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해방 후의 한국만화, 만화, 대원사, 2012


1 잡지의 시대(~1960)

 

정치 혼란기의 만화계

1945815, 세계 2차 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면서 36년 간 이어졌던 일본의 식민통치도 끝이 났다. 그러나 이는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냉전의 시작을 의미했다. 산업혁명에 성공한 서구 열강은 이제 막 개화기를 맞이한 한반도에 더 큰 혼란을 예고했다. 우리 민족은 일본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면서(解放) 빼앗긴 나라를 되찾은(光復) 듯 했으나 미국과 소련은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군정을 설치하고 남과 북을 사실상 지배했다. 이는 곧 남과 북이 각각의 정부를 수립하는 계기가 됐고 한국전(1950625)의 발발 요인이 됐다.

해방 후의 정치적 혼란과 625전쟁은 만화계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미군정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허용했고, 일제가 우리 민족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제정했던 정치범 처벌법, 치안유지법 등을 폐지했다. 이에 따라 수많은 정당과 사회단체가 구심점 없이 난립하게 됐고, 정치적 선전물이 폭증하는 계기가 됐다. 다양한 형식의 인쇄·출판물이 홍수를 이루었고 신문과 잡지를 중심으로 만화 형식의 컷과 1, 4칸 만화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개화기 이후 동아일보’, ‘조선일보등 민족지를 중심으로 본격화 됐던 신문의 정치풍자 만화는 일제의 탄압이 거세지면서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일제의 관변지 성격이 강했던 매일신보등 몇몇 매체를 통해서만 제한적으로 넌센스’, ‘유우머소재의 만화가 게재됐다. 이에 따라 우리 만화계의 초기 개척자들은 해방을 전후로 등장한 만화가들과의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이루지 못한다. 특히, 일제와 미군정으로 이어졌던 정치적 환경은 한국의 대중문화, 그리고 우리 만화가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현대만화 1세대의 등장

일반적으로 한국 최초의 만화가로 1909대한민보<삽화>를 연재했던 이도영을 꼽고 있다. 김동성, 안석주, 노수현, 이주홍, 최영수 등이 1920~40년대에 활약했으나 전업만화가라기 보다는 신문인, 미술인, 문학인 등으로 살았다. 일제의 탄압, 한국전쟁과 조국분단은 최초의 만화가와 초기 개척자들을 온전하게 승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때문에 해방을 전후해 등장한 김용환과 한국전쟁 전후에 등장한 김성환을 한국 현대만화의 출발점이자 1세대 만화가로 꼽고 있다. 이전의 만화가들이 신문과 잡지를 중심으로 형성됐던 저널리즘의 한 유형으로 만화라는 형식을 활용했다면, 김용환과 김성환은 인쇄·출판의 홍수와 상업적 출판 경쟁 체제하에 등장해, 새롭게 도출되는 만화출판의 전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한 전업 만화가이다.

김용환(1912년 생)은 경남 김해 출신으로 일본의 데이코쿠(帝國) 미술학교에서 그림 공부를 하면서 소년잡지 니혼쇼넨(日本少年)’등에서 기다 코지라는 이름으로 필명을 알리다가 해방 이전 일본 출판사의 파견으로 한국에 돌아온 만화가였다. 당대의 만화와 차원이 달랐던 김용환의 작품은 한국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끌었고 여기에는 좌와 우라는 이념이 개입될 틈이 없었다. 그러나 정치 감각이 무딜 수밖에 없었던 김용환은 일제시대에는 일본총독부에서, 서울이 함락된 때에는 인민군에서, 다시 미군과 국군이 서울을 탈환 했을 때는 육군본부에서 선전 만화를 그려야 했다. 김용환은 신문, 잡지, 단행본 등에서 맹활약 했다. 특히, 1945년 영문신문인 서울타임스에 처음 등장시켰던 코주부는 김용환의 만화인생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된다. 1946년 아동문학가 마해송의 동화를 만화화 한 <토끼와 원숭이>는 한국 최초의 단행본 만화로 기록되고 있다(, 하권 중 1947년 출간된 하권만 남아있음. 이에 따라 김규택이 1946년 출간한 <만화풍자해학가열전>을 현존, 최초의 단행본 만화로 봄).

김성환(1932년 생)은 개성 출신으로 해방 후 경복고등학교에서 미술 공부를 했다. 1949연합신문멍텅구리라는 작품으로 만화를 시작했고, 전시에는 국방부 종군화가단의 일원으로 군인들을 위한 신문인 주간만화승리등의 제작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만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김성환의 분신과도 같은 고바우영감1950년 발행된 만화신보를 통해 첫 등장했고, ‘동아일보’, ‘조선일보’, ‘문화일보등을 통해 14,139회 동안 연재됐다. ‘고바우영감과 김성환은 한국 시사만화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우리 시대의 기록유산이기도 하다.

