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투노믹스의 시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웹툰의 영향력이 거대해지고 있다. 한국 만화의 한 장르나 트랜드쯤으로 보는 시선도 있었지만 이제 웹툰은 '만화'를 품에 안을만큼 거대해졌다. 그리고 현존하는 모든 매스미디어와 어깨 싸움을 할 수 있을만한 수용자층을 확보했다. 그런 변화들이 즐겁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그중 '별에서 온 그대'와 '설희'의 법정 공방 문제는 이즈음에 우리 만화와 웹툰이 꼭 풀어야 할 과제로 보여진다.
도민준과 천송이를 사랑하지만 법정 싸움에 나선 강경옥 작가님과 설희를 지지하며 만화비평지 <엇지>에 게재한 원고를 공개한다.
<더파이브> <변호인> <별에서 온 그대>를 통해 보는
영상콘텐츠시대의 만화산업 또는 웹툰플랫폼
1컷 - <또디>의 만화가 정연식, <더파이브>의 영화감독이 되다
신문만화 <또디>의 만화가 정연식이 어느 날 안정된 신문지면을 박차고 나와 전혀 다른 스타일의 신예 만화가 같은 모습으로 포털사이트 다음의 ‘만화속세상’에 등장했다. 에피소드 중심의 명랑체 만화를 그리던 정연식은 아직 자리 잡지 못한 극화체를 선보이며 <달빛구두> <더파이브> 등의 서사웹툰을 그렸다. 작화보다는 말칸 중심의 서사와 빠른 전개를 바탕으로 한 연출을 중시하는 한국 만화독자의 수용태도는 ‘정연식웹툰’을 불편함 없이 소화했다. 그리고 또 몇 해가 지나 정연식은 자신의 웹툰 <더파이브>를 직접 각색하고 연출한 영화감독이 되어 나타났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시티홀> 등으로 로멘틱코미디계의 톱탈랜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선아가 주인공을 맡았다. 시네마서비스가 제작하고 씨제이엔터테인먼트가 배급에 나선 대형 프로젝트였다.
[그림] 정연식 감독의 영화 <더파이브> 홍보 포스터
2컷 – 웹툰 <브이>의 스토리작가 양우석, <변호인>으로 ‘천만 감독’이 되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만화속세상’에 연재 된 <브이>는 신예 웹툰작가 제피가루와 스토리작가 양우석의 합작품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산업의 대표캐릭터인 로보트태권브이와 주인공 훈이의 후일담을 다룬 작품이다. 웹툰 <브이>는 <로보트태권브이>를 극장용 3D 애니메이션으로 리메이크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이었고 양우석은 이 프로젝트의 리더였다. 리메이크 소식과 함께 작품에 대한 기대이상의 평가가 이어졌다. 이후 같은 매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만화창작집단 팀풍경과 함께 서정취가 물씬 풍기는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을 발표한다. 그리고 얼마 후 제피가루와 함께 ‘김정일 사망 이후의 남북관계’를 소재로 한 작품 <스틸레인>을 발표한다. 웹툰 연재 중 실제로 김정일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스틸레인>은 세인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이즈음 양우석은 웹툰스토리작가라는 정체성을 지니게 됐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양우석은 노무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소재로 한 영화 <변호인>의 감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개봉 45일 만에 누적 관객 수 1,100만 명을 돌파하며 역대5위의 흥행실적을 거뒀다.
