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은 웹툰에 열광하는가
활동 작가 2천명, 1일 1천만 독자 시대를 연 웹툰
웹툰(Webtoon)의 시대다. 매일 1천 만 명 내외의 사람이 웹툰을 본다. 웹툰 시장이 활성화 되면서 7천억 원 대로 유지되던 국내 만화산업 규모도 급성장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제3차 만화산업 중장기 계획’을 통해 ‘2018년 국내 만화산업 매출 1조원 시대’를 미션으로 선정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보고 있고 그만큼 시장 기대치가 높다는 것을 반증한다. 웹툰 분야의 매출 규모는 2014년 기준 1천7백억 원 규모로 추정된다.
실례로 작가 윤태호는 웹툰 한 편으로 대중문화계의 대표 아이콘이 됐고 그의 작품 <미생>은 ‘웹투노믹스(Webtoon + Economics)’라는 신조어를 등장시킬 만큼 강력한 파생력을 보여줬다. 총 11억 뷰를 기록한 웹툰의 인기에 힘입어 TV드라마가 제작됐고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단행본 출판과 광고, 캐릭터 라이센스 시장까지 폭넓은 파생 상품이 출시되면서 5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만들어 낸 것으로 추정된다. ‘미생 효과’를 전후로 웹툰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하면서 다종다양의 신규 웹툰플랫폼이 생겨났다. 레진코믹스, 탑툰 등은 오픈 첫 해 연매출 100억 원을 훌쩍 넘기면서 웹툰과 웹툰서비스가 대형 포털사이트의 전유물이 아님을 명확히 했다.
현재 웹툰을 게재하고 있는 매체는 40여 개에 이른다. 네이버, 다음, 네이트를 비롯한 포털사이트부터 KT, SKT 같은 통신사, 카카오나 라인 같은 어플리케이션사, 코미코 같은 게임 회사, 스포츠투데이, 머니투데이 같은 언론사 그리고 웹툰서비스만을 목적으로 설립된 전문 웹툰플랫폼사에 이르기 까지 그야말로 ‘웹툰 전국시대’라 할 만큼 다종다양의 업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정식 연재되고 있는 작품 수는 2,061편(웹툰 정보사이트 ‘웹툰인사이트’ 2015년 7월 통계 기준)이다. 통상 1작가가 복수의 작품을 연재하지 않는다고 보면 2천 여 명 이상의 작가가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과거 만화잡지 발행 기준으로 보면-한 종의 잡지에 연재만화 15편 가량이 연재된다고 할 때-137종의 잡지가 발행되고 있는 것이다. 90년대 만화잡지 붐이 일었을 때 발행되던 잡지가 30여 종 수준이었던 것에 비춰보면 실로 방대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웹툰을 보고 웹툰작가를 하고, 웹툰산업에 뛰어들고 있는 걸까? 도대체 한국만화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웹툰, 종이라는 권위를 벗고 플랫폼이라는 이익을 입다
새로운 천년을 맞이했던 2000년 대 초, 문화산업계에는 ‘디지털’이라는 화산이 폭발했다. 종이출판을 중심으로 했던 만화계 역시 이 불화산 아래서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만화계는 일찍부터 ‘전자출판 시스템(DPS)’을 도입해 제책 이전 단계의 디지털화를 완료했고 인터넷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유통측면에서 ‘온라인만화 서비스’를 실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 폭발한 디지털 화산 앞에서는 예외가 없었다. 디지털은 전통적인 만화산업이 일궈왔던 모든 생태계를 한 번에 뒤집었다. 이른바 ‘패러다임 쉬프트’가 일어난 것이다.
만화방이나 책대여점을 찾던 소비자들은 모두 PC방으로 이동해 온라인게임에 집중했고 이동시간을 활용해 보던 만화책, 만화신문, 만화잡지는 손바닥보다 작은 휴대폰 모니터로 대체됐다. 오락성과 휴대성, 의외성과 몰입성을 강조했던 만화 또는 만화미디어는 PC와 휴대폰 미디어가 제공하는 온갖 콘텐츠에 자신의 자리를 내줘야 했다. 만화산업계는 갑자기 반토막 난 매출 보고서를 받아들고 우왕좌왕했다. 일부에서는 1997년 시행된 청소년보호법으로 인해 ‘만화에 대한 내용 심의가 강화되면서 경쟁력을 잃었다’고 ‘정부 탓’을 했다. 또 다른 쪽에서는 ‘건전한 내용’을 기반으로 한 학습만화와 교양만화 장르를 만들어 내 반토막 난 매출을 메꿔가며 현실적 대응을 하기도 했다. 문제는 만화 소비자의 중심층이 사라졌다는 데에 있었다. 학습만화가 10대 초반용이었다면 교양만화는 20대 중후반 이상을 대상으로 했다. 전통적인 만화소비자인 10대중후반과 20대 초반이 새롭게 등장한 디지털 콘텐츠로 이탈했고 만화산업계는 이들을 다시 운집 시킬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 때 등장한 것이 ‘웹툰’이다.
전통적인 만화산업계가 종이책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홈PC에서 업무용PC로 이동하고 이동시간에는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있을 때, 포털사이트가 세상의 모든 지식과 정보 그리고 사람들 간의 관계를 연결해 주고 있을 때, 그 때 웹툰이 등장했다. 종이책을 벗어나서, PC나 휴대폰으로 볼 수 있도록 하고 포털이 작가와 독자를 연결 시켜주는 방식의 ‘새로운 만화’ 생겨난 것이다. 물론, 기존 만화계에서는 이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아니 마치 ‘휴일 창작자’들이 즐기는 자기들 끼리 문화 정도로 폄훼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초기 웹툰의 무대를 연 것은 훈련된 작가나 성숙한 독자가 아니라 무명의 생산자였고 목적성이 명확하지 않은 소비자였다. 기존 만화계가 ‘종이출판’이라는 제한적 무대를 기반으로 운영됐다면 이들은 제한 없는 무대, ‘종이 없는 만화 출판’이라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냈다.