김용환과 김성환 외에도 이 시기를 대표하는 만화가들이 여럿 존재한다. 일제시대부터 은유가 가득한 시사만화를 그리며 해방 후 김용환과 쌍벽을 이루었던 김규택, 김용환의 동생이자 동료만화가였던 김의환, 후에 한국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을 제작한 신동헌 등이다. 이들은 김용환의 주도 하에 1948만화동인회를 만들기도 했다. 이후 김용환은 1959대한만화가협회를 결성했고, 후에 한국만화가협회로 개칭했다. ‘대한만화가협회는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에 가입했다. 반면, 김성환은 신예 만화가들을 중심으로 현대만화가협회를 결성하고 국제만화가협회에 가입했다.

 

잡지만화의 시대, 교양과 오락

한국 근대만화의 등장이 신문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하듯, 한국 현대만화의 출발은 잡지의 역사와 함께 한다. 개화기에 등장한 신문은 일제 치하에서 정치만평을 통해 시국에 대한 비판과 국민 계몽의 의지를 드러내면서 1칸과 4, 대표 캐릭터, 정기적 연재 등으로 대표되는 신문만화의 전형성을 구축한다. 이후 신문물의 유입과 모던의 열풍이 몰아치면서 다양한 유형의 잡지가 발행됐고, 만화에 대한 접근 역시 다양화 됐다. 해방 후에는 소학생(1946년 창간, 이하 창간년도)’,‘소년(1948)’, ‘여학생(1949)’등이 차례로 창간됐고, 한국전쟁 중에는 희망(1951)’, ‘새벗(1952)’, ‘학원(1952)’등이 창간됐다. 이후 기독교 계열의 새가정(1954)’, 대중오락지 아리랑(1955)’, 여성지 여원(1955)’, ‘만화세계(1956)’등이 창간되며 잡지의 전성시대를 열기도 했다. 해방 직후의 잡지는 국민계몽, 고유문화 발굴, 신문화창조라는 취지 아래 발행됐고 한글 교과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잡지는 신예 만화가들을 발굴해 대중적 명성을 쌓아가는 다리가 되기도 했다. 다수의 잡지를 통해서 김용환, 김의환 형제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김용환은 주도적으로 잡지를 만들기도 했다. 타블로이드판으로 발행된 만화전문잡지 만화행진을 시작으로 1949년에는 주간신문 형태의 만화뉴스’, 1950년에는 만화신문을 발행했다. 임동은, 최상권, 이영춘, 신동헌 등이 활동했다.‘희망에서는 김성환, 김경언, 김기율, 박기당, 박기정, 안의섭, 임창, 정운경 등이 활동했다. 기독 계열의 잡지로 창간된 새벗은 현재까지 발행되며 그야말로 다종다양의 만화가와 작품군을 탄생시켰다. 60년대 까지는 김삼, 오원석, 이홍우 등의 명랑만화가 잡지 연재의 주류를 이루었으나 70년대 이후로는 강렬한 터치와 감동적 이야기를 담은 민애니, 이재학, 오세영 등의 극화가 주류로 등장했다. 대표적 대중 오락지로 기록되는 아리랑에서는 길창덕, 이정문, 신능파, 신문수, 윤승운 등이 활약했다.

시사적 사건을 소재로 강한 풍자와 해학을 보여줘야 하는 신문만화와 달리, 잡지만화는 칸과 지면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웠다. , 일반 대중을 독자로 한 신문과 달리, 특정층을 독자층으로 하는 만큼 작품의 소재 선택과 내용 전개에 있어서도 창작의 자유도와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세분화 된 독자층이 만화창작 소재의 다양화를 이끈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단행본 만화의 등장으로 이어졌다-물론, 역사적으로 볼 때는 잡지만화의 붐과 단행본만화의 등장이 동일시기에 이루어졌다. 신문과 잡지의 한 면을 차지했던 만화라는 창작형식을 활용한 독립적인 형태의 책 한권이 만들어지면서 만화가와 편집자, 만화가와 독자를 중심으로 했던 우리 만화계가 인쇄·출판업, 배급과 유통업 등이 참여하며 하나의 산업군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2 대본소의 시대(~1980)

 

경제 도약기의 만화계

1960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성공한 듯 보였던 시민혁명은 1961516군사정변으로 인해 다시 독재의 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으로 대표되는 경제정책을 수립했다. 군부의 통제 하에 수출 중심의 고도성장, 사회간접자본인 산업기지건설 등을 이루었고 새마을 운동을 통해 국민적 빈곤을 해결했다. 그러나 서슬 퍼런 통제와 간섭은 경제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을 향해 있었다.

