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한국 만화사를 통해 본 모더니즘 현상에 대한 단상, 2011.6.2

한국 만화사에 나타난 모더니즘 현상에 대한 단상




1. 들어가며


만화는 신문과 인쇄술의 발달, 사진과 영상기술의 발달과 함께 20세기 초에 탄생한 예술 형식이다. 프랑스, 미국, 일본 등 다양한 국가들이 21세기를 맞이하며 자국의 만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바 있고, 2009년에는 한국만화100주년 기념행사가 개최되기도 했다. 영화, TV 등에 이어 제9의 예술로 분류되기도 하는 만화는 탄생 시기와 배경 측면에서 모더니즘이라는 근현대의 철학적 사상과 사회적 현상을 기초로 도출된 표현 예술 장르라 할 수 있다.

서구사회의 모더니즘이 유럽에서 도출된 이성주의와 인본주의에 기초한 과학기술의 발달과 산업혁명 그리고 세계전쟁 이후 확산된 미국식 자본주의와 대중문화에 따른 것이라고 할 때, 정치 풍자적 성격으로부터 출발하여, 단일 이미지 중심 구조에서 복합 이미지 중심 구조라는 형식적 변화를 거쳐, 기술 복제 시대를 통해 대량생산되고 대량소비 되는 시스템을 구축한 만화는 모더니즘이라는 철학적이며 문예적인 사조의 영향과 무관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만화라는 표현 예술 장르의 탄생과 모더니즘은 어떤 관계가 있으며, 한국만화사에서 모더니즘의 형성과 도출 과정은 어떠했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이를 통해 모더니즘적 관점에서 한국만화사의 연대기를 재검토해보고자 한다. 이는 만화의 유통형식과 만화산업의 시장 형성기라는 맥락 속에 일반화 되어 있는 한국만화사의 일반적 연대분류 기준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 모더니즘의 전개 과정


모더니즘은 17세기 이성주의로부터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을 거치는 동안 철학과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대표적인 시대정신으로 성장했다. 테카르트의 코기토(Cogito) 사상으로부터 촉발된 인본주의적 이성주의는 비합리적이고 우연에 근거한 신본주의적 사상에서 비롯된 모든 것을 뒤바꿔 놨다. 이에 따라 합리론, 이성론 등이 유행하고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간 가치를 추구하는 계몽사상이 더불어 확산됐다. 칸트 같은 철학자는 계몽주의 철학과 비판 철학 등을 통해 인간의 인식 능력과 그 한계를 다루며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헤겔의 경우는 현실과 이성의 일치라는 세계관 속에서 변증법을 이성적으로 추구하며 합법성, 도덕성, 윤리성이라는 자유의 발전 단계를 보여 주었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모더니즘의 철학적 기초가 구축됐고, 19세기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이 등장하면서 과학 중심의 기술혁신과 산업 혁명의 과정을 경험한 이들에 의해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이 형성됐다.

과학 분야에서는 물리학자인 하이젠베르크가 양자역학을 이용하여 사물의 불확실성을 증명했다. 또한 사진기의 발명은 회화의 관념을 크게 바꾸어 놓았는데, 사진기가 갖고 있는 사실을 포착하는 특성은 르네상스 이후 서양회화의 주된 흐름이었던 사실주의를 무력화 시켰다. 결국 화가들은 회화에 있어서 사실적으로 표현하려던 태도를 버리고 그들의 생각이나 개념을 재현하고자 하는 ‘사실의 반영’에 집중했다. 세잔에 의해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움직임이 등장했는데 이는 과학과 예술 사이의 보완적 교류를 통해 예술의 새로운 시각을 강조한 것이었다. 세잔은 빛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시각의 관념을 표현했다. 이는 곧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존재를 표현하는 숭고한 정신, 즉 추상의 개념으로 발전했다. 또, 인쇄기술의 발전은 회화의 유일무이성 마저 혼돈에 빠지게 했는데 벤야민은 이를 사본과 모조가 실재를 대체하는 현상으로 파악했다.

19세기 말에 접어들면서 과학과 기술 중심, 이성주의를 통하여 과거의 전통적 사회관과는 전혀 다른 관념의 사회, 경제 중심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자는 혁명적 정신계가 구축되었으며 모더니즘은 이러한 배경 하에 도출된 정신적 시대사조였다.