[그림] 양우석 감독의 영화 <변호인> 중 홍보용 스틸 컷
3컷 - <설희>의 만화가 강경옥, 유사 소재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놀라다
SBS드라마스페셜 <별에서 온 그대>가 종영됐다. 마지막회 방송분의 시청률은 28.1%로 수목드라마 톱을 차지했다. 한국영화 역대 흥행작 1위를 사수하고 있는 <도둑들>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커플을 열연했던 김수현과 전지현이 주인공역을 맡았다. 드라마는 방송 전부터 화제였다. 전지현의 모든 것이 잇아이템이 되고 김수현의 한마디 한마디가 한국을 넘어 한류팬들을 뒤흔들어 놨다. ‘별그대 현상’은 배우들의 것이 됐지만 ‘별그대 월드’를 구축한 이는 드라마작가 박지은이다. <칼잡이 오수정>으로 시작된 ‘박지은월드’는 <내조의 여왕> <역전의 여왕>을 거쳐 빅히트작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넘어 ‘별그대’로 이어졌다. 그런데 ‘별그대’는 방영 초기부터 ‘표절논란이’이 끊이지 않았다. 중견 만화가 강경옥이 개인 블로그를 통해 문제제기를 한 것에서부터 촉발된 이 논란은 ‘별그대 신드롬’의 한 축이 되기도 했다. 강경옥은 ‘별그대’의 주요 설정이 자신의 만화 <설희>와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박지은 작가는 <설희>를 본 적도 없고 ‘별그대’는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던 작품이라고 일축했다. 이에 제작사는 <설희>가 ‘별그대’의 인기를 업고 이를 만화작품 홍보에 이용하고 있다며 언론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한편, 강경옥에게는 논란을 확산하지 말라는 경고성 메시지를 전했다. 강경옥의 표절 논란 제기 후 <설희>가 네이버만화(단행본만화)에서 유료 판매순위 1위를 차지했고 인터넷만화사이트 미스터블루가 이 논란을 빌어 작품을 홍보했다는 이유였다. 즉, 표절논란 제기로 부당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주장이다. 강경옥은 더욱 격분했고 소송 방침을 분명히 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박지은은 종방 이후 주변과의 모든 연락을 두절했다고 한다.
[그림] 박지은 극본, 장태유 연출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홍보 포스터
4컷 – 영화처럼 그리고, 영화처럼 소비되고
정연식, 양우석, 박지은 그리고 강경옥. 2013년 하반기부터 시작해 2014년 상반기로 이어지고 있는 이 네 사람의 활동과 이로부터 촉발된 현상들은 앞으로 우리 만화계가 직면하게 될 다양한 문제를 예측하게 한다.
정연식은 만화계 입문 전부터 영화를 꿈꿨던 CF감독출신의 크리에이터였다. 꿈이 있었지만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신문만화를 시작했다. 소기의 성과를 올린 정연식은 원 꿈을 향해 신문만화를 포기했다. 신문 시장이 인터넷 등의 여파로 긴급하게 위축된 것도 한 이유였다. 그리고 영화가 될 수 있는 만화를 그리기 위해 낯선 웹툰의 세계에 들어갔고 수많은 시행착오와 난관을 극복하고 영화라는 꿈을 현실화 시켰다. 흥행은 기대만큼 이뤄지지 않았지만 정연식은 우리시대가 주목해야할 드림메이커임에 분명하다. ‘문제는 그의 꿈이 만화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신문만화 <또디>, 웹툰 <더파이브>는 그에게 만화가라는 사회적 성과와 보상을 주었지만 그의 꿈은 영화를 향해 있었다.
[그림] 정연식 작가의 웹툰 <더파이브> 중 한 장면
양우석 역시 웹툰스토리작가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지만 그 이전에는 영상물제작사 피디였다. HD영상물이나 애니메이션 등 특수영상분야에 주력하면서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 시기 주목 받을만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반면 웹툰을 하면서 양우석은 달랐다. 웹툰으로 온 영상물기획자 또는 시나리오작가 양우석은 대중의 흥미가 촉발되는 소재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캐릭터가 대중과 일체화되는 과정과 공분이 발생하는 지점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짚어냈다. 그의 웹툰은 여느 연재만화에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한 씬의 결합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결말을 이끌어 내는 힘도 탄탄했다. 만화는 대체로 주간 연재라는 시스템 안에서 창작되고 유통된다. 