모든 사회문화단체가 해체되고 군사정권의 주도 하에 재편 됐다. 이 같은 시책 하에 196112월 만화가들과 만화출판업자들은 한국아동만화자율회를 결성한다. 이는 만화창작물에 대한 사전심의 기구이자 만화출판유통 분야의 독점적 기업을 만들어내는 장치가 되기도 했다. 1968년 문화공보부는 한국아동만화윤리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윤리위원회는 한국아동만화윤리강령 및 한국아동만화실천요강을 만들어 사전심의를 실시했다. 윤리강령은 만화가 사회문화와 국민복지 향상에 기여하고, ‘아동 및 청소년의 정서 순화와 창의력의 계발, 교육적 선도효과를 거두는데 선용해야 하며, ‘현 시국이 요하는 시대정신을 창출하고, 사회문화와 공동보조를 통한 건전한 창작기풍을 진작시켜야 한다고 명시했다.

심의 세칙은 한걸음 더 나아가 작품 전체를 가위질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도 높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체제 하에서도 우리 만화계의 외형은 위축되지 않았다. 반민주 정권에 대한 국민적 실망과 분노는 더해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경제는 성장했고, 만화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는 더욱 폭넓어 졌다. 신문은 정치적 탄압의 강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스타 화백을 배출해냈고, 잡지는 정치적 무관심이 요구 될수록 독특한 소재의 작품이 터져 나왔다. 단행본 분야에서는 전국 각지의 대본소를 중심으로 소비 수요가 크게 늘면서 이를 따라잡기 벅찰 정도였다. 이는 19791212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손에 쥔 전두환 정권 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대만화 1.5세대의 활약

1960년 이후 한국만화계는 대본소라는 새로운 만화소비 시스템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신문이나 잡지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만화작품을 게재하고 이를 일반 대중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존의 만화소비시스템이었다면, 대본소(貸本所)는 말 그대로 책을 빌려서 소비할 수 있도록 한 가게였다. 초기에는 몇몇 구멍가게나 문구점에서 서점 판매용으로 발행됐던 만화책을 수집한 점주가 싼 가격에 손님에게 빌려주는 수준이었으나 60년 이후부터는 이 시스템이 하나의 사업모델을 이루게 됐다. 대본소용으로 공급할 목적으로 저가의 책이 만들어져 나왔고 대본소용 만화만을 전문적으로 창작하는 작가군이 형성되기도 했다.

초기 서점용 단행본 만화는 김용환, 김성환을 비롯한 1세대 작가군과 함께 1.5세대로 분류될 수 있는 작가들이 주로 활약했다. 신동헌의 동생으로 희화체 만화로 주목받았던 신동우, 정교하고 사실적인 펜화로 각광받았던 박광현, 드라마에 강했던 박기정, 박기준 형제, 전통 사극을 선보였던 김종래와 박기당, 순정만화로 볼 수 있는 김정파와 한성학 등이 60년을 전후해 등장했다. 이들은 서점용 단행본에 비해 페이지 수와 종이 질을 낮춘 대본소용 만화를 창작하며 자연스럽게 이전 세대와 분리됐다. 붓 터치가 두드러진 극화에 능했던 추동식, 추동성(고우영) 형제, 명랑만화의 새 시대를 열었던 신문수와 윤승운, 학원만화 붐을 주도했던 임창과 방영진, SF만화의 독보적 존재였던 산호, 순정만화계의 부부 듀오였던 엄희자와 조원기 등이 70년대를 주도했다.

이중 박기정(1934, 만주 출생)은 재일 한국인의 권투 성공기를 다룬 <도전자>로 한국 극화의 전형적 스토리라인을 구축한 작가로 꼽힌다. 80년대 폭발적 인기를 누렸던 극화의 인물설정과 갈등관계는 이 작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극화의 시대가 열리자 시사만평과 독창적 캐리커처 기법을 발표하며 시사만화가로 전향했다.

고우영(1938, 만주 출생)은 추동성이라는 필명으로 대본소용 만화를 그리기도 했고 아동잡지와 신문을 오가며 폭넓은 작품 활동을 펼쳐보였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삼국지>, <수호지> 등을 통해 한국 성인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그의 작품 중 상당수가 만화영화, 영화, 드라마 등으로 제작되며 만화의 활용 가치를 높이기도 했다.

김산호(1939, 서울 출생)은 공상과학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한국형 슈퍼영웅물을 만들어 냈다. <라이파이> 연작 후 미국에서 동양적 감수성이 물씬 풍기는 액션물을 발표하면서 한국만화가의 해외 진출 사례를 만들기도 했다.

