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청소년에게 어떤 만화책을 보여줄까, 아침독서신문, 2013.11.26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삶의 한 순간, 코믹스 만화가 대처 방식을 알려줄 것


만화책은 읽고 다니니

매체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20여 전에는 학교 앞 문방구와 만화방이 테마파크였고 책상 서랍에 숨겨놓고 보던 만화책이 휴식이자 꿈이었다. 그 때 만화는 청소년들의 친구이자 멘토였다. 하지만 지금 그들에게 만화는 ‘학습’이라는 이름이 붙은 참고서가 됐고 공부하라고 하면 보는 책이 됐다. 게임이나 SNS에 몰입하다가 잠깐 짬이 나면 스마트폰으로 휙휙 올려보는 ‘웹툰’이 됐다. 학습만화와 웹툰는 그 나름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 하지만 ‘감춰 놓고 봤던 그 만화’, ‘친구이자 멘토였던 그 만화’는 아니다. 그 만화는 ‘코믹(또는 코믹스)’이라 불리던 만화였다.

매주 20여 페이지 가량이 만화잡지에 연재됐고 8주 분량 정도가 모이면 1권의 책으로 발매되어 만화방, 대여점, 문방서점 등을 통해 독자에게 전해졌다. ‘다음에 계속’이라고 적힌 마지막 페이지의 문구를 보며 손을 떨었고 주인공에게 펼쳐질 다음 이야기를 연상하며 친구들과 격한 감동을 나눴었다. 물론 여전히 그 시절의 코믹이 나오고 있다.

<슬램덩크> <드래곤볼> <열혈강호> <진짜사나이> 등이 그 시절을 대표했다면 지금은 일명 ‘원나블’이라고 불리는 3대 인기 일본코믹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가 있다. 아쉽게도 한국코믹은 <열혈강호>와 <짱>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수준이다. 코믹만화의 장르적 전형을 제시했던 일본만화잡지 ‘소년점프’의 슬로건이 ‘우정·노력·승리’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코믹은 다양한 소재와 흥미진진한 전개 속에서도 청소년기에 지녀야할 가치를 담아냈고 코믹의 독자들은 ‘포기를 모르는 남자(<슬램덩크>의 명대사)’로 성장했다.


<그림> 슬램덩크에서 봐야하는 건 교복 입은 청소년들의 싸움이나 농구 테크닉이 아니라 대립했던 친구들와의 갈등 해결이고 하나의 목표와 팀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버려야 한다는 소년기의 성찰이다.


코믹스 만화가 알려주는 것들

어느 나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만화를 본다는 것은 그리 자랑할 만 한 일이 아니었다. 만화는 내용을 ‘단순’화하고 ‘과장’해서 ‘풍자(또는 해학)’적으로 전달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오랜 기간 동안 ‘만화를 유치한 것’으로 만들었다. 같은 책인데 세계문학을 읽다가 아는 사람이 오면 은근히 표지를 보여주지만 만화를 보고 있을 때는 후다닥 감추고 보는 것 역시 이 같은 인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만화는 제 모습을 감추고 다른 것에 기대기도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아동이나 청소년이 봐도 무방하도록 포장한 ‘학습만화’라 할 수 있고 다 큰 어른이 철없어 보인다는 말을 피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교양만화 또는 신문연재만화’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코믹을 펼쳐보면 사건의 발단과 내용의 전개가 ‘싸움과 대립’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어디를 펼쳐 봐도 극하게 싸우고 있으니 전체적인 내용과 맥락을 모르는 이들이 봤을 때는 이런 만화를 보여준다는 것이 어딘가 불안해 보일 수 있다. 이런 장면을 자주 대하다보면 폭력에 익숙해지고 죄의식이 약해질 수 있다. 그리고 모방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전문가의 의견까지 듣고 보면 코믹이 무슨 악성 바이러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 겹 만 벗겨놓고 보면 코믹에 대한 오해가 풀릴 수 있다. 코믹에서의 싸움은 ‘우정’이나 정의를 지키기 위한 사명이고 도전과 ‘노력’의 결과이자 자신의 ‘승리’와 공동체의 안정을 얻기 위한 과정이다. 그 과정의 혹독함과 시련 속에서 주인공은 더 강한 상대와 싸우게 설정되어 있는 것이고 코믹은 이를 넘어서기 위한 도전과 지혜를 담아 낸 것이다.

 

<그림> 원피스에서 읽어야 하는 건 주인공의 해적질이 아니라 동료를 얻고 지키는 이들의 신뢰와 신의이다.