작품의 도입부에서 주요 설정들이 공개되고 매주 적당한 수준의 에피소드가 진행된다. 장기 연재 시에는 새로운 캐릭터가 지속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반면 연재가 종료될 때는 그간 펼쳐둔 수많은 요소들을 정리한다기보다는 직전의 문제를 해결하는 선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많은 걸작들이 ‘용두사미’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기도 하다. 작가의 역량이나 작품의 밀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이는 연재만화시스템의 결과 값으로 이해해야 옳다. 하지만 양우석의 웹툰은 달랐다. 마치 2시간 내외의 영화 한편을 나눠보는 듯 했다. <브이>는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해 준비한 시나리오를 기초로 제피가루의 아이디어와 설정이 조합된 작품이다.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은 양우석이 웹툰 후기에서 밝힌 것처럼 미리 써둔 시나리오를 웹툰화 한 것이다. 웹툰이 아니라 영상물 제작을 위해 준비된 시나리오인 셈이다. ‘문제는 영화적 문법과 시스템에 무게를 둔 창작물이 새로운 연재만화 시스템 내에서도 아무 거부감 없이 소화됐다는 점’이다. 정연식은 ‘강풀의 웹툰이 영화화 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을 얻었다’고 한 바 있다. 양우석의 진입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림] 양우석 글, 제피가루 그림의 웹툰 <브이> 중 태권브이와 나이 든 조종사 훈
<별에서 온 그대>에 대한 강경옥의 분노는 어찌해야 할까. 기실 영화나 방송드라마가 만화를 탐한 역사는 짧지 않다. 영화, 드라마, 만화는 모두 소재주의적 관점의 독특함, 장르주의적 관점의 익숙함이 존재하는 공간이고 다양한 요소를 조합하여 구축한 구성적 결과물이다. 그 첫 설계자가 스토리텔러라면 이를 시각화하는 이들이 프로듀서이자 디렉터일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가 첫 설계도를 바탕으로 작품을 짓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공동의 작업이라면 만화는 대부분 첫 설계자가 곧 시공자이고 검수자 역할까지 하는 1인 시스템이다. 그 토털플레이어가 공동작업의 결과물을 보고나서 ‘표절’이라고 문제제기를 했다. 말하자면 설계도가 같다는 주장이다. 설계는 같고 시공과정에서 재료와 순서를 바꾸고 톤 앤 매너를 재설정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검수자를 자처한 언론과 네티즌들은 이런저런 사례와 주장들을 바탕으로 다르거나 같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다르다고 하거나 같다고 하는 주장에 ‘유사성’이 예시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즉, 다르다고 하는 주장의 경우도 두 작품 간에 유사성이 있다는 점은 밝히고 있다. 유사성이 있는 부분은 작품의 뼈대를 형성하는 핵심 요소들이다. 이 요소들 간의 결합을 창작분야에서는 이야기의 틀이라는 관점에서 플롯(Frame of incidents)이라 한다. ‘플롯만 잘 갖춰지면 나머지는 자동적으로 해결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플롯은 작품의 근본이 된다.
[그림] 강경옥 작가의 만화 <설희>
적절한 예시일지 모르나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생산비 감축 등을 이유로 쏘나타와 K5의 뼈대(차체, 플랫폼)를 공유하고 있다. 두 차는 외형상 다른 차이지만 내부구조는 같은 차이다. 주인이 같으니 뼈대를 공유한 것이다. 창작분야에서도 ‘플롯은 공공재’라는 말이 있다. 부자를 만난 가난한 여자 이야기는 신데렐라 플롯, 험난한 과정을 통해 집에 돌아오는 남자 이야기는 오딧세이 플롯 등이다. 주인이 관리하지 않거나 법이 정한 권리 보호기간이 지났으니 나눠 쓰고 돌려쓰고 있다. 그런데 그 뼈대의 주인이 있다면, 몰랐는데 나타났다면, 의도하지 않았는데 유사한 것을 사용하고 있다면 사용자는 주인의 물음에 답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제작사는 이를 박지은, 강경옥 작가 간의 자존심 대결로 몰고 가고, 사용자 규모를 바탕으로 한 팬심의 대립으로 확전시키고, 언론을 통해 강경옥이 논란을 일으켜 부당이익을 챙기려한다고 ‘퉁’ 쳐버렸다. 콘텐츠 수출 대국이 되겠다는 작금의 현실에 비춰 볼 때 제작사의 행태는 민망한 수준이다. ‘문제는 유사성이 있어도 보호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정서가 일반화 되어 있다는 점’이다.