3. 만화의 발명과 모더니즘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만화(漫畵)라는 용어는 한자어다. 그러나 이 단어가 만들어진 곳은 일본이었다. 일본에서는 19세기 후반에 만화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으며, 우리나라는 1920년대 초반, 신문과 잡지 등에서 만화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우리의 만화와 같은 의미를 희화(戱畵)라고 표현해왔지만, 최근에는 일본과 한국처럼 만화라 적고 ‘만후아’라고 사용하고 있다.

수 만 년 전 인류의 선조들이 동굴이나 바위에 새겨놓은 선화 그림을 만화의 기원으로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인쇄에 의해 그림이 대량복제 된 근대만화의 시작은 16세기 이후 유럽에서 시작됐다. 18세기 중엽 산업혁명과 함께 인쇄기계가 발명되고 신문과 잡지가 발행되면서 인물풍자화 성격의 만화가 보편화 됐다. 미국에서는 19세기 초반부터 상업신문에 연재할 목적으로 창작된 만화가 발달했다. 20세기 초반에는 서구와 일본에서 만화책 발행을 시작했으며, 오늘날에는 전 세계의 모든 나라가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만화문화를 꽃피우고 있다. 근대만화 창작의 선구자들을 살펴보면 영국의 화가 윌리엄 호가스(1697~1764), 인물풍자화의 기법으로 정치만평을 그린 프랑스의 석판화가 오노레 도미에(1808~1879), 해학적인 생활상을 그린 일본의 풍속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1760~1849), 우리나라 개화기시절 일제의 침략야욕을 강하게 비판했던 한국의 동양화가 이도영(1884~1933)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처럼 만화는 모더니즘이 활기를 띄던 시기에 본격화 됐고, 동시대적 표현 예술로 발전했다. 각 국을 대표하는 만화의 선구자들 역시 당대의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표현 수단과 방법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을 노래했다.


4. 한국만화사에 나타난 모더니즘 현상


4.1. 시간의 개념을 도입한 최초의 한국 만화

한국만화의 탄생은 일본의 반식민지 상태였던 1909년 6월 2일 창간된 <대한민보>와 함께 한다. 서화가 출신의 젊은 애국지사였던 이도영이 ‘삽화’라는 제목으로 일제에 의해 매체가 강제 폐간 될 때(1910년 8월 31일)까지 현재적 의미의 시사만화를 연재했다. 첫 회 연재분은 <대한민보>의 창간 취지를 설명하는 홍보용 일러스트로 볼 수 있으나 단순화된 인체 묘사와 과장된 표정, 말풍선 역할을 하기도 하고 시간의 경과를 나타내기도 하는 ‘네 줄의 선’ 등은 이 작품을 현재적 의미의 만화로 손꼽게 만들었다. 특히 2회 연재분부터는 당시 시국상황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본격 시사만평을 선보였다. 이도영의 작품에서는 칸나누기, 동작선, 말풍선의 응용 등을 통해 정영상의 이미지 또는 단일 시간대의 표현물에 동적이면서 복수 시간대의 표현을 담아낸 현대적 만화 수사법을 사용하고 있다.


4.2. 현실비판적 엘리트주의에서 대중주의로

1920년 창간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는 필명을 쓰거나 이름이 명기되지 않은 만화가 다수 게재했다. 한편으로는 이 같은 부담을 경감하는 차원에서 소속 매체의 기자나 시사만화가가 그린 그림을 ‘독자투고만화’라는 명칭을 붙여 게재하기도 했다. 어떤 것이 먼저였는지 알 길은 없으나 ‘진짜 독자’들이 그린 비판적 만화도 함께 게재되면서 독자만화 붐이 일었다. <동아일보>는 1923년 만화현상공모를 실시했고 일요판에 독자투고만화를 정기 게재했다. <조선일보>는 1924년 신춘작품모집을 통해 만화를 공모했다. 신예작가를 발굴하는 한편, 민의를 살피고 반영할 수 있는 이 같은 대중매체의 공모제도는 현재까지 우리 만화계의 중요한 인재 발굴 시스템이자 정치적 여론 검토 장치이기도 하다.

