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내 생애 첫 만화 ‘긴 머리 팔매’를 찾아서, 조선을 그린 이두호, 2008.12.09

“처음 본 만화가 뭐예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받은 질문이다. 만화평론가라는 직함으로 대외활동을 한지 한 두 해가 지나던 때의 일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평론가는 다른 사람의 질문에 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아~ 예’하는 정도의 건성 대답이 아니라 인터뷰어의 질문에서 객관화된 현상을 뽑아내고 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해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일반적인 현상이나 현황을 암기한 수준이라면 현장의 전문가와 다를 바 없다. 논리적이되 주관적인 평가를 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날 내 답변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일본만화 전면 개방에 따른 한국만화의 경쟁력’에 대해 답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내가 처음 본 만화가 뭐였는지는 그저 인터뷰어의 개인적인 궁금증이었을 거다. 그런데 내 심정은 달랐다. 인터뷰어와 헤어지고 나서도 그의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마치 첫사랑의 이름이라도 까먹은 듯 묘한 낭패감을 느꼈다. 얼핏 어떤 영상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단어가 되지 못했다. 버스 창에 걸려 길게 늘어져 버린 가로등 불빛처럼 형체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 시절을 같이 한 친구라도 있다면 달려가서 묻고 싶었다.



“난 도대체 언제부터 만화작품을 본 걸까?”

 

기억해야 했다. 만화평론가를 업으로 삼겠다는 자가 자신이 처음 본 만화작품과의 짜릿한 첫 경험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누구에게 좋은 만화작품을 기억하고 함께 나누자 할 것 인가. ‘까먹을 것이 따로 있지….’ 혼잣말을 하다가 ‘까목’이가 떠올랐다. 목이 까맣다고 해서 까목이었다. 물론 까목이가 만화가 이두호의 초창기 캐릭터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까목이를 스타덤에 올려 논 작품이 <폭풍의 그라운드>라는 것도 알았다.




대표 작가의 작품 연보를 꿰는 것이야 평론가의 기초 소양 아닌 가. 그런데 이 작품은 내가 태어나기 1년 전인 72년에 연재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초등학교 2학년 경(81~82년 쯤) 만화방에서 단행본으로 읽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처음 본 만화작품은 아니다. 그 때는 만화작품을 읽기 위해 시간 조절(?) 차원에서 학교에 가지 않을 때도 있었고, 용돈 조절(?) 차원에서 어머님 지갑을 같이 사용하기도 했다. 만화작품이 연재되는 잡지를 보기 위해 정기 구독하는 친구 앞에서 감정 조절(?)을 하기도 했으니 이때는 이미 만화를 다독(多読)하던 때다. 처음이 있어야 한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영상 속의 배경은 고모네 집 토방 위다. 책이 놓여있고 책 표지를 잠깐 보다가 본문을 펼쳐 읽는다. 아니 아직 글을 모르던 때여서 그냥 그림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고모네 집이라면 고향이다.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상경했으니 8세 이전의 일이다. 고향의 새마을회관에는 여기저기서 잡지가 배달되어 왔다. 회관에 배달된 잡지책은 동네 형과 누이들에 의해 이 집, 저 집으로 떠돌아 다녔다. ‘이 걸 왜 네가 가지고 있냐!’며 형들끼리 싸우던 기억이 난다.
깡촌이었던 탓에 책이라고 생긴 것은 교과서 밖에 없었다. 아마 내가 보고 있던 책도 단행본이라기보다는 잡지였을 것 같다. 책의 표지도 일반적으로 잡지 표지에 게재되는 인물 사진은 아니었고 만화그림이었다. 잡지가 더 흔한 곳이었고 사진이 아닌 만화 표지를 사용했다면 잡지의 만화별책부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요즘 희귀 만화수집가들의 필수 아이템 중 하나가 70~80년대 잡지의 만화별책부록이다. 그 중에서도 [소년중앙] 만화별책부록은 흔할 정도로 많은 수집가가 소장하고 있다. 그만큼 당시 널리 읽혔고 많은 부수가 발행됐다. 근접하다.

까목이가 불쑥 생각났던 것도 그렇고, 이두호가 초창기에 중앙일보사 계열의 다양한 잡지에서 폭넓게 활동했기 때문에 개연성도 충분하다. <폭풍…> 이후 80년 이전에 이두호가 [소년중앙] 별책부록에 연재한 작품이라면 78년부터 79년에 걸쳐 발표한 <바람처럼 번개처럼>일 가능성이 높다. 이때라면 내가 만5~6세가 되는 해다. 만화를 처음 접하고 어떤 형체를 기억할 수 있는 나이다. 글자도 모르는 내 둘째 아이(만5세다)가 <마법천자문> 게임카드를 보면서 한자의 음과 뜻을 줄줄이 대는 것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추측이다. 그런데 이 만화작품의 주인공은 까목이가 아니다. 신기에 가까운 돌팔매 기술을 지녔다고 해서 이름이 팔매인 주인공이 등장한다.
까목이가 덜렁대고 성급한 소년이라면 팔매는 까까머리 스님이다. 외형처럼 진지하고 사려 깊은 소년이다. 내용측면에서도 도전이나 열혈보다는 자기극복에 대한 설정이 강했다. 야구선수가 된 주인공은 연일 퍼펙트 승을 올리지만 연습 도중 나타난 정체불명의 타자에게 장타를 허용하고 만다. 이후 팔매는 정체불명의 타자에게 홈런을 맞고 퍼펙트 기록이 깨질까 봐 두려워한다. 이야기는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물론 이 역시 <바람…>의 연재가 완결 된 이후 초등학교 시절에 <유령타자>라는 이름으로 발행 된 단행본을 읽은 기억이다.



