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꿈 많은 이들의 쉘터 만화방, 공간공감, 문화재사랑, 2014.06.01

꿈 많은 이들의 쉘터, 만화방



거리는 살아남는 자의 편이다. 늘 크고 작은 간판들이 줄지어 어깨 싸움을 펼친다. 몇몇은 소리 없이 사라지고 몇몇은 뒷골목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몇몇은 살아남는다. 거리는 그렇게 살아남은 이들을 중심으로 제 모습을 바꾼다. 그래서 거리는 비열하고 그를 품은 도시는 무정하다 했을 것이다. 80년 대 최고의 호황을 누렸던 만화방 역시 소리 없이 사라진 거리의 간판 중 하나였다. 한 때 2만 여 개가 넘었으니 전국에 사람 좀 다닌다는 거리에는 꼭 만화방이 있었다.


최재성의 장밋빛 인생과 만화방 



80년 대 서울은 정신없이 바빴다. 과거가 오늘을 통제했고 권력이 개인의 삶을 지배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시절의 정신없음을 즐겼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 시절의 고약함 때문에 숨어 살아야 했다. 영화 <장미빛 인생>(1994년 작) 숨어 있기 좋은 곳으로서의 만화방을 그렸다. 그 시절 만화방은 단순히 만화를 읽는 공간만은 아니었다. 심야시간이 되면 하루를 힘겹게 산 이들이 노숙을 피해 몸을 누이러 오는 곳이었고 여관 숙박부에 신상을 기재할 수 없는 이들이 숨어 자는 곳이기도 했다. 수배자, 데모꾼, 현실도피자 등 세상과 달리 살았던 사람들이 천 원짜리 한 장으로 심야만화방에 누워 만화책과 함께 하루를 보냈다. 그 공간에 최재성도 있었다. 지금은 배나온 중년배우 중 한명에 불과하지만 80년대 최재성은 최고의 하이틴스타였고 청춘의 아이콘이었다. 그런 최재성에게 신인 감독 김홍준은 건달 동팔 역을 맡겼고 그 해 3개의 신인감독상을 휩쓸었다. 심야만화방 주인 역을 맡은 최명길 역시 3개의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과 특별상을 받았다. 최재성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지는 별이 됐다. 대신 이 작품으로 최재성은 롱런할 수 있는 개성파 성인 배우의 길을 찾았으니 그에게 만화방은 어른이 되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곽경택의 억수탕과 만화방




90년대 부산은 늘 떠들썩했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발전했고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개인의 자유와 욕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로 불만을 이야기했고 타인에 대한 배려나 존중은 찾을 수 없었다.  떠들썩함은 곧 부조리한 세태로 이어졌고 불합리한 것들을 드러내게 했다. 영화 <억수탕>(1997년 작)으로 데뷔한 곽경택 감독은 동네 목욕탕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다 벗고 나누는 대화를 그렸다. 그리고 만화방 씬을 통해 다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주인공 역을 맡은 김의성이 만화방 주인 역을 맡은 이재용에게 만화가 이현세의 신간이 나왔냐고 묻는다. 당시 만화방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기 만화가 이현세, 박봉성의 작품을 경쟁하듯 동일하게 읽었다. 그러자 이재용이 특유의 부산 사투리로 이현세, 박봉성은 정통이 아이라. 보소, 진짜로 만화 보는 사람들은 이런 것만 보요. ~통한 거라고 답한다. 그 정통한 만화가 무슨 작품인지는 알 수 없으나 곽경택은 이재용의 대사를 통해 같은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했으니 그에게 만화방은 다른 세상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됐을 것이다.


임창정의 위대한 유산과 만화방



2000년대 한국은 한가했다. 열심히 일한다고 달라 질 것도 없었고 딱히 일할 자리가 있지도 않았다. 고도발전기를 거친 세대, 심각한 경제위기를 극복한 세대, 컴퓨터에게 일자리를 내준 세대가 함께 함께 살고 있었다. 세대 간 갈등이 격화됐고 빈부 간 격차도 심해졌다. 놀면서 돈을 버는 부자가 생겼지만 놀면서 최소한의 욕망만 해결하려는 백수도 생겼다. 영화 <위대한 유산>(2003년 작)은 고용 없는 성장시대의 백수를 그려냈다. 그리고 세상의 변화에 맞춰 달라진 만화방을 등장시킨다. 이른바 복합대여점이라고 불리는 형태의 이 만화방은 비디오와 만화책을 함께 빌려주는 곳이고 연체료라는 형태로 점주와 고객의 대립이 상존하는 곳이다. 그 곳에서 일류대 출신 백수 창식 역을 맡은 임창정과 엄마가 하는 복합대여점에서 연체료로 근근이 생활하는 미영 역의 김선아가 대립한다. 일하기 싫은 백수 창식이 애타게 찾는 만화책은 아이러니하게도 전문도박사들의 세계를 그린 허영만의 <타짜>였다. 일하기 싫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일하지 않고 지내 버리게 된 임창정에게 이 변화 된 형태의 만화방은 자신의 욕망을 감춤 없이 발산하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전지현의 별에서 온 그대와 만화방