코믹스 만화를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물론 그런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그토록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묘사를 할 필요가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도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봐야한다. 코믹은 청소년에게 우정·노력·승리라는 3가지 가치를 전달하고자 한다. 그런데 무작정 주장하거나 지시한다고 해서 그것이 청소년의 공감을 이끌어 내거나 가치관으로 자리 잡게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코믹이 선택한 방식은 독자가 주인공과 ‘자기 동일시’가 되어서 대리체험을 통해 우정·노력·승리의 가치를 얻게 하려 했다. 이를 위해 처음에는 ‘흥미’를 유발하고 도중에는 ‘몰입’할 수 있는 재미를 유지시킨 후 마지막으로 작품의 ‘의미’가 전달될 수 있도록 구성했다(모든 코믹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과정에서 소재와 주제, 주인공의 사명은 알아채기 쉽도록 ‘단순’화되고 사건과 대립은 극적 긴장을 강화하기 위해서 ‘과장’되게 했다. 그리고 극적 긴장이 해소되고 문제가 해결되는 시점에서 작품의 의미를 찾기 쉽게 이를 ‘풍자적인(사회적 의미로 해석되도록하는)’ 방식으로 전달한다. 코믹의 작동원리를 모르고 어느 한 요소만 잘라 놓고 보면 ‘소재가 선정적이다’ ‘폭력적 묘사가 많다’ ‘황당한 설정과 의미 없는 웃음만 남발 한다’는 등의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코믹은 만화의 3요소인 단순·과장·풍자를 바탕으로 ‘우정·노력·승리’의 가치를 흥미→몰입→의미라는 과정과 작동원리를 통해 전달한다. 코믹은 이런 방식으로 청소년에게 ‘삶의 가치’를 전달했다. 독자 역시 이를 알고 자신이 무엇을 소비했는지에 대해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림> H2에서 느껴야 하는 건 3각 또는 4각 연애드라마의 판타지나 가슴설렘이 아니라 모든 것이 경쟁인 사회에서 경쟁하지 않는 법을 찾으려는 주인공의 마음 가짐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만화 찾기

코믹은 매우 다양한 독자층에 맞춰서 인물·사건·배경이 구성된다. 이는 대개 만화잡지의 편집방침에 따라서 연령대별 편성이 있을 수 있고 연령과 상관없이 독자의 선호도나 취향을 기준으로 한 성향별 편성이 있을 수 있다. 가령 한국 코믹만화잡지인 ‘소년챔프’는 초중학생을, 영챔프는 중고등학생을 주 독자층으로 해서 연령대별 작품 편성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몇 해 전 ‘소년챔프’가 잡지 명칭을 ‘코믹챔프’로 바꾸면서 주 독자 연령대를 넓히는 한편 소년만화를 선호하는 성향의 고연령대 독자층까지 아우르는 작품 편성을 취하기도 했다.

코믹만화는 연령대별로 소년만화, 소녀만화, 준성인만화 등으로 나눌 수 있고 표현요소와 소재를 중심으로 학원, 액션, 스포츠, 무협, 판타지, SF, 추리, 순정, 연애만화 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즉, 누구나 어떤 만화작품이든 볼 수 있지만 독자의 나이와 취향, 선호도 등에 따라 작품을 골라 보는 것이 (만화팬들에게는 당연한 것이지만)현명한 소비 방식이다. 15세 소년을 대상으로 한 작품을 12세 소녀가 보면 ‘폭력적이고 잔인’ 할 수 있고 12세 소녀를 대상으로 한 작품을 15세 소년이 보면 ‘낯간지럽고 유치’할 수 있다. 그래서 만화를 볼 때는 자신의 연령대와 함께 성향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코믹은 만화책 표지 상단에 독자 연령층을 표기하고 있고 만화서점 등에서는 작품 분류 명칭에 따라 서가를 구분해 놓고 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특정 주제가 강조된 작품을 찾아 읽는 방식도 필요하다. 또래 친구들과의 대화나 인터넷 등을 통해 만화리뷰나 추천만화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식이다. 코믹은 대체로 장편만화의 구성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특정 독자층의 연령대에서 고민할 수 있는 대부분의 문제가 각종 사건으로 제시되고 해법을 찾는 과정이 그려진다.

가령 청소년 대상이면서 학원·스포츠·연예 소재가 통합된 걸작코믹(아다치 미츠루 작)에는 꿈, 노력, 우정, 이성, 관계, 도전, 승부, 가족, 스승, 성적 등의 이야기가 다뤄진다. 작품 속 주인공을 통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삶의 한 순간에 대처하는 태도와 방식을 배우고 마치 주인공처럼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멋지게 성장하는 것이다. 그 것이 코믹의 힘이고 가치이다. 단, 자신에게 맞는 코믹을 만나야 한다. 자신의 코믹을 찾아야 한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유년시절 이두호의 만화로 한글을 깨우치고 이상무의 만화로 울지 않는 법을 배우며 성장했다. 이현세의 만화를 보며 도전하는 남자의 매력을 알았고 허영만의 만화를 통해 현명한 어른으로 사는 방식을 깨달았다. 스포츠서울 신춘문예로 등단해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고 대학에서 만화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코믹스만화의 세계>,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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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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