5컷 – 웹툰의 시대, 세 가지 현상이 던져준 문제점들
만화가 대중문화냐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만화는 다양한 사람들이 즐기는 팝퓰러컬처(Popular Culture)임에 분명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간 대에 즐기는 매스컬처(Mass Culture)는 아니라 생각한다. 방송과 영화는 다르다. 제한된 주파수를 독점하는 방송은 당연한 것이고 광역 배포망과 동시간대 상영시스템을 지닌 영화는 그 파급도가 다르니 매스컬처라 했다. 신문이라는 매스컬처에 게재된 만화는 그 같은 영향력 안에 있다할 것이다. 반면 만화잡지와 단행본만화는 소수문화, 취향문화쯤 되는 시장과 소비규모 안에 있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졌다. 지금의 기준에서 보면 하루 1천 만 명 이상이 접속하는 포털은 매스컬처라 할 수 있다. 거기서 전체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웹툰은 매스컬처의 범주에 진입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웹툰의 주기적 연재시스템과 동시접속율 등은 동시간대 정보를 제공하는 방송이나 영화의 대중적 파급도와 영향력에 다다랐거나 넘어서고 있지 않을까. 방송과 영화가 만화 또는 웹툰을 존중해준다면 그 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존중해주지 않는다면, 또는 만화와 웹툰이 그만한 파급도와 영향력을 갖춰가고 있음에도 독립적 발전이 아니라 공생발전 또는 부당계약(부당한 사회적 계약 포함)에 따른 안타까운 발전의 길을 가고 있다면. 그 지점은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제기는 여기서 비롯됐다. 이 글은 정연식, 양우석, 박지은 그리고 강경옥 작가로 시작했지만 그들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성취나 방식, 태도나 결과는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이 글이 제기한 문제는 지금 여기의 현실과 그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현상에 대한 것이다. 만화가 디지털화 되어야할 당위성과 필요성을 강조하던 시절이 있었다. 여전히 그 같은 주장을 철회할 마음은 없다. 다만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어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발생되는 몇몇 이슈들에 대해서는 재논의의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미래만화시장의 건강한 유지발전을 위해서 지혜를 모아야 하고 가능한 범주 내에서 조정하거나 보완해가야 할 것들이 있다.
6컷 - 웹툰문법의 고유성과 차별성에 대한 연구 필요
웹툰은 기성작가군이 아니라 신예작가군에 의해서 구축된 장이고 만화계 외부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영토임에 분명하다. 기존 만화의 전통이 저변에 있다하지만 전통적인 만화문법은 수없이 기각됐고 상당부분 새로 만들어졌다. 스크롤마우스는 신문 4칸 만화처럼 세로보기의 전통을 되살렸지만 칸의 전개를 좌우에서 상하로 바꿔놨고 그림연출과 말 칸 사용방식, 모니터 반응속도에 따른 컬러 연출 등 혁신적 변화가 뒤따랐다. 이런 방식들은 그 자체로 웹툰이라는 새로운 문법체계로 편입되고 있다. 아직 이에 대한 정리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작가들을 중심으로 상당한 사례들이 쌓여가고 있는 만큼 이내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같은 노력과는 무관하게 웹툰의 문법체계가 독자적인 발전이 아니라 영상문법을 차용하고 있거나 동기화 시켜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기존의 전통이 파괴되듯이 새로운 전통도 파괴될 필요가 있고 이는 판의 동력이 될 수 있다. 또한 외부수혈이라도 받아서 색다른 역할을 지닌 인재를 수용하고 변종의 우성인자를 배출해야하는 것이 판의 책무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화면, 이동화면, 반복영상, 분리병치, 다중변각, 평행구조 등 전통적 영상 촬영기법이나 연출기법이 웹툰에 적용되고 익숙하게 소비되는 것을 감사하고만 있어야 할까. 웹툰과 영화가 다르지 않게 되고 장르 간 접변이 강력하게 이루어지면. 웹툰이 영화로 가는 중간 계단 정도로 이해된다면. 그 계단은 오래도록 남아있을까. 아닐 것이다. 정리가 필요하고 공유가 필요하다. 발전 학습이 있어야 한다. 영상문법을 배격할 필요는 없지만 웹툰문법과의 차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한국만화 또는 웹툰산업이 해외에 수출해야 하는 것은 작품이지만 그들에게 없는 스타일이나 시스템일수도 있다. 웹툰플랫폼과 웹툰스타일이 해외에서 현지화 되려면 그에 준하는 웹툰문법과 작법이 정리되어야 한다.
