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망가노믹스 대적할 한국 웹툰…‘미생 효과’ 활활 1조 원 시대 열릴 것
* 나루토 완결을 통해 바라본 한국 콘텐츠 산업의 현황과 미래
세계가 사랑한 닌자 소년 나루토
망가(Manga)로 불리는 일본만화 <나루토>가 지난 11월 10일 700회를 끝으로 연재를 종료했다. 망가잡지 ‘주간 소년점프’에 연재를 시작한지 15년 만의 완결이다. 일본의 주류 신문들은 이 소식을 1면에 전했고 여러 면에 걸쳐 이 작품의 경제적 효과와 문화적 파급력에 대해 보도했다. 미국과 중국은 물론이고 한국의 주류 언론에서도 ‘<나루토> 완결’ 소식을 빅이슈로 다뤘다. 왜 그랬을까?
이 작품은 1996년 ‘소년점프’ 신인상으로 입문한 신예작가 키시모토 마사시(1974년 생)가 1999년 같은 잡지에 연재를 시작한 작품이다. 망가의 전통과 가치관이 반영된 작품으로 고아 소년 나루토가 닌자 훈련소인 ‘나뭇잎 마을’에서 사스케, 사쿠라 등과 함께 최고의 닌자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담았다. <나루토>는 일본 현지와 아시아권에서는 <원피스>라는 작품에 밀려 2인자 신세였지만 미국, 유럽 등에서는 <포켓몬스터>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망가 콘텐츠로 큰 인기를 누렸다. 동양 사람들보다 서양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나루토>는 아베 정부의 ‘쿨재팬(Cool Japan)’ 전략과 맞물리며 ‘일본, 일본문화, 일본상품’의 긍정성을 세계에 알리는 선봉장 역할을 했다.
쿨재팬을 리드하고 있는 망가노믹스
망가는 전통적으로 ‘잡지 연재 후 도서 발행’이라는 과정을 지켜왔다. 판매부수가 많은 잡지에 망가를 게재해 인지도를 높인 후 단행본 도서를 시리즈로 발행해 판매도를 높이는 전략이다. 이를 기반으로 인기가 검증된 망가의 경우는 ‘TV 애니메이션 제작 방영→캐릭터 상품 출시→극장용 애니메이션 제작 상영→게임 출시 및 온라인서비스→실사영화 및 공연콘텐츠 제작’ 등 다종의 상품화 단계를 거치게 된다.
잡지를 보던 소비자를 도서의 소비자로 만든 것처럼 방송을 통해 망가를 접한 이를 그 망가를 원작으로 한 캐릭터나 영화, 게임의 소비자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다른 미디어나 상품을 통해 ‘망가의 세계’에 진입한 소비자는 망가의 발원지인 잡지의 신규 소비자가 된다. 이 같은 망가콘텐츠산업의 선순환 구조는 다른 미디어의 소비자, 다른 연령대의 소비자를 지속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했다. 이른바 망가의 미디어믹스(Media Mix) 전략인 셈이다. 인기 망가를 잡지에 장기 연재하는 것 역시 소비자 노출도와 관심도를 장기간 유지해 인지과정과 판매과정의 ‘긴 시간을 관리’하기 위한 요소가 됐고 망가를 중심으로 한 엔터테인먼트산업의 경제구조 즉, 망가노믹스(Manga +Economics)의 초석이 됐다. 물론, 확장일로에만 있을 것 같던 망가노믹스는 90년대 중후반부터 감소세를 보였고 ‘수명을 다 한 것 아니냐’는 비난 앞에 놓이기도 했다. 일본출판과학연구소의 보고에 의하면 1994년 총매출 5,745억 엔이었던 일본 만화시장은 2012년 4,340억 엔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2013년 망가가 디지털 방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진격의 거인> 등 신흥 히트작이 등장하면서 망가노믹스는 20여 년 만에 상승세(4,400억엔)로 전환됐다. 이 보고 이후 다수의 일본 경제연구소들 사이에서는 그 간의 상황은 ‘망가의 쇠락’이 아니라 ‘종이(잡지, 도서)의 쇠락’이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류 콘텐츠, 문화적 성장이 산업적 성과로 이어지지 않아