“<바람처럼 번개처럼>이었을까?”

내가 처음 본 만화작품이 [소년중앙]의 만화별책부록에 연재된 <바람…>이라면 까목이는 이를 떠올리기 위한 기억의 도움 장치였을까? <유령타자>를 읽을 때 어떤 대목에서 미리 본 것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내 기억에서 어렴풋하게 남아있는 첫 경험 만화작품이었기 때문일까? 그런데 만화작품 읽기의 첫 경험으로 떠오르는 영상 속 인물은 까까머리 스님이 아니라 검게 머리칼이 그려져 있는 것 같았다. 그 때문에 까목이가 먼저 떠오른 것 같다. 팔매일 가능성이 높은데 머리칼이 없으니…. 누굴까? 어떤 작품일까? 인터넷을 통해 한 수집가가 정리한 <바람…>을의 본문 내용을 검토하며 다시 기억을 짜냈다.



바지저고리를 입고 팔매가 역동적으로 공을 던지는 모습과 나름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악을 쓰는 모습이 풋풋해 보인다. 고만고만한 소년의 고민임에 분명하지만 성인이 된 사람의 복잡다단한 표정은 전혀 읽히지 않았다. 오직 하나만 읽히는 소년기의 맹목적 열정, 만화작품을 통해서 그 순수함의 세계로 들어갔고 그 세계를 동경하며 그들처럼 멋지게 살아보려 했었다. 지금도 그럴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도중 문득 한희작의 만화가 떠올랐다.

한희작은 이두호와 동년배로 한 때 아동명랑만화로 필명을 알리다가 스토리작가 임웅순과 함께 성인풍속만화로 일가를 이룬 만화가다. 이두호의 펜선이 묵직하다면 한희작의 펜선은 경쾌했다. 그처럼 이두호는 장편서사에 능하고 한희작은 짧은 옴니버스에 능하다. 동자승이었던 팔매가 도포를 입은 모습, 바지저고리를 입은 모습 등을 보며 한희작의 펜선과 만화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졌다. 82년 발표된 한희작의 <달을 쪼갠 사나이>다. 남루한 차림의 도사가 물에 비친 달을 칼로 쪼개는 장면과 주인공의 검술 묘사가 인상적이었던 작품이다. 이때 <바람…>을 보며 한희작을 떠올렸듯 초등학교 시절에는 <달을…>을 보며 이두호를 떠올렸다. 그렇다면 까까머리여야 할 팔매를 머리칼이 있는 주인공으로 기억하게 만든 건 한희작 만화의 주인공 외형이 겹쳐진 탓이다. 맞는 것 같다. 그땐 그렇게 놀았다.



“내 기억 속 긴 머리 팔매의 정체는 달을 쪼갠 사나이?”

초등학교 시절 나의 만화벗은 만화방 주인아저씨였다. 나는 만화작품을 읽으면서 화실 주소나 전화번호 찾기, 책 뒤 페이지에 실린 독자만화의 중복 투고자 찾기, 만화작품 본문 속에 장난치듯 적힌 문하생 이름 찾기 등의 놀이를 즐겼다. 그 중에서 무엇보다 생산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하며 매달렸던 것은 비슷한 그림 찾기 놀이였다. 비슷한 만화 그림 속에는 뭔가 대단한 이유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것을 발견하면 자랑스럽게 아저씨한테 말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평론가가 될 아이의 턱없는 궁금증과 집착이 만들어낸 놀이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 때를 생각해보면 일종의 탐험이었고 보물찾기였다.

당시 내 또래의 아이들은 다들 나름의 보물을 찾기 위해 하루 일과를 소비했다. 소풍의 백미였던 보물찾기 놀이처럼 보물쪽지가 근방에 숨겨져 있다는 확신도, 누군가 틀림없이 선물로 보상할거라는 믿음도 없었지만 각자의 보물을 쫓아 해질 때 까지 돌아다녔다. 내게는 만화가 탐험의 대상이었고 만화방이 보물섬이었다. 만화작품이 보물일 때도 있었고 만화작품 속에서 보물을 찾기도 했다. 특히 어딘가 이상한 구석을 발견해서 만화방 아저씨 앞에 ‘턱’하고 들이밀면 아저씨는 쥐포를 주기도 했고 신간을 공짜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다(지금 생각해보니 잠깐 가게를 맡긴 것 같기도 하다).



