하고 앞으로 갈 것까지야 없겠지만 정서적 연대가 필요하다. 동지적 관계에서의 지지와 응원이 필요하다. 지금 여기 있는 이, 여기를 거쳐 간 이, 여기로 들어오는 이가 모두 우리여야 한다. 상호간 존중과 이해가 절실한 시기이다.
(끝)
글 :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교수)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