[그림] 종스크롤 개념의 마우스, 디스플레이 설정, 모니터의 색상 반응속도 등 사용자 환경을 고려해 전통적인 만화문법과 연출 방식에 변화를 준 선구적 웹툰들(왼쪽부터 강풀 <순정만화>, 강도하 <위대한 캣츠비>, 양영순 <1001> 중 일부)
7컷 - 만화산업의 고유시장을 유지 발전시키는 한편 웹툰의 부가시장 견인 필요
한국 만화계는 웹툰이라는 디지털 기반의 생산과 소비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성공한 최초의 만화국가이다. 그런데 포털사이트 다음과 네이버가 촉발시킨 웹툰플랫폼은 이미 성장기를 넘어섰다. 사용자 유입 측면에서 더 확대될 소비자군이 없어진 것이다. 사용자의 임계점이 확인된 만큼 광고수익의 임계점도 확인했을 것이다. 또 한 편으로는 모바일인터넷(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을 통한 접속률이 PC인터넷 접속률을 역전하면서 생기는 고민도 있다. 사용자 유입이 분산되면서 PC버전에 맞춰졌던 광고노출 전략도 전면 수정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웹툰 표현수위 문제도 잠재적 위협요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포털웹툰플랫폼은 기존 시장 참여자를 고착화 시키는 한편, 신규 유입 기반을 확보하거나 대체 수익효과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림] 스마트폰 대중화로 모바일웹과 앱으로 트래픽이 몰리고 있지만 모바일페이지는 포털의 주수익원인 광고 노출이 제한적이다. 네이버가 작가와 광고수익을 나누면서 웹툰작품 하단 또는 내부로 광고영역을 다양화하고 있는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네이버는 먼저 창작자들의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한 전략으로 광고수익을 나눠주는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사용자 측면에서는 해외 사용자 유입확대를 위한 외국어 서비스에 공을 들이고 있다. 또 한 측면에서는 웹툰 코너와 유료만화 서비스의 연계성을 확장시키고 있고 캐릭터성이 강한 웹툰을 중심으로 기업대상 광고웹툰상품 판매(브랜드웹툰 등)에 주력하고 있다. 여기에 한걸음 더 나아가서 수익 임계점을 예측한 듯 투입비용을 축소하려는 전략도 추진하고 있다. 이미 사용자 컴퓨터를 이미지 서버로 공유하는 형태의 그리드컴퓨팅 시스템을 공개했다. ‘스피드뷰’라는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일반 사용자들보다 웹툰을 빨리 볼 수 있다는 것인데 사용자 PC를 나눠씀으로서 서버비용을 감축하고자 하는 실험으로 읽힌다.
다음은 네이버와 ‘경쟁하지 않는 경쟁전략’을 수립한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웹툰플랫폼이라는 전통성과 거장급 웹툰작가의 작품 집중화, 유료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성인콘텐츠 도입 확대 등 1등이 할 수 없는 2등 전략으로 차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특히 다음은 단순 웹툰플랫폼이 아니라 웹툰의 영상화를 주도하는 영상콘텐츠플랫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다음웹툰은 다수의 웹툰이 영상화됐고 긍정적 흥행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다수의 기업과 함께 웹툰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영상화 프로젝트를 홍보하는 일에도 매진하고 있다.