일본이 ‘쿨재팬’이라는 슬로건을 빼든 것은 전 세계로 뻗어가는 한류 열풍에 대한 자기반성이자 ‘카피 본능’이 작용한 결과이다. 일본이 견제할 만큼 한국의 콘텐츠 경쟁력은 높아졌고 이에 대한 반응 역시 거대하게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를 산업화하고 매출로 전환하는 방식은 아직 ‘쿨’하지 못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3콘텐츠산업통계조사’에 의하면 콘텐츠산업 11개 분야의 총 매출액은 87조원, 수출은 46억불, 종사자는 61만 명이다. 매출은 전년대비 5.2%, 수출은 7.2%, 종사자는 1.1%로 증가하는데 그쳤다. 전반적으로 증가세에 있고 내수 시장과 수출 시장 규모가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같은 기간 세계 콘텐츠 시장도 2조 2,220억 달러로 전년 대비 5.0% 성장했다. 경기 침체에서 벗어난 미국시장의 안정적인 성장과 중국, 브라질 등 신흥시장이 고성장을 유지했고 스마트단말기 이용자의 증가세로 디지털콘텐츠 시장이 급성장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우리만 성장한 것이 아니다. ‘한류 열풍’은 분명 한국만의 독자적 성장을 강조하는 요소인데 실질적 매출 측면에서는 비교 우위 성장이나 독자적 성장세를 확인 할 수 없다. 이는 한류가 문화적 붐만큼 산업적 성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문화적 붐이 한국 콘텐츠의 무단 사용, 불법 활용 등으로 이어지며 산업적 판매 가치를 상쇄 시키고 있는 눈치다. 이 같은 현상은 디지털화, 모바일화, 컨버전스화 되고 있는 콘텐츠 산업의 추세에 비춰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고 좀 더 고도화, 정밀화 될 것이다. 즉, 좋아 하는 사람은 많은데 사겠다는 사람은 없거나 팔 상품은 없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 단일 콘텐츠를 15년간 연재하며 다종다양의 상품을 만들어내 세계가 주목하도록 한 ‘나루토 효과’ 그리고 일본의 미디어믹스 상품화 전략을 기반으로 한 망가노믹스는 이 점에 비춰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일 콘텐츠로부터 파생되는 미디어믹스 효과에 주목해야
일본에 망가가 있다면 한국에는 만화(Manhwa)와 웹툰(Webtoon)이 있다. 이미 국제무대에서 독자적 브랜드를 확보한 이들 콘텐츠는 작품 하나에 캐릭터, 콘셉트, 스토리가 내제되어 있고 이는 다종다양의 미디어믹스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망가와 유사한 콘텐츠 생애주기를 지니고 있어서 인지도를 확대하고 다종다양의 상품군을 생산한 후 이를 실질적인 판매도로 연결시켜야 하는 길고 긴 과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장르로의 전이나 파급, 융합에 용이한 특성도 지닌다. 장르별로 각개 전투하면서 나름의 성과를 내고 있는 게임이나 음원, 영화나 드라마와는 다른 접근인 것이다.
최근 TV드라마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 <미생>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웹툰 <미생>은 연재 완료 후 도서로 발행됐다. 100만부의 판매고를 올렸지만 TV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서 단기간에 50만부가 추가 판매되는 성과를 냈다. 이와 함께 유료로 전환된 웹툰의 판매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여기에는 특집 5부작 형식으로 새로 연재된 번외편이 역할을 했다. 기존 소비자를 재유입시키고 TV를 통해 생성된 신규 소비자를 유입시키는 장치가 된 것이다. 이처럼 만화와 웹툰은 자신의 주력 미디어만이 다른 미디어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촉매로 신규 판매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한국의 만화시장은 지난 10여 년 이상 매출 7천억 원 규모에 묶여있었다. 하지만 <미생>처럼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웹툰 붐이 일면서 근 시일 안에 ‘한국 만화시장 1조원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이와 관련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이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는 세계 디지털만화시장이 2017년 3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이만하면 ‘나루토 효과’가 아닌 ‘미생 효과’에 주목하고 망가노믹스가 아닌 웹투노믹스를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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