이 같은 시도는 미국에서 신문학을 전공하고 <동아일보> 창간 멤버로 활동하며 한국 만화의 초기 무대를 풍성하게 했던 김동성의 제안에서 출발했다. 김동성은 밭전(田)자 형태의 만화 등 색다른 형식의 신문만화를 고안하는가 하면 직접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1924년에는 <조선일보>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 기획창작만화라 할 수 있는 눈목(目)자 형태의 <멍텅구리 헛물켜기>를 탄생시켰다. 스토리는 이상협과 안재홍이 맡았고 그림은 노수현이 그렸다. 한량들의 애정행각을 소재로 한 슬랩스틱 코미디 만화인 이 작품은 <멍텅구리>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멍텅구리 헛물켜기>가 인기를 끌자 <동아일보>는 안석주의 <허풍선이 모험기담>을 연재했다. ‘만화를 앞세운 매체 간 경쟁’의 첫 사례로 볼 수 있다. 김동성은 언론인으로 출발해서 정치인이 되기까지 만화가, 만화이론가, 만화기획자 등의 역할을 하며 초기 한국만화의 마당을 마련했다. 특히 최초의 만화작법 이론이라고 볼 수 있는 ‘만화 그리는 법’을 연재하는 등 만화창작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노력했다. 김동성의 제안으로 출발한 스토리와 그림작가의 분업 창작, 삼각연애 중심의 매체 연재형 이야기 구조, 만화원작의 영화화, 매체별 톱작가 기용 등은 현재까지 유효한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다.


4.3. 해방, 전쟁, 모더니티의 다양한 모습들

일제의 식민 지배는 후기로 갈수록 더욱 폭력적으로 변했고 언론은 사회비판적 시사만화를 더 이상 게재하지 못했다. 초기 민족지를 자임했던 매체들도 사세확장 등을 이유로 친일적 매국행위를 자행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신문만화는 본래의 비판적 기능보다는 계몽적 역할과 오락적 기능에 충실한 작품을 게재하기 시작한다. 정치나 사회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보다는 ‘모던’으로 대표되는 현대화 과정의 웃지 못 할 풍경을 구수한 글솜씨와 그림으로 풍자하는 ‘만문만화’가 유행하기도 했다. 또 당대의 신문은 성인남성의 전유물에서 어린이, 여성 독자를 위한 지면을 제공하며 대중매체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신문은 본지 또는 별지를 통해 아동 대상의 다양한 만화작품을 게재하며 독자층을 넓혀갔다. 한편, 이렇게 넓어진 독자의 요구를 신문이 모두 수용하지 못하면서 잡지만화의 인기도 높아졌다. 30년대 중후반부터 해방 이전까지 성인과 아동 대상의 만화를 두루 창작하며 빼어난 활동을 전개한 작가로는 김규택, 안석주, 최영수 등이 있다. 이들이 주목했던 ‘계몽과 오락’이라는 아동만화의 키워드는 현재 ‘교양학습, 지식탐험’이라는 거대한 아동만화 장르의 산을 만들어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통제됐던 말과 글이 풀리면서 신문과 잡지, 도서가 쏟아져 나왔다. 하동안 자취를 감췄던 만화도 인쇄매체의 폭발적 증가와 함께 재등장했다. 임홍은, 김규택 등 기성작가군과 김용환, 김의환 형제, 신동헌, 김성환 등 신진작가군의 활약이 펼쳐졌다. 아동문학협회를 중심으로 계몽적 성격이 강한 고전소설이나 전래동화 등이 '이야기그림책'이라는 이름의 만화로 출판되어 호평을 받았다. 세태풍자 중심으로 흐르던 신문만화도 신문의 다양화와 함께 본래의 정치풍자 기능을 되찾았다. 만화를 중심으로 편집된 신문 <만화뉴스>가 발행되며 당대 최고의 판매기록을 수립하기도 했고, <신세대>, <어린이> 등 다양한 잡지가 만화를 게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이 벌어지며 만화는 또 다시 위기에 처한다. 당대의 신예 스타 ‘코주부’ 김용환과 ‘고바우’ 김성환은 육군본부 등에서 대민 살포용 삐라와 선전용 만화책, 포스터 등을 그려야 했다. 만화라는 형식이 지닌 ‘연상작용’의 기능성과 대중파급력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아쉬운 역사의 한 장면이다.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도 만화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혼란스런 정국을 호되게 비판하기도 했고 피로한 대중에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과 희망을 전하기도 했다. 시대극화의 전범을 보여줬던 김종래, 박광현, 박기당과 함께 기발한 상상력으로 명랑만화의 세계를 구축한 임수, 신문수, 김경언 등이 50년대 중후반 등장해 만화계에 활력을 더한 작가들이다. <만화소년>, <만화세상>, <만화세계>, <아리랑> 등 교양과 오락 기능에 충실한 잡지의 창간 소식도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4.4. 만화의 대량생산과 소비시스템