 

대본만화의 시대, 도전과 열정

일부에서 대본소용 만화는 곧 저질만화이고 대본소용 만화작가 역시 저질이다. ‘대본소용 만화가 성장일로에 있던 우리 만화 시장을 몰락시켰다등의 이분법적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사항이다. 특히, 우리만화의 역사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일 수도 있어서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저질 시비는 검열 당국과 관변 단체에 의해 붙여진 것이고, 책의 지질이나 제책 상태 등이 서점 판매용에 비해 좋지 않다는 것 일뿐, 작품이 곧 저질인 것은 아니다. 책의 제작비를 낮춘 것은 최소비용으로 고이윤을 남기고자하는 얄팍한 상술이라고 볼 수 있지만, 저가에 더 많은 소비자에게 공급하기 위한 경제적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일부 작품의 경우 일본만화를 그대로 복제한 경우도 있고, 그림과 내용이 조악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일부였을 뿐, 대본소용 만화의 걸작들과는 무관하다. , 만화가출판사총판대본소소비자로 이어지는 대본만화 시스템의 유통구조가 곧 만화작품의 질적 하락과 만화시장을 황폐하게 만들었다는 주장 역시 재검토가 필요하다. 대본소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던 총판과 출판사 연합이 사전심의를 악용해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행사하면서 만화가들에 대한 압박이 거세진 것이지, 이 시스템 자체가 문제를 양산했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60년대 구축된 대본소만화 시스템은 우리 만화계의 1차 르네상스를 주도했다. 작품에 대한 소비 수요가 늘면서 출판업자들은 일본만화의 불법 복제 출판량을 경쟁적으로 늘렸다. 더군다나 군사정권의 심의세칙 중에는 유사한 내용을 두 명 이상이 경쟁 창작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있었다. 당대의 만화가들은 이중, 삼중의 경쟁에 시달려야 했다. 물론, 경쟁은 더욱 더 강력한 창작력으로 이어졌고 역대 어느 시기보다도 도전적인 소재와 열정적 작품을 쏟아냈다. 대본만화시스템은 80년대로 접어들면서 이상무, 이현세, 허영만으로 대표되는 현대만화 2세대 작가군의 대거 등장과 함께 2차 르네상스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한편, 대본만화의 반대편에는 아동잡지만화의 정통성을 유지하고 있던 작가군이 있었다. ‘소년중앙’, ‘어깨동무’, ‘새소년으로 대표되는 아동잡지 트로이카를 중심으로 다수의 걸작 아동 만화가 탄생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주간지 썬데이서울과 스포츠신문이었던 일간스포츠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작가군도 있었다. 대본만화의 독자층은 아동과 성인의 중간 단계에서 형성됐지만 이후 청소년 잡지가 경쟁적으로 등장하면서 이 구분점이 모호해졌다. , 매체에 연재 된 작품이 단행본으로 묶여서 대본소를 통해 소비되면서 사실상 대본만화가, ‘창작만화가니 하는 구분점이 무의해졌다.

 

 

3 코믹스의 시대(~2000)

 

문화 성장기의 만화계

1980년대는 전두환 정권과 함께 출발했다. 5공화국은 1212군사반란과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무력 진압을 통해 탄생했다. 신군부는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조장하기 위해 이른바 ‘3S 우민화 정책을 펼친다. Sports, Sex, Screen으로 대표되는 우민화 정책은 역설적으로 한국의 대중문화를 폭발적으로 성장시키는 계기가 됐다. 총천연색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됐고, 컬러TVVTR이 전국적으로 보급됐다. 야간 통행금지가 사라졌고 학생들의 교복이 자율화 됐다. 프로야구, 프로축구, 프로씨름이 연달아 출범했고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이 유치됐다. 정치적 억압이 강해질수록 문화적 해방의 수위도 높아졌다. 개발경제 시대의 성장통과 압박에 시달리며 일에만 몰두했던 대중은 대중문화라는 새로운 놀거리에 집중했다. 이후 90년대에는 김영삼,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중문화를 산업적 관점에서 육성 발전시키려는 다양한 정책들이 수립됐다.