종이라는 권위에서 벗어난 만화는 그 자체로 탈권위적이었다. 상품으로서의 정형성과 완결성이 아닌 자유로운 창작의지에 따른 내용과 최소한의 형식이 갖춰져 있을 뿐이었다. 특정한 목적성을 지니지 않은 이른바 ‘지나가는 손님’들이 작품에 대해 공감하고 자연스럽게 소통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 역시 2차 생산자 또는 유포자가 되어 만화를 공유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팬덤이 형성됐다. 만화적 형식을 취한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팬덤이 형성되는 과정을 지켜본 포털사이트는 이를 핵심 서비스 아이템으로 선정해 창작자와 소비자를 매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의 요구가 강화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그로부터 웹을 기반으로 한 만화 ‘웹툰’이 탄생했다. 포털사이트는 소수의 창작자 그룹과 다수의 사용자 그룹을 매개했고 창작자 그룹의 활동 촉진을 위한 정책을 마련했다. 그리고 창작자 그룹의 이익을 증진시켜주는 방식으로 소비자 그룹의 참여를 확대시켰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이익 역시 강화해 갔다. 이른바 기업 광고 노출 수익을 기반으로 한 포털사이트 ‘무료 웹툰 서비스 플랫폼 모델’이 완성된 것이다.
경쟁의 룰을 바꾼 포털, 웹툰의 근원적 경쟁력
웹툰이 사라졌던 만화의 중심 소비층을 다시 불러들이고 만화 소비 단절층이라고 할 수 있는 30~40대까지 다시 만화 소비자로 만든 것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요인 세가지를 꼽자면 첫 째가 ‘내용과 형식의 다양성’일 것이다. 훈련되지 않은 작가의 등용은 그 자체로 새로운 만화의 등장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 이로 인해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작품의 장르를 정의할 수 없는 웹툰이 다수 탄생했다. 둘째는 ‘사용자 지향성’이다. 작가의 명성이나 편집자의 권위에 의해 작품을 선택하지 않고 철저히 소비자의 선택에 의해 작품을 선택하고 편성했다. ‘도전만화’ 코너나 ‘웹툰리그’ 같은 일종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사용자로부터 사전 평가받은 작품을 정식 연재 코너에 게재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서 사용자의 참여를 강화했다. 이는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관계를 재정의 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무료 가격 정책’이다.
웹툰이 ‘무료’라는 가격 정책을 내세웠을 때 전통적 만화산업계에서는 ‘공멸의 길’이라며 비판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포털 웹툰의 무료 가격 정책은 소비자를 ‘급 확대’시켰고 주변 시장의 관심을 ‘급 집중’ 시켰으며 콘텐츠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역할을 했다. 종이책 판매가 주 매출원이었던 전통적 만화산업계 입장에서 보면 만화를 무료로 제공하고 광고 수익을 주 매출원으로 보는 포털의 비즈니스 모델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포털이 종이책 판매액을 상회하는 광고 매출을 올리고 무료 서비스를 통해 얻은 콘텐츠에 대한 인지도를 기반으로 다양한 라이센스 사업을 전개하면서 수익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자 입장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일부 웹툰을 중심으로 점진적이고 안정적인 ‘유료 전환’을 현실화 시키면서 전통적 만화산업계도 웹툰플랫폼에 참여하게 만들었다. 포털이 바꾼 경쟁의 규칙 안에서 포털이 조성한 소비자 그룹을 위한 만화를 내 놓게 됐다.
현재 웹툰은 말 그대로 ‘만화의 대명사’가 됐다. 일례로 문화체육관광부는 매년 11월3일 만화의 날을 맞이해 그 해 대표 만화를 ‘오늘의 우리만화’로 선정한다. 2014년 ‘오늘의 우리만화’는 <아만자>(올레웹툰), <먹는 존재>(레진코믹스), <치즈 인 더 트랩>(네이버), <곱게 자란 자식>(다음), <송곳>(다음)이었다. 각기 다른 소재와 형식을 취한 걸작들로 대중적 인기와 함께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들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다섯 편 모두가 웹툰이라는 점이다. 지난 5월 발표된 2015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축제의 주목할 작가상도 웹툰 <데이지오버타임>의 선우훈에게 돌아갔다. 최근 발표된 2015 부천국제만화대상 역시 윤태호의 웹툰 <인천상륙작전>이 수상했다. 그야말로 ‘웹툰 천하’가 된 셈이다. 해외 시장에서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 한국의 만화가 ‘Manhwa’라는 이름으로 유럽과 미주 시장에 진출했다면 지금 세계 만화시장에서 한국만화를 대표하는 명칭은 ‘Webtoon’이 됐다. 미국의 저명한 만화 이론가 스콧 맥클라우드, 영국의 만화평론가 폴 그라빗, 일본의 만화 이론가 오오츠카 에이지도 한국이 탄생시킨 세로 스크롤 방식의 디지털만화 ‘웹툰’에 집중하고 있다. 웹툰이 곧 전통적인 만화의 형과 식을 바꾸고 디지털화 된 사용자의 콘텐츠 이용환경에 맞춰 발전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판을 만들고 새로운 경쟁의 규칙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글/ 박석환
1997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만화콘텐츠기획자, 만화정책기획자, 만화전시기획자 등으로 일하다가 2013년부터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콘텐츠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코믹스 만화의 세계>,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홈페이지는 www.parkseokhwan.co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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