1957년에는 국내 최초의 만화총판인 서울총판이 문을 열었다. 서울총판은 출판사로부터 만화책을 받아 각 지역별 총판에 공급하고 지역총판은 중간도매상을 통해 이를 전국의 만화방에 유통시켰다. 1959년 통계에 의하면 당시 만화방은 전국적으로 2000여 곳에 이를 만큼 번성했다고 한다. 돈을 내고 입장하거나 만화책 권당 얼마의 돈을 내고 현장에서 열람하는 방식의 만화방 시스템은 만화책의 유통과 소비를 대규모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고 서사만화 장르의 다양성을 이끌어냈다. <도전자>의 박기정, <라이파이>의 산호, <싼디만>의 오명천, <악동이와 영팔이>의 방영진 <울 밑에 선 봉선이>의 권영섭 등이 스포츠, SF, 서부극, 학원명랑, 순정 등 새로운 만화장르를 탄생시키면서 만화 대중화를 주도했다. 만화방 시스템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자 1966년에는 이 시스템을 장악하고 만화책의 생산과 유통을 독점한 합동문화사가 설립되기도 했다. 독점체제의 폐해는 작가에 대한 압박과 작품, 출판물의 저질화로 이어지면서 많은 문제를 양산했다. 만화가들은 이에 대항하기 위한 작가출판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활로를 모색하기도 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이 시스템은 ‘독고탁’의 이상무, ‘이강토’의 허영만, ‘까치’의 이현세를 등장시키며 화려하게 80년대를 열었고 박봉성, 고행석, 하승남, 야설록, 황성 등 액션과 무협 장르에 특화된 작품을 도출시키며 현재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4.5. 군사정권 하의 반쪽 현대화와 뒤늦은 리얼리즘만화의 등장

1967년 <어깨동무> 창간 이후 <새소년>, <소년중앙> 등의 아동교양잡지가 주목받기 시작했고 연이어 <선데이서울>, <일간스포츠> 등 성인을 위한 오락매체가 창간되면서 만화는 인쇄매체의 핵심 요소가 됐다. 신문과 잡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작가군과 만화방 중심 유통구조에서 과도한 생산성을 요구받던 작가군이 자연스럽게 나뉘면서 경쟁 구도를 형성하기도 했다. 만화방 만화의 경우 아동만화자율심의위원회, 간행물윤리위원회 등의 사전, 사후심의에 휘둘리면서 만화 소재나 내용의 다양성에 제한을 받았던 반면, 거대 언론사의 그늘 아래 있던 잡지만화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심의에서 자유로웠고 이 같은 ‘자유 창작 환경’은 우리만화의 질적 경쟁력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신문수, 길창덕, 김원빈, 강철수, 방학기, 김삼, 고유성 등의 작가가 이 시기를 전후로 등장했다. 잡지만화는 1981년 <보물섬>의 창간과 함께 만화전문잡지 시대를 만들어냈고 김수정, 김형배, 황미나, 이희재, 윤승운 등의 작가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특히 군사정부의 대중문화 확산 정책과 88서울올림픽 등으로 인해 문화예술장르에 대한 표현 수위가 높아지면서 성인을 위한 만화잡지 <만화광장>, <주간만화> 등이 등장해 호평을 받았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이희재 등의 작가는 이른바 리얼리즘 계열의 만화가로 분류되며, 어린이 독자 중심의 한국만화계에 새로운 긴장을 제공했다.