[그림] 윤태호 원작 웹툰 <미생>의 모바일 드라마 버전
네이버와 다음의 웹툰전략은 각 기업의 입장과 여건, 상황인식과 기업의 발전전략에 따라 단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전략들이 우리 만화의 미래와 관련이 있을까. 웹툰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에코시스템이 이 같은 방식에 의해 성장했던 것일까. 쉽게 동의할 수 없는 대목이다. 웹툰플랫폼은 작가에게는 적정한 수익을, 매체사와 광고주에게는 트래픽과 노출을, 사용자에게는 무료로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함으로서 에코시스템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들이 이익을 얻는 구조를 제시했고 이 같은 실험은 프리코노믹스(공짜경제)의 긍정적 사례로 논의되기도 했다. 그런데 현재 상황은 어느 한쪽의 요구가 비대해짐으로서 적절한 균형이 흔들리는 양상을 보인다. 특히, 웹툰 내부로 들어온 광고는 ‘트로이의 목마 ’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양질의 콘텐츠’가 ‘양질의 광고판’이 되는 순간 ‘양질의 사용자’는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연재만화시스템의 성과가 어디로 파생 되느냐 하는 점이다. 코믹스시장의 성장기에도 만화OSMU론 또는 만화원작산업론은 만화시장의 구원투수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런데 돌아보면 이 같은 이론이 현실적으로 작동한 사례는 많지 않다. 다수의 성공사례가 있다고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만화영상화가 성공한 것이고 만화스토리가 판매되어 일정기간동안 큰 규모로 소비된 것 일 뿐 만화산업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만화산업은 전통적으로 캐릭터비즈니스 또는 라이센스비즈니스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특정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을 장기연재(노출)하면서 형성된 가치를 사업화하거나 권리를 제공하여 부가수익을 창출하는 형태이다. 정기간행물에 연재된 작품이 비정기간행물(단행본)로 상품화되고 매체게재나 도서판매 시간에 비례해 상승하는 인지도와 선호도를 바탕으로 부가적인 상품이 출시되는 과정을 거친다. 이 부가적인 상품에는 동일 캐릭터가 등장하는 별개의 작품군을 포함하여 다종다양의 캐릭터상품군이 있을 수 있다. 영상화는 그 다음 수순이었다. 높아진 인지도와 파급도를 만족시켜줄만한 파생상품이 영상화 전 단계에 출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허리우드 애니메이션이 극장 개봉 전 캐릭터상품을 시장에 미리 내놓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통적인 만화산업은 이를 만화산업의 가치사슬로 이해하고 있고 성공모델로 학습해 왔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졌다. 포털 중심의 웹툰플랫폼을 통해 웹툰과 작품 속 캐릭터는 그 어느 시기보다도 폭넓게 인지도와 선호도를 확장시켜가고 있고 그만큼 가치도 높아졌다. 그런데 이를 상품화하는 과정도 없이 넙죽 영상분야에 던져주고 보니 영화 개봉기간 중 또는 드라마 방영 기간 중 웹툰플랫폼의 트래픽은 늘어날지언정 만화산업 또는 여타 산업으로 파생되는 정도는 미비한 것이다.
[그림] 새로운 수익원이 되고 있는 디지털아이템, 네이버 라인스티커 중 일부
웹툰은 2000년대 초반 코믹스계 만화의 위축과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포털웹툰이 기존 만화시장과는 다른 소비층을 창출했다고 할 수 있지만 코믹스계 만화의 대안적 역할과 기능을 수용한 측면도 있다. 즉 포털웹툰플랫폼은 포털의 것이지만 포털웹툰플랫폼이 구축한 에코시스템은 한국만화산업 전반의 생태계이기도 한 것이다. ‘작가→매체(광고주)→사용자’라는 단순 구조는 ‘만화관련기업→작가→매체(광고주)→소비자→파생상품기업’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포털웹툰이 초기시장을 형성하고 있을 때 이런 요구를 한다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포털웹툰은 한국만화를 대표하고 있을 만큼 강대해졌고 그만한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책임 있는 포털이 주체가 되어 만화산업의 고유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 강화할 수 있는 전략을 개발하고 웹툰플랫폼에 참여하는 주체들의 성격을 확장시켜서 부가상품 시장을 견인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 가야 한다. 네트워크 효과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웹툰플랫폼이 네트워크 효과를 발생시켰던 지점으로 돌아가 판에 대한 고민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8컷 - 웹툰플랫폼이 소재 도용 창구가 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내용적 보호조치’ 필요