대중문화의 확산과 함께 만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성숙되기 시작했다. 1980년 박기준이 설립한 만화강습소(제일만화학원의 전신)’는 만화를 직업기술로 배우는 계기를 만들었다. 90년대 이후로는 대학에 만화관련학과의 개설 붐이 불기도 했다. 시인이자 평론가로 활동했던 오규원은 1981한국만화의 현실이라는 비평서를 냈고 이후 만화평론가협회(1995), 한국만화문화연구원(1996) 등이 결성되면서 만화평론이 활성화되기도 했다. 1982년 대본소를 장악했던 합동총판의 독점 체제가 무너지면서 바른만화연구회’, ‘사다리회’, 우리만화협의회(우리만화연대의 전신) 등 다양한 형태의 만화가 모임이 결성됐고 만화문화 발전을 위한 구체적 논의들이 전개되기도 했다. 시민사회의 견제도 나타났다. 1989YWCA는 만화모니터모임을 만들고, 만화자료집 발간과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등 만화소비자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대본소의 확대와 함께 만화소비가 확산되자 만화업계의 무분별한 일본만화 복제, 폭력성과 성적 묘사 수위가 높은 만화 등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정부는 794월 미성년자 보호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불량만화를 팔면 형사 처벌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80년에는 한국도서잡지윤리위원회가 만화정화방안을 발표했고, 급기야 11월에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설치된 사회정화위원회가 불량만화를 출판한 14명의 업자와 69명의 만화가를 고발 조치했다. 한국만화가협회는 만화인 자율정화대회를 개최하는 등 내부 반성에 나서기도 했지만 시민단체의 불량만화추방캠패인과 정부의 만화가 고발상황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급기야 1997년에는 만화를 청소년유해물로 명시한 청소년보호법이 시행됐고, 청소년보호위원회가 만화 17백 여 종을 유해물로 고시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같은 시기에 검찰은 스포츠신문의 연재만화 작가들을 음란성과 폭력성 협의로 소환조사하고 스타만화가 이현세를 미성년자보호법 위반으로 기소하기도 했다. 경찰은 일제단속을 펼쳐 만화출판사대표와 대본소(만화방) 업주를 입건하는 등 만화에 대한 총체적 탄압이 이뤄졌다. 이에 따라 1998년에는 3대 성인만화잡지 한꺼번에 폐간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통제 일변도였던 정부의 만화정책이 만화산업 진흥을 중심으로 변화하는 국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1992년 정부가 주관하는 대한민국만화대상이 제정되고, 1995년에는 관 주도의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이 개최됐다. 1998년에는 부천만화정보센터(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1999년에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만화산업육성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현대만화 2세대의 활약과 3세대의 등장

80년대 이후 대본소는 사회전반의 개방화 열풍이 강해지면서 아동과 청소년들의 놀이공간에서 성인들의 휴식공간으로 변모했다. 이에 따라 명랑만화와 약화체 그림이 주류를 이루던 대본만화의 창작성향도 달라졌다. 성장한 독자들의 구미에 맞춰 액션과 로맨스, 배신과 복수 같은 테마를 중심으로 사실성이 강화된 현대물 즉, 극화가 붐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잡지도 변했다. 대본소가 청년 독자층을 중심으로 운영되자 잡지는 저연령층을 위한 아동만화잡지와 고연령층을 위한 성인만화잡지 그리고 여성독자들을 위한 순정잡지로 분화됐다. 만화를 집중적으로 소비하는 공간과 만화를 전문으로 연재하는 매체가 동반 성장하며 만화가들의 세대교체도 빠르게 진행됐다.

2세대 만화가들은 70년대 유명만화가들의 문하생으로 출발했다. 80년대 폭넓어진 만화세상에서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단번에 만화 팬들을 사로잡았다. 박기정 문하에서 출발한 이두호, 박기준 문하를 거친 이상무, 엄희자 문하를 거친 허영만, 김기백 문하의 김동화, 나하나 문하에서 출발한 이현세, 오명천 문하에서 수련한 박봉성, 김종래 문하의 이희재 등이다. 이들은 대본만화, 잡지만화, 스포츠신문만화 등 만화계의 전방위를 오가며 아동, 청소년, 성인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창작 활동을 펼쳤다.

이중 이현세(1954년 경북 출생)1982년 발표한 <공포의 외인구단>을 통해 한국만화사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됐다. 고독한 눈매와 폭발적 열정 그리고 외사랑으로 대표되는 이현세 만화의 주인공 까치80년대를 대표하는 청춘상이었다. 이현세의 등장은 한국 만화의 대중화와 산업화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다수의 작품이 영화, 드라마 등으로 제작되며 만화원작산업 시대를 열었다. <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1988)로 성인만화를, <아마게돈>(1988)으로 SF만화를 선보였고, 조선 상고사를 소재로 한 <천국의 신화>(1997)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허영만(1947년 전남 출생)1974<각시탈> 시리즈를 발표하며 대형 신인으로 등장해 <무당거미>(1981) 시리즈로 2세대를 대표하는 작가가 됐다. 70년대는 이상무, 80년대는 이현세가 1등 작가로 기록되며 한동안 2등 작가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아동만화 <날아라슈퍼보드>(1989), 청소년만화 <비트>(1994)에 이어 도박을 소재로 한 성인만화 <타짜>(1999)를 성공 시키며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가 됐다.