2013년 세계는 다시 대립하고 있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이념과 체제 대립이 종결되고 미국이라는 극초강대국을 중심으로 국제 질서는 재편됐다. 그러나 이도 잠시. 중국, 러시아, 유럽연합 등으로 대표되는 신흥 초강대국들이 생기고 미국에 반하는 국가나 단체의 보이지 않는 위협이 끈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기후, 환경, 바이러스 등 그간 경험해보지 않은 위기가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TV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2013년 작)에서 여주인공 천송이 역할을 맡은 전지현 역시 그간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에 처해있다. 우연히 만나 마음을 주게 된 사람이 외계인이고 그가 지닌 어마 무시한 초능력은 상상할 수 없는 세계로 자신을 몰고 갔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하루에도 몇 번씩 겪게 된 전지현은 자신의 말 할 수 없는 고민을 말하기 위해 여고동창이 운영하는 만화방을 찾는다. 이제 만화방은 근사한 인테리어와 매력적인 커피 향으로 가득한 이른바 만화카페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곳에서 전지현은 온갖 위기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고 고민을 해소했으니 그에게 만화방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박석환의 디지털만화론과 만화방



여러 시대가 흐르는 동안 만화방도 많이 달라졌다. 물론 만화방을 이용하는 사람도 달라졌고 만화방의 역할과 의미도 많이 달라졌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게도 만화방은 각별한 의미이고 색다른 가치를 전달하는 공간이다. 나 박석환은 1980년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상경했다. 촌뜨기 시골 소년에게 곁을 내주는 동무는 많지 않았다. 소년은 학교 앞 만화방에서 만화 속 주인공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그 시절을 버텼다.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사춘기 시절에도 소년은 만화방을 찾았고 그 안에서 지식과 감동을 얻었다. 만화를 그리기도 했지만 만화를 많이 읽었고 그 속에 담긴 꿈과 우정, 도전과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다. 그러다가 1997년 한 신문사의 신춘문예를 통해 만화평론가가 됐다. 평론활동을 하면서 만화방을 찾는 사람들과 책대여점으로 인해 달라진 유통환경 등을 보고 있자니 색다른 영감이 떠올랐다. 그래서 2000년 인터넷 상에 만화방을 만들고 디지털만화 시대가 열릴 것이라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터무니없는 소리라 했고 일부에서는 변화는 있겠지만 종이만화는 영원할 것이라 했다. 답은 오래가지 않아서 나왔다. 이제 웹툰이라 불리는 디지털만화가 한국만화를 대표하는 용어가 됐다. 포털사이트는 과거 만화방이 지녔던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니 내게 만화방은 미래를 보여주는 관문이었다.


반갑기도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만화는 대체로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삶을 다루고 그들의 노력과 도전, 용기와 성공 그리고 지금보다 큰 성장을 그린다. 그래서 최재성은 만화방에서 성장했고 곽경택은 그 곳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임창정은 자신의 욕망을 확인했고 전지현은 안정을 찾고 위로를 받은 것이다. 개인차가 있을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만화 또는 만화책이 있는 만화방이라는 공간에서 색다른 판타지를 경험하고 정서적 위안을 얻는다. 그래서 만화는 위안이고 만화방은 삶의 대피소이자 안전지대이기도 했다. 세상이 달라져서 지금은 그 같은 역할을 웹툰이 대체하고 있다. 하지만 대체되지 않는 것도 있다. 만화책이 주었던 종이의 질감과 만화방 소파에서 찾았던 안락함은 만화책 내용만큼이나 중요했던 만화독서의 체험요소였다. 마우스나 터치스크린이 주는 것과는 다른 만화독서 환경의 즐거움이었다. 특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서로 다른 세계에 몰입하고 있다는 것이 주는 공간감은 어떤 언어로도 표현하기 힘든 위안이었다. 이처럼 최근 만화방은 디지털이 대체하지 못하는 실감 요소를 찾아서 색다른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하지만 한 때 2만 여 곳이 넘었던 만화방은 이제 전국적으로 1천 곳 가량으로 줄었다고 한다. 소리없이 사라져가는 공간 중 하나가 됐다. 그래서 더욱 아쉽다.

 

 

/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유년시절 이두호의 만화로 한글을 깨우치고 이상무의 만화로 울지 않는 법을 배우며 성장했다. 이현세의 만화를 보며 도전하는 남자의 매력을 알았고 허영만의 만화를 통해 현명한 어른으로 사는 방법을 찾았다. 스포츠서울 신춘문예로 등단해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고 대학에서 만화를 가르친다. 저서로는 <코믹스 만화의 세계>,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홈페이지는 www.parkseokhwan.co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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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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