디지털시대이다. 모든 정보가 노출되어 있고 정보를 사용하는 도구와 생산하는 도구가 일체화 되어 있다. 더군다나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든 도구가 대중화 되어있어서 말 그대로 언제 어디서나 누구라도 정보를 생산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인터넷에 노출된 정보는 단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한다’는 개념을 지니고 있다. 사전에서 지식정보를 검색해서 사용하듯, 블로거에서 레시피를 받아 사용하듯 공개된 정보를 단순 소비하지 않고 사용하려는 욕망들이 존재한다. 그 욕망이 개인적인 것일 때는 법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용인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그 욕망이 공개적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더군다나 그 욕망이 원형을 유지하는 형태의 사용이 아니라면 문제는 더더욱 복잡해진다. 거기에 그 욕망이 무의식 중에 발현되어 본인도 타인의 정보를 사용했는지 인식하지 못한다면 더 더군다나 큰일이다. 무한복제와 대량생산 시대의 아쉬움을 적어낸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이지만 기실 지금 이곳에서는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열람한 정보를 축적하고 축적한 정보를 여러 가지 혼합해서 새로운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생산적 활동임에 분명하고 창작이나 발명의 한 방법론임을 부정할 수 없다. 어느 측면에서는 이 같은 방식을 융합적 사고방식이라 치켜세우기도 한다.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제 창작과 도용 또는 표절은 종이 한 장 두께보다 얇아졌다. 어느 것이 원전인지 어느 것이 인용인지, 어느 것이 도용이고 어느 만큼이면 표절인지 계량화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심증과 물증이 있다하더라도 확증의 단계에 이르지 못하면 벌 할 수 없는 일이고 보면 정보, 콘텐츠, 저작물, 창작품은 공개되는 순간 누구나 가져다가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재가 될 수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디지털시대의 저작권에 대한 논의와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최근 만화계에도 저작권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그런데 논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단사용에 대한 적발과 갑을 간 계약의 문제에 치중하고 있다. 이제 좀 더 세밀한 범주에서 저작물의 생애주기에 입각한 보호 시스템과 관리방안, 침해에 대한 판단 기준과 조치 방식 등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현행 저작권법은 ‘표현’만을 보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역으로 보면 표현의 동일성이 명백할 때만 위반행위로 본다는 것이다. 이 기준대로면 유사성이 드러나도 자연면책 되거나 일반적인 사용의 범주에서 이해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적당한 조정만 가하면 자신의 작품이 얼마든지 타인의 저작물로 편집될 수 있는 상황이다. 웹툰플랫폼에 축적된 수많은 저작물의 독특한 표현과 설정, 색다른 구성과 내용, 검증된 흥미와 공감의 요소가 그릇된 욕망을 지닌 약탈자들이 언제고 허기를 채울 수 있는 먹거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저작물의 원형 복제를 방지하고 유통을 통제하는 수준의 ‘기술적 보호조치’를 넘어서는 보호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부분 복제를 식별하고 소재 도용 여부를 추출해 낼 수 있는 좀 더 세밀한 형식의 ‘내용적 보호조치’가 필요하다.
물론 저작물에 대한 침해를 예단하고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 사전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은 사회적 피로도를 높이고 또 다른 의미에서 창작을 위축시킬 수 있다. 또 이를 위해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것 역시 법률 적용의 과도성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사회적 동의와 합의에 의해 구성된 기구가 보호장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소재 도용 판별절차와 통제장치, 피해자에 대한 구제절차와 보상방식 등이 민간차원에서 구축될 수 있다고 한다면 너무 낭만적일까. 모든 창작자들이 잠재적 피해자이자 가해자일 수 있다는 인식 하에 작가 단체 간 협력과 건전한 소비자 그룹과의 연대, 언론의 기능과 역할을 중심으로 한 공조 등을 통한다면 사회적 조정 기능이 작동될 수 있지 않을까. 면밀한 논의와 지혜로운 조정이 필요하다.
쫑 – 대비태세를 취하자
웹툰에 대한 기대가 컸다. 기대가 현실이 됐으니 웹툰플랫폼에 대한 감사함도 여전하다. 하지만 그만한 크기로 웹툰의 미래에 대한 걱정도 크다. 딱 그만큼의 걱정을 적었다. 영상문법을 닮아가는 웹툰, 영상산업 매커니즘과 포털의 플랫폼 전략에 따라 휩쓸려가고 있는 웹툰, 영상산업 분야의 소재 훔치기에 대응할 길 없는 웹툰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간 흥분을 가둬둔 탓일까. 지면의 요구와는 다르게 원고가 길어졌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세 가지 대비태세를 취하자는 것이다. 웹툰문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자는 것, 웹툰의 부가상품 시장을 확대 견인하자는 것, 웹툰의 소재 도용을 방지할 수 있는 내용적 보호장치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내 걱정은 딱 이만큼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1997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로 등단해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만화문화연구원에서 공부했고 대학에서 만화를 가르친다. 저서로는 <잘가라 종이만화>,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홈페이지는 www.parkseokhwan.co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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