1988년 올림픽 개최와 함께 신규 잡지 등록이 수월해지고 만화 시장이 확대되면서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는 출판사들이 늘어났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작가를 찾기 위한 노력이 진행됐고 이후 3세대 작가군이 대거 등장한다. 만화잡지 공모전을 통해 등장한 일련의 작가군은 폭넓게 소비되고 있던 일본만화의 영향력 아래 있었으나 기성의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대부분 독학으로 실력을 쌓은 작가들은 잡지사의 편집시스템과 스토리작가와의 역할 분할, 어시스트라는 새로운 협업 구조를 발판으로 주간 연재만화 잡지 시대를 열었다.

이중 이충호(1967년 경기 출생)는 엄재경과 함께 주간잡지 아이큐점프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다수의 밀리언셀러 만화가 등장했던 시기였지만 <마이러브>(1993)에 이어 <까꿍>(1999)을 연이어 밀리언셀러로 만든 작가는 유일무이하다.

양재현(1970년 출생)은 전극진과 함께 주간잡지 영챔프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신무협을 컨셉트로 한 <열혈강호>(1994)는 최장수 연재작품 중 하나로 우리 만화계의 현재를 상징하는 작품이다.

80~90년대를 대표하는 사건 중 하나는 순정만화의 재발견이다. 엄희자, 민애니로 대표되는 초기 순정만화는 2세대 만화가들을 등장시키지 못한 채 명맥이 끈기는 듯 했다. 그러나 80년대 말 만화잡지 창간 붐과 함께 진행된 독자층 세분화 전략은 사라졌던 순정만화를 살려냈다. 황미나, 한승원, 김혜린, 신일숙, 김진 등이 로맨스와 역사판타지물을 중심으로 한국 순정만화를 재탄생시켰다면 강경옥, 이은혜, 원수연은 여자 만화의 소비층을 확대하는데 기여했고, 박희정, 유시진, 나예리, 천계영 등은 한국만화를 순정과 비순정으로 나누게 할 만큼 다양한 작품세계를 이끌어냈다.

 

코믹스만화의 시대, 생산과 소비

80~90년대에 학창기를 보낸 이들을 만화세대라고 지칭 할 만큼 이 시기는 현대 만화사에서 가장 풍요로운 시대였다. 전 페이지를 연재만화로 채운 월간 보물섬1982년 창간되며 아동과 청소년의 필독 매체가 됐고, 성인만화전문지를 표방한 만화광장’1985년 창간됐다. 1987년에는 주간만화가 창간되며 성인만화잡지의 주간지 시대를 열었다. 1988년에는 격주간 만화왕국의 창간에 이어 주간 아이큐점프가 창간되며 아동만화잡지도 주간지 시대를 맞이한다. 같은 해에 창간된 르네상스는 순정만화의 재발견과 급성장을 주도했다.

성인지, 아동지, 순정지로 특화 된 만화전문잡지는 만화 시장의 소비 형태를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대여를 중심으로 형성됐던 소비시장이 판매 시장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소비 확대는 곧 다양한 만화 담론의 생산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에 따라 <시사만화><만화시대>처럼 만화라는 형식을 바탕으로 사회적 담론을 주도하는 매체가 등장하기도 했다.

매체의 다양화는 매체 간 경쟁 구도를 만들면서 양적 팽창과 함께 질적 성숙을 이뤄갔다. , 다양한 작가군의 등장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잡지 연재 후 단행본 발행이라는 상품화 방식도 과거보다 정교해 졌다. 주간 잡지 연재를 통해 작품이 안정적으로 창작됐고, 이를 단행본으로 상품화하여 지속적으로 유통할 수 있는 판매망이 형성됐다. 잡지의 매체력과 동네서점, 문방구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만화도서의 신규 판매망은 밀리언셀러만화를 등장시켰다. 출판유통업계에서는 기존 만화도서보다 작은 판형으로 출판된 이 같은 도서들을 코믹또는 코믹스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코믹스는 잡지를 통해 연재됐고 단행본으로 발행됐다. 인지도가 높아진 작품은 캐릭터 상품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인기 작품의 경우는 영화나 드라마 또는 게임으로 제작됐다. 과거에도 이 같은 사례들이 있었으나 매우 제한적이었다. 반면, 코믹스의 시대에는 이 같은 만화원작 상품화 모델이 일반화 되면서 만화산업이 연관산업으로 파생되는 구조가 만들어 졌다.