4.6. 미국적 모더니즘의 완성과 모더니스트 만화가들의 등장

1988년에는 일본만화산업의 중추를 형성하고 있는 주간만화전문잡지 시스템을 도입한 <아이큐점프>가 창간되고 이후 <소년챔프>가 등장해 경쟁구도를 취하면서 새로운 만화 붐을 주도했다. 곧이어 순정만화잡지, 성인만화잡지 등이 생겼고 잡지연재 만화를 서점판매용 단행본으로 발행한 이른바 ‘코믹스’가 만화출판의 새 모델이 됐다. 박산하, 이충호, 김수용, 이명진, 양재현, 양영순, 천계영, 윤태호 등이 신예작가군을 형성하며 화려하게 등장했고 ‘100만부 판매’ 작가가 다수 등장하기도 했다.

1995년 정부는 문화산업의 경제적 효과에 집중했고 만화진흥정책을 발표하는 한편, 관주도의 대규모 만화축제를 시행한다.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은 1회 행사에서 15만명 이상의 관람객을 유치하며 만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산업계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후 유사 행사가 이어지고 지방자치단체가 지역형 특화산업으로 만화를 주목하면서 만화는 급격하게 산업화를 이루게 된다. 만화산업이 호황을 맞으면서 만화예술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함께, 기성만화에 대한 전복적 사고와 가치관을 지닌 젊은 세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홍대앞’이라는 지정학적 위치 속에서 탄생한 언더그라운드 만화, 대학생 만화동아리를 중심으로 구축된 독립 만화라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냈다. 신일섭, 강성수로 대표되는 <모던코믹스 봄>과 <히스테리>, 모해규, 장경섭으로 대표되는 <화끈> 등이 이 시기에 등장한 만화잡지였다. 그런데 이 시기는 사회적으로 X세대가 등장하고, 예술사적으로는 포스트모던이라는 새로운 사조가 붐을 이루던 시기였다. 이 같은 시대적 상황은 유럽이나 미국의 지성사로 제한됐던 것이 아니었다. 한국사회에서도 모더니즘 이후의 색다른 도전들이 동시대적 관점에서 활발하게 개진되고 있었다.


5. 모더니즘의 시각으로 본 한국만화100년


20세기의 문화 지형도를 모더니즘이라는 예술사조를 중심으로 해석한바 있는 코디 최는 모더니즘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정의하고 있다. 첫째, 과거의 역사와 문화 전통에서 찾아볼 수 없는 완전한 새로움(New)이 있어야 한다. 둘째, 완전한 예외성(Exceptional)을 갖고 있어야 한다. 셋째, 그 구조는 다분히 아카데믹한 엘리트의식(Elitism)에 근거해야 한다. 넷째, 편집증적일 정도로 깊고(Deep) 어려운(Difficulty) 내용을 갖고 있어야 한다. 다섯째, 세련되면서도 복잡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사회의 흐름(Social Dynamics)을 바꾸어 놓아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중요하다. 코디 최는 이 같은 특징을 품고 있는 모더니즘 예술에 대해 ‘전혀 친숙하지 않은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일종의 거리감이나 저항감,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데, 이를 극복함으로써 고통과 기쁨이 교차되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한국만화사는 모던의 시대와 함께 출발했다. 또, 한국만화사의 주요 국면들은 100년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일시적이거나 제한적 형태가 아니라 상당한 기간을 통해 모더니즘의 특징적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995년을 전후해 등장한 언더그라운드 만화는 한국만화 100년의 전통이 내포하고 있던 모더니즘적 요소들을 총합적으로 발산한 도전적 사건이었고 가히 한국만화사의 아방가르드들이라 할 수 있다. 신일섭은 기성의 만화를 거부하는 측면에서 오른손잡이 임에도 왼손으로 만화를 그렸고, 강성수는 종이가 아니라 전시나 무대에서 만화를 그렸다. 모해규와 김경호는 자신의 만화에 담긴 의도를 지속적으로 설명하려 했고, 장경섭은 뭔가 알 수 없는 내면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려했다. 그들은 모두 만화를 위한 만화를 그렸고, 만화를 통해 무엇인가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끝) 


박석환 ( www.parkseokhw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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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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