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서평-운빨로맨스(김달님 글/그림), 도서관이야기,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2016.08.01

점집. 신녀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여자. 신녀는 ‘전생에 무슨 잘못을 이렇게 많이 졌냐’며 여자에게 호통을 친다. 신녀의 점술에 의하면 여성는 전생에 너구리였는데 호랑이가 새끼에게 주려고 잡아 논 토끼를 몰래 홈쳐 먹었다고 한다. 이 일로 호랑이 새끼가 굶어 죽었고 여자에게 원한이 붙어서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신녀는 여자에게 부적을 써주며 호랑이 띠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라고 한다. 한 달 안에 호랑이를 잡지 않으면 올 해 안에 죽는다는 예언과 함께. 

어찌할 수 없는 현실 앞에 나타나는 한 가닥 희망의 메시지

팔자를 믿는 여자와 의지를 믿는 남자

주인공 점보늬는 이름처럼 허구한 날 점집을 찾는 30대 직장 여성으로 허름한 소프트웨어 개발사에 다닌다. 사사건건 신녀의 점술에 의지하고 합리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신경 쓰지 않을 미신을 믿고 산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좀 미친 여자처럼 보일 정도로 주술적인 부분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 지금 세 들어 살고 있는 집도 신녀가 찍어준 곳이다. 그런데 이 집 주인이 바뀌었다. 근검절약과 재테크가 취미여서 십 원 한 푼 함부로 쓰지 않는 29살의 젊은 직장 남성 제택후. 증권거래소에 다니면서 급여의 90% 이상을 모아 알뜰하게 불린 돈으로 보늬가 세 들어 살고 있는 건물의 주인이 됐다. 그리고 4개월이나 집세가 밀린 보늬에게 당장 방을 빼라고 한다. 보늬가 점에 집착하는 여자라면 택후는 돈에 집착하는 남자. 그리고 보늬가 드센 팔자를 탓하며 자기만의 세계 속에 갇혀 사는 여자라면 택후는 좀 찌질해 보이지만 자신의 의지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남자이다. 그리고 택후는 신녀가 이야기했던 호랑이 띠 남자였다. 

주술적 사고와 팔자를 막기 위한 의지

<운빨 로맨스>는 전혀 다른 성격과 상황에 놓인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를 걱정하며 사랑하게 되는지를 그린 로맨스물이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연재되면서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은 작품이다. 직장남녀의 사랑과 돈에 대한 관념이 주 소재로 다뤄지고 있어서 다소 자극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우화적 설정과 권선징악적 이야기 구조, 젊은 남녀의 가치관 변화를 보여주는 전개로 폭넓은 연령층에게 다양한 주제를 전달하는 작품이다. 

보늬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죽거나 위험에 빠지는 경험을 했다. 이런 보늬에게 어느 날 신녀가 나타나 ‘팔자에 가족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후 보늬의 부모가 죽고 동생마저 식물인간 상태로 병원에 장기 입원하는 상황이 된다. 인과 관계를 찾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신녀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황당하고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프로그램머 출신인 보늬는 이제 자신의 과학적이거나 합리적 사고보다는 신녀의 주술적 진단과 처방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부분이 있었지만 과학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 앞에서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이 있을 때 신녀의 주술적 처방은 보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었다. 

불행한 일이 터지면 주변에 소금을 뿌리고 불길한 기운이 있으면 닭피를 담은 분무기를 분사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몰래 부적을 붙이고 신녀의 허무맹랑한 말 한마디에 인생을 내 던지듯 움직인다. 얼핏 보면 미친 여자처럼 보이고 자신의 불행을 막기 위해 타인의 삶과 가치관을 허무는 무뢰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보늬의 이런 행동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드센 팔자 때문에 불행해졌거나 불행해질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나름의 방식이었고 합리적 선택이었다. 예측 불가능한 것을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보려는 나름의 의지였다. 

전래 동화 같은 익숙함과 낯섦이 주는 재미

<운빨 로맨스>는 ‘호랑이의 원한을 갚아야 살 수 있는 여자’의 문제로 시작되는 작품이다. 얼핏 ‘은혜 갚은 호랑이’ 설화를 비틀고 세세하게 조정한 듯 익숙한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다. 여기에 주술적 사고의 축인 보늬와 점집, 합리적 사고의 축인 택후와 증권거래소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 냄으로서 익숙한 듯 낯선 ‘대립과 갈등구조’를 만들어 냈다. 재기 넘치는 설정만큼이나 작화 측면의 매력도 돋보인다. 

김달님 작가는 2004년 ‘계간만화’라는 잡지를 통해 데뷔한 이후 <물귀신 구출작전>, <내 친구 몽실이> 등 아동 대상의 동화적 감수성이 가득 한 만화 작업을 해왔다. 다수의 아동물이 그렇듯 아동 주인공의 바른 행동이나 태도를 강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만화팬들 사이에서는 ‘도덕책 그림체’ 작가로 불리기도 했고 젊은 남녀의 톡톡 튀는 연애담이 주가 되는 로맨스물과는 어울리지 않는 작가로 인식되기도 했다. 하지만 <운빨 로맨스>는 ‘도덕책 그림체로 사람 설레게 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일찍부터 가장 드라마틱한 웹툰으로 손 꼽혀 왔다. 최근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황정음, 류준열 주연의 TV드라마가 방영되면서 다시한번 주목 받고 있다. 작가의 주 특기인 아동물의 교육적 서사 방식이 그대로 투영된 이 로맨스물은 일이든 사람관계든 정해진 운명보다 의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많은 이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운빨로맨스

연출 김경희

출연 황정음, 류준열, 이수혁, 정상훈, 권혁수, 이청아, 이초희

방송 2016, MBC

운빨 로맨스 1~3 (완결) 세트

저자 김달님

출판 재미주의

발매 2016.04.19.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1997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만화콘텐츠기획자, 만화정책기획자, 만화전시기획자 등으로 일하다가 2013년부터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콘텐츠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코믹스 만화의 세계>,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홈페이지는 www.parkseokhwan.co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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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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