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의 의제설정기능에 대하여
웹툰, 웃음과 반전으로 우리사회의 의제를 설정하다
일본 태평양 연안 지역에 초대형 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했다. 재난영화가 보여줬던 과장된 현실보다 진짜가 더 참혹했다. 수많은 사상자와 이재민, 잇단 원전사태와 후속 지진에 대한 불안으로 열도는 공포에 빠졌고, 세계가 함께 슬퍼했다. 전통 언론은 전담팀을 편성하여 이웃나라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빠르고 비중있는 소식을 전한 것은 모빌리언들의 지저귐이었다. ‘트위터’라는 서비스명으로 대표되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재난 현장에서 자동차와 집을 잃고, 가족을 잃고, 자신마저 잃어버린 이의 최후를 전달했다. 전통언론의 최고 취재원은 급파된 전담팀과 사고현장 주변이 아니라, 사고의 직접적 피해대상자나 목격자의 생생한 증언이 담긴 트윗이었다.
트위터가 언론의 역할과 위상을 뒤흔들고 있다면, 만화 분야에서는 웹툰이 전통만화의 가치와 의미를 담아내는데 성공하면서 만화문화와 산업 전반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기실 만화는 신문의 발전과 함께 성장한 20세기의 문화예술 양식 중 하나이다. 현대만화는 신문을 중심으로 매일 또는 주간 단위로 대중과 호흡하는 방식을 배웠다. 1칸, 네칸, 한페이지 등 연재만화의 양식 역시 신문을 통해 구체화 됐고, 만화가 다루는 소재도 ‘정치·경제·사회·문화…’ 순으로 보편화된 신문의 지면 구조와 무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21세기의 초입부터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신문의 역할을 대체해가고 있고 신문 내부에서 만화의 위치 역시 흔들렸다. 반면, 인터넷 포털 뉴스의 구독층은 늘어났다. 웹툰이라는 새로운 만화 형식이 포털 내부에서 서비스되기 시작했다. 전통적 신문만화나 출판만화의 양식을 단순 이식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포털사이트를 이용하는 대중과 호흡하며 몸(형식)과 마음(내용)을 바꾼 것이다.
초창기 웹툰은 작가의 개인홈페이지나 각종 유머사이트의 게시판, 커뮤니티사이트를 배경으로 등장했다. 이 때문에 웹툰은 태생적으로 일상성이나 해학성을 담고 있다. 또 ‘신문 속 만화’처럼 대표적 매스미디어로 성장한 ‘포털사이트의 만화서비스’ 역시, 신문의 주기성, 속보성, 이슈성 등과 같은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히, 신문의 1칸 정치만평이나 4칸 생활만화 같은 역할을 하는 ‘일상툰’은 다양한 사회문화적 이슈를 소재로 삼아 재기 넘치는 웃음으로 사건을 환기시키고, 독창적 시선으로 보는 이의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 내고 있다. 또, 신문의 장편연재만화나 연재소설 같은 역할을 하는 ‘서사툰’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작중 주인공의 시선에서 작품을 읽는 이용자의 문제로 전이시키는 방식을 통해 우리사회의 의제설정 기능과 의제에 대한 재인식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일상툰’을 대표하는 조석의 <마음의 소리>와 이말년의 <이말년씨리즈> 등의 작품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벌어질 법한 일상의 소리들을 희화시키거나 희화적 이야기를 시사적 맥락에서 해석하게 만드는 작품을 다수 발표하고 있다. ‘서사툰’의 대표작가인 강풀, 강도하, 하일권 등은 ‘역사청산’, ‘사회부적응자’, ‘집단따돌림’, ‘성적취향’, ‘사회적약자’ 등의 문제를 작품화하며 우리사회의 수많은 금기와 문제적 상황 또는 사건에 대한 재인식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웹툰의 문제제기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한국만화가협회가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함께 웹툰작가들을 중심으로 일본재난을 격려하기 위한 메시지 웹툰을 릴레이 형식으로 게재한 바 있다. ‘힘내요 일본’이라는 부재가 붙은 이 작품은 한국어와 일본어로 동시 편집되어 한국민의 마음을 일본에 전했다. 게재 작품에 대한 정성적 평가는 높았던 반면, 별점으로 표현되는 정량적 평가는 낮게 측정됐다. 일본의 재난을 도와야 한다는 전세계적 동의가 전통언론과 오피니언리더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후였다. 그러나 일부 인터넷 이용자는 네이버와 웹툰작가들의 ‘선의’를 일제강점기를 거론하며 ‘얼빠진 일’이라 비판했다. ‘인류사적 재앙에 대한 선의’와 ‘일본에 대한 국민적 상처’가 웹툰을 중심으로 충돌한 것이다. 웹툰 서비스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인 이용자의 피드백 시스템인 덧글과 별점이 반일정서를 지닌 이용자의 의견으로 도배 당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네이버는 해당 웹툰으로의 접속을 차단했다. 현상적으로만 보면 사회적 의제가 ‘격려’일 수 있으나, 국민적 정서와 수치화 된 실체는 ‘격려에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처럼 웹툰은 일상툰과 서사툰이라는 경계없이 해학적 재미와 함께 극적 즐거움을 제공하는 한편, 그 탄생 배경과 포털이라는 매체의 특수성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시사성과 사회성을 담아내고 있다. 작품에 대한 즉시적 의사소통 장치(덧글, 별점 등) 역시 웹툰의 내용과 작가의 창작태도를 넘어서 유통과 소비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됐다. 이는 정보민주주의와 전통언론의 의제하달식 행태에 대한 비판 등의 측면에서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웹툰은 출판만화의 변종이나 인터넷의 아마추어만화라는 비판에서 벗어나 우리사회의 담론형성 틀로 활용되고 있다. 또, 웹툰작가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작품으로서만이 아니라 직접적인 발화를 통해 입장을 밝혀야 하는 책무를 지니게 됐다. 웹툰의 위상과 역할, 사회적 지위가 변한 것이다.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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