만화산업의 규모 확대와 성과는 만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90년 국립 공주전문대학에 만화예술과가 개설되어 고등교육기관에서 만화가가 양성되기 시작했다. 우리만화협의회(현 우리만화연대)’처럼 만화의 사회적 기능성을 목적으로 한 새로운 만화단체가 설립됐고, 일간신문의 신춘문예에 만화평론 부문이 생기기도 했다. <달려라 하니>, <머털도사>, <열네 살 영심이>, <날아라 수퍼보드> 등 유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TV 애니메이션이 집중적으로 제작되면서 기대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도 이 시기의 성과라 할 수 있다.

1990년대는 만화의 다양성이 가장 두드러졌던 시기이기도 하다. <미스터블루><빅점프>, <투엔티세븐> 등의 성인 잡지는 우리만화의 저력을 보여주는 역할을 했고, <만화실험 봄>, <화끈>, <믹스> 등이 보여준 실험성과 작가주의적 측면 역시 만화의 변화된 모습을 증명했다. 이를 통해 어느 때보다 소재와 주제적인 측면에서 다채로운 작품들이 탄생했다.

 

 

4 디지털의 시대(~2010년대)

 

디지털 혁명기의 만화계

21세기 우리 만화계가 맞이한 가장 큰 변화는 만화가 더 이상 인쇄물로만 소비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세기말, 급격한 시장 확대와 위축을 경험한 만화계는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문화사회적 이슈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2000년에는 인터넷만화 3사로 대표되는 엔포, 코믹스투데이, 코믹플러스가 사이트를 개설하고 연재만화웹진과 단행본 서비스를 개시했다. 작가들도 출판시장의 불황이 장기화되고 신뢰할 수 있는 연재매체가 줄어들자 인터넷을 중심으로 자생의 길을 찾기 시작했다. 코믹스만화계의 첫 주자가 김준범이라면 대본만화계에서는 박봉성, 이재학 등이 개인 사이트를 통해 유료만화 서비스를 개시했다. 언더그라운드만화계에서 활동하던 작가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신일섭은 웹진 COMIX를 오픈해 실험만화의 도전정신을 이어갔고, 강성수는 만화가 인큐베이터 시스템을 겸한 웹진 AKZINE을 오픈하며 다양한 만화가들의 멘토 역할을 해냈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나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등장한 신예 만화가들이다. 이들은 개인 홈페이지나 카페 등에 일상 속 이야기를 담은 만화를 올렸고 이에 공감한 네티즌들은 이른바 '펌질'이라는 재전송 방식을 통해 작품을 확대 유통시켰다. 이는 새로운 방식의 작가 등용시스템이 됐고 인터넷은 작가와 작품의 인지도 및 인기도를 담보해주는 유통매체이자 소비매체로서의 기능을 해냈다. 이들은 곧 인터넷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됐다. 온라인에서 인기를 얻은 작품은 단행본으로 출간됐고 '에세이툰', '감성만화'라는 새로운 장르군을 형성하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는 인터넷만화 3사가 고민했던 연재만화 웹진을 기반으로 한 단행본 판매 수익화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전략이 전문인력과 상업적 자본을 통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이른바 네티즌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 역시 충격적 변화였다.

한편, 인터넷은 장편 서사만화를 소비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을 깨고 강풀이라는 새로운 스타만화가를 탄생시켰다. <순정만화>로 시작된 강풀의 서사만화는 기존 출판만화에서 볼 수 없었던 웹툰만의 새로운 연출법을 선보이며 온라인 만화 고유의 전통을 만들어 냈다. 반면, 만화전문출판사는 1990년대에 만화읽기를 시작한 이들의 성장에 맞춰 20대를 겨냥한 잡지를 창간하면서 새로운 붐을 조성하기도 했으나 기대만큼의 성과를 이끌지 못했다. 이후 과거의 인기작품을 애장판 형식으로 재출간하고, 주류만화의 성격을 소수 마니아층의 눈높이에 맞추는 등 소극적인 대응에 머물렀다. 다른 한편에서는 색다른 시각으로 무장한 종합출판사의 기획만화와 학습만화가 달라진 소비자의 요구에 맞춘 기획출판으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출판만화 시장의 새로운 강자가 되기도 했다.