한희작의 <달을…>을 보며 이두호가 떠올랐다는 이야기를 만화방 아저씨와 했는지 안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저씨는 내 물음에 한 번도 답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나는 그런 궁금증을 묻지 않는 성격이 아니었으니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아저씨와 이야기했을 것이고, 아저씨는 만화에 대해서 척척박사였으니 아는 바대로 답했을 것이다. 아저씨는 표지 그림을 비교하면서 누가 누구의 제자고 누구랑 누구는 형제 관계여서 이 작품과 이 작품은 그림이 비슷하고, 이 작품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 작품도 읽어보라는 등등의 이야기를 해줬다(이 경우는 지금 생각해보니 상술이었던 것 같다). 어떤 때는 만화책을 읽는 것보다 아저씨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즐거웠다. 지금 10살인 내 큰 아들이 축구를 하는 것보다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더 좋아하듯 당시의 나 역시 만화를 읽는 것보다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더 재미있어했다. 한희작이 이두호의 스토리를 받아 <바람…>의 뒷부분을 완성했다는 이야기는 중학생 때 쯤 이두호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알게 된 것 같다.



“번개처럼 빠른 공은 바람소리를 내니까”

정리하자면 내 나이 만 5살 때쯤이 된다. [소년중앙]과 별책부록이 새마을회관으로 배달됐고 누군가 그 중 부록만화를 고모 내 집 토방 위에 가져다 놓았다. 내가 이걸 우연히 봤다. 만화책 보기를 생활화 하던 9살에서 10살 때쯤 이두호의 <유령타자>를 읽었는데 낯설지 않게 여겨졌고 조금 이후 한희작의 <달을 쪼갠 사나이>를 보면서 이두호가 생각났다. 그렇게 기억과 기억을 오려 붙이고 지금 확인 할 수 있는 당시 사실들을 더하고 보니 그 때 토방 위에 놓여있던 부록만화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접한 만화는 이두호의 <바람처럼 번개처럼>이다.


사실 그 자체라기보다는 해석적 진실에 가깝지만 나는 이렇게 첫 경험 만화를 갖게 됐다. 핏줄을 찾은 것 같기도 했고 만화 읽기의 시작점을 찾은 것 같기도 했다. 앞으로 어떤 만화를 읽어야 할지 전개지점이 훤하게 뚫리는 느낌을 얻기도 했다. 물론 첫 경험 만화가 다른 작품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만한 기쁨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두호이고 <바람처럼 번개처럼>이었다는 것은 나를 더 흥분되게 만들었다.


이두호는 만화가로서 승승장구하면서 <바람…>을 작업 하던 도중 가난 때문에 펼치지 못했던 화가로서의 꿈을 찾기 위해 펜을 놓고 붓을 들었다. 그 기간 동안 친구였던 한희작이 이두호의 <바람…>을 마무리했다. 이두호는 마치 팔매처럼 만화가로서, 투수로서 승승장구하던 때에 거대한 벽을 만나게 된다. 이두호가 만난 것은 만화에 대한 자부심을 지니지 못한 채 만화가로서 살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고, 팔매가 만난 것은 어둠 속에서도 자신의 공을 가볍게 쳐내는 유령타자였다. 문제를 지닌 작가와 작가의 문제가 드러난 작품을 만난 평자가 흥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언론과의 인터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했다. ‘나의 첫 경험 만화는 <바람처럼 번개처럼>이고 그 만화가는 이두호였다’고. 하지만 어렵게 찾은 내 첫 경험은 그리 소중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인터뷰어는 내 성실한 답변에도 불구하고 내가 본 첫 만화는 그냥 ‘어린 시절에 본 만화’로 적기 일수였다. 어떤 경우는 ‘이두호가 그린 반공만화’로 적어 놓기도 했다. 어쩌면 이렇게 잘 못 표기된 내용이 나를 괴롭힐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가. 유령타자가 팔매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던 가.

‘소리를 듣고 치는 거지. 바람소리 말이야. 바람소리. 번개처럼 빠른 공은 바람소리를 내니까.’

내가 내는 소리를 듣는 이가 있다면, 그 소리를 들어야 할 목적이 있다면 틀린 쪽이 아니라 바른 쪽의 의미를 금방 찾지 않을 까. 유령타자의 말처럼 문제가 있다면 답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답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면 곧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어야 한다.

나는 <바람처럼 번개처럼> 또는 <유령타자>를, 아니 이두호를 이렇게 읽었다.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답을 지니고 새롭게 도전하는 사람이다. 그가 내 생애 첫 만화의 주인공이었다는 점에 감사를 표한다.


‘답과 도전’이라는 키워드를 지닌 사람 이두호가 대표 만화가라로서 대학교수에 도전했다가 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만화가로 돌아왔다. 돌아 온 것일 뿐인지 모르지만 회화로의 외도 후 역사만화라는 답을 지니고 새롭게 도전했던 때처럼, 이두호는 또 다른 답을 지니고 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 도전에서 우리는 또 어떤 의미를 찾을 까. 하루 빨리 그의 도전을 경험하고 싶다. 하루 빨리 나의 첫 만화, 그 만화가가 만들어내는 또 다른 ‘바람소리’ 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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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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