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서평-무빙(강풀 글/그림), 도서관이야기,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2016.09.01

비 온 후의 정원고등학교. 진흙 밭이 된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여서 개학식을 진행하고 있다. 줄지어 선 학생들의 운동화는 질퍽거리는 진흙으로 더럽혀졌다. 그 중 교복 셔츠가 불편해 보일정도로 아랫배가 볼록 튀어나온 소년이 있다. 김봉석. 뭐가 불편한지 안색이 좋지 않다. 그런데 다른 학생들과 달리 소년의 운동화는 비교적 깨끗했다. 몇 줄 앞에선 소녀 장희수를 보기 전까지는. 


능력을 발휘하는 삶보다 보편적 삶을 강요받는 청소년 히어로들의 이야기



능력을 감추고 살아야 하는 청소년 히어로


봉석은 태어날 때부터 공중부양 능력이 있었다. 엄마 젖을 물고 잠들었을 때 처음 몸이 떠올랐다. 화들짝 놀란 부모는 아이를 안고 병원을 찾았다. 건강 상 문제가 없다는 의사에게 아이가 공중부양을 해서 걱정이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믿지도 않겠지만 혹시라도 아이를 이상하게 볼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작은 감정의 변화만 생겨도 떠오르는 아이 덕에 부모는 하루도 편하게 잠들지 못했다. 언제 바닥으로 떨어져 다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의 이상한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의 정상적인 성장과정을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반면, 봉석은 자신의 비정상적인 능력을 숨기고 사느라 상처가 늘어갔다. 슈퍼맨처럼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미끄럼틀 위에서 뛰어내렸다가 엄마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다른 아이가 따라하다 다쳤기 때문이다. 성장기에는 일부러 몸에 살을 찌웠고 갑자기 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기도 했다. 엄마는 조금 다를 뿐 이상한 건 아니라고 했지만 아이가 타고난 능력대로 사는 것을 불안해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살기를 원했다. 봉석 역시 엄마의 뜻에 따라 자신의 능력을 감추고 살았다. 희수라는 소녀가 눈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늙고 병들어 능력을 잃어가는 학부모 히어로


<무빙>은 신체적 능력을 지닌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희수를 좋아하게 된 봉석은 자신의 비밀스런 능력을 보여준다. 이에 희수도 봉석에게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한다. 봉석이 비행 능력을 지녔다면 희수는 상처 치유 능력을 지녔다. 희수는 이 능력으로 남자들의 허세담 중 하나인 17대 1의 싸움에서 최후의 1인이 되기도 했다. 두 사람의 연애담 속에 등장하는 또 한명의 능력자가 이강훈이다. 모범생 반장 캐릭터인 강훈은 엄청난 파워와 스피드를 지닌 인물로 전형적인 초능력자이다. 두 사람 사이를 시기하는 듯 삼각 연애담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정원고등학교 3학년 5반에 모이게 된 세 명의 청소년 능력자들은 외모, 입시, 학원비, 학교폭력 등 학원물의 주요 소재 속에서 한참을 머문다. 능력이 주어졌지만 능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부모들의 이야기로 옮겨간다. 청소년 능력자들 옆에서 한없이 작은 모습만 보였던 학부모들. 친구 엄마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학원비 줄 돈이 없어서 가슴을 쳐야했던 그들도 젊은 시절에는 가공할 초능력을 지닌 청춘들이었다. 봉석의 아버지는 하늘을 날았고 희수의 아버지는 어떤 상태에서도 신체를 회복시켰다. 그리고 강훈의 아버지는 가공할만한 싸움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부모들은 국가를 위해 자신들의 능력을 활용한 숨은 영웅들이었다. 아이들이 지닌 능력은 부모 세대의 능력이 유전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와 같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초능력을 지닌 인간이었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늙고 지친 것이다. 


한국형 가족 스파이 액션 히어로물의 시작


<무빙>(전 5권)은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된다. 전반부가 청소년 능력자들의 이야기라면 중반부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부모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리고 후반부는 다시 현재로 와서 청소년 능력자들과 이들을 지키려는 학부모 능력자들의 이야기를 펼친다. 이들이 맞서 싸운 상대는 북한에서 특수 훈련을 받고 한국에 잠입한 능력자들이다. 학원로맨스물처럼 시작됐던 작품은 부모세대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스파이액션물로 전개되는가 싶더니 막바지에는 본격 액션히어물이 됐다. 다소 황당무계한 전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작가는 우리 사회의 일상과 이념을 종횡무진하며 그 속에 진득하게 자리 잡고 있는 가족애라는 실체를 끄집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들의 능력이 시작되고 그 능력이 가장 충실하게 발휘되는 순간이 곳 가족이라는 설정은 등장인물들의 각종 능력을 걷어내더라도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전한다. 이 작품은 ‘웹툰의 시조새’라고 불리는 강풀 작가의 열두 번째 장편이다. 강풀작가는 ‘순정만화 시리즈(<바보>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를 통해 현실감 넘치는 일상의 드라마를 작품화 한 작가로 유명하지만 상상력 가득한 허구의 세계(‘미스터리 심리 썰렁물 시리즈’ <아파트> <타이밍> 등)를 치밀한 복선과 탄탄한 연출로 완성해내기도 했다. 시간능력자들의 이야기를 다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했던 <타이밍>이 이 작품과 동일한 세계관을 보여준 작품이다. 마블코믹스나 DC코믹스가 아이언맨, 슈퍼맨 등 각종 히어로들을 한자리에 모은 세계관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무빙>과 <타이밍>의 주인공들이 함께 등장하는 강풀월드의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1997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만화콘텐츠기획자, 만화정책기획자, 만화전시기획자 등으로 일하다가 2013년부터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콘텐츠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코믹스 만화의 세계>,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홈페이지는 www.parkseokhwan.co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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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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