 

현대만화 4세대의 등장

인터넷이 만화창작과 유통 환경의 변화를 주도하면서 새로운 기술과 감성으로 무장한 작가군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기성 만화가들을 인터넷이라는 공간으로 집결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권윤주(<스노우캣>), 심승현(<파페포포메모리즈>) 등이 개인홈페이지나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성공 스토리를 만들었고, 강풀은 개인홈페이지와 포털사이트의 연재만화를 통해 주목 받았다. 잡지만화를 통해 두드러진 활동을 펼쳐보였던 강도하, 양영순, 윤태호 등이 탄탄한 서사와 연출력으로 웹툰에 활력을 불어 넣으면서 국내 창작만화 시장의 중심이 만화잡지에서 포털사이트로 이동했다. 대표적 포털사이트인 다음과 네이버는 각각 만화속세상과 만화 섹션을 통해 50여 편 가량의 신작 만화를 연재하고 있고 새로운 작가진 발굴을 위해 만화가 인큐베이팅 시스템(나도만화가, 도전만화가)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네이버는 조석, 김규삼, 김선권, 하일권 등의 작가를 등장시켰고, 다음은 호랑, 제피가루, 팀풍경, Hun 등의 작가를 배출했다. 야후, 네이트(툰도시), 파란 등의 포털에서도 다양한 웹툰이 연재되며 다수의 작가들이 활약하고 있다.

권윤주(1975년 생)는 개인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고양이라는 캐릭터에 담아 매일매일 게재하는 방식으로 이른바 일기체 만화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냈다. 이를 책으로 묵은 <스노우캣의 혼자놀기>귀차니즘등의 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심승현(1971년 생)은 인터넷 카페를 통해 올린 감성적 연애만화 <파페포포> 시리즈로 인기 만화가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른바 감성만화로 불리며 인터넷 연재만화의 출판 붐을 주도하기도 했다.

강풀(1974년 생)은 웹툰이라는 새로운 만화 장르를 대표하는 작가로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한 <순정만화>를 통해 웹툰의 창작 스타일을 에피소드 중심에서 장편 서사물로 전환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디지털만화의 시대, 유통과 혁신

2000년 이후 한국 만화는 10몇 년 만에 만화계의 전체 구성 요소가 뒤바뀔만한 거대한 변화를 경험했다. 만화잡지와 단행본은 미디어 환경의 급변과 게임, 영화 등 타 장르의 성장에 밀려 소수 마니아를 위한 문화로 밀려나고 있다. 연령과 장르 그리고 성별에 따라 수 종()에 이르던 만화잡지들은 휴간과 폐간을 서두르거나 혹은 웹진으로 외형을 변화시키고 있다. 단행본 초판 발행부수가 기본 만부에 이르던 때가 불과 얼마 전이지만 이제 몇 천부를 판매하기도 힘들어 졌다. 더 이상 만화책은 대중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미디어가 아닌 상황이 됐다. 대중은 3윈도우라고 불리는 MobilePhone(이동 중), PC(근무지), TV()로 이어지는 미디어 라이프 사이클 안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한국만화가 찾은 블루오션은 콘텐츠라는 단어에서 출발했다. 이는 다매체전략이나 미디어믹스라는 이야기로 구체화됐다. 저작물의 유통측면에서는 인터넷과 모바일로 옮겨가기 시작했고, 저작권리 측면에서는 영화, 드라마 등 대중문화 전반에 소재를 제공하는 콘텐츠 산업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타짜>, <식객>, <아파트> 등 다양한 만화들이 영화로 옮겨지고 <>, <쩐의 전쟁> 등 매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만화원작 드라마가 방송되고 있다. 만화는 이제 만화책의 대량 유통과 소비를 통해 만화산업을 유지하는 방식에서 벗어났다. 만화콘텐츠를 개발하여 이를 영화, TV 등 대중적 미디어나 유통플랫폼의 형식으로 변환해서 제공한 후 확보된 인지도를 바탕으로 도서 등 관련 상품의 판매를 촉진하는 식의 장기 전략이 수립되고 있다.

, 만화콘텐츠의 다매체전략과 함께 진행되고 있는 것이 시장 확대 전략이었다. 내수시장으로 국한됐던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해외시장을 염두에 둔 창작이 이뤄지고 있다. 해외시장 진출의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국내에서 생산된 작품을 해외로 수출하는 경우와 국내작가가 해외로 진출해 현지에서 창작하거나 작품을 발표하는 형태이다. 만화수출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에이전시가 다수 등장할 정도로 한국만화의 해외 시장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다. 국내작가의 해외 현지 작품 활동도 2000년 이후 급증하고 있다. 박무직, 이유정, 박성우, 양경일 등은 일본 잡지에 작품을 연재했고, 특히 박성우의 <흑신>은 국내작가의 작품으로는 최초로 일본에서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방영되기도 했다.

작가와 출판사 그리고 에이전시가 민간차원에서 만화의 해외시장 진출을 주도하고 있다면, 관련 지원기관의 움직임 또한 눈여겨볼 대목이다. 한국콘텐트진흥원,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등 관련 기관마다 해외진출을 확대하기 위한 창작 및 수출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으며, 해외 관련단체 및 기관과 협정을 맺어 한국만화를 전파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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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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